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기 237 상해 주가각(朱家角)
2017년9월20일에 주가각으로 갔습니다. 주가각의 들어서자
골목길 대문에 "복(福)"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1903년 청나라 시대에 지어진 우체국인 대청우국(大清邮局, 다칭요우쥐)는 상하이의
주요한 13곳의 우체국 중 하나입니다. 1층에서는 당시 우체국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과거 세관 업무와 해외 우편까지 담당했던 지방의 중요한
임무를 맡은 우체국이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우체국과 관련된 자료와 우정 역사
전시물을 볼 수 있습니다.
청나라대 우체통이 그대로 있습니다. 우체통에는 용의 조각이 있습니다.
1896년 주가각 분국이 설립되었습니다.
우체국 직원모습입니다. 담뱃대를 들고 뒷에서 변발을 손질합니다. 변발(辮髮)은 앞
머리털을 밀고 뒤 머리털만 남기고 땋는 몽골족(동호족, 선비족, 거란족)과 만주족(여진족)
머리매무새입니다.
변발은 만주에 살던 몽골 계통 부족과 말갈 계통 부족이 즐겨하던 머리매무새입니다. 몽골
계통인 선비족도 변발하였다고 하니 변발의 역사는 짧게 쳐도 기원전 1세기까지 올라갑니다.
몽골 제국이 고려를 지배한 시기에는 고려의 지배계급을 위시해 일부 백성도 몽골의 풍습을
따라하고자 몽골식 변발하였습니다. 그후 공민왕이 몽골식 변발을 금지하였습니다.
이자성 장군의 봉기로 혼란스러워진 중원을 정복하고 청을 건국한 여진은 한족에게
만주식으로 변발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이것을 중국어로 체발이복(薙髮易服, 薙发易服)이라
지칭합니다. 체발이복으로 말미암아 한족은 머리털을 포기하든지 자기 머리를 포기하든지
사세부득이 택일해야 했습니다. 그 후 신해혁명으로 한족이고 만주족이고 변발하지
않았습니다.중국어에서 단어 변발(辮髮, 辮发)은 땋은 머리라는 뜻입니다. 한국어에서
말하는 변발은 중국어에서 곤발(髡髮, 髡发)이라고 더 정확하게 표현됩니다.
오른쪽 첫번째는 회신(回信) 아버지가 아들의 편지에 답장하는 곳
오른쪽 두번째는 내신(來信) 어머니 편지에 아들이 답장하는 곳
오른쪽 세번째는 급건(急件)은 공무의 편지입니다.
참고로 중국어로 편지는 신(信)을 말합니다.
우체국에서 앉아서 옛날 우체부(전령)을 생각해 봅니다.
이곳 우체국의 메모란에는 많은 관광객의 메모와 낙서가 써졌습니다.
마음의 정거장이라는 벽에도 많은 낙서가 있습니다.
우체극의 우(郵)입니다. 옛날 전란때의 전령을 생각해봅니다. 소식이라는 뜻의 신(信)을 전하는 전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라톤 42.195㎞를 달리는 초(超)장거리 달리기. 고대 올림픽종목입니다.
기원은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전쟁을 벌인 지명 마라톤의 어원이 된 마라톤 전투며 이 전쟁의
승리를 전하기 위해 쉬지 않고 아테네로 달려 승전보를 전한 직후 숨진 그리스군 전령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이 종목이 탄생되었습니다.
이 전령의 이름은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이며 스파르타에 원군을 요청하기위해 파견된 전령입니다. 놀라운건 33kg에 달하는 중무장을 한채로 240km를 2일만에 주파했다고 합니다. 쿠베르텡 남작이 근대 올림픽을 만들 때 지인 중 한명이 극적인 스토리 텔링을 위해 페이디피데스를 주인공으로 하여 감동적인 스토리로 각색해 당시 젊은이들에게 어필했습니다.
집배원이 말을 타고 개울을 건너가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졌습니다.
집배원이 말위에 쓰려져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은 편지대신 이메일이 돼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지요.미국에서 우체국에 다녔었는데
지금은 인원을 별로 충당안한다고 합니다. 요즘 매일을 보내는 사람이 별로 없기때문입니다.
운송수단이 말이기에 이곳도 마패를 사용했군요. 역의 말을 빌리는 도구로 출마패라고도
합니다. 암행어사를 대표하는 필수요소 아이템으로 알려져있지만 지방 출장가는 관원들
모두가 쓸 수 있었던 물건으로 영조 때 기준으로 중앙에서 500개, 지방에서 감사, 병사,
수사들이 발부한 150개의 마패가 사용되었습니다. 1~10마리가 새겨져 있었으며,
10마리는 왕 전용, 영의정은 7마리까지, 암행어사는 보통 2~5마리 정도였는데
실제로는 3마리 이상을 빌리면 소문이 나니까 2마패를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중국 우체국 규모는 광대하고 조직이 엄밀하며 대중의 통신업무를 보는 것이라 소개합니다.
집배원이 우편물을 옮기는 모습입니다.
청나라때 엽서(Postcard)입니다. 청운중학교 담임 신동우선생님이 본인이 가지고 있던
세계각국의 그림엽서를 학급반 뒷벽면에 붙여 전시하였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세계
풍물엽서를 보고 세계를 돌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신동우선생님이 도미하여 북가주 산호세에서 마켙을 운영할때 이태완이랑 같이 가서
인사를 드렸는데 나를 보자마자 "이풍원이구나"하며 반가와 했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떻게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신동우선생님도 우리학교선배님이십니다.
주가각 우체국 옛모습
그당시 우표입니다. 청운중학교다닐때 학교입구에서 우표를 팔기에 우표를 모으기
시작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당시 집배원의 복장입니다.
