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에 투입될 때마다 중대 1번가에 탑승하여 착륙했던 긴장감을 다시느끼게 합니다.
그엽 UH-1헬기의 소음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지난시간을 떠울리게 하는군요?
월남전에는 육사 11기부터 26기(70년도 임관)까지 참전했다.
24기는 1968년에 180명이 임관했고 그 중 보병 109명이 전방사단에 배치되어
대부분이 철책선 담당 소대장 또는 GP장으로 임무 수행중에 월남전에 참전했다.
1969년 2월부터 철수 시까지 총111명이 참전했다.
‘69년도에 참전한 보병의 대부분이 소대장직책을 수행했다.
1971년 5월에 동기생 전체가 대위로 진급하였고 72년도부터 보병 3명, 포병
1명만이 월남전에서 중(포)대장 직책을 수행했다.
그 중에서 맹호 1연대 5중대장을 역임한 동기생의 글을 소개한다.
참고로 ‘모개’는 글 쓴이의 아명이다.
(LA 나인환/육사24기,중령예편)
모개는 월남전에서 40여회의 크고 작은 전투와 매복을 했다.
그 매 번의 전투와 매복에서 총탄과 포탄, 수류탄에 맞거나 지뢰를 밟아 죽거나,
물소 똥을 바른 죽창에 찔려 산적꽂이가 될 수도 있었다.
모개는 매번 적과 싸우기 위해 부대를 떠날 때 마다 이번 전투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다시 이 길로 걸어서, 혹은 헬기를 타고 돌아 올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한
희망을 걸곤 했다. 그리고 그 허다한 전투 중에 네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모개는 그 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옛날이야기 같이 명자에게 들려주었다.
1. 첫번째 이야기.
우기로 접어든 6월의 어느 날, 중대장이었던 모개가 혼주산(해발640여m)
정상에서 중대원들을 현장 지휘 하여 참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들이 있는
산 정상은 짙은 구름에 덮혀 있었다. 돌변하는 월남 날씨에 대한 몇 번의 경험이
있는 모개가 심상치 않게 보고 있는 것은 구름 속에서 울려 퍼지는 낮은 천둥
소리였다.
모개는 소대장들에게 매설했던 크레모아 들을 거두어 들이 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나서 소대장들이 채 손 쓸 여유도 없이 느닷없이 우박이 쏟아지며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모개와 중대원들이 있는 구름속의 산 정상은 순식간에 100만
볼트의 벼락과 30여발의 크레모아가 폭발하는 연옥이 되었다. 모개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시퍼런 불꽃 벨트를 본 적이 없었다.
팍팍팍--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번져가는 낙뢰의 파란 불꽃 벨트는 바위나 지면
위에서 4~50cm 폭의 높이로 튀었다. 지면과의 스파크에 의한 불꽃 벨트는
7~15m정도로 짧거나 길게 아무 방향이나 일직선으로 치고 나갔다.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치고 나아간 벼락의 불꽃 벨트를 한 시점에 맞추어 현상 한다면
크고 작은 다각형의 그물망이 될 것인 즉, 우리는 파던 교통호에 쳐 박혀
있었지만 벼락의 그물망의 빈 공간에 있었다.
벼락 맞은 바위에서는 돌가루 연기가 피어올랐고, 나뭇가지는 부러지고 탔으며
벼락 맞은 모든 것은 터지고 부러지고 튀어 올랐다. 이른바 벼락의 실체다.
수 분 동안 벼락이 치면서 미처 뇌관을 제거하지 못한 크레모아가 몽땅 터졌다.
30여발의 크레모아 폭발로 인한 후폭풍도 벼락만큼이나 무시무시했다.
후폭풍에 걸린 무기와 장비 들이 부러지고 찢어져서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2명의 병사가 즉사하고, 2명은 중상을 입었다.
벼락과 우박과 크레모아 폭발이 끝나고, 이미 절명했지만 아직까지 선혈이
솟구치고 있는 죽은 병사의 맨 가슴은 모개가 손을 디밀었을 때까지 따뜻했었다.
그 병사의 윗 주머니에서 기도문과 엄마를 포함한 가족사진이 나왔다. 그는 천주교
신자였다. 5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모개의 눈시울이 젖었다.
2. <두번째 이야기>
건기의 월남의 이른 아침은 늘 그렇듯이 상쾌하다. 현장은 대대 TAC CP 와지선
잡목 숲이다. 전투는 언제나 끊임없이 치열한 것은 아니다. 격전은 수분에서 길어야
10여분 정도 맥놀이로 이어진다. 격전 중에 간단없이 쏟아지는 포탄과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모개는 방금 자신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쳤던 부하들과 함께 작열하는
포탄에 맞았다.
찌앙! 쨩! 쨩! 모개는 폭음에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검은 포연 속에 공중에서 작은 돌맹이와 흙, 그리고 뭔지 모르는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인체의 찢어진 사지와 공중으로 날아갔던 살덩이와
머리카락이 있는 피부 조각들이었다. 그것들이 나자빠져있는 모개의 얼굴과 몸뚱이
위로 우박처럼 떨어졌다.
