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0 솜털같은 푹신푹신한 이불에 야마미즈키에서 꿈같은 하룻밤을 보낸 저희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또다시 어제의 온천욕을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내탕을 가면서 바로 옆으로 보이는 혼욕탕으로 자꾸 시선이 가더군요.ㅋㅋ
사실은 이곳도 한 번 이용해보고 싶었는데, 거의 남자들만 이용을 한다길래,
괜히 아침부터 또 아저씨들 놀래키는 거 같아서 꾹 참았습니다.
아침에 본 노천탕... 어젯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더 멋지더라구요.
노천탕 바로 옆 계곡의 물소리를 들어가며 저희는 또 신선놀음에 빠졌지요.
오후에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할 걸 꿈에도 생각치 못하면서 말이죠...


08:00 신나게 온천욕을 마친 저희는 소박한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10:20 야마미즈키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음 목적지인 유후인으로 가기 위해 여관을 나올 때,
저희 방을 담당하신 고토상과 아저씨가 양 손을 흔들며 저희를 배웅해주시더군요.
나중에 운전수아저씨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고토상이 저희들을 위해 한국어공부를 하셨다네요.
손님을 위한 작은 배려이긴 하지만, 왠지 고마운 마음이 들더군요.
10:57 구로카와에서 다시 큐슈횡단버스를 타고 유후인으로 향했습니다.
여전히 흐린 날씨... 일본 와서 3일내내 날씨가 좋질 않았어요.
12:30 유후인 도착하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군요.
일본겨울은 왠만하면 영하로 잘 내려가지도 않는다며 큰소리 뻥뻥 친 전, 친구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장갑에 모자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유후인 관광에 나섰습니다.
긴린코 호수와 시탄유라는 혼욕온천탕...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아 여성들이 좋아하는 곳이라고 하던데, 제가 별로 그런데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유후인은 생각보다 별로였어요.
날씨라도 좋았더라면 유후인 관광이 더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가게는 역시 고양이가게랑 토토로가게...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으러 물어 물어 갔더니, 준비중! 이라는 팻말이 떡 붙어져 있더군요.
어쩔 수 없이 저희는 도시락을 사서 벳부 가는 버스 안에서 먹기로 했어요.
14:58 큐슈횡단버스처럼 고속버스같은 거겠지? 하고 도시락을 사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왠걸 시골 시내버스 같은 카메이노버스가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벳부 해지옥 관광을 위해 서둘러 버스에 올랐습니다.
승객들 한 열분 계셨나? 왠지 도시락 먹기가 좀 미안하더라구요.
잠시 망설인 저희는 끝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운전수아저씨 눈치를 살피며
도시락을 까먹기 시작했습니다. 벳부로 가는 길은 대관령길 뺨치게 구불거리더군요. 그래도 악착같이 먹었습니다.
게다가 어제 산 향토맥주가 뚜껑이 반쯤 열린 상태로 "나 김 빠져요~" 하길래, 아까워서 살~짝 음주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무슨 도시락 사진을 찍겠다고 정신없이 디카질을 했던 게 바로 화근이었어요.
15:40 레이센지에서 내려 길 건너 해지옥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저처럼 오전에 유후인관광을 하고 오후 늦게
벳부 지옥순례를 하시는 분들을 위해 큐슈횡단버스말고 카메이노버스시간표를 찍어 이 카페에 올리려고 하는데,
제 디카가 보이질 않는 겁니다. 길 한복판에서 제 가방 다 뒤졌습니다. 그래도 안보입니다.
순간 버스에서 도시락 사진을 찍고 쇼핑백에 올려둔 디카가 생각났어요.
아차! 내릴 때 쏟아져서 빠졌나보다... 이런, 맙소사!!!
어쩔 수없이 디카 찾아 삼만리!!! 해지옥관광을 포기하고 빈 택시를 잡아타고 종점인 벳부역으로 내달렸어요.
벳부역에 도착해 정차해 있는 다른 카메노이버스 운전수아저씨께 자초지정을 이야기하니,
매정하게 버스회사 전화번호만 알려주더군요. 어찌 그 상황에서 메모지도 없는 제가 그 번호를 외우겠습니까!!!
그랬더니, 바로 앞에 파출소가 보이더라구요. 그냥 무작정 뛰어들어 갔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께 다시 제 상황을 말씀드리니, 이 아저씨 반응 똑같더군요.
