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日天子의 譬喩
譬如日天子가 周行照耀하야 晝夜不住하나니 日出名晝요 日沒名夜나 晝亦不生하며 夜亦不滅인달하야 菩薩摩訶薩이 於無數世界에 入神通三昧하야 入三昧已에 明見爾所無數世界도 亦復如是하니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第三次第遍往諸佛國土神通大三昧善巧智니라
“비유하자면 마치 해가 돌면서 비추고 밤낮으로 머물지 아니하여, 해가 뜨면 낮이라 하고 해가 지면 밤이라 하지만, 낮에도 또한 생기지 않고 밤에도 또한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이 수없는 세계에서 신통삼매에 들며, 삼매에 들고는 저렇게 수없는 세계를 분명하게 보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3 모든 부처님 국토에 차례로 가는 신통한 큰 삼매의 교묘한 지혜이니라.”
*
일천자(日天子)의 비유(譬喩)
*
비여일천자(譬如日天子)가 : 일천자는 태양이다. 해를 일천자 혹은 일광보살이라고도 표현한다. 해가 떠서
주행조요(周行照耀)하야 : 하루종일 죽 돌면서 비춘다.
주야부주(晝夜不住)하나니 : 주야토록 머물지 않나니. 옛날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 버리면 없는 줄 알았는데, 경전에서는 그렇지 않다. 넘어가면 그쪽에서도 돌아가고 있다. 주야부주라서 머물지 않는다. 그런 문제도 다른 세속의 안목과는 다르다.
일출명주(日出名晝)요 : 해가 뜨면 이름이 주(晝), 낮이요
일몰명야(日沒名夜)나 : 해가 지면 이름이 밤이라고 하나
주역불생(晝亦不生)하며 : 낮도 또한 생긴 것도 아니고
야역불멸(夜亦不滅)인달하야 : 밤도 또한 없어진 것도 아니듯이, 사실은 늘 그 자리이다. 그 자리인데 그것을 우리가 해가 뜨면 낮이라고 하고 해가 지면 밤이라고 할 뿐이다.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어무수세계(於無數世界)에 : 무수세계에서
입신통삼매(入神通三昧)하야 : 신통삼매에 들어가서
입삼매이(入三昧已)에 : 삼매에 들어가고 남에
명견이소무수세계(明見爾所無數世界)도 : 그러한 무수세계를 밝게 보는 것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니 :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삼차제변왕제불국토신통대삼매선교지(第三次第遍往諸佛國土神通大三昧善巧智)니라 : 제3 차제로 변왕하는 제불국토신통대삼매 선교의 지혜니라.
4. 淸淨深心行 大三昧
(1) 三昧의 法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淸淨深心行三昧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知諸佛身이 數等衆生하며 見無量佛이 過阿僧祇世界微塵數하야 於彼一一諸如來所에 以一切種種妙香으로 而作供養하며 以一切種種妙華로 而作供養하며 以一切種種蓋의 大如阿僧祇佛刹로 而作供養하며 以超過一切世界한 一切上妙莊嚴具로 而作供養하며 散一切種種寶하야 而作供養하며 以一切種種莊嚴具로 莊嚴經行處하야 而作供養하며 以一切無數上妙摩尼寶藏으로 而作供養하며 以佛神力所流出過諸天上味飮食으로 而作供養하며 一切佛刹種種上妙諸供養具를 能以神力으로 普皆攝取하야 而作供養하며 於彼一一諸如來所에 恭敬尊重하야 頭頂禮敬하며 擧身布施하야 請問佛法하며 讚佛平等하며 稱揚諸佛廣大功德하며 入於諸佛所入大悲하며 得佛平等無礙之力하야 於一念頃에 一切佛所에 勤求妙法이나 然於諸佛의 出興於世와 入般涅槃하는 如是之相에 皆無所得이니 如散動心으로 了別所緣호대 心起에 不知何所緣起며 心滅에 不知何所緣滅인달하야 此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終不分別如來出世와 及涅槃相이니라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청정하고 깊은 마음의 행(行)인 삼매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의 몸이 중생의 수효와 같음을 알며, 한량없는 부처님이 아승지 세계의 작은 먼지 수보다 더 많음을 보느니라.
저 낱낱 모든 부처님 계신 데서 갖가지 훌륭한 향으로 공양하고, 갖가지 훌륭한 꽃으로 공양하고, 크기가 아승지 세계와 같은 갖가지 일산으로 공양하고, 일체 세계보다 많은 모든 훌륭한 장엄거리로 공양하고, 갖가지 보배를 흩어서 공양하느니라.
일체 갖가지 장엄거리로 경행하는 곳에 장엄하여 공양하고, 일체 수없이 많은 묘한 마니보배로 공양하고, 부처님의 신통으로 흘러나오는 모든 천상 음식보다 더 좋은 음식으로 공양하고, 모든 부처님 세계의 갖가지 훌륭한 공양거리를 능히 신통의 힘으로 모두 거두어서 공양하느니라.
저 낱낱 모든 부처님 계신 데서 공경하고 존중하고 머리를 땅에 엎드려 절하고, 몸으로 보시하면서 부처님의 법을 묻고, 부처님의 평등함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공덕을 일컫느니라.
모든 부처님이 들어가신 자비한 마음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평등하고 걸림 없는 힘을 얻고, 잠깐 동안에 일체 부처님 계신 데서 미묘한 법을 부지런히 구하느니라.
그러나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고 열반에 드시는 이와 같은 모습은 하나도 생각에 두지 않느니라.