주가각우체국을 알리는 등입니다.
주가각 우체국 앞에서
주자자오(중국어: 朱家角, 병음: Zhūjiājiǎo)는 상하이 칭푸 구 내에 자리잡고 있는 물의
도시입니다. 전형적인 강남 수향 고진입니다. 인구는 약 66,000명이고, 주요거리는 북대가
(北大街), 동정가(東井街), 서정가(西井街), 대신가(大新街), 동시가(東市街) 등이 있고
그중 북대가(北大街)는 2005년 11월에 상해 10대 휴한가(休閑街)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휴한가는 편하게 쉬면서 즐기는 거리라는 뜻입니다.
王영(?)기념관입니다. 이른 시간이라 잠겨져 있었습니다.
인사동과 같은 이곳에 오면 커피를 마시면서 분위기를 즐겨야 하는데 가이드가
재촉하는 바람에 커피도 못 마셨습니다.
일리(illy)커피를 보니 작년 뉴욕에 갔을때 김진섭친구의 부인이 우리일행을 일일히
일리커피를 싸주었던 생각이 납니다.
일리 커피는 이태리커피로 요즘은 한국에서도 종종 봅니다.
주가각의 식당은 옛풍취를 느낄수있게 옛건물로 지어져있습니다.
'상하이의 베니스'라 불리는 주가각에서 뱃놀이를 즐겼습니다. 1,000여 개의 건물과 운하를
가로지르는 36개의 다리를 지나며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뱃놀이. 주가각뿐만 아니라
수향마다 체험할 수 있습니다. 뱃사공이 손수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에 타서 여유를
즐겼습니다.수향(水鄕)은 물이 흐르는 곳에 생긴 마을을 말합니다.
상하이 중심에서 약 49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주가각은 9개의 운하가 흐른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전형적인 강남양식의 수로와 전통 가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물의 마을 주가각. 이곳에도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합니다.
주가각에서 가장 유명하며 중심이 되는 곳에 자리한 방생교(放生桥, 팡셩차오). 가장 큰
다리이기도 한 방생교는 이 다리를 건설한 성조(性潮) 스님이 다리 아래에서는 절대 물고기나
자라를 잡아서는 안 되고, 잡아도 방생하여야 한다고 하여 이와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주가각에 있는 36개의 다리 중 규모가 가장 큰 다리인 방생교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
들로 붐빕니다. 방생교 양 끝으로는 수많은 기념품 상점과 먹거리를 파는 음식점이
즐비합니다. 이곳에서 물고기와 자라를 팔아서 방생하도록 합니다.
주가각 중심에 있는 좁은 상가 골목인 북대가(北大街, 베이다제)는 명·청 시기 대표적이면서
유구한 전통이 깃든 건물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상하이의 첫 명·청거리로 인정된
곳입니다. 북대가 주변에는 부두가 있어 옛날부터 수륙교통의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며
상업지로 성장하였습니다. 현재는 잡화점, 기념품샵, 정육점, 골동품가게, 꽃가게 등을
비롯한 상점들로 빼곡합니다. 북대가는 폭이 매우 좁아 거리가 한 줄로 보인다고 하여
일선가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이곳은 진주 양식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옛날 쟌스테인벅(John Steinberg)의 진주(The Pearl)이 생각납니다.
쟌 스타인벡은 1902년 캘리포니아 살리너스(Salinas)에서 태어나 스탠퍼드대학에
진학하여 문학을 전공했지만 뉴욕에서의 기자생활을 위해 결국 학업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살리너스의 아름다운 자연과 농장일 등 노동자들의 생활에 대한
체험으로 〈분노의 포도> 〈생쥐와 인간> 〈에덴의 동쪽>등 주옥 같은 작품들을 썼습니다.
이태완이가 미국 이민을 간곳이 살리너스 옆동네 몬테레이(Moterey)이었습니다.
그곳은 영화배우 크린트우드가 시장했던 카멜(Carmel)시가 있고 옛 영화 "어둠속에 벨이
울릴때" 촬영지입니다.
진주조개입니다. .
그의 작품은 주로 현대사회의 희생물이 되는 인간을 그리면서도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낙천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후 1962년
스타인벡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진주>는 1945년에 발표된 장편소설로 스타인벡이 볼리비아의 라 파즈에서 들은 진주잡이
어부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원시적 향토적인 배경 속에서 한 폭의 그림같이 묘사한
훌륭한 작품입니다
비가 오는데도 관광객들이 몰려옵니다.
강남 고진 주가각
주가각의 이정표
이곳은 건물 위에 집을 만들어서 그곳에 조상의 뼈를 안치시켜서 제삿날 절하거나
위패를 모셔 둔다고 합니다.
이 요리가 동파육입니다. 동파육은 고전 '적벽부'에서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는 돼지고기
요리입니다. 중국의 음식을 더욱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음식이름의 의미를 알고
먹는 것입니다. 한국음식이 주로 음식에 쓰인 재료에서 요리명이 나오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음식 재료의 이름을 따오더라도 뱀 요리에는 용을 닭이면 봉황을 요리명에 붙여
문학적으로 이름을 짓습니다. 도한 유명인물의 '호'등을 붙이기도 하는데 동파육은 바로
이러한 예입니다.
중국 북송때'적벽부'를 지은 소동파라는 시인의 호를 따서 지은 요리로 이 시인의 뛰어난
문학가이면서 요리에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이요리를 소동파가 개발해 냈다는 얘기도 있고 소동파가 이 요리를 즐겨서 이름이
붙였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일종의 돼지고기 조림으로 돼지의 삼겹살이나 오겹살 부위를 썰어 기름에 튀긴후
간장 양념에 오래도록 조려서 먹는 요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