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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불교사 >
미국역사와 함께 보는 미국불교사 (40)
미주불교사는 그동안 1840년대부터 시작되는 미국불교사의 시대적 흐름과 주요 등장 인물들을 1980년대 까지 소개하였다. 이 흐름 속에서 본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분석하여 미주한국불교사에 대해서도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상세하게 분석하여 소개하였다. 이 글은 1990년대의 전체적인 흐름은 아니지만 규모와 신도 수에서 미국 최대 사찰이라고 볼 수 있는 로스엔젤레스 서래사에서 1996년에 일어난 정치모금에 관한 글 2개를 소개한다.
글 | 조계종 국제포교사 송광섭
로스엔젤레스 중국사찰 총림
서래사 1996년 정치모금 사건에 대한
종교적, 문화적 의의
먼저 소개하는 글은 윌리엄 던킨 교수와 크리스 퀸(Chris Queen)가 공동 편집한 ‘미국불교, 최근 학문의 방법과 연구성과: American Buddhism: Methods and Findings in Recent Scholarship)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관련 자료를 취합하여 본지 편집위원인 송광섭 국제 포교사가 편집하여 소개한다. 원문은 더킨 교수의 글이다. Duncan Ryūken Williams는 일본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 일본에서 태어났다. 하바드 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로스 엔젤레스에 있는 USC의 종교 및 동아시아 언어 및 문화 교수이며 조동종의 스님이다.
또 하나의 글은 2000년 가을호 불교 잡지 Tricycle 의 보도 내용이다.
서래사 모금 행사의 진행
1996년 4월 29일 오후 고어 부통령이 불광산 교단의 서래사를 친선방문 하고 불전에 공양을 올리고, 서래사 스님과 신자들과 저녁만찬을 가졌다. 고어 부통령은 방장스님 성운 대사와 고승들의 환영 속에 로스엔젤레스 주재 중국 절 서래사를 방문 하였다. 고어 부통령과 성운 스님은 150명의 고교 밴드대를 통과하여 서래사의 중앙에 있는 불단에 참배한 후 리셉션 장소로 이동 하였다, 고어 부통령을 환영하기 위한 연회장은 12개 테이블에 1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하였으며, 고어 부통령과 성윤 스님은 선물 교환 행사를 마치고 고어 부통령의 연설이 이어 졌다. 고어 부통령은 행사 도중 계속해서 합장을 하여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이것은 서로 단합하는 미국 정신과도 부합되는 표시로 하객들에게 이해 되었다. 저녁 연회 후 민주당 전국위원회를 위한 모금 행사가 이어 졌으며, 불광산 교단의 신자 다수가 모금에 동참 하였다.
고어 부통령이 참석한 엘에이 서래사 민주당 모금 행사는 두 달 후 월스트릿 저널(WSJ) 신문 기사에 의해서 모금 행사의 불법성과 중국 불교계가 미국 정치에 개입되어 있다는 의문이 제기 되었다. 당시 사건 기사를 접한 정치 전문가 그룹에서는 고어 부통령이 참석한 서래사 행사에서 모금된 민주당 후원 정치자금이 서래사 신도 단체 자금이 아닌 대만의 정치계나 재계가 개입된 사건으로 소문이 나서 정치적인 파장이 큰 사건으로 확대 되었다.
고어 부통령과 성운 스님은 1989년 고어 부통령이 3일간 대만을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만났다. 고어 부통령의 대만 방문 여행은 대만의 불광산 교단과 새로 개원한 하시엔다 하이츠 종교 센터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태평양 리더십 위원회(PLC)에 4,000 달러를 기부하여 후원하였다. 대만을 방문하는 고어 부통령 일행을 중국계 미국 시민권자인 마리아 시아(Maria Shia)여사와 죤황(John Hwang)이 안내 하였다. 고어 부통령의 미국 대만 방문단은 대만 정부 관리를 만나고, 대만 교외의 불광산사를 방문 하여 양자간 우호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 후, 1976년(서래사 개원 년도?) 성운 스님이 서래사 개원 행사를 위하여 미국을 방문하였을 당시 서래사 개원 행사에서 고어 부통령을 재회 하였다. 대만을 방문한 지 몇 달 후 시아 여사는 고어의 1990 년 부통령 재선 캠페인을 위한 최초의 기금 모금 행사를 개최 하였다.
