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靑華山구간)2011년 5월 1일, 일산 하나산악회.
구간 : 늘재-청화산(984m)-갓바위-鳥項山(953.6m)-고모치(고모샘)-밀재(사거리안부)-주차장(용추계곡)
산행시작점인 늘재(370m)
992도로이며 성황당이 있고 320년 된 음나무 보호수가있다.(1982년 10월 26일 지정)
백두대간 돌비석 뒤에 있는 성황당,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
늘재에서 25분정도 오르면 만나게된다.
이곳에 서면 속리산 전망이 아주 좋은곳인데 오늘은 황사때문에 느낄수가 없다.
정국기원단이란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단"이란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靖國이라는 표현은 일본"야스쿠니신사"를 한자로 쓰면 정국신사라고 한다는데 알고 세운건지 아니면 모르고 세운건지
하필이면 속리산이 다 보이는 이곳에 일본을 생각하게 하는 이런 제단이 있다는것은 좀 이상하게만 보인다.
백두대간은 이런 칼바위능선을 예사로 타고 다니는 것이다.
출발한지 1시간 7분만에 도착했다.
우리 산악회 남녀 대표산행대장님이다.
이곳에서 백두대간은 왼쪽으로 내려 가야하고 직진하면 시루봉(876.1m)으로 가게된다.
암릉사이로 바라본 지나온 청화산 능선.
갓바위재에서 바라본 의상저수지와 의상마을,
앞으로 가야할 조항산과 그 능선.
이제막 겨울을 보내고 늦게 핀 진달래
조항산 오르기 전 암릉에서 바라본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상궁마을,
지나온 암릉길에 바람과 씨름한것이 한숨이 나 올정도였다.
이제 저봉만 넘어가면 조항산이다.
바위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궁기리마을.
그 사이 많이도 걸어 왔다. 날씨조차 이러니 더욱 멀게만 보이는 대간능선이다.
뾰족한 저 봉우리가 시루봉이다.
저 넘어엔 속리산연봉이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다.
앞 보다도 자꾸만 뒤가 돌아 보이는 구간이다.
바로 조항산이다.
출발한지 3시간만에 도착한 조항산 정상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1시 25분 출발한다.
멀리 대야산이 보이고 그 앞 능선은 둔덕산(969,4m)능선이다.
세곳의 석산은 이제 모두 폐광하고 조경을 하여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뒤 돌아본 조항산,
조항산에서 내려오다 우측으로 급하게 꺾이는 지점의 이정표.
주변에는 아직 풀들이 하나도 없는데 벌써 많이 자라 꽃을 피우고 있는 식물?
처음엔 미국 자리공인줄 알았다.
사시사철 변함없는 석간수,
조항산 1,2km
대야산 3.8km지점이며 대간에서 10여m떨어져 있는 종주꾼의 생명수이다.
돌무더기 흔적의 서낭당, 길은 삼송리로 연결된다.
깨끗해 보이는 붓꽃.
둔덕산,
멀리 보이는 마귀할미통시바위.
통시바위능선에서 본 조항산.
통시바위 하단부와 둔덕산.
통시바위앞 암봉.
조항산과 시루봉,
통시바위에서 뒤돌아본 889봉쪽 암봉.
이곳에서 월영대쪽으로 길이 잘 나있었다.
다시 돌아본 통시바위봉.
분기봉인 889봉에서 통시바위봉까지 갔다 오는데 25분 걸렸다.
854 집채바위. 굴바위.
가까이서 본 대야산.
밀재.
밀재 사거리.(3시 40분 통과)
양쪽 농바위(서쪽)와 벌바위(동쪽)골로 갈라진다.
떡바위.
월영대,
문경팔경중의 하나인 대야산 용추계곡(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도선선사가 태조 왕건에게 도선비기를 전수한 곳이기도 하다.
道詵秘記란 신라말 신승(神僧)으로 알려진 도선선사가 지은책으로 고려건국을 예언 하였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줄기인 대야산 용추계곡은 용이 계곡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면서 패인곳이란 전설이 있는 곳이다.
어제 많이 내린 비로 물은 많이 불어 있으나 그렇게 맑진 않았다.
4년전 이 돌마당식당을 운영했던 심만섭씨가 그리워 다시 들려 근황을 물었다.
참으로 좋은분이며 은혜도 많이 입었는데 요즘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나도 기분이 좋다.
침술과 나팔도 배우며 노후를 즐긴다는데 나는 매일 산만 찾아다니니..........,
등 넘어 주차장에 도착하니 17시 19분이다.
그럭저럭 7시간 19분을 걸은셈이다.
옮겨온 글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편에 보면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청화산은 뒤로 內外仙遊洞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에 닿아있다.
앞뒤편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고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같이 험준한곳 또한 없다.
흙봉우리에 둘린 돌이 모두 수려하고 살기(殺氣)가 적어 단아하고 평평하다,
빼어난 기운이 나타나서 가린것이 없으니 가히 福地라 하겠다.
