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중국 체류의 소감을 하나 써봅니다.
하남(河南) 성은 중국 중원 지역, 중국 전통 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흔히 중국의 8대 고도(古都)를 말합니다. 이는 베이징(북경), 난징(남경), 항저우(항주), 시안(서안; 장안), 뤄양(낙양), 카이펑(개봉), 안양, 정저우(정주)입니다. 이 가운데 뤄양, 카이펑, 안양, 정저우가 모두 하남성에 있고, 관중(關中) 지역이라고 하는 시안도 멀지 않습니다. 이들 고도들을 설명하는 것은 곧 중국 역사 전체를 설명하는 것이 되어 매우 복잡합니다. 그냥 조금 얘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있던 정저우는 중국 고대 왕조 상(혹은 은) 나라의 초기 수도였습니다. 이후 지금의 안양 지역으로 옮겼는데, 그 옛 이름이 은이어서 은나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유명한 상나라 갑골문자가 발견된 곳이 바로 안양 지역이고, 그곳을 은허(殷墟:은나라 유적지)라고 부릅니다. 시안은 장안으로도 알려져 있는 곳으로 중국의 여러 왕조들의 도읍지였습니다. 주나라가 이곳에서 건국되었고,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최초의 황제 시대를 연 진나라의 수도도 시안에 가깝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진시황제의 무덤의 병마용 유적이 시안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도 이곳에 도읍을 정하였고, 이후 당나라도 이곳을 수도로 하여 '장안'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뤄양은 뤄양은 주나라가 동쪽으로 옮긴 동천 시기(춘추시대) 수도로 정한 곳이고, 한나라가 왕망에 의하여 단절된 후 다시 복원된 후한(동한) 시기 수도이기도 하고, 남북조 시대 북위 그리고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의 수도이기도 하였습니다. 수나라에 이은 당나라의 수도는 장안(시안)이지만, 뤄양도 때때로, 특히 후기에는 수도 역할을 하였습니다. 중국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 시대에는 뤄양을 수도로 하였습니다. 카이펑은 송나라 그리고 금나라가 송(북송)을 남쪽으로 밀어낸 후에는 금나라의 수도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남성을 중국 역사의 중심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장은 아닐 것입니다.
아래 지도는 관중과 중원 지역의 고도들을 표시한 것입니다.
중국 문명 4천년의 역사가 이곳 중국 중원지역에서 일어났다 스러지고, 폐허가 된 대지에 또 다른 왕조가 건설되기를 거듭하였습니다. 이 중원 지역이 중국 문명의 발상지가 된 것은 황하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세계 4대문명이 모두 강을 끼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집트 나일 강, 메소포타미아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인도 인더스 강, 그리고 중국 황하-장강(양쯔강). 황하는 중국의 황토고원을 지나 양분이 풍부한 황토를 하류로 보내 중원을 중국의 곡창지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남성을 중원양창(中原粮倉)이라고 부릅니다. 중원의 곡식창고라는 뜻입니다.
인류 시원의 4대 문명이 초기의 상태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누적되고 계승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문명은 과연 어느 문명일까? 저는 바로 중국 문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중국은 고대 문자가 이어지고 있고, 지역도, 민족도 이어지고 있으며, 상나라와 주나라를 거치면서 형성된 유교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추가하자면 페르시아 고대 문명은 이후 이슬람 문명으로 대체되었고, 인도의 고대 문명도 현재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등으로 나뉘어지고 인도는 힌두교,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네팔과 부탄은 불교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서는 고유한 언어도 있지만, 영어가 대체로 공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고대 문명들 가운데 수 천 년 다양한 왕조의 부침과 이민족의 지배를 통과하는 동안 그 민족, 이념, 문자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계속 이어져 온 문명은 달리 없어 보입니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인류의 미래를 중국 문명에서 찾고자 한 것도 그와 같은 중국의 역사적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정저우에 머무는 2달 동안 시간 되는대로 그러한 유적지들을 가보고자 하였습니다. 먼저 중국 문명의 모태인 황하를 보았습니다. 정저우 시 북쪽으로 황하가 흐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그 지점에 황하 문화공원을 조성하여 민족적 상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원 입구에는 중국 전설의 조상인 '황제'와 '염제'의 상이 큰 바위산처럼 솟아 있습니다. 미국 서부 러쉬모어에 미국의 존경받는 4인의 대통령 얼굴을 바위에 새긴 것과 유사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문화공원 곳곳에는 몇 개의 조각상들이 더 있습니다. 케이블 카를 타고 한참 올라가면 조그만 봉우리에 우(禹)임금을 기리는 작은 공원이 별도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우임금은 중국 전설의 왕조 하(夏) 시대에 요순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황하의 범람을 잘 다스려 국가의 기초를 세운 공로가 평가되어 순 임금이 우에게 왕위를 선양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또 다른 언덕 위에는 마오쩌둥이 황하의 물줄기르 응시하는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마오쩌둥이 이곳을 방문하여 상념에 잠기며 황하 치수(治水)를 잘 해야 한다는 어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우 임금의 동상이 더 컸는데, 그 밑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는데, 마오쩌둥의 동상에는 그 앞에 과자, 음료수 들이 꽤 놓여져 있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젊은 여성 관광객들이 아이들에게 물명을 쥐어 주며 갔다 바치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오쩌둥은 젊은 세대에도 신 중국의 시조로 신비화된 것 같습니다.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조각상은 어머니와 갓난 아이 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앉아서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상이었습니다. 왜 이런 조각상이 있을까? 중국인들에게 황하는 '어머니 강'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황하는 하상에 황토가 쌓여서 보통 평지보다 높게 흐른다고 하여 지상현하(地上懸河)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여기 정저우의 황하 문화공원은 지대가 높아 황하를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먼 발치지만 누런 황토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천년 아니 몇 만년 흐른 그 물줄기가 중국 그리고 동북아시아 인간 공동체의 성쇠를 좌우하였다니 새삼 감회가 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