성운 스님은 미국 사회의 진취적 분위기를 평소에 느끼고, 미국 본토에 대만 불교 포교를 위하여 불광산 종단의 전문가를 미국에 파견하였으며, 중국 사원 건설을 위한 장소 물색에 나섰으나 높은 부동산 가격으로 인하여 엘에이 교외 하시엔다 하이트(Hacienda Heights)에 매물로 나온 교회 건물을 발견하여, 14에이크의 교회 건물을 1978년 구입하였다. 성윤 스님은 이 부지에 대 사찰 건축과 8층 높이의 부처님 상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설계하였다. 그러나 사원 건립 과정에서 허가 과정이 까다롭고, 미국과의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지역 주민의 반대가 있었으며,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여 건설 추진에 애로가 있었다. 그 후, 6번의 주민 청문회, 100 회 이상의 정부 및 주민과의 토론을 거쳐서 마침내 서래사 건립을 위한 건축 허가를 받았다.
1986년 초에 기초공사를 마치고 2년 반에 걸친 공사기간을 거쳐서 마침내 미 서부에 중국 최대 사찰 서래사가 완공 되었다. 사찰의 규모는 초기 계획보다 축소 되었고 옥외의 부처님 건축은 연기 되었다. 개원식에는 성운 대사가 참석하여 역사적인 중국 사원 포교 시대를 열었다. 서래사는 그 동안 주민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해서 엘에이 지역사회에 있는 중국 상공회의소는 독립기념일, 추수감사절에 주민에 대한 설득과 참석을 계획하고, 교통과 군중 행사에 주민을 초청하고 지역행사에 주민들의 참여를 계획하였다. 이를 통하여 주민과의 협조를 발전시켜서 현재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래사의 존재가 지역 사회로 부터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성운대사와 사찰 스님과 신자 단체들은 로스 엔젤레스 지역과 전국적인 규모의 정치인과 사회인사들과 교류를 시도하였다. 1988년에는 성운대사가 캘리포니아 의회의 개원 기도를 불교식으로 진행하였고, 이후 뉴욕, 시카고, 휴스톤시와 텍사스 주의 친선 대사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백악관과의 인적 교류도 시도하여, 1988년 서래사 개원식에는 레이건 대통령의 축사와 친선 방문단이 서래사에 왔으며,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불광산사의 신도회 임원들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참석하였다. 1992년 서래사에 결성된 불광산사 국제 협의회 창립행사에는 부시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왔다. 이러한 유대 관계가 발전하여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 1993년 9월 산타모니카에서 개최된 민주당 모금행사에 불광산사 신도회가 15,000불을 기부하였으며, 고어와 클린턴이 참석한 행사에도 추가 금액을 기부 하였다.
1996 년 2 월, 시아 여사는 성운대사를 포함한 서래사 대표단과 워싱턴 디시를 방문하여 죤황이 조직 하고, 클린턴과 고어가 출연하는 워싱턴 Hay Adams 호텔에서 DNC 기금 모금 행사에 참석하였다. 그 후, 백악관을 방문하여 성운스님은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하였으며, 고어 부통령에게 서래사를 방문하도록 초청했습니다. 고어 부통령의 엘에이 방문은 DNC를위한 캘리포니아 기금 모금 여행과 서로 목적이 부합되는 것이었다. 당시 민주당 전국 위원회(DNC) 관계자였던 시아 여사의 전 태평양 리더십 위원회(PLC) 동료 인 죤 황 씨도 몬터레이 파크 레스토랑에서 고어 부통령을 위한 정치 기금 모금 행사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달 후 죤황이 고어 부통령과 성운 대사와의 10분간 통화를 주선하고, 서래사 주지는 고어 대통령을 서래사 저녁식사에 초청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고어 부통령의 사원 방문으로 진행되었으나, 고어 부통령이 로스엔젤레스에 도착 하였을 때 죤황이 다른 일정을 통합하여 서래사 만찬으로 조정하였다. 이때, 고어 부통령의 참모들은 서래사 방문 만찬에 대한 문제점을 잘 인지하지 못하였다. 1996년 4월 15일 고어 부통령의 국가안보 담당관은 이 행사에 대하여 국가안보회의의 아시아 문제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중공과 대만 문제에서 외교적인 균형 문제를 강조하고 대만을 상징하는 일체의 표시를 제거하였고, 단순한 지역사회식사 모금 행사를 축소시켰다.
