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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9일
태풍이 할키고간 감전 야생화단지의 야생화와 삼락생태공원의 코스모스 상태가 궁금하여 기대를 하지 않고 운동삼아 출동하였다.
야생화단지에는 아직도 고랑에 물이 고여있는곳이 많았으며 관리상태가 부실하여 식물들이 신음을 하고 있었다.
구절초는 80% 개화했는데 작년과는 달리 듬성듬성 심어져 있어서 보기가 딱했고 끝물인 꽃무릇도 원래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인데 그대로 맨땅에 심어져 발육상태가 좋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모든 식물들이 영양상태가 부실하여 빼빼 말라서 비실거리고 있었다.
봄과는 달리 별로 볼 것이 없었지만 그런 와중에 잡초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경주나 울산같이 신경을 써서 가꾸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질까 모르겠다.
삼락생태공원의 코스모스는 바람에 쓰러져 난장이가 된 채 꽃을 피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일부러 구경하러 가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씁쓸한 구경을 마치고 르네시때 음식코너로 가서 맛있게 식사하고 귀가하였다.
코끼아
채송아
구절초
구절초
타래붓꽃
꽃무릇
두메부추
과꽃
싸리나무
억새
갈대
갈대
나이가 드니 눈이 나빠져서 글 읽는것이 힘이 듭니다.
이 글은 오청원 교장님이 일부를 보내 준것인데 재미가 있어서 전문을 찾아서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심심하면 읽어보세요.
방랑 시인 김삿갓
박 훈 석
천동 마을을 떠나 다시 방랑길에 오른 김삿갓은 지나간 만 일 년간의 일로 오만가지 감회가 무량했다. 애당초 방랑에 나서게 된 것은, 인간사로 구애를 받지 않고 허공을 떠도는 한조각 구름처럼 자유자재로 살아가자는 데 있었다. 처자식과의 인연조차 끊어 버리고 표연히 방랑 길로 나선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세상일은 결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지난 일년 동안은 수안댁과 생각치도 못한 결혼 생활을 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면, 수안댁과 결혼을 했던 일도 꿈만 같았고, 그런 생활이 일 년 남짓하게 계속되다가 갑자기 사별(死別)을 하게 된 것도 꿈만 같았다.
인생이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을 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은 모든 것과의 헤어짐이 일상적이고 통상적인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 죽음이라면, 어느 정도는 애를 써보고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다소나마 위안을 받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일 년간의 수안댁과의 짧은 결혼 생활은, 두 사람 사이에서 복잡한 사연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멀쩡해 보이던 여인이 미신의 망령에 사로잡혀 공포감에 떨던 일도 흔히 보는 일도 아니려니와, 남편을 살리겠다는 일념에서 남편 대신에 목을 매 죽은 것도 몸서리쳐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처럼 복잡했던 일도 일단 지나고 나니,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조용하기만하다. 김삿갓은 구월산과 평양을 가볼 생각으로 발길을 서쪽으로 돌렸다. 산길을 걸어 가노라니, 바람은 차도, 등에서는 땀이 흘렀다. 땀을 식히려고 가던 길을 멈추고 풀 언덕에 주저앉아, 삿갓을 벗어 들고 눈 앞에 펼쳐진 초겨울의 유리알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쓸쓸한 자신의 마음을 시 한 수에 담았다.
生從何處來(생종하처래)
인생은 어디로부터 오며
死向何處來(사향하처래)
죽어서는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과 같고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흩어짐과 같구나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구름은 본래 실태가 없으니
生死去來亦如是(생사거래역여시)
삶과 죽음 역시 그와 같겠지.
...
산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새소리를 들어 가며 산을 넘고 언덕길을 굽이굽이 감돌아 내려가니, 산골짜기에 조그만 주막이 하나 있었다. 문 앞에 세워 놓은 말뚝에 야몽(夜夢) 이라는 두 글자가 써 있는 주막이었다.
김삿갓은 주막 마루에 걸터앉아, 주모에게 술을 청하며 물었다.