지금의 지도에 의하면 시루봉과 도장산 사이는 문경시 농암면 용유리 일대인데 과연 그 곳이 그토록 빼어난 복지일까?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살던 영조 시대는 잦은 민란, 환란, 가뭄, 역모 등 숱한 역경속의 생을 살아야했던 고로 구가 택했던
첫째 명당을 계거(溪居) 두번째 좋은곳이 강거(江居)그 뒤가 해거(海居)라고 했었다,
(산행후기)
年中행사 많기로 손꼽히는 5월 1일 첫날이 일요일이라 당일구간으로 백두대간에 들어갔다.
우리산악회도 오랜만에 젊은 피가 수혈되는 젊은 대원이 많이 참여해 새로운 활기를 갖기도 했다.
금년 들어 최고의 황사가 예상된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모든 세상천지가 뿌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어제는 종일 장마같은비가 (80~100㎜)내렸는데 오늘 이렇게 기상이 바뀐다는 것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언제든지 비가 온 뒷날은 맑은 날씨가 상식이었는데 말이다.
당일산행이라 마두역에서 06.00시 출발하여 늘재에 도착하니 10,00시다.
차에서 모든 준비를 했기에 내리자마자 바로 산행에 들어간다,
앞날 북한산 9시간 산행에 무릎이 안 좋아 오늘 산행이 상당히 걱정되기도 했지만 실전에 들어서니 그 염려는 괜한 걱정으로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을 의식 않고 맨 후미에서 내 방식대로 천천히 쉬지 않고 그 페이스대로 운행을 하니 결국 한사람 두 사람 추월이 되어 지곤 했다.
청화산까지 가는데 1시간 15분 걸렸다.
하늘은 갑갑할 정도로 뿌옇고 바람조차 세어 모자를 벗어 배낭에 넣어 버렸다.
암릉 길이라 모자가 날리게 되면 몸의 중심이 흔들릴 수도 있으니 미리 조심하는 것이다.
한 가지 좋은 것은 바위가 빗물에 씻겨 깨끗해 미끄럽지 않아 좋았고 바람이 많이 부니 시원하고 땀이 흐르지 않아 좋은 점도 있었다.
조항산은 서두르지도 않았는데 3시간만인 13,00시 도착하여 다른 대원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가파른 경사를 내려오니 고모치다.
배낭에 준비한 물은 충분하지만 고모샘의 상태를 보기위해 내려가니 외국사람(미국)도 물을 마시고 있었다.
키 큰 외국 사람이 백두대간을 종주한다고 하며 내 가슴에 있는 시그널을 보며 “보물섬?”한다.
yes, 남해 보물섬, 했더니 모두들 웃으며 자리를 옮겼다.
그분도 우리와 함께 889봉(둔덕봉 갈림길)까지 올랐으나 나는 살며시 둔덕봉 쪽으로 빠져 마귀할미통시바위를 보기위해 과외공부를 하기로 했다.
왕복 25분 걸렸지만 뭐가 뭔지도 이해 안 되고 뜻도 모르는 바위들만 구경하고 돌아왔다.
이정표 있는 곳에서 바로 내려가면 빨리 갈수는 있는데 후미와 같이 가기 위해 분기점으로 돌아 왔으나 지나갔는지 흔적이 없어 다시 혼자 몸으로 밀재를 향했다.
어제의 많은 비로 등산로는 물고랑이다.
국립공원이라며 단속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물길 좀 잡아주면 어디가 덧나나?
작은 고랑에서 나는 물소리가 참으로 조용하고 아름답기만 했는데 내려갈수록 소리도 커지고 시끄러운 소음이 되며 물이 무섭기도 했었다.
피아골 갈림길에서는 물을 건너야 하는데 그냥은 건널 수가 없어 신발을 벗었는데 벗은 김에 몸도 닦고 옷까지 갈아입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함이다.
식당가에 도착했으나 오늘은 산꾼은 물론 놀러온 사람도 보이질 않아 어쩐지 쓸쓸해 보이기도 했었다.
올 때마다 들르고 자고가기도 했던 돌마당식당(심만섭)을 찾아보았다.
심사장은 4년 전 이곳을 정리하여 문경시내로 나가 남은 인생을 아주 바쁘게 소일 한다고 들었다.
그분한테는 정말 많은 은혜를 입었는데 많이도 보고 싶기도 하였다.
우리 막내와 버리미기재에서 늘재까지 산행을 할 때도 우릴 많이 도와주기도 했었는데.......
17,19분 모든 산행을 끝내고 주차장에 도착. 7시간 19분이 오늘의 산행 시간이다.
뒷 풀이 겸 후미를 기다리는 시간에 카일님의 홍어무침과 도토리묵으로 시장기를 달래며 맥주한잔 곁들이니 부자가 부럽지 않았고 재미나고 흐뭇한 구간종주에 오늘도 파이팅이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