그러므로 고어 부통령과 민주당은 엘에이 지역사회 비즈니스 모임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성운 대사는 고어 부통령과의 우정을 확인하는 지역 행사라고 발표 하였다. 서래사 연회에 참석하는 하객들은 기부금 모금과 아시아 태평양 우호 협회의 서래사 신도 행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고어 부통령과 성운 대사는 그날 행사가 정치적 모금행사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서래사가 주관하므로 고어 부통령 참모 중 일부는 행사에 불참하였고, 많은 참석자들이 이 행사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성운대사는 행사 다음날 행사의 내용을 보고 받았으며, 고어 부통령도 월스트릿 저널(WSJ)이 보도할 때 까지 사안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다.
월스트릿 저널(WSJ)의 쿤츠 기자는 고어 부통령의 행사가 민주당 모금 행사로 알려진 후, 세 가지면에서 의문점을 제시하면서 기사를 썼다. 첫째 서래사와 같은 비영리 단체에서는 정치모금 행사가 금지되고 있으며, 둘째 정치 단체 기부행위는 미국 시민과 영주권자만 가능 하며, 셋째 모금 헌금액의 출처가 명확하지 못함, 즉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는 불교 사원에서 생활하는 스님들이 5천 달러를 헌금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의혹을 제기 하였다. 쿤츠 기자의 기사가 발표된 후, 민주당은 서래사의 비영리 재단 의 법률적 보호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만 오천달러를 서래사에 반환하였다. 그 후 LA Times는 서래사는 이번 알 고어 부통령 행사외에 1990년에 컨네티컷주 주지사를 위한 모금행사도 있었던 사실을 보도하였고, 사찰에서의 어떤 형태의 모금 행사도 연방법 위반이고, 외국인에 의한 미국 민주당 헌금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1997년 서래사 주지 스님은 상원의 정부 업무위원회 조사에 출석하여 모든 헌금 액은 서래사 내부에서 신자들의 수집한 물품들에 대한 재활용 판매를 통한 수익 자금이며, 미국내의 외부 단체 자금이나 대만에서 기부된 자금은 없다고 진술하였다.
성운 대사의 대만에서의 위상과 포교 사상
미국의 정치권이나 신문, 방송계에서는 성운 대사와 불광산 교단이 대만 정부나 대만 재계의 은밀한 조력자인지 의심하고 있었다. 성운대사는 대만의 정계와 재계에 수많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1970년 이래로 장경국, 이등휘 대만 총통을 비롯하여 끊임없이 대만 정부의 고위관리가 성운 대사를 방문하여 면담하고 있으며, 국민당의 중앙당 고문을 10년째 역임하고 있다. 중공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도서 부대 군인들을 위한 법사활동과 대만 육군 사관학교를 비롯한 군 기관의 부대 지원 사업으로 1985년 대만 교육부로부터 훈장, 대만 국민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 등 국가 포상을 수여 받았다. 또한 대만 재계의 인맥을 건설하여 대만의 유수 재벌들이 불광산사 신자이며, 불광산사의 지부 사찰을 호주에 건설하고 사찰 주변에 대형 컨벤션 센터를 건설하여 해외에 상업적 사업도 진출하고 있다.