"이 집을 들어오다 보니, 야몽이라 쓴 말뚝이 있던데, 그 야몽이란 어떻게 나온 말인가?"
주모가 술상을 갖다 주며,
"나도 모르지요. 간판도 없이 술장사를 시작하는 첫날, 어떤 점잖은 첫 손님이 마수걸이 외상술을 잡숟고 가시면서 주막 이름을 야몽으로 하라고 일러 주더군요."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술장사를 시작하는 첫날 첫 손님부터 외상술을 주었다니, 그래 가지고서야 장사가 되겠는가?"
"장사가 되든 말든, 술을 자시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데 어떡해요. 그러니 인심을 좀 쓰기로, 설마하니 밥이야 굶겠어요?"
주모는 얼핏 보기에 수안댁과 인상이 비슷했는데 대답 또한 천하태평이었다.
"마수걸이 외상을 주었다고 했는데, 그 사람 이름은 알고 있는가?"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요."
"하하하하... 이름도 모르면서 외상을 주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외상값은 언제 받으려나?"
"갖다 주면 받고, 안 갖다 주면 못 받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술 한잔 선심 썼다고 여기지요."
가뜩이나 수안댁을 닮아서 호감이 갔었는데, 마음을 쓰는 통이 넉넉한 주모를 만나, 김삿갓의 울적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해서, 짓궂은 소리를 해보는데,
"혹시 내가 외상술을 먹겠다고 해도, 외상을 줄 수 있겠는가?"
"돈이 없다는 말씀만 하세요. 그러면 외상도 드리지요."
주모는 그렇게 말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허기는 그 양반은 개업하는 첫날 첫 손님이었는데, 마수걸이 외상술을 마시기가 미안했던지, 떠날 때에 저 바람벽에 시 한 수를 써 주고 가셨다우. 저기 보이는 저 시가 그 양반이 써 주신 시라오."
하며 벽에 씌어 있는 시를 가리켜 보였다. 김삿갓이 주모가 가리킨 바람벽을 보았더니, 첫 눈에 보아도 기막힌 명필이었고, 제목은 야몽(夜夢)이었다.
鄕路千里長(향로천리장)
고향길은 천리 밖 멀고 먼데
秋夜長於路(추야장어로)
가을밤은 그 길보다도 더욱 길구나
家山十往來(가산십왕래)
꿈속에선 고향에 갔다 왔건만
詹鷄猶未呼(첨계유미호)
깨어보니 새벽 닭이 울기도 전이네.
낙관(落款)이 산운(山雲)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본 김삿갓은 깜짝 놀랐다. 산운 이양연(李亮淵)은 당대의 유명한 풍류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여보게! 저 어른이 언제 여기를 다녀가셨는가?"
"어머! 손님은 저분을 알고 계세요?"
"알구말구, 직접 만나 뵌 일은 없어도,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이신걸. 저 어른이 언제 여기를 다녀가셨는가?"
"내가 술장사를 시작했을 때 다녀 가셨으니까, 벌써 7년 전 일인걸요. 그때도 60이 넘어 보였으니까, 지금쯤은 돌아가셨을 거예요."
"만약 돌아가셨다면, 자네는 외상값을 영원히 못 받게 될 것 아니겠나?"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 돈을 못 받는다고 죽을 형편은 아니니까요."
"가만있자. 그 어른 외상값이 얼마인가? 그 돈은 내가 갚아주기로 하겠네."
그리고 김삿갓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려고 하였다. 그러자 주모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 어른이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라면, 저는 그 외상값을 받지 않겠어요."
"내가 외상값을 대신 갚겠다는데, 어째서 받지 않겠다는 말인가?"
"외상값이래야 몇 푼 아닌 걸요. 그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처럼 훌륭한 분한테 외상을 지웠다는 사실만 하더라도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 되겠어요! 안그래요? 호호호..."