마치 산란한 마음으로 대상을 분별할 때에 마음이 일어나도 무슨 인연으로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고 마음이 소멸하여도 무슨 인연으로 소멸하였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마침내 여래가 세상에 나시고 열반에 드시는 것을 분별하지 아니하느니라.”
*
청정심심행(淸淨深心行) 대삼매(大三昧)
*
청정하고 깊은 마음의 행 대삼매다.
*
삼매(三昧)의 법(法)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운하위보살마하살(云何爲菩薩摩訶薩)의 : 운하위 보살마하살의
청정심심행삼매(淸淨深心行三昧)오 : 청정심심행 삼매냐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이 : 차보살마하살이
지제불신(知諸佛身)이 : 모든 부처님의 몸이
수등중생(數等衆生)하며 : 그 숫자가 중생과 같음을 알며, 여기에 깊은 속뜻이 있다. 부처님의 몸이 중생수하고 똑같다 그러한 사실을 알며
견무량불(見無量佛)이 : 무량불이
과아승지세계미진수(過阿僧祇世界微塵數)하야 : 아승지세계의 미진수를 지나서
어피일일제여래소(於彼一一諸如來所)에 : 저 낱낱 모든 여래 처소에서
이일체종종묘향(以一切種種妙香)으로 : 일체종종묘향으로
이작공양(而作供養)하며 : 공양지음을 보며, 위의 견(見)자를 여기 새긴다. 공양지음을 보며
*
이일체종종묘화(以一切種種妙華)로 : 일체종종묘화로 아름다운 꽃으로써
이작공양(而作供養)하며 : 공양을 지으며
이일체종종개(以一切種種蓋)의 : 일체종종일산으로써 일산의 크기가
대여아승지불찰(大如阿僧祇佛刹)로 : 아승지불찰로 더불어 같음으로써
이작공양(而作供養)하며 : 공양을 지으며
이초과일체세계(以超過一切世界)한 : 일체세계를 초과하는
일체상묘장엄구(一切上妙莊嚴具)로 : 일체상묘장엄구로써
이작공양(而作供養)하며 : 공양을 지으며
산일체종종보(散一切種種寶)하야 : 일체종종보배를 흩어서
이작공양(而作供養)하며 : 공양을 지으며
*
이일체종종장엄구(以一切種種莊嚴具)로 : 일체종종장엄구로써
장엄경행처(莊嚴經行處)하야 : 경행처를 장엄해서
이작공양(而作供養)하며 : 공양을 지으며, 종종장엄구로써 경행처에 장엄한다. 태국에서 불교행사 하는 것을 보면 거기는 노란 꽃이 흔한지 노란 꽃을 여러 수십 트럭 실어다가 스님들이 가는 길에 깐다. 그 길이가 어마어마한 거리다. 스님들이 걸어가는 그 어마어마한 거리의 길에 꽃을 까는 높이가 한 10cm 20cm 가까이 되는 높이로, 폭은 한 1m 이상 되는 폭으로 깐다. 그 노란 꽃 위로 스님들이 걸어간다.
태국은 불교 국가이기도 하고 스님들 숫자도 많고 신도들 숫자도 많다. 그래서 큰 행사를 했다 하면 대만행사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대만행사가 대단한데도 그렇다.
나는 직접 태국행사에 가보지는 못했는데 요즘은 유튜브에 그런 것을 다 올려놓아서 자세히 보니까 그렇다.
스님들이 걸어가는 행차의 길이가 까마득하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다. 그런데 그 스님들이 지나가는 길에다가 두껍게 꽃을 깔아서 스님들이 맨발로 그 위를 걸어간다. 그림으로 내가 봐도 신심이 나는데 신도들이 그 자리에서 직접 보면 참 신심이 날 것이다.
일체 종종장엄구로써 경행처에 장엄한다. 걸어가는 데 장엄해서 공양을 지으며
이일체무수상묘마니보장(以一切無數上妙摩尼寶藏)으로 : 일체무수상묘마니보장으로써
이작공양(而作供養)하며 : 공양을 지으며
이불신력소유출과제천상미음식(以佛神力所流出過諸天上味飮食)으로: 불신력이 유출한 바 천상의 음식보다도 훨씬 더 지나가는, 천상맛보다도 더 좋은 맛으로써
이작공양(而作供養)하며: 공양을 지으며
일체불찰종종상묘제공양구(一切佛刹種種上妙諸供養具)를 : 일체불찰종종상묘제공양구로써
능이신력(能以神力)으로: 능히 신력으로
보개섭취(普皆攝取)하야 : 널리 다 섭취해서
이작공양(而作供養)하며 : 공양을 지으며
*
어피일일제여래소(於彼一一諸如來所)에 : 저 낱낱 모든 여래 처소에서
공경존중(恭敬尊重)하야 : 공경하고 존중해서
두정예경(頭頂禮敬)하며 : 머리와 이마로써 예경을 올리며
거신보시(擧身布施)하야 : 온 몸을 땅에 펴서
청문불법(請問佛法)하며 : 부처님 법을 청하며, 불법을 청문하며
찬불평등(讚佛平等)하며 : 부처님의 평등한 도리를 찬탄하며
칭양제불광대공덕(稱揚諸佛廣大功德)하며 :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공덕을 일컬어서 드날리며
*
입어제불소입대비(入於諸佛所入大悲)하며 : 모든 부처님 처소에 들어가서 큰 자비에 들어가며
득불평등무애지력(得佛平等無礙之力)하야 : 부처님의 평등무애의 힘을 얻어서
어일념경(於一念頃)에 : 일념경에
일체불소(一切佛所)에 : 일체불소에
근구묘법(勤求妙法)이나 : 부지런히 묘법을 구하나니
*
연어제불(然於諸佛)의 : 그러나 모든 부처님의
출흥어세(出興於世)와 : 세상에 출흥하신 것과
입반열반(入般涅槃)하는 : 열반에 드는
여시지상(如是之相)에 : 이와 같은 모양에
개무소득(皆無所得)이니 : 다 얻는 바가 없으니
*
여산동심(如散動心)으로 : 산동, 움직이고 산란한 마음으로써
요별소연(了別所緣)호대 : 반연한 바를 요별하되
심기(心起)에 : 마음에 일어남에
부지하소연기(不知何所緣起)며 : 어떤 인연으로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하며, 심기에 어디에서 일어났는지를 모르고
심멸(心滅)에 : 심멸에
부지하소연멸(不知何所緣滅)인달하야 : 어떤 인연에 소멸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위의 여(如)자를 여기 새긴다.
