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반포 역대 최고가 경신, 대치 빅3 잠실 장미 사업속도…
강남 재건축 시장 다시 뜨겁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유예 등의 규제 완화와 주택 경기 회복이 맞물려 서울 강남 재건축 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수년째 답보 상태였던 재건축 단지가 사업을 재개하거나 속도를 내면서 거래가 늘고 매매가가 오르고 있는 것. 아파트값이 최고점 대비 30%가량 떨어져 체면을 구겼지만 최근 지난 2006년 버블 시대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는 단지까지 등장하고 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명동스타PB센터 팀장은 “규제 완화 등으로 강남 재건축 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섰다”며 “부활을 논할 단계는 아니지만 금융위기 이후 종적을 감췄던 생기가 다시 도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분위기 좋을 때 서두르자” 속도 내는 강남 재건축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저층 단지는 10년 넘게 끌어온 재건축 사업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속도가 빠른 개포주공2단지는 이주가 90% 이상 끝났다. 개포시영과 개포주공3단지는 사실상 마지막 행정절차인 관리처분 단계를 밟고 있다. 후발주자인 개포주공4단지는 이르면 8월 강남구청으로부터 사업시행 인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지 규모가 가장 큰 개포주공1단지도 지난달 말 사업시행 인가 신청을 위한 주민 총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그 결과 이 일대 5개 단지 1만여 가구가 일제히 재건축 사업의 7부 능선을 넘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개포 저층 단지는 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인 사업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된 셈”이라며 “거래가 늘고 아파트값이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주공2단지는 관리처분 인가 전후에 거래가 가장 활발했으며 아파트값도 많이 올랐다. 개포주공 중층 단지인 5~7단지도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가 꾸려져 정비계획 구역 지정 동의서를 걷는 등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 하락으로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던 대치동도 심기일전하고 있다. ‘대장주’로 불리는 은마는 숙원인 폭 15m의 단지 내 도시계획 도로 폐지를 위한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고 있다. 지난달 중순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사전 자문에서는 심의위원들 간 찬반이 엇갈려 방침을 정하는 데 실패했지만 우선 지난 6월 4일까지 도로 폐지에 대한 주민공람을 마쳤다. 은마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이르면 올 하반기 도로 폐지를 담은 기본계획변경안과 정비예정구역 변경 지정을 서울시에 정식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도시정비업체 관계자는 “2006년 결정된 기본계획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면서도 “단지 중앙에 도곡로와 같은 도시계획도로가 생기면 단지가 두 개로 이원화되는 데다 추진위에서 비슷한 폭의 통행로와 차량 출입구 조정 등 대안을 제시했고 도로 신설을 통한 교통흐름 개선 효과가 크지 않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어 ‘조건부 가결’ 정도로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재건축 속도전에서 은마의 라이벌로 부상한 대치쌍용1·2차는 2차가 이달 초 강남구청에 조합설립 신청서를 제출해 이르면 다음달 조합설립 인가를 받을 예정이다. 1차도 하반기에는 조합 설립이 가능할 전망이다. 안전진단을 통과한 대치동 빅3인 선경·미도·우성 아파트는 재건축 정비계획을 세우고 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정비계획은 주민 제안형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며 “단지별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오는 9월 입주를 앞두고 새 아파트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래미안대치청실이 주민들의 재건축 관심에 불을 지폈다”고 전했다.
서초구에서는 반포·잠원동 일대가 분주하다. 올해 강남에서 유일하게 시공사를 선정하는 삼호가든3차는 대림산업과 롯데건설, 현대건설이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호가든4차는 최근 이주를 마무리했고, 신반포3차·23차·경남은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황제주’에 해당하는 반포주공1단지는 3주구가 건축심의를 준비 중이며 1·2·4주구도 36층 이상으로 층수를 높이기 위해 경관심의를 받고 있다. 잠원동 반포한양은 주민들이 이사를 마쳤으며 올해 말 일반분양에 나설 예정이다. 신반포5차·6차도 재건축 사업 막바지 단계다. 신반포2차는 10년 넘게 사업이 표류했지만 최근 재건축 추진위원회 재정비를 위한 물밑 작업이 활발하다.
송파구 매머드급 단지인 가락동 가락시영은 오는 8월 일반분양을 시작할 예정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메르스 등으로 일정이 9월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지만 최대한 서둘러 분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합장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주민들 사이에서 후속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인근 진주 아파트는 지난달 10년 만에 조합설립총회를 열었다. 미성과 크로바도 통합 재건축을 하는 방향으로 세부사항을 최종 조율하고 있다.

중층 중대형 아파트 안전진단 통과
재건축 걸음마를 뗀 단지가 잇따르고 있다. 올들어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19차·25차와 송파구 신천동 장미1~3차, 잠실동 잠실우성4차 등 중층 중대형 단지가 첫 관문인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강남구 도곡동 개포우성4차도 조만간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수혜 단지로 꼽히는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와 노원구 상계·중계 주공단지, 삼풍·반포미도 등 강남3구 일부 단지에서도 재건축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1~2년 뒤 연한이 도래하자마자 바로 안전진단을 신청하고 시행착오 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재건축 스터디’를 하고 있다. 목동신시가지1단지는 재건축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양천구청은 목동신시가지 1~14단지 지구단위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용역 발주를 당초 9~10월보다 앞당길 예정이다.