주모는 호탕하게 웃어 젖힌다. 마음이 유쾌할 때면 호탕하게 웃어 젖히던 버릇도 어딘가 모르게 죽은 수안댁과 비슷해 보였다. (수안댁도 이와 같은 경우였다면 과연 외상 술값을 받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모르면 모르되, 수안댁도 지금 저 주모처럼 꼭 그랬을 것만 같았다.
김삿갓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자, 수안댁 생각이 새삼스럽게 간절해졌다.
"여보게 주모!"
"왜 그러세요?"
"나, 술 좀 더 갖다 주게."
"그렇게 많이 드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술값 못 받을까 봐 걱정이 되나?"
"엉뚱한 오해는 마세요. 술값 못 받을까 봐 손님에게 술 안 드리도록 쩨쩨한 여자는 아니에요."
주모가 술을 갖다 주자 김삿갓은 연달아 술을 마셔댔다. 깨끗이 잊으려고 마음을 굳힐수록 수안댁에 대한 슬픔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손님은 웬 술을 그렇게도 잡수세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것만 같네요."
주모는 김삿갓의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뼈 있는 질책을 했다. 그러자 김삿갓은 취중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말을 하게 되었다.
"나는 며칠 전에 마누라가 죽었다네, 그러니 어찌 시름이 없을 수 있겠나."
그러자 주모는 술을 한 잔 따라주며 시근둥한 어조로 이렇게 말을 한다.
"지나간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술이나 드세요. 마누라가 죽었거든 새 장가를 들면 될 게 아니오. 나는 몇 해 전에 외아들이 죽었다오. 아무리 슬픈 일을 당해도 산 사람은 결국에 살게 마련입디다."
주모는 무심코 지껄인 말인지 모른다. 그러나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렇다! 인생은 현재와 미래는 있어도, 과거에 연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는 깨끗이 잊어야 하는 것이다.)
주막 "야몽"의 주모는 마치,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처럼, 지나간 일에 구애되지 않고, 마치 흘러가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에 김삿갓은 크게 감동하였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술을 마시다 말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모에게 큰절을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길상천녀(吉祥天女 : 佛家에서 이르는 말, 남에게 덕을 베풀어 주는 仙女) 께서 어리석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술이 취한 데서 오는 일종의 환각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주모가 소리를 내어 웃으며 말한다.
"호호호, 손님은 이만저만 취하지 않으셨군요. 나를 돌아가신 마나님인 줄로 알고 계시는 게 아니오?"
"아, 아니올시다. 길상천녀 덕분에 죽은 마누라를 깨끗이 잊어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쓸데없는 시름을 잊어버리게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몹시 취하신 모양이니, 한잠 주무시도록 하세요."
주모가 목침을 내밀어 주어, 김삿갓은 그 자리에 쓰러지기가 무섭게 잠이 들어 버렸다. 이렇게 정신없이 자고 나서 깨어 보니 마루에는 아침 햇살이 환히 비치고 있는데, 주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모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어제부터 지금까지 한바탕 꿈을 꾸고 있었단 말인가?)
"야몽"이라는 주막 이름이 어쩐지 우연한 이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모가 보이지 않기에, 김삿갓은 술값을 넉넉히 놓아두고 길을 떠났다. 산길을 내려오노라니, 마침 길가에 옹달샘이 있었다. 목이 컬컬하던 김삿갓은 두 손으로 샘물을 움켜 받아 한바탕 마셨다.
그러고 나서 물속을 들여다보니, 물 위에는 김삿갓 자신의 얼굴이 비쳐 보이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자기 얼굴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몇 해 전만 해도 머리가 새까맸었는데, 불과 2, 3년 사이에 백발이 성성해진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허! 검은 머리는 어디 가고 어느새 백발이 되었구나!)
너무도 실망한 나머지, 물위에 비친 자신을 마주 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읊었다.
白髮汝非金進士(백발여비김진사)
머리가 허연 너는 김진사가 아니냐
我亦靑春如玉人(아역청춘여옥인)
나도 한때는 꽃다운 청춘이었다
酒量漸大黃金盡(주량점대황금진)
술은 늘어만 가는데 돈은 떨어져
世事纔知白髮新(세사재지백발신)
세상을 알 만하자 백발이 되었구나.