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도 : 이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종불분별여래출세(終不分別如來出世)와 : 마침내 여래 출세와
급열반상(及涅槃相)이니라 : 그리고 열반의 모습을 분별하지 아니하느니라.
(2) 陽焰의 譬喩
佛子야 如日中陽焰이 不從雲生이며 不從池生이며 不處於陸이며 不住於水며 非有非無며 非善非惡이며 非淸非濁이며 不堪飮漱며 不可穢汚며 非有體며 非無體며 非有味며 非無味로대 以因緣故로 而現水相이어든 爲識所了하야 遠望似水일새 而興水想이나 近之則無하야 水想自滅인달하야 此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不得如來出興於世와 及涅槃相이니 諸佛有相과 及以無相이 皆是想心之所分別이니라
“불자여, 마치 햇살에 나타나는 아지랑이가 구름에서 생기지도 않고 못에서 생기지도 않고, 육지에 있지도 않고 물에 있지도 않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착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으며, 맑은 것도 아니고 흐린 것도 아니며, 마시거나 씻을 수도 없고, 더럽힐 수도 없으며, 자체가 있지도 않고 자체가 없지도 않으며, 맛이 있지도 않고 맛이 없지도 않은 것과 같으니라.
인연으로 물인 듯한 모양이 나타나서 의식으로 분별하는 것이며, 멀리서 보면 물과 같아서 물이라는 생각이 나지마는 가까이 가면 없어져서 물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사라지느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시고 열반에 드시는 모습을 분별하지 않나니 부처님의 형상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이 모두 허망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것이니라.”
*
양염(陽焰)의 비유(譬喩)
*
양염은 아지랑이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일중양염(如日中陽焰)이 : 비유컨대 하루 가운데 한낮의 아지랑이가
부종운생(不從雲生)이며 : 구름으로부터 생긴 것도 아니고
부종지생(不從池生)이며 : 연못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불처어륙(不處於陸)이며 : 육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부주어수(不住於水)며 : 물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비유비무(非有非無)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아지랑이는 그렇다.
비선비악(非善非惡)이며 :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며
비청비탁(非淸非濁)이며 : 청정한 것도 아니고 탁한 것도 아니며
불감음수(不堪飮漱)며 : 능히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양치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시고 양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불가예오(不可穢汚)며 : 더럽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지랑이가 꼭 물같이 보인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물이라고 생각해서 더럽히려면 더럽혀지는 것도 아니다.
비유체(非有體)며 : 어떤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무체(非無體)며 : 실체가 없는 것도 아니다.
비유미(非有味)며 :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무미(非無味)로대 : 맛이 없는 것도 아니다.
*
이인연고(以因緣故)로 : 인연이 있은 까닭으로
이현수상(而現水相)이어든 : 물의 모습을 나타낸다. 어떤 햇빛의 반사작용에 의해서 물의 모습을 나타낸다.
위식소료(爲識所了)하야 : 식(識)의 아는 바가 되어서, 우리의 인식으로 우리의 생각으로, 인식으로써 아는 바가 되어서
원망사수(遠望似水)일새 : 멀리서 바라보면 물과 같다. 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다.
이흥수상(而興水想)이나 : 물이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지만
근지즉무(近之則無)하야 : 가까이서 보면 또 없다. 아지랑이는 쫓아가면 없다.
수상자멸(水想自滅)인달하야 : 물이라고 하는 생각이 저절로 소멸해 버리듯이
*
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도 : 이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부득여래출흥어세(不得如來出興於世)와 : 여래가 세상에 출현함과
급열반상(及涅槃相)이니 : 그리고 열반하는 모습을 얻지 못함이니
제불유상(諸佛有相)과 : 제불의 형상 사실이 있고
급이무상(及以無相)이 : 사실이 없음이니
개시상심지소분별(皆是想心之所分別)이니라 : 상심, 생각, 감정, 생각하는 마음의 분별하는 바이니라.
이 세상은 전부 뭔가 실재하는 것 같지만 내 생각이 거기에 개재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내 감정이 거기에 개입되니까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이런 것이 있다. 그래서 생각, 감정뿐이다. 전부 생각과 감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개시상심지소분별, 생각하는 마음의 분별하는 바다. 우리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익히 아는 바이지만, 아지랑이를 착각해서 물이 흘러가는 것으로 알듯이 아는 것이다.
목마른 동물들은 아지랑이를 물이라고 착각해서 물을 마시려고 한없이 쫓아가도 그 물은 없다. 쫓아가서 먹으려고 보면 저만치 있고, 또 그만큼 쫓아가면 물은 없이 아지랑이만 저만치 가 있다. 그 아지랑이만 쫓아가다가 결국 목이 말라 쓰러져 죽는다는 것이다. 사막에서나 넓은 들판에서는 그런 사례들이 흔히 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것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닌가?
