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운에세이] CEO의 의미를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영어로 "CEO"는 chief executive officer의 이니셜로 '최고경영자', '최고책임자' 또는 '최고통치자'라는 뜻이다. 'initial'
은 주로 알파벳의 표기에서, 고유 명사나 문장의 머리 글자이다. 요즘 우리나라 언론에서 많이 눈에 띄는 이니셜은 단연 MB다. 아시다시피 MB는 지금의 대통령 이름의 영어 약자다. 전자공학에서 말하는 mega bit의 Mb가 아니다.
CEO를 자세히 풀이하면 'chief'는 서열이나 계급 혹은 '권위가 가장 높은'(highest in rank or authority) 혹은 '가장 중요한'(most important)이라는 의미의 형용사이다. 'executive'는 '회사의 운용이나 경영에 관여하거나 나라를 통치하는'(concerning the operation or management of a company or the governing of a country)의 의미를 가진 말로 '사무 능력이 있는' 또는 '집행권이 있는' 이라는 뜻의 말이다.
그리고 'officer'는 군대에서의 '장교'(a person in the armed forces in a
command position), '경찰관'(any policeman) 혹은 '요직에 있는 사람'(a person in an important position)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CEO의 의미가 한층 분명해 질 것이다. 회사나 기업체는 물론이요 은행, 대학교 등의 최고책임자도 CEO이고 나아가 한 국가의 최고통치자도 CE O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물론 CEO라 할 수 있다.
경영의 어려움으로 기울어져 가는 회사나 은행, 학교 또는 병원 등이훌륭한 CEO를 영입함으로써 회생하고 다시 발전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흔히들 보고 있다. 어떤 조직에 있어서든 CEO의 역할이 강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임진왜란 때 우리 해군의 CEO는 이순신 장군이었다. 그러나 CEO를 잘못 만남으로 인해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국가가 멸망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말레이 반도의 끝에 있는 조그마한 섬나라, 싱가포르(Singapore)가 어떻게 해서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일류국가가 될 수 있었던가. 우리가 잘 아는 리관유라는 국가 최고통치자인 탁월한 CEO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일부 비판자들에게는 철혈재상 혹은 독재자라는 욕을 먹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리관유는 그 나라를 경제와 질서의 선진국으로 변화시킨 기적의 리더요 이상적인 CEO다. 싱가포르는 마시는 물까지도 이웃 나라 말레이시아로부터 사다 먹어야 하는 자원빈국이었다.
'이상적'(理想的)이라는 영어 단어 'ideal'은 그 의미가 원래 'real'의 반대말로서 관념적인, 상상(想像)의, 가상(假想)의, 완전한 등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조건들을 다 갖춘 리더나 CEO가 존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이상(理想)은 어디까지나 이상이요 우리가 지향(志向)하는 바일 뿐이다.
국가 CEO는 유능해야 하고 청렴해야 하며 민주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CEO는 이 세 가지 조건에 앞서 반드시 투철한 국가관과 조국수호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가를 지키는 힘은 우수한 무기나 경제력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초개(草芥) 같이 버릴 수 있는 애국심이요 정신력이다. 대통령인 CEO에게서 이런 정신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개인의 영달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신명(身命)을 바쳐 국가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헌신봉사하는 자리다.
최고경영자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최고는 하나뿐이지 둘이 있을 수 없다. 배(船)에는 선장 한 사람이 CEO다. 배를 젓는 사공은 오늘날의 선장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 간다. 산은 뱃길이 아니다.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방향타(方向舵), 키는 하나다.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장이 둘이 될 수가 없다. 즉 CEO는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CEO는 이름 다음에 대통령이란 직함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이런 현상이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어느 때보다 지금이 그 정도가 심하는 뜻이다. 대통령이란 호칭은 고사하고 옆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너도 나도 MB다. 이래서 민주주의가 좋은가.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 무질서던가. 과연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교실 아이들 앞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을 이렇게 불러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하면 그 선생님은 대통령보다 더 돋보일까. 그런 선생님 자신은 그래도 아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는가.
내가 지금 여기서 대통령이 좋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과는 정반대일지 모른다.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차지하고 우리는 국민으로서 먼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맘에 안 든다고 국가백년대계인 아이들 교육까지 망칠 수는 없지 않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분명 난세(亂世)다.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침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우리 모두가 양보하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자기의 짐부터 먼저 바다에 던져야 한다. 힘을 하나로 모아 힘껏 노를 젓고 파도를 넘어야 한다. 우선 배가 가라앉지 않게 하는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혼란은 결코 어느 한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다.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는 금물이다. 수수방관(袖手傍觀)해서도 안 된다. 우리 국민 모두가 잘못한 결과다. CEO를 잘 못 뽑았기 때문이다. 행위를 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도 질 줄 알고 반성할 줄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을 무작정 비하(卑下)만 해서 될 일인가. 그것은 결코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생기는 이득이 무엇인가.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정권찬탈에만 있는가. 누워 침뱉는 격은 아닌가. 그 침이 어디로 떨어지는가. 속된 말로 다른 나라 사람들 대하기가 남세스러워 못 견딜 지경이다.
지금은 글로벌시대다. 우리만 잘 살면 되는 세상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로부터 없신여김을 받아서는 이로울 게 없다. 점잖게 처신하는 신사나라는 될 수 없을까. 우리는 지난날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란
자랑스런 전통으로 이름을 날렸던 나라다.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다.
그들은 어른이 하는 대로 따라 한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자중하고
본을 보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국가의 CEO라는 생각으로 처신하자.
2011. 12. 14.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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