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20. <와룡 선생과 탕수육 4그릇>
知彼知己는 百戰百勝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교육이 실시되기 전, 우리는 군(軍)에 대해서 너무나 아는 것이 없었다. 특히, 육사 출신 구대장들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우리가 어느 정도 상식 수준의 지식만 있었어도 서로가 그 많은 시행착오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은 솔직히 기압 덜 받고,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킬 수가 있었고, 이렇게 처참 하리 만큼 자괴심에 빠져 들지도 않을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구대장들의 입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우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극에서 극으로 오가는 이런 지휘 방침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석 점호가 끝난 후, 정례적인 송정리 구보가 실시 되었다. 우리는 사전에 첫번 외출에서는 절대 음식을 많이 먹거나, 과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생들 중 몇몇은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첫번 외출에 포식을 한 몇몇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사건은 2내무반에 있는 <와룡 선생 사건>이다. 와룡이 어떻게 와룡으로 불리우게 됐는지는 하도 오래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튼, 와룡 선생께서는 중국 음식, 그 중에서 탕수육을 어떻게 좋아 하셨는지, 제 말로 외출을 나가자 마자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만 4그릇을 시켜 먹었다고 자백을 하였다. 그래서 2내무반이란 극장에서 상영하는 상설 영화의 제목은 <와룡 선생과 탕수육 4그릇>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결국, 포병 학교 연병장을 떠나서, 보병 학교 옆을 지나, 송정리로 가는 대로에 들어서자 말자, 이들은 길바닥에다 뱃 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다 토해 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일단계 송정리 구보는 끝을 맺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