‘양염의 비유’라고 하는 이 대목은 우리가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주 깊은 이치이고 상당한 이치다. 생각 감정으로 모든 것은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 감정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두고 좋다고 하니까 그것이 좋은 것이지 좋기는 무엇이 좋은가? 좋다고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는가? 전혀 그런 것은 아니다. 순전히 내가 좋다고 하니까 좋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로 아주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싫다고 하는 감정이나 좋다고 하는 감정이나 결국 헛것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것이 아지랑이인 것은 똑같다.
여기에서 한 번 눈을 번쩍 뜨고 깨달을 만한 내용이다.
(3) 三昧에의 出入
佛子야 此三昧가 名爲淸淨深心行이라 菩薩摩訶薩이 於此三昧에 入已而起하며 起已不失하나니 譬如有人이 從睡得寤하야 憶所夢事하면 覺時에 雖無夢中境界나 而能憶念하야 心不忘失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入於三昧하야 見佛聞法하고 從定而起에 憶持不忘하야 而以此法으로 開曉一切道場衆會하며 莊嚴一切諸佛國土하며 無量義趣가 悉得明達하며 一切法門이 皆亦淸淨하며 然大智炬하며 長諸佛種하며 無畏具足하며 辯才不竭하야 開示演說甚深法藏하나니 是爲菩薩摩訶薩의 第四淸淨深心行大三昧善巧智니라
“불자여, 이 삼매는 이름이 청정하고 깊은 마음의 행[淸淨深心行]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나며 일어나서는 잃어버리지 아니하느니라.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다가 깨어나서 꿈꾸던 일을 기억하는 것과 같아서 깨었을 적에는 비록 꿈속의 경계가 없지마는 분명히 기억하여 마음에 잃어버리지 아니하느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삼매에 들어 부처님을 뵈옵고 법을 듣고는 삼매에서 일어나서도 잘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아니하여 그 법문으로 일체 도량에 모인 이들을 깨우쳐 주고 일체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느니라.
한량없는 이치를 모두 분명하게 통달하고, 일체 법문이 또한 모두 청정하며, 큰 지혜의 횃불을 밝혀 모든 부처님의 종자를 자라게 하며, 두려움 없음이 구족하고 변재가 다하지 아니하여 깊고 깊은 법장을 열어서 연설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4청정하고 깊은 마음의 행인 큰 삼매의 선교한 지혜이니라.”
*
삼매(三昧)에의 출입(出入)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삼매(此三昧)가 : 이 삼매가
명위청정심심행(名爲淸淨深心行)이라 : 청정 심심행이라. 청정하고 깊은 마음의 행이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어차삼매(於此三昧)에 : 이 삼매에
입이이기(入已而起)하며 : 들어간 뒤에 다시 일어나며,
기이불실(起已不失)하나니 : 일어난 뒤에는 잃어버리지 않나니, 삼매에 한 번 들어가면 그것이 자기 것이 된다.
*
비여유인(譬如有人)이 : 어떤 사람이
종수득오(從睡得寤)하야 : 잠자다가 깨어남을 얻음에, 잠으로부터 깨어남을 얻어서
억소몽사(憶所夢事)하면 : 꿈으로 꿈꾼 바의 일을 기억해 낼 것 같으면
교시(覺時)에 : 잠을 깼을 때에
수무몽중경계(雖無夢中境界)나 : 비록 몽중경계는 없으나, 꿈 깨고 나면 꿈 가운데서 꿈꾸던 그 경계는 없다. 꿈의 기억은 있을지 몰라도 그때 만났던 친구도 없고, 산도 없고, 어디 여행을 갔다면 여행했던 장소도 없다. 몽중경계는 없다.
이능억념(而能憶念)하야 : 그러나 능히 기억해 내서, 그 꿈을 기억해서
심불망실(心不忘失)인달하야 : 마음에 망실하지 않듯이, 아주 특이한 꿈은 몇 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있다.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 하야
입어삼매(入於三昧)하야 : 삼매에 들어가서
견불문법(見佛聞法)하고 :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종정이기(從定而起)에 : 선정으로부터 일어남에
억지불망(憶持不忘)하야 : 기억해 가져서 잊어버리지 아니해서
이이차법(而以此法)으로 : 이 법으로써
개효일체도량중회(開曉一切道場衆會)하며 : 일체도량의 대중들을 열어서 깨우치며
장엄일체제불국토(莊嚴一切諸佛國土)하며 : 일체제불국토를 장엄하며
*
무량의취(無量義趣)가 : 한량없는 의취가
실득명달(悉得明達)하며 : 다 밝게 통달함을 얻으며
일체법문(一切法門)이 : 일체법문이
개역청정(皆亦淸淨)하며 : 다 또한 청정하며, 훌륭하며
연대지거(然大智炬)하며 : 큰 지혜의 횃불을 밝히며
장제불종(長諸佛種)하며 : 모든 부처님의 종자를 자라게 하며
무외구족(無畏具足)하며 : 두려움 없음이 구족하며
변재불갈(辯才不竭)하야 : 변재가 다하지 아니해서
개시연설심심법장(開示演說甚深法藏)하나니 : 매우 깊은 법장을 개시하고 연설하나니
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사청정심심행대삼매선교지(第四淸淨深心行大三昧善巧智)니라: 제4 청정심심행대삼매 선교지니라. 오늘 아주 숫자로는 많이 지나간다.
5. 知過去莊嚴藏 大三昧
(1) 對境의 智慧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知過去莊嚴藏三昧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能知過去諸佛出現하나니 所謂劫次第中諸刹次第와 刹次第中諸劫次第와 劫次第中諸佛出現次第와 佛出現次第中說法次第와 說法次第中諸心樂次第와 心樂次第中諸根次第와 根次第中調伏次第와 調伏次第中諸佛壽命次第와 壽命次第中知億那由他年歲數量次第니라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과거의 장엄한 갈무리를 아는[知過去莊嚴藏]삼매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신 일을 능히 아느니라.
