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목요일) 오후 12시 53분 회장님으로부터 8월 3일 번개 산행을 제안하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몇분 지나지 않아 첫번째 번개에 맞은 총무님의 답장이 떴다.
"저요! 저요!"
역시 총무님은 늦게 배운 도둑질에 흠뻑 빠졌나 보다. 아니 총무님은 한뫼들의 일원이 되기 전부터 이미 등산 마니아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자주 산행에 참석하여 많은 대화를 하지 못한 죄로 부끄럽게도 한뫼들 면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약 30분쯤 후에 회장님께서 모락산과 백운산을 등산할 계획인데 보디가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올리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총무님의 "기꺼이 보디가드가 되어 드리겠다"는 헌신적인 메시지가 떴다.
"흐흐흐 이거! 끼어 들어 말어? ..."
다음주 휴가가 계획되어 있어 이번 주말에는 아무 약속이 없는 터라 한뫼들 산행에 가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왠 번개 산행???
뭔가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산행에 참석하려는 생각에 카톡에 끼어 들려는데 어쩌면 두 사람의 오붓한 산행에 내가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갈까?말까? 낀기면 도토리 될 것같아서... ㅋ"라고 메시지를 올리자 마자 회장님과 총무님의 반응이 온다.
참석해 달라는 두 분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3일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려는데 점심 도시락을 쌀 반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번에는 김밥이나 사서 가지 뭐!"
스마트폰에서 버스 노선과 시간을 열심히 검색하며 집을 나섰다.
야탑역 정류장 쪽으로 가면서 김밥을 산 다음에 버스를 기다려도 충분한 것으로 스마트 폰의 버스노선 앱이 알려 주고 있었다.
건널목을 건너 김밥집으로 향하는데 이게 웬 일?
평촌으로 가는 3330 버스가 버스 정류장을 지나 이쪽 건널목으로 오더니 신호대기로 멈추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급한 마음에 한 차선 너머에 멈추어 선 버스에 다가가 노크를 하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버스 기사는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에이! 할 수 없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손님을 승하차 시키다가는 기사가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앱도 정확도에 문제가 많구만!
투덜거리며 다시 앱을 재조회하니 조금 전만 해도 집 근처 정류장에 없던 버스가 갑자기 나타나 있는게 아닌가?
버스 위치정보는 비교적 정확했다.
하지만 이 정보가 제 시간에 제대로 디스플레이 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
한 두번 조회하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수시로 조회하며 확인해야 한다는 IT 생활 수칙(?)에 대한 일깨움을 주었다.
동양적 정서를 생각한다면 승차시켜 줄 수 있었을텐데도 냉정하게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버스기사가 조금은 야속하지만 돌아서서 김밥집으로 향한다.
10분간의 배차간격만 지켜준다면 김밥을 사고 다음 버스를 타도 시간은 충분하다.
김밥을 산 후에 야탑역 정류장에서 여유롭게 다음에 오는 3330 버스를 타고 평촌 농수산물센터앞에서 하차하여 계원예대 정문앞으로 향한다. 걸어 가도 충분한 시간이다.
계원예대 앞에 이르는 마지막 건널목을 건너자 갑자기 막걸리 생각이 났다. 총무님께 전화를 걸어 혹시 그쪽에 막걸리를 살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었다. 정문 앞에는 살만한 곳이 없으며 본인이 막걸리 한병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리고 두 분만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단다...
한뫼들 술 솜씨에 한 병은 마른 논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 막걸리 한 병을 사 가지고 허겁지겁 계원예대 정문앞에 이르자 두 분이 담소를 하고 있다.
더 이상 참석자가 없느냐는 질문에 회장님 왈 오늘은 우리 셋이 전부란다.
"이런! 정말 도토리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속으로 씩 웃으면서 산행을 재촉한다.
"이고문님께서 빠지실 리가 없는데" 하면서 물어보니 이번 주는 가족들 휴가에 참석하시느라 산행에 못 오신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고문님께서 산행에 빠지실 리가 없지! 특별한 다른 일정이 있으셨구나!"
그래서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회장님께서 번개 카톡 대상에 아예 고문님, 시몽을 포함시키지 않았었구먼...
어째든 막걸리를 사러 되돌아 갔다 오는 바람에 회장님이 싫어하는(?) 지각을 해 가면서 이렇게 3명의 오붓한 번개산행은 예정보다 10분 가량 늦은 09시 40분에 시작되었다.
계원예대 교정을 미쳐 다 빠져 나가기도 전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한 여름의 무더위는 얕잡아 볼 일이 아니다. 땀이 많은 사람이 아닌 나도 이제는 세월의 힘에 눌리는지 벌써 옷이 젖기 시작하고 있다.