김삿갓이 산을 내려와 객점(客店)에서 해장술을 마시는데, 안쪽 구석에서는 어떤 시골 사람이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술을 몇 잔 거푸 마시며 한숨까지 몰아쉬더니 한탄어린 소리를 지껄였다.
"제길헐! 이놈의 세상은 어떻게 되려는지, 사또란 자는 눈앞에 도둑놈 하나를 잡아 주지도 않네!"
하면서, 사또가 들으면 목이 날아갈 소리를 마구 퍼붓고 있었다.
김삿갓이 건너다보니 돈푼이나 있어 보이는 순박한 시골 사람 같은데, 이렇게 사또를 나무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니, 무척이나 억울한 사정이 있어 보였다. 남의 딱한 사정을 모른 척 넘기는 법이 없는 김삿갓, 기어이 술상을 냉큼 들고 그 사람 앞으로 갔다.
"노형은 무슨 억울한 사정이 있기에, 혼자서 그렇게도 한탄하고 계시오. 초면이지만 우리 술이나 한 잔씩 나누면서 화를 풀어 버리기로 합시다. 왜, 옛 말에도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하지 않소?"
그러자 혼자 화를 내며 푸념을 하고 있던 사람은 김삿갓이 내밀어 주는 술잔을 받으며 억울한 자기 형편을 일장 늘어놓았다.
"이보시오 노형!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있단 말이오?"
하며 거침없이 있는 속내를 드러냈다.
"나는 얼마 전에 친구한테서 돈 천 냥을 빚으로 얻어 썼다가, 8백 냥은 먼저 갚아 주고, 2백 냥은 나중에 갚아 주었소. 그런데 소위 친구란 놈이 2백 냥만 받고, 그전에 갚은 8백 냥은 받은 일이 없노라고 잡아떼고 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 말씀을 듣고 보니 노형은 친구끼리 돈 거래를 하다가, 피차간에 어떤 오해가 생긴 모양이구려. 그러기에 옛날부터 "가까운 사이에는 돈 거래를 안 하는 법"이라고 말들 하지 않습니까."
이름을 양상문(梁想文)이라고 하는 그 시골 사람은 오해라는 말을 듣자 발끈해서 말하는데,
"에이, 여보시오. 오해가 무슨 놈에 오해란 말이오. 돈이 8백 냥이면 얼마나 큰돈인데 그러시오. 나는 분명히 8백 냥을 먼저 갚아 주었는데, 그 놈은 받은 일이 없다고 잡아떼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기가 막힌 노릇이 있겠소이까?"
"빌린 돈을 갚을 때, 영수증은 받아 두지 않으셨습니까?"
"빚을 얻어 쓸 때에는 천 냥 짜리 차용 증서를 또라지게 써 주었지만, 돈을 갚을 때는 천 냥중에 8백 냥만 갚고 2백 냥은 못 갚았기 때문에, 그 놈까지 갚고 나서 차용 증서를 돌려받으려고 했다가, 이런 봉변을 당하게 됐다오."
양상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몇 달 전에 황주(黃舟) 고을에 사는 박용택(朴鏞澤)이라는 친구에게 돈 천냥을 빚으로 얻어 쓴 일이 있었다. 그때에 차용 증서는 천 냥 짜리 한 장을 써 주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빚을 갚으려고 하는데, 돈이 2백 냥쯤 부족하기에 , 우선 8백 냥만 먼저 갖다 주면서 차용 증서는 나머지 2백 냥까지 갚고 난 후 돌려받기로 하고, 영수증도 받지 않은 채 그냥 돌아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에 잔금 2백 냥을 갖다 주면서 차용 증서를 돌려 달라고 했더니, 박용택이란 놈이,
"자네가 언제 나에게 8백 냥을 가져왔단 말인가? 오늘은 2백 냥만 가져왔으니 나머지 8백 냥을 가져오기 전에는 차용 증서를 돌려줄 수 없네!" 하고 말을 하면서, 양상문을 오히려 도둑놈으로 몰아붙이더라는 것이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양상문이 화를 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닐 것 같았다. 그러나 김삿갓은 태평스럽게 말을 해 주었다.