이른바 겁(劫)의 차례 중에 있는 세계의 차례와, 세계의 차례 중에 있는 겁의 차례와, 겁의 차례 중에 있는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신 차례와, 부처님이 출현하신 차례에서 법을 말씀하신 차례와, 법을 말씀하신 차례에서 마음이 즐거운 차례이니라.
마음이 즐거운 차례에서 근기의 차례와, 근기의 차례에서 조화하여 굴복한 차례와, 조화하여 굴복한 차례에서 모든 부처님 수명의 차례와, 수명의 차례에서 억나유타 해의 수량과 차례를 아느니라.”
*
지과거장엄장(知過去莊嚴藏) 대삼매(大三昧)
*
과거장엄장을 아는 대삼매다.
*
대경(對境)의 지혜(智慧) : 경계를 상대하는 지혜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운하위보살마하살(云何爲菩薩摩訶薩)의 : 운하위 보살마하살의
지과거장엄삼매(知過去莊嚴藏三昧)오 : 과거 장엄장을 아는 삼매인가.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이 : 이 보살마하살이
능지과거제불출현(能知過去諸佛出現)하나니 : 능히 과거 제불출현을 아나니, 그것이 과거장엄장이다. 제불출현을 안다.
*
소위겁차제중제찰차제(所謂劫次第中諸刹次第)와 : 소위 겁의 순서대로 어느 겁에는 어떤 세계가 있었고 어느 겁에는 어떤 세계가 있었고 그것이 죽 나열될 수 있을 것이다.
찰차제중제겁차제(刹次第中諸劫次第)와 : 그러면 세계는 그때 또 무슨 겁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서 신라 때는 어떤 연호를 가지고 어떤 세월이었다, 어떤 세월은 어떤 나라였다, 조선시대면 조선시대였다, 그렇게 미루어서 생각할 수가 있다. 찰차제중에 제겁차제와
겁차제중제불출현차제(劫次第中諸佛出現次第)와 : 겁차제중에 제불출현차제와
불출현차제중설법차제(佛出現次第中說法次第)와 : 불출현차제 중에 설법차제와
설법차제중제심락차제(說法次第中諸心樂次第)와 : 설법차제중에 제심락차제와 모든 마음에 즐거운 좋아하는 차제와
*
심락차제중제근차제(心樂次第中諸根次第)와 : 심락차제중에 제근차제와
근차제중조복차제(根次第中調伏次第)와 : 근차제중에 조복하는 차제와
조복차제중제불수명차제(調伏次第中諸佛壽命次第)와 : 조복차제중에 제불수명차제와
수명차제중지억나유타년세수량차제(壽命次第中知億那由他年歲數量次第)니라 : 수명차제중에서 억나유타년세수량 차제를 아느니라. 억나유타년세 수량의 차제를 안다.
(2) 智慧로 了知함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得如是無邊次第智故로 則知過去諸佛하며 則知過去諸刹하며 則知過去法門하며 則知過去諸劫하며 則知過去諸法하며 則知過去諸心하며 則知過去諸解하며 則知過去諸衆生하며 則知過去諸煩惱하며 則知過去諸儀式하며 則知過去諸淸淨이니라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그지없는 차례를 아는 지혜를 얻었으므로 곧 과거의 부처님을 알며, 곧 과거의 모든 세계를 알며, 곧 과거의 법문을 알며, 곧 과거의 모든 겁을 알며, 곧 과거의 모든 법을 아느니라.
곧 과거의 모든 마음을 알며, 곧 과거의 모든 지혜를 알며, 곧 과거의 모든 중생을 알며, 곧 과거의 모든 번뇌를 알며, 곧 과거의 모든 의식을 알며, 곧 과거의 모든 청정함을 아느니라.”
*
지혜(智慧)로 요지(了知)함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이 : 이 보살마하살이
득여시무변차제지고(得如是無邊次第智故)로 : 이와 같은 가없는 차제의 지혜로써
즉지과거제불(則知過去諸佛)하며 : 곧 과거제불을 알며
즉지과거제찰(則知過去諸刹)하며 : 곧 과거제찰을 알며
즉지과거법문(則知過去法門)하며 : 곧 과거법문을 알며
즉지과거제겁(則知過去諸劫)하며 : 곧 과거제겁을 알며
즉지과거제법(則知過去諸法)하며 : 곧 과거제법을 알며
*
즉지과거제심(則知過去諸心)하며 : 곧 과거제심을 알며
즉지과거제해(則知過去諸解)하며 : 곧 과거제해 모든 이해를 알며
즉지과거제중생(則知過去諸衆生)하며 : 곧 과거제중생을 알며
즉지과거제번뇌(則知過去諸煩惱)하며 : 곧 과거 모든 번뇌를 알며
즉지과거제의식(則知過去諸儀式)하며 : 곧 과거 모든 의식을 알며
즉지과거제청정(則知過去諸淸淨)이니라 : 곧 과거제청정 모든 것이 청정함을 아느니라.
