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년만의 술 한 잔
다음날이 지나고 또 다음날이 지나고 또 다음날이 지나갔다.
금방이라도 찾아오실 듯이 말씀하시던 그 분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조금은 서운했고 조금은 걱정되었다.
금요일 밤에는 옛날 살던 집으로 갔다.
우편물이라도 있나싶어 갔지만 실상은 그 분에게 들러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하고 싶었다.
우편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분 집에 불빛 또한 없었다.
천천히 차를 돌리려고 했는데 핸들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내 손은 이미 그 분의 핸드폰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신호가 갔지만 받지 않으셨다.
허전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거기 살았던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질만큼 천천히 그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가끔 계단에서 마주치며 호감을 느끼며 인사하던 모습,
홍시감을 갖다드렸을 때 아주 잘 먹었다고 하시던 모습
재활용품을 버릴 때 집사람을 도와주겠다며 열린 문으로 들어오셔서 옷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한 나를 난처하게 하기도 했던 그 분
집사람과 가끔 마주치면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며 말을 걸어 오셨다던 그 분
추운 겨울 날 버스를 타시려고 총총 걸어가시던 뒷 모습,
언제나 단정하고 중후하셔서 선생님 분위기가 나기도 했던 자태,
조용하면서도 꽉 찬 듯한 50대 중반의 그 모습.
2년 동안의 그 분에 대한 생각이 해묵은 필름인 양 한 컷 한 컷 뇌리를 스쳐가고 있었다.
곧 있을 시험때문에 그 다음 토요일에는 도서관에 하루 종일 눌러 있었다.
오랜만에 젊은 학생들하고 같이 공부를 했다.
공인중개사 시험본다고 테니스 치고 싶은 강렬한 욕구마저 자리에 꾸욱 눌러 앉히던 때가 벌써 3년 전이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한다는 것이 힘들어졌다.
애써 시간을 채우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냥 갈까 하다가 그 분에게 다시 전화를 드렸다.
변함없이 반가와 하셨다.
우리는 조금 후에 만나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예전 살던 집으로 갔다.
그 분이 나와 계셨다.
반가왔다.
무척이나 반가왔다.
그 분 또한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택시를 타고 고골낚시터의 한적한 음식점 근처에서 내렸다.
딱히 정해진 곳은 없었지만 예전 집사람과 같이 먹던 아주 조용한 곳으로 그 분의 손을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꼭 잡으면서 걸어갔다.
가장 싼 고기와 가장 싼 술을 시켰다.
가장 비싼 고기로 가장 비싼 술로 그 분에게 대접해야 하는 건데 왠지 가장 싼 것으로 함께 하고 싶었다.
아주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아주 비싼 양주가 아닌 가장 싼 소주로 회포를 풀듯이.
술이 나오자 나는 두 무릎을 꿇고 그 분에게 공손하게 술을 따라 드렸다.
될 수 있으면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그건 아마도 2년동안이나 술 한잔 드리지 못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고 싶은 마음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분은 나에게 ‘편하게 대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야 그 분과의 이야기는 마치 봇둑이 터지듯 흘러나왔다.
그 분의 연세는 예순이라고 하셨다.
쉰중반으로만 생각했는데 연세보다 젊어 보이셨다.
군대에 20년 넘게 근무하다 퇴직을 하고 지금 다니는 직장에 들어왔다 하셨다.
이야기 도중에 고기가 어느 새 검게 타버렸다.
그 분은 술을 드시지 못한다 하셨다.
소주 1잔 정도가 정량이라고 하셨다.
아쉬웠다.
같이 대작을 하면서 얼큰히 취하고 싶었고 같이 한 몸으로 춤추고도 싶었는데 말이다.
고기를 몇 점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단지 나는 소주잔만 들이킨 것 같았다.
소주 한 병이 비워지고 다시 한 병을 시켰다.
그 분도 못 먹는 소주를 몇 잔씩이나 나를 위해 마신 것 같으셨다.