10시 50분 쯤에 계원예대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 든다.
<버섯 이름이 뭐더라? 총무님은 남자 거시기 같다고 했는데...>
회장님이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모락산으로 향하는데 이상하게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회장님이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코스를 골라서인가? 아마도 한여름 휴가시즌인데다가 너무 후덥지근한 날씨로 왠 만큼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사서 고생을 할리가 없겠지...
나는 조금 앞서서 걷는다. 두 사람의 오붓한(?)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ㅋㅋ
한시간쯤 산행을 하여 사인암에 이르러 그 위로 올라서니 아래로 회장님이 사는 아파트가 지척이다.
뛰어 내리면 바로 회장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을 듯이 가까이 보인다.
사인암 위에서 포즈를 잡고 회장님이 사진 한 장을 찰칵한 후 다시 산을 오른다.
<사인암위의 포즈>
모락산 정상이 한 200m 남았는데 왼쪽으로는 백운산, 오른쪽으로는 모락산 정상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회장님께서 모락산 정상에 가고 싶으면 다녀 오던지 하란다. 당신은 안 가신단다.
웬만하면 정상을 꼭 찍고 다니는 습성을 오늘은 포기하련다.
날씨도 만만치 않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백운산이 기다리고 있기에...
조금 내려가니 절터 약수터가 나타난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약수터를 이용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긴 장마로 인해 흘러 나오는 약수의 양이 제법 많아 화끈거리는 열과 땀을 씻을 만하였다.
적당히 세수를 한 후 약수를 한 모금 마신다. 물맛이 너무 좋았다.
물맛도 깔끔하고 산에서 마시는 약수치고는 참으로 좋은 느낌이었으나 돌아서서 수질검사표를 자세히 보니 "부적합" 판정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장균 검출", 아뿔사 마시기 전에 미리 읽어 볼 껄! 에이! 이미 마셔버린 것! 어쩐다?
마실 때의 좋은 느낌이나 간직하자며 쉬는 자리로 돌아 와 총무님께 푸념을 하니 총무님은 상관이 없단다. 대장균 몇 마리쯤은 능히 소화가 가능하다며 한 모금 마시고 아예 빈 물병까지 채워 가지고 온다. 역시 대단한 산꾼임에 틀림없다.
잠시 땀을 식힌 후 다시 길을 재촉하여 백운산쪽으로 향한다.
12시 5분쯤에 자동차들이 오가는 오매기고개를 가로 지른다. 공기가 사뭇 다르다.
산속에서 마시는 깨끗한 공기와 자동차 매연이 섞인 이 공기와의 차이를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평상시 늘 매연이 섞인 공기를 마실 때는 잘 느끼지 못 하였으나 싱그러운 산속의 깨끗한 공기를 마시다가 도로로 내려서는 순간 공기가 확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도로를 건너자마자 잠시 휴식을 취하자는 회장님의 제안을 조금 올라가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쉬자고 감히 평회원인 내가 살짝 거역해 본다.
회장님께서 기꺼이 동의해 주신다.
12시 10분에 백운산 정상을 향해 치닫는다. 회장님이 여기서부터 보통 50분이면 정상에 이를 수 있다고 하기에 도전해 보기로 하고 회장님과 총무님을 뒤로 한 채 달음질을 놓는다.
조그만 210m 고지를 넘으니 오른쪽으로 공원묘지가 나온다. 조금 빠른 속도로 오르다 돌아보니 아직 회장님과 총무님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더 오르다가 돌아보니 회장님이 보인다. 먼저 가라는 수신호를 해 주신다.
그래! 먼저 가 보자! 50분 이내에 올라 가 보자며 백운산 마지막 깔딱고개를 깔딱깔딱거리며 올랐다.
시계를 보니 12시 59분이다. 49분만에 올라왔다. 햐! 목표 달성! 이 재미에 산에 온단다.
땀을 식히며 두 분이 오기를 기다린다. 한 10분 지나면 오려나 했는데 15분쯤 지나서 회장님이 올라 오신다. 총무님은?
총무님을 케어 하느라 조금 늦었단다. 하지만 총무님이 너무 쳐져서 좀 쉬다 올라 오라고 하고는 먼저 올라 오셨단다.
다시 15분쯤후에 총무님이 힘겨운 모습으로 올라 왔다. 생각보다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늦게 배운 도둑질임에 틀림없다. 이제 산에 푹 빠지고는 있는데 나처럼 무식하게 마구 도전하기에는 아직 무리인 모양이다. 아니면 소시적에는 한가닥 했는데 지금은 연로(?)해 져서 조금 페이스가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아무튼 내 판단이 틀렸으면 양해 바랍니다. 총무님!