"8백 냥을 먼저 갚을때 차용 증서는 돌려받지 못할 망정, 영수증만은 받아 둘 걸 그랬구려."
"에이, 여보시오. 친구지간에 그런 배신을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이러나저러나 빚을 깨끗이 갚았으면, 상대방이 무슨 소리를 하든 그냥 내버려 두면 될 게 아니오?"
양상문은 어이가 없었던지 김삿갓을 대뜸 나무란다.
"뭐요? 그냥 내버려 둬도 별일이 없을 것이라고요? 노형은 도둑놈의 심보를 그렇게도 간단하게 보시오?"
"빚도 모두 갚았겠다, 제 놈이 뭐가 떳떳하다고 책망할 것이오?"
김삿갓의 말을 듣고 난 양삼문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김삿갓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노형은 정말 어리숙하시오. 박용택이란 놈은 내가 써준 차용 증서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 주면서 '양상문이란 놈은 천 냥 빚을 2백 냥만 갚고, 8백 냥은 그냥 떼어 먹으려는 도둑놈'이라고 동네방네 나발을 불고 다니더니, 이제는 나에게 '해결사'라는 깡패를 보내, ‘잔금 8백 냥을 빨리 갚지 않으면 우리 집 가장집물(家藏什物)을 몽땅 자기 집으로 실어 가겠다’고 협박 공갈을 하고 있는 중이라오. 이러니 믿었던 친구에게 배반을 당한 것도 서럽지만, 이제는 동네 망신은 물론이요, 패가망신까지 하게 생겼다오. 하늘도 무심하시지,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단 말이오!"
이렇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김삿갓은 동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 놈이 그렇게나 악독하게 나오면 관가에 고발을 해서 주릿대를 안겨줄 일이지, 어째 고발은 안 하고 그냥 내버려 두고 있소!"
"누가 아니라오. 하도 억울해서 관가에 고발도 해보았지요. 그랬더니, 사또라는 작자가 뭐라고 한 줄 아시오 !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양상문은 또다시 기가 막히는지, 하던 말을 끊고, 한숨만 쉬고 있었다.
"사또가 뭐라고 했기에 한숨만 쉬시오?"
그러자 양상문이 쓴 입맛을 다시며 말하는데,
"사또가 저간의 사정을 듣고 말하기를, '나는 수안 고을 사또인데, 박용택은 나의 관할이 아닌 황주 고을 백성이므로 나에게는 그 자를 체포해 심문할 권한이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도둑놈을 놓고 관할 타령만 하고 있으니, 내 억울한 사정을 도대체 어디에 하소연 한단 말입니까?"
그 말을 듣자 김삿갓은 불현듯 분노가 치밀어 올라,
"뭐요? 사또는 백성들로부터 고발을 받으면 연루자를 불러다가 진상을 조사해 봐야 할 일인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관할 운운 한단 말이오? 도대체 수안 고을 사또가 어떤 자이기에 그런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더란 말이요?"
"흥! 노형이야말로 잠꼬대 같은 말씀만 하고 계시는구려. 사또라는 자는 죄 없는 백성을 잡아다가 볼기를 쳐서 돈이나 뺏어 먹는 자라는 것도 모르시오? 세상이 썩었다 썩었다 해도 이렇게까지 썩은 줄은 정말 몰랐소이다."
"그렇다면 수안 고을 사또는 이름이 뭐라는 사람이오? 내가 한번 만나 보기로 하겠소."
김삿갓이 '사또를 만나보겠다'고 말하자, 양상문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란다.
"아니, 선생은 우리 고을 사또 어른을 잘 아시옵니까?"
방금 전까지도 노형이라고 불러오던 사람이 갑자기 김삿갓을 선생이라고 바꿔 불렀다.
