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즐기고 오다
류 근만
지난 칠월 두 번째 금요일, 인천공항의 출국대열에 올랐다. 길게 늘어선 인파가 보통이 아니다. 안내요원이 일행 중 70세 넘은 사람을 나오란다. 나 혼자다. 세 명은 돼야 한다면서 일행 가운데 끼라고 한다. 배려차원인데 자칫 불편을 줄까 걱정하는 눈치다. 좋았다 말았다.
저녁 7시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호텔에 투숙하여 잠시 눈을 붙였다. 이른 새벽부터 극기 훈련이다. 사파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섯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걱정이 앞섰다. 나는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했다가 이번 여행 뒤로 미뤘다. 내 생애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아서였다. 구두끈을 힘껏 동여매듯 나의 건강상태를 시험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가이드의 설명을 놓치지 않았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공화국, 수도 하노이는 정치와 교육의 도시, 인구는 약 1억 명, 면적은 남한의 3.5배, 산림이 70%란다.
관광목적지 함종산과 판시판은 ‘세계 인기문화 관광지’와 ‘세계인기 자연경관 관광지’로 3년 연속 선정되었다고 한다. 귀를 의심할 정도의 너스레다. 짧지 않은 시간인데 지루한 줄 몰랐다.
사파에 도착하니 빼어난 자연경관에 어리둥절해진다. 하늘과 맞닿은 산기슭 다랑이는 옥수수 천국이다. 다양한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이란다. 깟깟 마을에 사는 ‘흐몽족’의 전통공연을 관람하고 그들이 사는 문화와 생활현장 볼 수 있었다. 갓 난 아이들은 야위고 굶주림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가엾은 얼굴들? 60년대 우리의 생활상을 연상케 했다.
시내의 거리는 달랐다. 활기가 넘쳤다. 살기 위한 몸부림 그 자체다. 이동수단은 주로 오토바이지만, 택시, 버스, 화물차, 자전거가 뒤엉켜 다닌다. 서로 스칠 듯, 밀칠 듯, 아슬아슬하다. 용케도 잘 빠져 다닌다. 묘기를 보는 것 같았다.
주변은 깎아지른 듯 높은 산맥에 구름과 햇빛과 바람이 어울려 극치를 이룬다. 은빛 갈치가 하늘로 비상하려는 듯한 폭포가 시원스럽다. 깊은 산중인지 바닷속인지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가이드가 재촉한다. 몸에 좋은 약이라면서 ‘비아그라’를 나누어 준다. 고산병 예방제란다. 함종산은 해발 2333m,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다. 구름용 유리 다리는 해발 1,400m 이상이고, 길이는 약 200m, 유리 바닥 아래로 보이는 구름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운 경치는 표현할 수가 없다. 비경 그 자체다. 바위에 찰싹 달라붙은 고산지대 꽃들이며, 하늘과 멋들어진 산맥 사이로 자태를 뽐내는 경관이 놀랍다.
내가 마치 구름을 타고 바다 위를 나는 새처럼 느껴졌다. 고소공포증에 외마디 함성을 지르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태연했다. 여기서 떨어져 죽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해발 2000m 지점에 선녀와 피리 부는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사랑 폭포’는 한 폭의 그림이다. 날렵한 선녀가 물길 따라 내려오는 신선처럼 보였다. 맑은 물에 손을 담그니 뼛속까지 시원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해발 1700m에 은빛 폭포와 실버폭포도 있다. 온 산이 마치 폭포처럼 즐비하다.
가이드를 포함한 일부 일행은 체력을 저장한다는 핑계로 답사를 포기했다. 나는 ‘그런 가이드가 어디 있느냐?’며 투덜댔다. 그러면서 남길 체력보다 남은 인생이 아까워 동료 서너 명과 완주했다. 참으로 놓치기 아까운 경관이었다.
다음 순서는 인도차이나반도 3개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중 가장 높은 해발 3143m의 판시판의 정상에 오를 차례다. 모노레일, 케이블카, 산악열차를 이용하고, 나머지는 두 발로 계단을 올랐다. 힘들 땐 네발을 이용했지만 말이다. 내 생애 최고 순간이다.
출발역과 도착역의 표고 차가 1410m, 세계에서 가장 큰 3선식 케이블카란다.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 불린다. 판시판 정상에 설치된 깃대는 가장 긴 25m 높이다. 4단계 작업을 거쳐 특수 제작되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최장 길이의 최신식 산악철도는 1700m를 이동시킨다. 1량당 탑승 인원은 200명이고 한 시간에 2000명을 수송한다, 산악기차에서 내리니 귓속이 멍해지고 머릿속이 어리벙벙하다. 누렁이 말들이 묘기를 뽐낸다. 온통 구름으로 뒤덮인 전망대, 광활한 장미공원, 테마공원, 가슴은 설레고 몸속 머릿속은 새하얗다. 시원한 바람결에 기분은 상쾌한데 시간은 바쁘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정상을 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눈도 귀도 콧구멍도 바쁘다. 독특한 자연과 색다른 날씨 경험에 짜릿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신성한 목적지, 하늘과 땅과 구름까지 겹쳐 조화를 이룬 성지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사찰도 있고, 수도원도 있고 종탑도 있다. 거대한 바위에 관음상도 있다. 일 년에 두 번 농사를 짓는 나라이니 계절과 관계없이 사철 꽃구경도 할 수 있다. 판시판 정상에 진달래 숲도 있고, 감탄을 자아내는 계단식 9층 폭포도 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다랑이 농지, 구름 뒤로 숨겨진 므엉호아 계곡, 끊임없이 이어지는 능선의 자연경관들, 천지사방을 둘러봐도 비경이다. 고산지대의 구름은 요술쟁이다. 싸우는 듯, 밀치는 듯, 비구름도 있고 목화송이 뭉게구름도 있다. 그림을 그렸다 지우고 금방 또 그린다. 신기하다.
수도 하노이는 아사리 판 같다. 아찔한 무아지경이다. 헬멧을 쓴 오토바이족은 메뚜기 떼 천국을 닮았다. 여기에 택시 자전거 손수레가 뒤엉켜 빵빵거리고 웽웽거리고 스치는지 밀치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하노이의 36구 거리 풍경이다. ‘스트릿카’를 타고 호수 주변과 중앙시장 같은 거리를 체험하는데 두렵기만 하다. 좋은 공기 마시면서 즐거웠는데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느낌이다. 얼마 전에 한국의 대통령이 왔었는데 그때는 도시 전체가 마비됐었단다.
일정 내내 경험한 것들, 까마득히 솟은 산봉우리는 하늘과 맞닿아 속세를 벗어난 것 같았고, 발아래 오가는 구름과 바람은 선경처럼 황홀하기만 했다. 걱정과 아쉬움 속에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순간순간 목구멍에 윤활유도 치고 젊음과 겨루면서 신기하리만큼 잘 버텼다. 내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세계적인 인기 관광지’ 베트남을 마음껏 즐겼다. 염려했던 것보다 몸과 마음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떠날 때 걱정했던 내 건강 테스트는 이것으로 만족해도 될 것 만 같아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다. 기회만 된다면 해외여행을 한 번 더 하고 싶은 욕심까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