아직까지 포탄이 산발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모개가 가까스로 일어났을 때,
모개가 등지고 있던 벽의 샌드백들이 파편에 구멍이 뚫려 마른 모래가 줄줄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얼마 후 포탄이 멎고, 두 병사의 조각난 몸뚱이를 수습하여 판초우의에
싸 묶었을 때, 조금 전 까지 무전을 날리던 임 중사와 김 병장 두 사람의 모아진 신체
조각들은 늙은 호박 덩이만 했다.
그 나머지 신체의 대부분은 정글의 높은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더 멀리 날아갔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모개도 병사들과 함께 찢어져 날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은 어떻게 죽지 않았는지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3. <세번째 이야기>
그 날도 평온한 가운데 중대원들은 헬기를 타고 작전지역 박마 산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중 모개가 함께 타고 이동 중이던 UH-1헬리콥터가 착륙하려고 고도를
낮추었다. 헬기는 착륙 목표지점 상공까지 접근 중이었다. 그 때 찰나지간에 조종사,
부조종사 두 명 모두 총탄에 안면 부와 머리를 맞고 즉사하였다. 순간 모개는 헬기
밑으로 검은 복장을 한 두 명의 베트콩이 참호에서 뛰쳐나와 경사진 정글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조종사와 지도를 보며 머리를 맞대고 착륙 지점을 이야기 하고 있던 모개는 간발의
차로 살았다. 그러나 죽은 두 조종사가 조종간을 놓았기 때문에 헬리콥터가 심한
롤링을 하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잠간 5-6초 후 헬기는 지면과의 충격으로 양
다리가 불어지면서 튕겨 올랐고 2차 추락으로 동체착륙이 되면서 땅바닥에 쳐 박혔다.
모개와 함께 탔던 병사들이 추락한 헬기에서 필사적으로 기어 나와 아무 방향이나
뛰었다. 그러나 헬기는 폭발하지 않았고 몇 분 동안 엔진도 꺼지지 않은 채 긴
회전익이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비로소 모개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4. <네번째 이야기>
오늘은 고보이 평야 뚱쑤안 부락 작전이 있는 첫날이다. 드문드문 부락을 에워싸고
있는 광활한 늪지대는 평화시 벼농사를 짓던 논이었다. 이번 작전은 모개가 선발대
2소대장으로부터 무전 수신을 하면서부터 살기를 느꼈던 전투다. 전투는 UH-1
헬리콥터가 착륙하기도 전에, 늪지 30여 미터 상공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늪지의 돌출 된 대나무 숲에서 하강중인 제 2소대 1번 헬기를 향해 기관총과 B-40
등의 집중사격이 가해졌다. 착륙 하면서 기습을 받은 이 전투에서 4발의 총탄을 맞은
제2소대장 김ㅇㅇ중위는 중상을 입었고, 6명의 전사자와 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전사자 중 1명은 죽기 직전에 모개에게 기어 와서 상황을 설명하고 실탄을 보충 받아
되돌아 들어갔다.
그는 고 참 병장으로, 후송한 분대장 대리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의 뒷모습이
선인장에 가려 보이지 않으면서 피아간의 요란한 총 소리가 났고, 2-3분후 전ㅇㅇ
병장은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이빨이 유난이 희던 그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나에게 왔을 때, 웃으면서 이번 전투가 끝나면 귀국 한다고 했었다.
전 병장은 모개의 15~6 미터 전방에서 수류탄을 움켜잡은 채 전사했다. 그 때, 중대장
모개의 작전 병 김삼중 상병은 P-77무전기에 롱 안테나를 끼워 사용하고 있었다.
이 롱 안테나가 표적이 되어 적 B-40 대전차포와 유탄, 수류탄, 소총탄 들이 모개에게
집중되었다. 그 것은 왕왕 전쟁소설에서 표현되는 그야말로 빗발치는 총탄이었다.
모개의 눈앞에서 미풍에 흔들리던 갈대 줄기가 딱딱 잘라져서 수직으로 사뿐사뿐
떨어졌다. 모개를 표적으로 날아 온 총탄과 파편이 끊고 지나간 것들이다.
모개는 베트콩이 파 놓은 개인 참호 속에서 가까스로 죽음은 면했으나, 주변의 무전기,
배낭 등 모든 장비는 작살이 났다. 벌집이 된 배낭에서 씨 레이션 국물이 총탄 구멍으로
흘러 나왔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정신적인 고통은 죽음에 직면한 공포와 시시각각으로
조여 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삶과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평범한 일상사에서 생사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며 지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목숨을 건 절박한 전쟁터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증폭 되는
것이다.
생사의 현장에서 야기되는 공포와 두려움은 계급과 직책에 좌우 되지 않는다.
단지 계급과 직책에 따르는 사명감과 책임감, 그리고 각자 다른 천부적인 용기가
맞닥뜨린 공포와 밀려오는 두려움을 다소 억제 할 뿐이다.
첫댓글 옛날 군시절 월남 전에서 다시한번 상기하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