알 고어 부통령을 초청한 행사는 대만의 정치, 재계 실력자들을 대리해서 종교 행사로 진행 함으로서,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 하였고, 대만 정부나 재계의 직접적인 자금 유입은 없었다. 1997년 2월 2월 성운 대사가 대만 정부의 재외 중국인 지원단체 임원으로 임명된 것은 성운 대사가 해외 중국인을 고려한 행동이었다. 불광산 교단은 자신들의 포교 활동을 발전 시키고, 미국, 유럽과 호주 내에서 중앙과 지방 정부 관리들과 협조 관계를 계속해서 조성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또한 불광산 교단 산하 사찰이 위치한 외국 주재 국가의 정부와 협조를 발전시키기 위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대만 외부의 사찰이 발전하고 국제적 명성이 성장하면 대만에서의 포교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제공하게 된다는 전략적 사고를 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 고어 부통령, 달라이 라마. 교황을 비롯한 외국 저명 인사들과의 교류는 불광산 교단의 명성을 향상시키고, 민주당에 대한 헌금 기부는 형식적인 행위를 보완하는 실무적 지원이 된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인적 물적인 지원 사업은 1950년부터 1960대 까지 미국 정부와 사회단체가 대만의 경제적,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재정적 지원을 제공한 것에 대한 보은의 의미도 포함되고 있다. 오늘날 계속되는 불광산사의 해외 진출 사업은 세계에 대하여 대만이 어려울 때 지원 받은 것 보다 더 많이 기부하고 도와주는 것에 대하여 종단은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 불광산 교단은 불교 재단이지만 세계의 유수한 기독교 재단에 의하여 운영되는 병원에 거액을 기부하고 있으며, 사회 봉사 프로그램과, 필리핀, 방글라데시 인디아 네팔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기부를 하고 있다.
고어 부통령이 참석한 서래사 모금 행사가 정치적 문제로 부각되어, 미국 사원의 정부 업무 위원회에서 청문회가 개최되고 다음해 1998년 상원의 청문회 조사위원들이 대만을 방문하여 불광산사를 방문하였다. 상원 조사 위원들은 당사자인 성운대사에게 조사위원회가 직접 질문을 하는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불광산 교단에서는 내부적인 논의를 거쳐서 성운대사가 미 의회 조사단의 불광산사 방문을 허락하고 언론에 공개적인 인터뷰에 응할 것을 결정하였다. 성운대사는 미 상원 청문회 질문에 세가지로 답변하였다.
성운대사는 기부를 통하여 금전적, 명예적 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미국에 대한 일체의 기부는 미국에 대한 대만 국민의 감사 표시, 불교 신자로서 수행과 보시는 불자의 기본이며, 기부금은 보시행위로서 삼재 청정 즉 주는 이, 받는 이와 주는 물건이 모두 순수한 본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업무위원회 조사 시 발표에서, 나는 대만의 사회 원로로서 40년전에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이 대만 방어를 지시하고, 대만 발전을 위한 도움, 지금은 나와 신자들이 성장하여 대만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공화당에 주로 지원 하였으나 지금은 미국 정치권에 보답함.
고어 부통령의 서래사 초청은 아시아 태평양계 모든 미국시민을 대표해서 성윤 스님이 초청. 지난 10여년간 미 정치권의 연회나 모금회에 _____성윤 스님이 초청 되었으나 대만거주로 참석하지 못함. 지금은 성윤 스님께서 영주권자로서 고어 부통령이 엘에이를 방문한 기회를 이용하여 대접할 기회를 마련하였으며, 특별히 불교식 공양을 제공 하기로 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아시아계 미국시민을 위하여 아시안인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였으며, 특히 클린턴 재임시 100만여명의 아세아계 이민자가 미국으로 이민허가 된 것에 대한보답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보시와 미국 시민들에 대한 보답 이며, 미래 성불을 위한 중생 교화 활동의 일부이다.
추가로, 성운 대사는 서래사 고어 부통령 행사를 포함한 모든 사찰 관련 문제는 반 아시아적 편견에 기안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자유주의가 발전한 나라이다. 아시아계 뿐만 아니라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들이 모두가 정치적 헌금을 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하게 아시아 이민자들만 정치헌금에 대한 비난이 매스콤을 통해 보도되고 있으며, 이것을 보면, 미국내의 아시아계는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미국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미 합중국 의 건국 이념에 반하는 행동이다. 신문이나 방송의 집중공격으로 문제가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는 견해에 대부분의 중국계 미국시민이 동의하고 있다. 상원의 정부 업무협의회의 엘에이 서래사 청문회를 보면서 1944년 2차대전 시 일본계 미국시민 격리사건 이후 최대의 차별적 분위기에 아시아계 이민자 들이 직면하고 있다. 이 모금 사건은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행위로서 아시아계에 대한 지나친 차별 행위로서 보는 견해에 타당성이 있다. 이와 같이 성운 대사는 주장하였다.