"내가 사또와 지면(知面)이 있어 만나 보겠다는 것은 아니오. 듣자 하니 노형의 사정이 하도 딱해 보이기에, 내가 사또를 만나 직접 호소해 볼 생각이니, 사또의 이름이나 알려 주시오."
양상문은 김삿갓을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짐작했는지, 머리를 정중히 수그려 보이며 말했다.
"우리 고을 사또 어른의 이름은 백창수(白昌殊)라고 합지요. 어려서 부터 하옥대감(荷屋大監: 영의정 金左根의 別號) 댁 사랑에서 심부름을 하다가, 50이 넘어 쓸모가 없게 되자, 우리 고을 사또로 내려 보냈다고 합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에이, 여보시오. 하옥대감이 아무리 인사를 어지럽게 하기로, 설마하니 사랑방에서 심부름을 하던 늙은이를 한 고을에 사또로 내려 보내기야 하겠소. 누군가 하옥 대감과 사또를 욕하느라고 일부러 꾸며 낸 이야기이겠지요."
김삿갓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매관매직(賣官賣職)이 횡횡하던 때였으므로, 내심으로는 그것이 사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되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그런 것은 나중 일이고, 양상문의 딱한 사정을 사또에게 한 번 사정해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술집을 나온 김삿갓은 사또를 만나기 위해 발길을 관아로 옮겼다. 관아에는 두 명의 병사가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여보게! 나는 한양에서 내려온 사람일세. 사또 어른께 여쭐 말씀이 있으니 사또 어른 좀 만나게 해주게."
한양에서 내려왔다고 해야만 사또를 쉽게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동헌 정문을 지키고 있던 수문장은 김삿갓의 행색을 훝어보더니 대뜸 코웃음을 친다.
"이 미친놈아! 한양에서 내려왔다고 하면 누가 겁을 낼 줄 아느냐! 사또님이 누구라고 감히 뵙겠다는 것이냐. 경을 치기 전에 썩 물러가거라."
행색이 허술한 것을 보고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였다. 김삿갓은 약간은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후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는 큰소리를 쳐볼 밖에 없었다.
"자네들이 내가 누구란 것을 모르는 모양일세, 나는 하옥 대감의 특별 분부를 받들고 내려온 사람일세. 사또에게 그 말씀만 전해 주게나. 그러면 사또께서 반갑게 만나 주실 걸세."
아무리 문지기 사령이라도 하옥대감이라는 말만 들으면 몸을 떨게 되리라 생각되어 하옥 대감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도깨비는 부작(符作)도 모르다’고 하던가, 문지기들은 하옥 대감을 알기조차 못했는지,
"이 미친놈아! 하옥 대감이 뭐 말라 죽은 귀신이냐, 미친 소리 한 번 더하게 되면 주릿대를 안길 것이다."
하며, 방망이를 들어 보였다.
김삿갓은 난처했다. 그렇다고 사내 대장부가 한번 뽑은 칼을 거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네들이 하옥대감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하옥 대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네 윗전인 사또 따위는 마음대로 내고 들이는 이 나라의 영의정이시라네. 그런 분의 명령을 받고 찾아온 나에게 사또를 못 만나게 한다는 것은 자네들이 경을 칠 일이 될 것이야."
이렇게 문지기와 승강이를 하는 와중에 마침 누군가 문안에서 나오다가 문지기를 보고 소리를 지른다.
"여봐라! 무슨 일인데 소란을 피우느냐!"
"아전 어른! 이 자가 한양에서 내려왔다고 말하면서
다짜고짜 사또 어른을 뵙겠다고 하여 쫒아내려 소란이 일었습니다."
아전은 "한양에서 내려왔다"는 말을 심상치 않게 들었는지, 김삿갓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한양에서 내려오신 분이 무슨 일로 사또 어른을 뵙자고 하셨습니까?" 하며 제법 정중히 물었다. 김삿갓은 흩어진 옷 매무새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나는 하옥대감의 분부를 받들고 관서 지방을 살피는 중에 사또를 잠시 만나려고 찾아온 길이오."
