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이 올 3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효력을 발휘한다.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물품의 매매계약에 관해 그 성립문제와 매도인 및 매수인 간의 권리와 의무관계를 규율하고 있는 CISG는 매매 당사자간에 동 협약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의사표시가 없는 한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CISG의 내용은 우리 법과 차이점도 많고 우리 법에는 없는 새로운 내용도 있어 국내법에 익숙한 우리나라 기업인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커 주의가 요망된다.
① CISG의 적용 범위
거래의 양 당사자가 모두 체약국인 경우에는 ‘CISG를 배제한다’는 명시적인 합의가 없는 한 자연히 CISG가 적용된다. 그러나 분쟁거리를 최소화 하려면 계약서에 “당해 물품 매매계약에는 CISG를 적용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이 좋다. 특히 영국, 일본과 같은 비체약국과의 거래에서 계약서에 CISG를 적용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면 CISG가 계약의 일부로 편입되어 적용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② ‘서면’의 범위
CISG에서는 ‘서면’에 전보와 텔렉스는 포함시키고 있으나 팩스와 e-mail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계약상ㆍ법률상 서면 통지가 필요한 경우에는 이메일을 보냈더라도 그 내용을 텔렉스나 내용증명 우편으로 다시 보내야 한다.
③ 계약의 성립
우리나라 상법에서는 상시 거래관계에 있는 자에게 해당 영업부류에 속한 계약의 청약을 받은 때 지체 없이 낙부 통지를 하지 않으면 승낙한 것으로 보지만 CISG 하에서는 청약 승낙을 명시적으로 표시해야만 계약이 성립한다.
한편 침묵이 승낙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있다. 변경을 전제로 한 승낙의 경우 국내법은 이것을 새로운 청약으로 본다. 하지만 CISG에서는 청약의 조건을 실질적으로 변경하지 않는 한 변경사항에 대해 청약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변경된 내용이 그대로 계약조건이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승낙통지를 받으면 당초 청약조건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 상세히 검토하고 변경 내용이 있으면 이를 받아들일 것인지의 여부를 지체 없이 상대방에게 통보해야 한다.
연착된 승낙은 청약자가 그것이 승낙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는 뜻을 지체 없이 전하는 경우에 한해 유효하다는 점도 우리법과 상이해 주의를 요한다. 우리 기업이 청약자고 상대방의 승낙이 연착된 경우 계약 성립을 위해서는 그 즉시 연착된 승낙이 승낙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는 뜻을 발송해야 한다. 또 우리 기업이 승낙자인 경우에는 승낙기간 안에 반드시 승낙하고 피치 못하게 승낙이 늦어진 경우에는 계약의 성부를 반드시 전달해야 한다.
④ 매수인의 의무
동 협약 제55조에서는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되었으나 그 대금을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정하고 있지 아니하거나 이를 정하는 조항을 두지 아니한 경우 당사자의 반대 표시가 없는 한 계약 체결 시에 당해 거래와 유사한 상황에서 매도되는 그러한 종류의 물품에 일반적으로 청구되는 대금을 묵시적으로 정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계약의 경우 계약 체결 시와 이행 시의 물품 가격의 변동에 따라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장기계약 체결 시에는 대금을 명시적으로 정하거나 적어도 대금 산정 기준 조항을 두어야 한다.
“매수인이 물품검사 기회를 가질 때까지는 원칙적으로 대금지급 의무가 없다”는 조항은 매수인에게 유리한 조항으로 ‘물품검사의 기회를 가질 때’의 해석을 두고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이 매도인이 되는 경우에는 어느 시점에 어떠한 방법으로 매수인에게 물품검사 기회를 부여할 것인지를 계약서에 명시하여 분쟁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한다.
⑤ 매도인과 매수인 공통 의무 사항
a. 이행기 전의 계약 위반
CISG는 우리나라 법에 없는 이행 전의 계약 위반(anticipatory breach)이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즉 이행 전이라도 상대방이 이행능력 또는 신용도의 중대한 결함으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것이 명백한 경우 자신의 의무 이행을 정지할 수 있고 상대방이 계약 위반을 할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b. 계약해제
계약해제에 있어서 CISG는 우리 법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CISG는 채무자의 귀책사유 유무에 관계없이 채권자의 해제권을 인정하고 있으나 원칙적으로 본질적 계약위반의 경우에만 인정이 되며 발생한 해제권의 상실 범위도 우리 법에 비해 상당히 넓다. 또 해제권의 행사기간이 상당히 짧고 상인 간의 확정기 매매에서 당연해제를 부정하며 묵시적 해제도 원칙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는 등 계약해제 성립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이러한 CISG 규정 취지와 국제거래의 특성상 계약의 해제는 쉽게 인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c. 보관자의 의무
물품의 보관의무는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에게 부과되는 공통 의무로 국제거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CISG에서도 상세히 규율하고 있다. 특히 매도인의 보관의무는 우리 법에는 없는 내용으로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매수인이 물품 수령을 지체하거나 대금 지급과 물품 인도가 동시 이행관계인 거래에서 매수인이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 매도인은 매수인으로부터 합리적인 비용을 상환 받을 때까지 그 물품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매수인이 물품을 수령했으나 계약 해제 또는 대체물 청구를 통해 물품 거절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매수인에게 그 물품을 보관할 의무가 있다. 심지어 아직 물품을 수령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 해제권이나 대체물 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물품이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매수인에게 그 물품을 점유할 의무와 동시에 보관의무를 부과한다.
생소하지만 합리적인 제도
지금까지 CISG의 해석상 주의점, CISG의 적용범위, 서면의 범위, 계약의 성립, 매수인의 의무, 위험의 이전, 매도인과 매수인의 의무에 공통되는 사항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이상의 내용 중 특히 유의할 것들을 요약하자면 첫째 비체약국인 일본, 영국과 계약하는 경우 CISG의 적용에 있어서 계약서에 CISG를 적용한다는 문구를 삽입해야 하고 둘째 서면에 팩스와 메일은 포함되지 않으며 셋째 계약의 성립과정에서 서류에 변경이 있는지를 상세하게 검토하고 변경이 있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이의를 제기하여야 한다. 그리고 넷째 장기계약 체결 시 대금을 명시적으로 정하거나 적어도 대금산정의 기준을 조항으로 두어야 하며 다섯째 매도인에게도 물품의 보관의무가 있다는 점 등이다.
CISG는 우리법과 유사점도 있으나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CISG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하며 내용이 불투명한 부분도 없지 않으나 25년 동안 운용되어 오면서 합리적이고 타당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대부분의 국제거래를 규율하게 될 CISG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여 무역 활동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