벌써 1시 30분이 넘어 허기가 밀려오는 터라 잠시 땀을 훔치고는 서둘러 회장님의 안내에 따라 점심 먹을 곳으로 이동하였다.
비록 3사람뿐이지만 아담한 장소를 골라 자리 잡고 1시 40분부터 막걸리와 맛있는 오찬을 즐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모든게 맛있다. 더욱이 푹푹 찌는 무더위에 시원한 막걸리는 더 없는 산행의 즐거움이다.
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사망에 대해 내가 얘기했었다고 총무님이 일러 주신다. (산행기를 쓰라는 압력이기도 하다)
고교 3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 생물학 전공이셨는데 나중에 공부를 더 하신 후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를
역임하시다가 정년퇴임하신 권오길 박사님이시다. 일명 달팽이 박사로도 널리 알려지신 분이다.
한번은 고교반창회에 선생님께서 오셔서 하신 말씀이다.
사망이란 것은 순서가 있다는 것. 일망은 담배를 끊는 것이요, 이망은 술은 끊는 것이고, 삼망은 여자를 끊는 것이며, 그 마지막이 곡기를 끊어 사망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은 건강하다는 것이 선생님의 지론이셨다. 이게 벌써 몇년전 이야기인데 선생님께서 아직도 담배를 피우시는지는 모르겠다.
선생님께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면서 좋은 글을 많이 쓰시기를 이 자리를 빌어 기원해 본다.
권오길 선생님께서 생물들의 생명의 신비에 대해 쓰신 "생명교향곡"이라는 책이 있는데 아주 유우머스럽고 감칠맛나는 표현을 감상하실 수 있으니 한뫼들 회원님들께 일독을 권해 본다.
허기를 달래고 지친 몸을 재충전하였으니 이제는 하산이다.
올라갈 때도 깔딱고개였지만 내려오는 코스는 더 심한 깔딱고개인 것 같다. 회장님께서 백운산은 어떤 코스이던지 모두 깔딱코스란다.
백운산도 만만한 산이 아니라는 말씀...
내려 오다가 드디어 여름 산행의 진수! 계곡에 발담그기 차례다.
가상관측이래 가장 긴 장마탓에 (43일간, 평균은 32일) 계곡에 물이 많다.
시원하게 발을 담그고 나머지 막걸리 한 통을 꿀맛으로 마신다. 한 통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남는 것보다 약간 모자랄 듯 할 때가 맛은 더욱 배가 되는 법...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배낭을 챙겨 하산한다.
백운호수 근처 마을에 이르니 한 여름의 열기가 산행의 지친 배낭 위를 마구 짓누른다.
회장님과 총무님은 인덕원 사거리로 가서 맥주 한잔 하실 예정이었으나 나의 다른 일정 때문에 택시를 불러 타고 오후 4시 50분 경에 의왕 롯데마트 앞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귀가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드디어 회장님과 총무님 두 분의 오붓한 데이트 기회를 만들어 드리면서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내 달았다.
이렇게 폭염속의 모락산, 백운산 번개 산행은 마무리되었다.
아니다! 여기에 이어서 도토리 빠진 두 분의 데이트 사연이 기록되어야 마무리가 될 것이다...
(PS) 회장님! 맞춤법이 틀렸거나 표현이 부족한 곳이 있으면 지적 부탁합니다!
첫댓글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산행기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유머와 재미를 함께 읽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활약을 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ㅎㅎ
저도 산행기 작가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기억력 짱, 글 솜씨 짱!
아! 이제는 태영 그만두면 다시 쓰는 걸루 하겠슴다! ㅎㅎㅎ정말 이거 쓰는데도 시간 많이 걸렸슴다...
저도 늘 많이 걸리는데요. 누구나 읽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100배 이상 많이 걸립니다.
이런 훌륭한 재능을 썩히시다니요 안되죠 . 앞으로도 쭈욱 쓰시는걸로-
회사 그만 둘 때마다 한번씩 쓰는 걸루 할 꺼래요... ㅠㅠ 그리고 당분간 조금만 더 회사 다녀 볼라고 하니까 도와 주시드래요... ㅋ
그리고 회장님은 금방 뚝딱 쓰시는 줄 알았는데...
정확한 내용과 재미있는 표현들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보니 한 가지 결심하게 되는데요~ "나 같은 글맹(?)은 앞으로 산행기 절~대 쓰지 말아야겠다!!!" 수고하셨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