아전은 하옥대감이라는 말을 듣더니, 기절초풍을 하듯이 놀란다.
"옛? 하옥대감의 분부를 받들고 관서 지방을 살피러.. 오신 어른이시라고요? 그러면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사또께 얼른 아뢰겠습니다."
아전이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사또가 정복을 입고, 헐레벌떡 달려 나와 김삿갓에게 허리를 정중히 굽혀 보이며 말한다.
"하옥 대감의 분부를 받자옵고 관서 지방을 살피러 가시는 길에 저희 고을을 찾아 주셨다니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없사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옵소서."
그러면서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령 두 놈을 돌아보며,
"너희는 이런 귀한 분을 어찌 소란스럽게 맞았느냐! 고연 것들 같으니." 하며 노여움을 보이자, 사령 두 놈이 모가지를 어깨에 집어넣으며 말한다.
"소인들이 미처 알아 뵙지 못하였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사또는 앞장을 서서 김삿갓을 정중히 내당으로 안내했다. 차린 행색이나 말투로 미루어, 사또는 김삿갓이 틀림없는 암행어사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내당으로 가는 길에
"소관은 하옥대감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는 몸이옵니다. 하옥 대감께서는 기체후 일향만강하옵는지요?"
하면서, 자신이 하옥 대감의 후원을 받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리고 이어서,
어르신네께서는 대강 짐작하시겠지만, 소관은 하옥 대감을 30여 년 동안이나 측근에서 모셔오다가, 얼마 전에 이곳 수령으로 내려온 몸이옵니다."
암행어사는 본색을 숨기기 위해 의례 변장을 하고 다니는 것이 상례인지라, 사또는 김삿갓의 행색이 남루한 것도 일부러 암행어사임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삿갓은 관명을 사칭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굳이 변명을 하기에는 이미 때를 놓쳤다. 사또가 자신을 암행어사로 짐작하고 예우를 하는데 구태여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겸연쩍은 마음에 얼른 화제를 바꾸어 말을 했다.
"내가 어제 오늘 이 고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민원을 살 만한 사기 사건이 있던데, 사또는 그 사건을 알고 계신지요?"
사또는 그 말을 듣고 펄쩍 뛸 듯이 놀란다.
"저희 고을처럼 태평스러운 고을이 없사온데, 사기 사건이 있다니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그러자 김삿갓은 양상문과 박용택 사이에 얽혀 있는 사건을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또는 그 말을 듣고 나더니 고개를 끄떡이며 말한다.
"그 일이라면 소관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박용택이라는 자는 저희 고을이 아닌 황주 고을 백성이라서 소관이 마음대로 체포해 올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양상문이란 자는 돈을 갚았다고는 하지만 영수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놈의 말도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 하며 군색한 변명을 한다.
"돈만 돌려주고 차용 증서를 돌려받지 않은 것은 양상문이 박용택이라는 친구를 그만큼 믿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소이까. 그런데 박용택이란 자는 돈을 받아 놓고도 돌려주지 않은 차용 증서를 미끼로 돈을 또 받아 내려고 공갈 협박을 하고 있다니, 그런 악독한 놈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이까?"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그러나 양상문이라는 자는 돈을 돌려주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지만, 박용택이란 자는 돈을 돌려받지 않은 증거로 차용 증서를 가지고 있으니, 소관이 판단하기로는 양상문의 증거가 부족하여 시비를 가리기가 난처한 지경입니다."
"물론 시비를 가리는데 증거물이 반드시 필요 하겠지요. 그러나 지능이 발달한 범죄자일수록 증거물을 잘 이용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한 사람은 친구를 믿었기에 빚을 갚아 주고도 차용 증서를 돌려받지 않았는데, 저쪽 놈은 돌려주지 않은 차용 증서를 핑게로 돈을 또 받아 내려고 한다면 어느 편이 나쁜 놈인가는 자명한 일이 아니오니까?"
"지당한 말씀이시옵니다. 그러나 박용택이란 놈은 저의 관내에 사는 놈이 아니기 때문에 ...."