강남 아파트값 다시 뛰나
강남 재건축 아파트 거래량이 늘고 가격도 다시 오르고 있다. 특히 중개업소에서는 주택 시장 비수기로 통하는 지난 5월이 오히려 ‘축제의 장(場)’이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아파트 거래량은 1만2695건으로 지난 3월부터 3개월 연속 1만 건을 넘어섰다. 서울시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전세난에 따른 매매 전환도 많았지만 3월부터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거래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재건축이 급물살을 타는 단지가 늘어난 게 거래량 증가와 아파트값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서초구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아파트가 등장하고 있다. 반포동 삼호가든4차 전용면적 96㎡은 지난 4월 9억4000만원에 실거래됐다. 2006년 아파트 버블 시대 정점을 기록했던 8억4500만원이 9년 만에 깨졌다. 반포경남 전용면적 71㎡는 이 아파트가 1978년 준공된 이래 역대 최고가인 8억9000만원에 최근 실거래된 뒤 9억원을 넘어섰다. 신반포3차 전용면적 108㎡도 올봄 역대 가장 비싼 가격인 13억~13억3000만원에 손바뀜됐으며 현재 13억5000만원을 호가한다.
강남구 재건축 단지도 모처럼 가격이 올랐다. 개포 주공 저층 단지는 최근 거래량이 크게 늘면서 가격이 1000만~3000만원가량 뛰었다. 개포주공1단지 전용면적 36㎡는 6억원 안팎을 맴돌다 최근 6억3500만원까지 올랐다. 개포주공2단지 전용면적 25㎡도 이젠 5억원을 줘야 살 수 있다.
개포주공4단지 전용면적 36㎡는 한 달 새 3000만원 이상 올라 6억4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은마도 전용면적 76㎡ 는 9억3000만~9억8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불과 2년 전 6억9000만원에 거래되면서 실거래가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7억원 선이 붕괴됐을 때와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회복세다.
목동신시가지는 지난해 9·1대책 발표 전에 비해 1억원 이상 아파트값이 뛰었다. 하지만 요즘은 단기간 가격 급등에 따른 조정 국면에 진입한 모습이다. 목동8단지 시티랜드공인 관계자는 “목동에서 거주하면서 재건축을 기다리려는 수요를 중심으로 거래되면서 시장이 차분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업시행 인가 단지 골라야
재건축 시장이 모처럼 살아났지만 투자할 때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명동스타PB센터 팀장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재건축은 건축허가를 의미하는 사업시행인가에 접어든 단지를 고르면 투자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단지는 향후 5년 정도면 준공·입주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가 받쳐주고 실제 거주하면서 재건축을 기다릴 수 있다면 조합 설립을 앞두고 있거나 조합이 꾸려진 단지 등 사업 초기 단계의 단지가 수익성이 더 높을 수 있다. 건축심의, 사업시행, 관리처분 등 단계를 거치면서 가격이 더 오를 여지가 있어서다. 이때 전세를 끼고 매입하면 투자금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전세난 여파로 재건축 아파트도 전세가율이 50% 이상인 단지가 늘고 있다”며 “전세를 잘 활용하면 매매가의 절반 정도의 투자금을 준비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일부 중대형 재건축 아파트는 2채를 분양 받을 수 있는 ‘1+1 재건축’이 가능하고, 큰 집은 직접 거주하고 작은 집은 세를 주고 임대수익을 거둘 수 있는 만큼 베이비부머나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중장년층에게 안성맞춤인 투자가 될 수 있다.
다만 재건축은 10년은 걸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부동산114가 2000년 이후 서울에서 재건축 구역 지정을 통과한 138개 사업장의 사업 단계별 사업기간을 조사한 결과 구역지정에서 준공까지 평균 10.2년 걸렸다.
재건축 투자는 저층 소형 아파트를 고층 중대형으로 다시 지어 시세차익을 거두는 게 기본 전략인데 수익성이 뛰어난 5층 이하 저층 단지는 사라지는 추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990년 이전에 준공된 서울시 아파트는 총 35만여 가구로 이 가운데 5층 이하 저층 아파트는 전체의 13%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현재 재건축이 진행 중인 단지를 제외하면 4%로 줄어든다. 초과이익 환수제를 제외하면 재건축 규제는 상당수 완화된 상황이어서 정책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김혜현 센추리21코리아 전략기획실장은 “재건축 단지는 경기 변동에도 민감하다”며 “중층 중대형 단지는 용적률 상향 등 호재가 없는 한 수익을 내기 어려운 만큼 사업 진행 추이를 지켜보면서 긴 안목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