(3) 入劫의 智慧
佛子야 此三昧가 名過去淸淨藏이니 於一念中에 能入百劫하며 能入千劫하며 能入百千劫하며 能入百千億那由他劫하며 能入無數劫하며 能入無量劫하며 能入無邊劫하며 能入無等劫하며 能入不可數劫하며 能入不可稱劫하며 能入不可思劫하며 能入不可量劫하며 能入不可說劫하며 能入不可說不可說劫이니라 佛子야 彼菩薩摩訶薩이 入此三昧에 不滅現在하며 不緣過去니라
“불자여, 이 삼매를 과거의 청정한 갈무리[過去淸淨藏]라 이름하나니, 잠깐 동안에 능히 백겁에 들어가고, 능히 천겁에 들어가고, 능히 백천겁에 들어가고, 능히 백천억 나유타 겁에 들어가고, 능히 수없는 겁에 들어가고, 능히 한량없는 겁에 들어가고, 능히 그지없는 겁에 들어가느니라.
능히 같음이 없는 겁에 들어가고, 능히 셀 수 없는 겁에 들어가고, 능히 일컬을 수 없는 겁에 들어가고, 능히 생각할 수 없는 겁에 들어가고, 능히 헤아릴 수 없는 겁에 들어가고, 능히 말할 수 없는 겁에 들어가고, 능히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에 들어가느니라. 불자여, 저 보살하마살이 이 삼매에 들어서는 현재를 멸하지도 아니하고 과거를 반연하지도 아니하느니라.”
*
입겁(入劫)의 지혜(智慧)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삼매(此三昧)가 : 이 삼매가
명과거청정장(名過去淸淨藏)이니 : 이름이 과거청정장이니
어일념중(於一念中)에 : 일념가운데
능입백겁(能入百劫)하며 : 능히 백겁에 들어가며, 한순간에 백겁에 들어간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은 저녁 종을 땅 치는 한 순간에 깜빡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수십 년의 일생을 다 살았다. 그런데 깨고 나도 그 종소리가 아직 덜 끝났다는 것이다. 꿈속에서는 몇십 년 좋은 일도 있었지만 숱한 고생 다 하고, 아이를 낳아서 개에게 물려죽고 ‘우리 따로 찢어져서 탁발하고 걸식하면서 살자’고 하면서 가족이 흩어져 숱한 고생을 다 했다. 그런 긴 세월 수십년을 살았는데 깨어나자 아직 그 저녁 종소리가 덜 끝났다는 것이다. 그런 도리가 있다.
우리가 평소에 잠을 자며 꿈을 꿀 때는 짧은 꿈도 있고 긴 꿈도 있는데, 상당히 길게 꾸는 꿈도 사실은 3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오래 꿈을 꾸어서, 꿈속에서 몇 년의 시간을 경과하는 꿈을 꾸었다 하더라도 3분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념중에 능히 백 겁에 들어가며
능입천겁(能入千劫)하며 : 능히 천겁에 들어가며
능입백천겁(能入百千劫)하며 : 능히 백천겁에 들어가며
능입백천억나유타겁(能入百千億那由他劫)하며 : 능히 백천억나유타겁에 들어가며
능입무수겁(能入無數劫)하며 : 능히 무수겁에 들어가며
능입무량겁(能入無量劫)하며 : 능히 무량겁에 들어가며
능입무변겁(能入無邊劫)하며 : 능히 무변겁에 들어가며
*
능입무등겁(能入無等劫)하며 : 능히 무등겁에 들어가며
능입불가수겁(能入不可數劫)하며 : 능히 불가수겁에 들어가며
능입불가칭겁(能入不可稱劫)하며 : 능히 불가칭겁에 들어가며
능입불가사겁(能入不可思劫)하며 : 능히 불가사겁에 들어가며
능입불가량겁(能入不可量劫)하며 : 능히 불가량겁에 들어가며
능입불가설겁(能入不可說劫)하며 : 능히 불가설겁에 들어가며
능입불가설불가설겁(能入不可說不可說劫)이니라 : 능히 불가설 불가설겁에 들어가나느니라.
불자(佛子)야 : 불자야
피보살마하살(彼菩薩摩訶薩)이 : 저 보살마하살이
입차삼매(入此三昧)에 : 이 삼매에 들어감에
불멸현재(不滅現在)하며 : 현재를 소멸하지도 아니하며
불연과거(不緣過去)니라 : 과거를 끌어오지도 않는다. 한순간에 들어갔다. 일초사이일 뿐이다.
삼국유사를 근거로 해서 이광수씨가 <조신의 꿈>이라고 하는 소설을 멋지게 그렸다. 그것이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한달쯤 전인가 두달 쯤전인가 불교TV에서 그 옛날영화를 보여주었다. 줄거리를 새롭게 각색을 해 놓으니까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4) 出三昧의 利益
佛子야 彼菩薩摩訶薩이 從此三昧起에 於如來所에 受十種不可思議灌頂法하야 亦得하며 亦淸淨하며 亦成就하며 亦入하며 亦證하며 亦滿하며 亦持하며 平等了知하며 三輪淸淨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一者는 辯不違義요 二者는 說法無盡이요 三者는 訓詞無失이요 四者는 樂說不斷이요 五者는 心無恐畏요 六者는 語必誠實이요 七者는 衆生所依요 八者는 救脫三界요 九者는 善根最勝이요 十者는 調御妙法이니라 佛子야 此是十種灌頂法이니 若菩薩이 入此三昧하면 從三昧起하야 無間則得이 如歌羅邏가 入胎藏時에 於一念間에 識則託生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從此定起에 於如來所에 一念則得此十種法이니라 佛子야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五知過去莊嚴藏大三昧善巧智니라
“불자여, 저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서 일어나면 여래가 계신 곳에서 열 가지의 헤아릴 수 없는 정수리에 물 붓는 법을 받아서 얻고, 청정하고, 성취하고, 들어가고, 증득하고, 만족하고, 지니고, 평등하게 알아서 삼륜(三輪)이 청정하게 되느니라.