사건이 워낙 까다로운 내용이라 사또는 시비를 가리기에 자신이 없는 태도였다.
김삿갓은 그대로 두었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흐지부지 사건이 되어 양상문이 다시 돈을 갚아야 되는 사태에 이를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사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이 사건만은 사또를 대신하여 내가 취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만약 사또께서 허락을 해주시면 공정한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소이다."
사또는 워낙 자신이 없던 일 있었던지라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어르신께서 직접 다루어 주신다면 소관으로서는 그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희 고을의 명예를 위해 부디 명판결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면서 김삿갓을 암행어사로 알고 연방 굽신거린다.
김삿갓은 사건을 직접 다루게 되자 여러가지로 생각을 했다. 아무리 사또라도 자기 고을이 아닌 남의 고을 백성을 함부로 잡아다가 취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남의 고을의 백성이라도 범죄 사실이 확실한 경우에는 해당 고을의 사또에게 범죄 사실을 알려 주어서 체포해 올 수는 있었다.
김삿갓은 그런 실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날 중으로 황주 고을에 두 명의 형사 포졸을 보내면서 백창수 사또의 이름으로 황주 고을 사또 앞으로 다음과 같은 수사 협조전을 보냈다.
저희 수안 고을에서는 수 일 전에 산적의 두목 놈을 체포했사온데 그 자의 자백에 의하면, 귀 고을에 살고 있는 '박용택'이란 자가 산적의 일당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박용택이란 자를 응당 취조해 보아야 하겠사오니, 황주 수령께서는 그 점을 깊이 양해하시와 박용택을 체포해 올 수 있도록 특별 배려를 하여 주시옵소서.
수안 고을 군수 백창수 올림.
박용택을 난데없는 '산적'으로 몰아붙인 것은, 그 자가 워낙 지능범으로 판단되기에 엉뚱한 올가미를 씌워 가지고 범죄 사실을 자기 입으로 실토하게 하려는 김삿갓의 깊은 계교가 숨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박용택은 산적의 누명을 쓰게 된 사실을 알고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산적으로 몰리는 날에는 목숨이 남아 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한동안 궁리를 하더니 문득 머리를 들며 말한다.
"네 놈이 산적이 아니라면 이런 패물과 많은 돈이 어디서 나왔겠느냐?"
"소인이 가지고 있는 패물과 돈은 모두 출처가 분명한 것이옵니다. 돈과 패물의 출처를 아신다면, 소인을 산적이라고 생각지 않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묻는 대로 하나하나 명백히 대답해 보거라. 만약 추호라도 거짓이 있으면 결단코 용서치 않으리로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소인이 거짓말을 했다가는 산적으로 몰려 목숨이 날아갈 판인데, 어찌 거짓 말씀을 아뢸 수 있으오리까?"
"음 ... 단단히 다짐을 했으렸다!"
"음 ...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들을 이 자리에 불러다가 다시 물어보아도 너는 그대로 말할 수 있겠느냐."
"네, 사돈 어른과 나의 딸년을 직접 불러 물어보신다면 더욱 확실하게 될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데 부디 그렇게 해 주시옵소서."
"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금가락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캐묻지 않겠다. 그건 그렇다 치고, 천 냥이라는 거금이 나왔는데 그 돈은 어디서 나온 돈이냐?"
"아, 아니옵니다. 그런게 아니옵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런 거금은 어디서 생겨난 돈이란 말이냐!"
"그 돈은 .... 친구에게 빛을 주었다가 돌려받은 돈이옵니다."
"이놈아! 용서를 빌려거든 차용 증서부터 내놓아야 할 게 아니냐!"
"어르신께서 직접 품고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오. 이 사건은 이미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므로, 나는 갈 길이 바빠 사또께 인사도 여쭙지 못하고 이대로 떠나야 하겠소. 사또전에 그 말씀도 아울러 품고해 주시오."
한바탕 껄껄 웃음을 웃으며 수안 읍내를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온 김삿갓의 기분은 명쾌, 상쾌, 통쾌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