서래사 사건으로 보는 중국계 미국시민과 불교신자의 정체성
서래사를 창건한 성운대사는 중국계 미국시민으로서, 대만의 재계와 정계를 대표하여 미국에서의 정치적 권리 신장을 위하고, 서래사에서의 대외 활동이 장차 미국에서 포교활동에 도움을 주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고어 부통령을 서래사로 초청하였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대만 당국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인지, 중국 불교의 미국포교 사업이나 중국계 미국시민의 권익 증진을 위한 것인지는 오직 성운 대사님께서 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성운 대사의 수행 과정과 역사적 사실을 미루어 판단해 보면 중국 불교 선지식의 한 스님으로서 시사 하는 점이 많다. 혹자는 성운 대사가 정치적 고려에 의하여 중국 불교계가 이용 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 다른 견해는 성운 대사가 미국에 불교적 이상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정치적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정치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론하고 있으나, 그러한 목적으로 행한 행동은 정치적으로 나쁜 행위 이며, 그 행위의 결과는 나쁜 부작용을 만들게 된다는 불교의 인과법은 수계 불자에게는 자명한 사실이다.
서래사 사건을 통하여 서래사 스님들과 신자들의 사기가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서래사 주변 지역 사회에서도 그간의 정치적 소란으로 인하여 서래사를 종교 단체로서의 위상에 대하여 재평가 하게 된다. 이에 따라서, 성운대사는 미국 사회에서의 중국 불교 포교사업에 대하여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서래사 사건은 정치와 금전적인 문제가 개입된 불미스러운 것이지만 서래사 사건에 대하여 심층적인 조사와 인과 관계를 분석해 보면 민족의 정체성 확립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미국 시민의 자격과 본질은 무었 인가? 하는 문제로서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 문제로 귀결된다. 정체성 문제로서, 합법적으로 미국시민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문화적 정서적으로 미국인이 존재할 수 있는가? 미국의 비젼과 이상은 법률적, 지리적 경계선 내에서만 정의되고 전승되는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를 만들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중국계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들은 문화적인 정서가 정치적 지역적 경계보다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수립에 중요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주제는 서로 혼합되어 복잡한 양상을 가지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지금 여기서 시간적으로 다문화적 환경에 동시적으로 존재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운대사는 우리들 모두가 중국인 이면서 미국 시민이라고 주장하는데 거부감을 가지지 않으며, 그러한 국적 논쟁은 중요성 과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나는 당신이 미국 시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성운대사 자신도 중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세계인이며, 우리는 세계인으로서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이 인종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서로 통합하여 생활 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범 세계적이고 세계인으로서의 개념은 절이나 수도원을 다른 나라에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평화, 평등, 우정, 존경, 받아드림과 자비를 세계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인으로서, 국적과 같은 정체성 문제를 불교와 같은 범세계적인 가치 구조에 적용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불성을 공유한 세계인으로서 국가나 지역적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자비 보살의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 성운 대사는 서래사 사건을 고어 부통령을 초청하여 보다 넓은 범 세계적 의미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하여 초청한 특징이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중국계 미국 시민의 문화적 전통적 차별성을 부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래사 만찬과 중국계 미국 시민들의 역할