2년동안 대문을 마주 대하면서 술 한잔 건네 드리지 못한 게 이사가는 날 내 가슴 한 구석을 휑하니 만든 것 같았다.
마주 앉다가 나는 어느새 그 분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 분에게 호칭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쭈어 보았다.
아무 말씀 없으시길래 그 분의 얼굴을 보며 크게 웃어대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단지 웃음만 나오고 또 나오고 있었다.
그 분은 나에게 ‘소주 한 잔 더 하고 말씀하라’ 하셨다.
시원한 소주 한잔을 더했다.
대작을 하는 사람이 좋으면 소주를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했고 취한다 하더라도 정신은 말짱하다고 했다.
첫째는 ‘아부지’라고 말씀드렸다.
그 분의 얼굴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뱉은 말에 대한 부끄러움이 증폭되어 더 크게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둘째는 ‘아제’라고 말씀드렸다.
세째는 하니 그 분이 먼저 ‘형님’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것이 좋습니까’ 여쭈어보니 그 분은 ‘아제’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더 힘있는 목소리로 ‘아부지’라고 외쳤다.
순간 몇 초간의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분을 아부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술을 몇 잔 더 들이키고 나서야 우리는 그 집을 나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그 분 집까지는 걸어서 한참동안의 길이었는데 나는 걸어가자고 했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다가 나는 그 분을 업었다.
한 어깨에는 책가방을 둘러매고, 한 손에는 우산을 잡고 한 손으로는 그 분의 허리춤을 부여잡고 그 분을 업은 채로 걸어갔다.
무슨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는데 차마 목에서 맴돌 뿐 나오지 않았다.
오다가 노래방이 눈에 띄었다.
그 분에게 노래한 곡 부르고 가자고 하고서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잘 부르지 못하는 노래였지만 아무거나 입력시키고 노래를 불렀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불렀다. 그 분에게도 30대가 있었는지 여쭈어보면서.
아부지는 가사가 참 좋다고 하셨다.
같이 노래방을 나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여전히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집 쪽으로 걸어갔다.
천둥이 소리내어 땅에 요동을 쳤고 번개 또한 덩달아 하늘을 쩍쩍 갈라놓았다.
운동화가 젖었고 바지는 무릎까지 흠뻑 젖었다.
어느 새 우리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우리 둘만의 비밀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자주 여행이라도 같이 다니자고 말씀드렸드니 그렇게 하자고 하셨다.
그 분 집까지 왔다.
손을 벌려 그 분의 가슴을, 내 아부지의 가슴을 힘차게 포옹하고 나서야 쏟아지는 소나기속을 향해 걸어갔다.
헤어지기가 아쉬웠는지 그 분도 떠나가는 나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신것 같았다.
가득 차 있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느낌.
아무리 술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빈 가슴.
하루종일 테니스를 쳐도 어딘가 허전한 마음
불혹의 나이로 옮겨가면서 남자들은 다 이렇게 느꼈을까?
무언가 채워 줄 무엇이 필요했다.
그 무엇은 토끼같은 집사람을 통해서도, 다람쥐 새끼같은 내 귀여운 아이들을 통해서도 채워줄 수가 없었는데 그 채우지 못하던 그 무엇인가를 나는 이 분을 통해서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 분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첫댓글 요즈음 저도 '서른 즈음에' 노랠 기타솔로로 종종 쳐보고 있습니다.
가수 이은미도 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던데 가사가 왠지 마음에 끌려
이따금 흥얼거리기도 합니다.
송선비님과 같이 마라도 갔을 때 낭랑히 울려퍼지던 곡이었슴다.
언제 들어도 좋은 곡이죠.
저도 쳐볼라고 솔로악보 몇 개나 갖다 놓았는데, 언제 쳐 볼런지...
푸른숲님의 '서른즈음에' 기타연주 하루바삐 듣고 싶슴다.
저가 노래는 잘 부르지 못하지만 목청껏 따라 불러보겠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