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다양성의 중재자 [제1편]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에서 예술가 무리를 “우리보다 조금 더 하염없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시인 중의 시인, 최초의 시인 호메로스는 “진리와 아름다움의 주춧돌”, “인간의 시간을 가로질러 넘어오는 광대함이자 인간 마음의 최대치”다. 그는 눈먼 시인이고, 돌이 많은 고대 키오스 섬에 살던 사람이다. 호메로스는 혼자가 아니다. 그는 항상 복수의 존재, 어디에도 없는 위대한 부재의 존재다. 시인이란 예술의 왕국에 발을 들이민 광대들, 즉 춤추고 노래하면서 헐벗고 가난한 시대에도 불안과 무기력에 맞서며 폭풍우 치는 봄날의 평온을 꿈꾼다. 음악, 시, 회화, 춤들은 지각(知覺)이라는 빛 속에서 찬연히 살아나는 삶의 경험에서 솟구친다. 시인들은 고뇌와 기쁨들을 보는 천 개의 눈을 가졌다. 천 개의 눈으로 천 개의 세계를 본다. 꽃, 향기, 새들에 매혹돼 이것들과 덧없는 연애에 빠지는 자들이 시인이다. 이것들의 빛과 어둠, 영원과 찰나를 노래하는 일들의 하염없음이라니! 날마다 평균 250개의 광고에 노출되고, 초당 340만 개의 이메일이 발송되며(그중 90퍼센트가 정보 공해라고 할 수 있는 스팸메일이다), 수많은 오락거리와 천문학적으로 생겨나는 정보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오늘의 인간에게 시인들은 여전히 경험의 가장 생생한 부분들로 빚은 세상의 아름다움과 경이에 대한 찬가를 들려준다.
휘트먼에 따르면, 시인은 한결같은 인간으로서의 판관(判官)이다. 이 판관은 현실의 규범과 판례를 따르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사물들이 괴상하거나 과도해지거나 온전치 않게 될 때 그것을 바로잡을 아무 권능도 쓸 수 없을 테니까. 시인이 방랑자, 게으름뱅이, 판관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시인은 사물들이나 특성에 황금 비율을 부여하고, 제가 사는 시대와 영토의 형평을 맞춘다. 세상의 사물들, 사람들의 의견과 논쟁이 괴상하거나 과도해지지 않으려면 비율과 형평이 필요한 것이다. 비율과 형평을 맞추는 일이 시인의 권능이다. 시인들은 판관이되 증거들에 의거하거나 법의 잣대만을 따르는 재판관과는 달리 태양이 무기력한 것들 주변에 떨어지듯 판단한다. 햇빛은 만물의 구석구석을 비춘다. 그 비춤에 불편부당이나 부정의가 틈입할 여지가 없다. 오직 정의롭고 공평하다. 햇빛을 받으며 어둠에 가려져 무기력하던 사물들이 생기를 얻으며 살아난다. 시인들은 우리 가운데 범속한 모습을 한 채 살아간다.
장석주 「은유의 힘」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