내성천이 훤히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에 마을을 앉힙니다.
19세대가 모여 사는 마을인지라, 집과 집,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길이 필요하죠.
길은 그저 길이 아닙니다.
나와 이웃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이고
집과 집이 연대를 맺기 위해 맞잡는 손입니다.
어쩌면 길 위에서 한참동안 떠들기도 할 거고
어쩌면 길 옆에 주저앉아서 소곤소곤 의논할 수도 있을 거고
어쩌면 길 위에서 마주친 아이들이 가슴 콩닥거리고 얼굴 붉히며 짐짓 스쳐지나갈 수도 있을 겝니다.
그 모든 삶들이 편하게 얹혀 지게 하기 위해,
급한 경사는 다듬어야 했지만, 편평한 길, 곧고 쭉 뻗은 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땅의 결을 따라 길을 내고, 그 구불구불한 길 옆에 집터를 포도알처럼 대롱대롱 매달았습니다.
그 길 아래에 마을의 식수가 자니가고
그 길 위에는 마을의 삶이 지나갈 겁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 길 위에는 마을 주민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서 마을의 역사를 이루겠지요.
그 길을 정성스럽게 빚고 있습니다.
이제 집터가 눈에 드러났습니다. 기초 작업을 위해 기초 아래의 기초를 만들었지요.
집터마다 정화조환풍기가 보이죠? 정화조 파묻었습니다.
안 그러면 허가 안난다는데야 뭐 별수 없지요.
똥 싸려면 정화조 묻어! 이게 법입니다-.-
대신, 저 정화조는 준공 받고 나면 그냥 빈통입니다.
자연정화시설을 함께 해두었거든요. 대단한 낭비지요.
앞집이 뒷집의 시선 앞에 있으면 곤란합니다. 뒷집의 시선이 앞집의 속살을 들여다봐도 곤란하지요.
그래서 경사지가 고맙습니다.
이것 역시 땅이 가진 결입니다.
땅의 결을 따라 집을 앉히면 앞집은 뒷집의 풍경이 되고 뒷집은 앞집의 든든한 울타리가 됩니다.
어떤 집들은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어떤 집은 좌우정렬을 합니다.
이 집 터에 주민들의 삶이 담길 겁니다.
옆집 된장찌개 냄새에 침이 꼴까닥 넘어가기도 하고
앞집 웃음소리에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괜히 흐뭇해하면서 앞집 문을 두들기기도 할 겁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마음 콩닥거리며 그 소년, 혹은 소녀의 방 창에 시선을 두기도 하겠지요.
혹은 맛있는 술 한 병을 들고 자네 있는가, 하고 대문 앞에 서서 인기척을 낼 수도 있을 거구요.
이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마을설계를 했고
이 장면들이 담기게 하기 위해 땅을 조심스럽게 다듬었고,
이제, 비온 뒤 죽순 자라듯 집들이 쑥쑥 올라갈 겁니다.
마을 만들기는 집짓기가 아닙니다.
마을 만들기는 삶을 담는 그릇 만들기입니다.
지금은 잠시 땅이 발간 속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주민들이 모여서 살림을 내려놓고 삶을 꾸릴 때 쯤이면
드러난 속살은 맑은 풀들로 덮이고
깎여진 땅들은 처음부터 있었던 듯,
사람들을 품어줄 겁니다.
행복한 삶, 그 삶들의 아름다운 모임, 작은 연대,
이 작은 그물이 만들 큰 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현장에는 큰소리도 없고 싸움도 없고 이기에 물든 다툼도 없습니다.
일하러 현장에 온 외부인도, 미리 들어와 마을 현장에 잡부로 변신한 마을 주민들도
마을 만들기를 하고 있는 에듀코빌리지도
우리 마을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웃 마을의 어르신들도
모두 행복하게 즐겁습니다.
꿈은 벌써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이 행복하고 즐거우면 삶도 덩달아 행복하고 즐거워지니까요.
행복하게 살려고 귀농하는 거니까요.
곁들여 안내^^
3월주말여행이 결정되었답니다.
3월에는 큰 산아래 들로 나갑니다.
쑥을 뜯어서 국을 끓이고 떡을 해서 봄을 맞이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늘 겁니다.
죽령옛길을 걸어 가면서 봄도 만나구요.
2009년 3월 28일(토) 낮 12시에
소백산 희방전통된장 민박집에서 만납니다.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241번지,054-637-3136)
영주교육생태마을 주민들은
2월 주말여행에서 얘기했던, 쪽빛학당, 목공실, 공동육아, 명상, 마을의 문화사업....
마을에서 할 일들을 좀 더 자세히 다듬는 여행이고
주말여행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즐거이 봄을 즐기는 여행이고
마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마을입주를 생각하는 여행입니다.
함께 하시면 참 좋겠습니다^^
첫댓글 조만간, 영동 쪽에서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전원마을을 추진하는 이들과, 그 마을을 구경하러 갈 계획이 있습니다.
언제든 환영합니다^^ 저희 쪽에서 도움을 드릴만한 일이 있다면 필요한 정보를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갈 때, '필요한 정보를 얼마든지 가져갈 속셈'을 지참하겠습니다.
보기에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