전화카드도 없는 전 아저씨게 “죄송하지만, 전화 좀 걸려주시면 안될까요?"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다시 부탁을 드렸더니,
처음엔 이 아저씨 좀 귀찮다는 표정으로 전화를 걸어주시더라구요.
회사위치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받은 저는 다시 택시를 타고 버스 차고지로 향했습니다.
제 디카가 여기저기 테이프를 붙인 고물인데다가 일본에선 잊어버린 물건이 잘 찾아진다는 말에 내심 살~짝 기대를 했어요.
그리고 이번 여행가기 전부터 디카를 새로 장만할까? 고민도 했기에, “그래, 없으면 이참에 새로 사지 뭐"
그런데, 3일동안 찍은 여행사진이 너무 너무 아깝더라구요.
특히 어제 구로카와에서 큰 맘먹고 무리해서 1박까지 했는데, 그 사진들 다 어떡해...하면서 말이죠.
16:10 카메노이버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전 사무실로 냅다 뛰었습니다.
“아까 파출소에서 전화하고 온 사람인데요...”라고 하자, 운전수아저씨를 불러다 주겠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의자에 풀죽어 앉아 아저씨를 기다리는데, 짜잔~ 제 고물디카를 한 손에 들고 운전수아저씨가 들어오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아저씨께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잠깐 담소를 나눴어요.
어떤 착한 학생이 제 디카를 발견하고 아저씨께 전달해 줬다는 겁니다.
운전수아저씨, 행여나 버스에서 제가 도시락 까먹고 맥주 마시는 걸 보신 걸까요?
제가 어디서 내리신 거까지 기억을 하시더군요. 순간 어찌나 창피하던지요. 에구...이런 망신살을!!!
이 아저씨, 제 디카를 목에 차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군요. 참고로 제 디카는 “캐논 파워샷80”...
액정 무지 작고 두껍고 투박한 녀석... “아저씨, 이거 목에 걸었다간 저 목디스크 걸려요”했더니, 아저씨 웃으시더군요.
어느새 제 사진을 보셨는지 “사진 멋지던데...”하시면서...
정말 그 학생과 아저씨가 어찌나 고맙던지, 이번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어요.
사실 제가 1년에 한번씩, 이런 사고를 치곤 합니다. 일본에서도 처음은 아니에요.
2002년 1월1일, 새해 첫날 지하철에서 코트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빠져 쇼를 한 적이 있거든요.
저도 가끔 이러는 제 자신이 정말 싫어요.
하여간 디카보다도 3일간의 여행사진을 되찾았다는 안도감에 너무나도 기뻤어요.
만약, 카메노이버스 시간표를 찍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해지옥에나 가서야 제 디카가 없어진 걸 알았을 테고,
30분만에 제 디카를 찾는 일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며 제 친구랑 그렇게 위로하며 호텔이 있는 벳부역으로 갔습니다.
16:40 다시 파출소를 찾아가 아저씨께 덕분에 디카를 잘 찾았다고 감사하다는 보고를 드리고 호텔로 향했습니다.
정말 이 자리를 빌어 제 디카를 찾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벳부역 西口파출소 아저씨,
카메노이버스 운전수아저씨, 고맙게 제 디카를 주워준 착한 학생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17:00 벳부 에루호텔... 생각보다 좋았어요.
무엇보다 이 호텔이 가장 끌린 건 역시 10층에 전망온천외에 옥상에 노천온천이 있다는 거였어요.
벳부만을 내려다보며 하는 온천욕, 정말 좋더라구요. 주변경관도 좋고 벳부타워, YOU ME라는 큰 마트도 있어서 편했어요.

18:00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저희는 마트구경에 나섰어요.
그리고 저녁으로 먹을 음식들을 찜해놓고 벳부타워를 올라갔지요. 역시 타워는 그냥 멀리서 보는 게 좋은 거 같아요.
도쿄타워도 그렇고 괜히 올라가서 실망만 한 적이 있거든요.

19:00 저녁 7시가 넘어서 마트에 다시 들어서자 할인티켓을 하나씩 부치더군요.
제가 바로 이걸 노린 겁니다. 조금이라도 아껴서 여행하고 싶은 분들, 늦은 시간을 이용해 마트에서 장보세요.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 사다가 호텔에서 편하게 식사했습니다.
20:00 전망온천과 노천온천을 오가며 온천욕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에 묵은 호텔인데 나름 마음에 들더군요.
온천욕으로 피로가 싹 가신 저희는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 한 잔을 마시고 탈 많았던 하루를 그렇게 무사히 마무리했답니다.
<출처 : 후쿠오카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