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못'과 '다못'의 혼용에 대하여-
금강경 제4분 묘행무주분에 이런 귀절이 나옵니다
[보살 무주상보시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수보리 보살 단(但)응여소교주]
이를 큰스님께서는 아래와 같이 번역하셨습니다.
[보살의 상에 머무름이 없는 보시의 복덕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야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다못 마땅히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지니라]
여기에서 다만 단(但)자를 '다못'으로 번역하신 걸 확인하게 됩니다.
이를 '우리말 법회요전'에는 '자못(頗)'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연히 작은 '법요집'에도 그렇게 해 놨습니다.(염송팀이 쓰고 있는 책이나 밤색 금강경은 원래대로 '다못'으로 되어있음)
'자못'은
'이번에 자못 기대가 크다' 에서 처럼
'매우' '꽤' 등의 뜻인 반면
'다못'은
다만, 단지, 오직 등의 남도지방 사투리라 합니다
큰스님께서 우연하게 사투리인 '다못'(금강경 다른 뒷부분에서는 다 '다만'으로 번역하셨음)을 쓰신 듯 보이지만
이를 확인도 안해보고 임의로 '자못'으로 바꾸어 놓으니
[보살은 '매우(자못)' 마땅히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지니라] 와 같이 뜻도 문장도 안 통하게 해 놓은 겁니다.
이후 재편한 '불광연화의식집'의 금강경에는 아예 그 '자못' 조차도 없애버렸습니다. 뭐 잘 모르겠으니까 아예 빼버렸지 싶습니다.그러니 금강경의 그 부분이 이상하게 돼버렸습니다.
최근 큰스님의 저서들을 살펴 읽으며,새로 재편한 책들에서 여기저기 원 저서의 문장과 다르게 손을 대어 바꾸어 놓은 것을 확인하면서 저는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한 분노를 느껴야 했습니다.
큰스님의 글은 그대로 영롱한 문자사리입니다.
이들이 불효자들의 손에 의해 재편되면서 어처구니 없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큰스님의 글 사이사이에 장문의 글을 가필까지 하였습니다. 문맥도 맞지않은 부분이 숱하였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밞지 않는다는데~
물론 좋게 하자는 의미로 그렇게 손을 댔으리라 여겨지지만 스승의 권위와 신성을 가벼이 여기는 데서 이런 불효행이 있게 된 것으로 봅니다.
오늘은 위의 금강경 한 부분만을 짚어보았습니다
후일 짬짬이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 싶으면서도
현재 법회정상화 발원하며 일인시위 등 힘든 상황인데 편히 앉아 이런 문제나 들어내어 쓰는 것이 도리도 아니지싶은 생각은 듭니다
이만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말 법회요전'이나 작은 '법요집'의
해당 부분의 '자못' 부분을 아래와 같이 원본대로 '다못'으로 수정하여 읽으시는게 맞겠습니다.
수보리여, 보살은 '다못'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지니라.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