무엇이 열인가. 하나는 말하는 것이 뜻과 어긋나지 않고, 둘은 법을 말함이 다함이 없고, 셋은 해석하는 말이 잘못이 없고, 넷은 말하기를 좋아하여 끊어지지 않고, 다섯은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여섯은 말이 반드시 진실하고, 일곱은 중생들의 의지가 되고, 여덟은 삼계를 구제하여 해탈케 하고, 아홉은 착한 뿌리가 가장 수승하고, 열은 묘한 법으로 잘 지도함이니라.
불자여, 이것이 열 가지의 정수리에 물 붓는 법이니, 만약 보살이 이 삼매에 들었다가 삼매에서 일어나면 잠깐 동안 곧 얻게 되는 것이 마치 가라라가 태에 들 적에 잠깐 동안에 의식이 곧 의탁함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이 삼매에서 일어나면 부처님 계신 데서 잠깐 동안에 이 열 가지 법을 얻게 되느니라. 불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5과거의 장엄한 갈무리를 아는 큰 삼매의 교묘한 지혜라 하느니라.”
*
출삼매(出三昧)의 이익(利益)
*
삼매에서 나오면 이런 이익이 있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피보살마하살(彼菩薩摩訶薩)이 : 저 보살마하살이
종차삼매기(從此三昧起)에 : 이 삼매로부터 일어남에
어여래소(於如來所)에 : 여래소에서
수십종불가사의관정법(受十種不可思議灌頂法)하야 : 십종불가사의 관정법을 받아서
역득(亦得)하며 : 또한 얻으며
역청정(亦淸淨)하며 : 또한 청정하게 되며
역성취(亦成就)하며 : 또한 성취하며
역입(亦入)하며 : 또한 들어가며
역증(亦證)하며 : 또한 증득하며
역만(亦滿)하며 : 또한 원만하며
역지(亦持)하며 : 또한 가지며
평등요지(平等了知)하며 : 또한 평등하게 알며
삼륜청정(三輪淸淨)하나니 : 삼륜이 청정함을 얻나니
*
하등(何等)이 : 하등이
위십(爲十)고 : 위십고
일자(一者)는 : 일자는
변불위의(辯不違義)요 : 말이 뜻을 어기지 아니하며
이자(二者)는 : 이자는
설법무진(說法無盡)이요 : 설법무진이요
삼자(三者)는 : 삼자는
훈사무실(訓詞無失)이요 : 훈사가 무실이다. 훈사는 해석하는 말이다. 해석하는 말이 실수가 없다.
나는 실수투성이다. 돌아와서 또 한 번 ‘오늘 내가 여기서 실수했는데’ 하는 것을 많이 떠올린다.
훈사는 경전을 놓고 그것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새기는 것이다. 이 훈(訓)자가 새길 훈(訓)자다. 훈사가 실수가 없으며
사자(四者)는 : 사자는
요설부단(樂說不斷)이요 : 말하기를 좋아해서 그 말이 끊어지지 아니한다.
이 구절에 일타스님이 문득 떠올랐다. 일타스님은 참 말씀도 잘하시고 말하기를 좋아하시고 끝도 없이 말씀하셨다. 말년에 병이 들어서 의사가 절대 말하면 안된다고 했는데도 말을 안하고는 못배기는 것이다. 상좌들이 신도들 오면 절대 친견을 안 시키고 못오게 했는데 일타스님은 이층에서 문을 딱 열고 손짓을 하셨다. ‘저리로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이렇게 해서 상좌 모르게 당신 방에 불러 들여놓고는, 손가락도 없는 손을 가지고 주먹을 쳐가면서 그렇게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셨다. 참 그분같이 요설변재는 처음 봤다. 정말 뛰어나다. 말씀 잘하시고 아주 총명하시고 머리가 좋다. 옛날 이야기를 많이 기억하고, 특히 인과이야기를 많이 기억하고 있어서 신도들이 아주 감동을 한다.
오자(五者)는 : 오자는
심무공외(心無恐畏)요 : 마음의 공포, 두려움이 없음이요
육자(六者)는 : 육자는
어필성실(語必誠實)이요 : 말할 때 반드시 성실함이다. 이것이 참 중요하다. 말을 할 때 반드시 성실해야 한다는 것은 진정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냥 입에 발린 말로 술술 하는 것이 아니라 말 속에 진정성이 묻어나야 된다. 진정성이 묻어나는 것, 그것이 참 중요한 것이다.
칠자(七者)는 : 칠자는
중생소의(衆生所依)요 : 중생들이 의지할 바가 된다. ‘아 그것 참 들을 만하다’ 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화엄경은 정말 우리가 의지할 바가 된다.
팔자(八者)는 : 팔자는
구탈삼계(救脫三界)요 : 삼계를 구제해서 해탈시킬 수 있는 말이 되고
구자(九者)는 : 구자는
선근최승(善根最勝)이요 : 선근이 가장 수승함이요
십자(十者)는 : 십자는
조어묘법(調御妙法)이니라: 묘법으로써 잘 지도한다. 조어(調御)는 잘 지도하는 것이다. 부처님을 조어사라고 한다. 말[馬]을 잘 다루는 사람, 잘 지도하는 사람이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시십종관정법(此是十種灌頂法)이니: 이것이 십종관종법이니
약보살(若菩薩)이 : 만약 보살이
입차삼매(入此三昧)하면 : 이 삼매에 들어가면
종삼매기(從三昧起)하야 : 삼매로부터 쫓아 일어나서
무간즉득(無間則得)이 : 잠깐 동안에 무간사이에 곧 얻는 것이
여가라라(如歌羅邏)가 :가라라가, 가라라는 탁태(托胎) 5위중의 하나인데 탁태한 후 최초의 7일간의 상태를 가라라라 한다.