백악관과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1996 년 캠페인에 자금을 지원 한 방법에 대해 법무부가 관심을 갖도록하는 데 1 년 이상이 걸리면서 법률적 조치가 진행되었다. 시아 여사(Maria Hsia)는 1996 년 4 월 29 일 고어 부통령의 불교 사원 오찬에서 55,000 달러 이상을 세탁 한 혐의로 기소 되었다. 시아 여사의 영국식 버전으로 더 잘 알려진 Hsia Ling은 1951년에 태어났고 1973년에 학생 비자로 미국에 처음 왔으며, 1974년 잠시 고향 대만으로 돌아온 뒤 1975년 영주권자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개인 부상 및 출입국 법률 회사인 Popkin & Shamir에서 사건 담당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1986년 미국 시민이 되었다. 변호사는 아니지만, 시아 여사는 여러 이민 로펌에서 몇 개의 연속적인 직책을 맡았고, Patrick Fleming이 이끄는 회사로 팝킨을 떠나 Damrell, Damrell & Nelson의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Howard Hom & Associates에 입사하고, Arnold Malter와 함께 일하다가, 1991년 5월에 Hsia & Associatiates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대만 시민들에게 이민을 제공하는 것은 극히 이익이 많이 창출되는 분야였다. 한편 시아 여사는 서래사와의 관계가 발전되어 교류 관계가 증가하였다. 그녀는 서래사 스님들에게 개인적인 이민 문제에 대해 조언하고, 고어의 대만 여행을 위한 사원 재정 지원을 마련했으며, 지역 사회 관계를 처리하고 서래사 사원 불교대학의 국가 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부터, 시아 여사는 서래사의 미국 포교 활동의 미래를 위하여 유력 정치인에 대한 정치 기금 모금 행사를 진행할 것을 촉구하였고, 정치자금 모금에 처음으로 접촉한 것은 1982년 초였다.
미국 민주당 중앙위원회(DNC)의 관계자 인 죤 황 씨와 시아 여사, 이 두 사람은 클린턴 행정부의 가장 부유한 아시아 지지자인 인도네시아의 리아디 가족과 합류하여 기금 모금 그룹인 태평양 리더십위원회(PLC)를 구성했다. 1989 년에 시아 여사는 서래사 사원의 여러 승려와 비구니 스님들이 참석한, 당시 상원 의원 고어를 위한 PLC 기금 마련을 도왔다. 고어 씨는 1990 년 상원 의원 선거에 자금을 지원 해준 시아 여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또한, 그녀가 준비한 여행 후원을 통하여 대만을 여행했다. 그 여행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준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미국 민주당 중앙위원회의 아시아계 담당자로 부상 한 죤 황 씨와 그를 미국 민주당 중앙위원회에 배치하기 위해 백악관에 로비를 한 James Riady였다. 그들은 고어 씨와 긴밀한 접촉을 했고 불교 사원의 스님들이 민주당에 기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 보고 있었다. 반면, 미국 공화당은 1996 년에 10 만 달러 이상이 서래사 사원 계정을 통해 세탁되었다고 믿고 있다. 법무부는 특히 시아 여사가 개인 기부자들이 성전 기금으로 불법적으로 상환 받은 55,000 달러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1997 년 1 월 24 일 투데이 쇼 의 인터뷰에서 고어 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래사 모임이 모금 행사 인 줄 몰랐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 나는 그것이 정치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알았고, 재계 인사들이 포함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부적절하고 이것은 실수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집니다. 그건 실수 였습니다.”
캘리포니아 하시엔다 하이츠 의 중국절 서래사
이에 대응하여 논란을 조사한 미국 상원 정부 업무위원회 는 다음과 같이 조사를 발표했다.
부통령의 직원은 성전 행사가 모금 행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996 년 3 월 데이비드 스트라우스 부국장은 백악관에서 사원의 창립자 성윤 스님과 회의를 주선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회의는 슈트라우스가 '많은 돈을 벌어 들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백악관 직원은 내부 서신에서 이 행사를 모금 행사라고 반복해서 언급하고 1 인당 1,000 ~ 5,000 달러의 티켓 가격을 할당했습니다. 고어 부통령의 킴벌리 틸리 부통령 보좌관에게 보낸 죤 황씨의 메모는 성전 모임이 기금 모금 행사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고어 부통령은 나중에 방문이 "금융 관련"이라는 것을 알았음을 인정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종교 단체가 비영리 재단으로서 면세 자격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면세 단체에 대한 정치적 활동은 금지됩니다. 상원 정부 업무위원회는 또한 H시아 여사가 중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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