입태장시(入胎藏時)에 : 태에 들어갔을 때에
어일념간(於一念間)에 : 일념 사이에
식즉탁생(識則託生)인달하야 : 의식이 곧 의탁함과 같이, 7일 사이에 식이 거기에 들어와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무효다.
명과 식이, 보통 12인연에는 명과 색이라고 한다. 명은 식이고 색은 물질이고 육신이다. 육신과 정신이 7일 안에 합해져야 그것이 완전한 사람으로서 행세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이와 같아서
종차정기(從此定起)에 : 이 선정으로부터 일어남에
어여래소(於如來所)에 : 여래소에
일념즉득차십종법(一念則得此十種法)이니라 : 한 순간에 이 십종법을 얻느니라.
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명보살마하살(是名菩薩摩訶薩)의 :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오지과거장엄장대삼매선교지(第五知過去莊嚴藏大三昧善巧智)니라 : 제5 지과거장엄장대삼매 선교지니라.
십정품 가운데 5정까지 벌써 공부했다. 상당히 많이 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죽비소리)
하강례
날마다 화엄경, 유마경을 공부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처음 법회가 중단된 올해 2월부터 큰스님은 유튜브에 화엄경 이세간품을 매일 <소참법문>으로 올리셨다. 휴대폰으로 법문 영상을 찍어서 문수법공양회에 보내시면 여래성 보살님이 편집해서 유튜브 <염화실>에 올리는 형식이었다.
지난 8월 법회 때 ‘실시간 방송인 라이브방송은 왜 안하시는지’ 여쭈었더니, 그렇게 하는 방법이 있는지 오히려 물으셨다.
*
9월 다음까페 염화실에 <유튜브 염화실 TV 개국공고>가 났다. 큰스님께서 ‘방송국 국장’으로 직접 영상을 찍고 올린다고 하셨다.
유튜브 방송을 직접 실시간으로 하시는 법을 배우시고 ‘배운 것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 연습한다’고 하시면서 처음에는 가볍게 지대방 이야기도 해주시고, 짧게 짧게 영상을 찍으시다가 며칠 뒤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낮 2시에는 화엄경, 저녁 7시에는 유마경으로 정하셨다. 열흘 정도는 휴일도 없이 매일매일 강의하셨는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강의하는 것으로 다시 날짜가 정해졌다. ‘9월 6일 개국을 해서 염화실 TV는 매달 6일이 개국기념월이 된다’하시며 일주년 대신 ‘일주월이라고 아는지’ 물으시며 기뻐하셨다.
한 번은 대화창이 움직이지 않아서 시청자들과 채팅이 안되어서 그것을 연구해보느라 밤잠도 자지 못했다고 하셨고, 다음날 아침 일찍 용학스님이 오셔서 손을 봐주시고 화엄전에서 두 분이 깜짝 생방송을 해주시기도 했다.
큰스님이 원래 갖고 계셨던 <염화실> 채널은 천 명을 훌쩍 넘었는데 새로 다시 시작하신 <무비스님 염화실 TV> 채널은 구독자가 한 명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574명이 되었다. 꾸준하게 날마다 몇 명씩은 구독자가 늘었다.
강의하신 분량도 화엄경은 81권중에 4권이 넘어가고 있고, 유마경은 반절을 다 강의하셨다.
<용학스님 tv 木魚>로 가셔서 실시간 방송으로 연이틀 <대승찬 특강>도 하셨다.
날마다 낮과 저녁으로 각각 90명 100명을 넘어가는 청중들이 고정적으로 법문을 듣는다. 매일 오시는 분들은 언제든 다시듣기를 할 수 있는 유튜브 방송인데도 실시간으로 해주시는 방송을 듣는 것이 더 감동이라고 하셨다.
서울의 어느 보살님은 도반에게 핸드폰으로 손쉽게 유튜브 방송보는 법을 알려주고 구독신청을 도와줬더니 그날 저녁 ‘기도입재를 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본인의 이름은 안불리고, 일러준 도반의 이름만 큰스님께서 불러주셔서 문의한 것인데 ‘채팅창에 인사말을 쓰면 큰스님께서 이름을 불러주신다’고 알려주셨다고 했다.
이름 부를 사람들이 너무 많을 땐 ‘각각등보체(各各等保體)’하고 한꺼번에 축원도 해주신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사부대중이 날마다 같은 시간에 모여 실시간 법문으로 화엄경과 유마경을 연이어 듣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하고, 한동안 염화실 TV 댓글창에는 ‘코로나 덕분입니다’ 하는 인사말이 유행이었다.
큰스님은 무엇보다 2600년 전 경전에서 말씀하신 이야기들이 이렇게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사실을 신기해 하셨다. 늘 한 절 한 유튜브방송국 갖기가 시급하다고 홍보하셨고, 그 소식을 듣고 화엄전에 견학을 오시는 이웃절의 스님들도 계셨다. 방송국팀도 와서 큰스님이 유튜브 라이브법문하시는 것을 찍어가서 뉴스로 내보내기도 했다.
*
이번달 화엄법회는 유튜브 <염화실 TV>를 개국하고 처음있는 법회라서 홍보를 많이 하실거라 예상했는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
화엄경을 법문하시는 큰스님을 마주하고 두 달만에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오신 스님들의 묵묵한 뒷모습이 화엄법회를 장엄했다. 이런 법회는 한국불교사의 기적이라고 스님들이 말씀하셨다.
상설(常說) 변설(徧說) 화엄경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
첫댓글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_()()()_
_()()()_
고맙습니다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