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여직원은 왜 울릉도 전봇대를 타야 했나?
KT 퇴출 프로그램 1002명 명단 공개
KT의 강제 인력 퇴출 시나리오를 입증하는 문서가 또 다시 공개됐다. 이는 그동안 "퇴출 프로그램은 일부 지사에서 만들었을 뿐 본사 차원에서 퇴출을 시도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던 KT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문서다.
'죽음의 기업 KT·계열사 노동인권 보장과 통신공공성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21일 서울 광화문 KT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T 부진인력(C-Player·CP) 관리 프로그램' 대상자 명단에 오른 1002명을 공개했다. CP는 인사고과에서 하위등급인 C등급 이하를 받은 노동자를 뜻한다.
퇴출자 명단에 농성 적극 가담 여부 기록
2005년에 작성된 CP 명단에는 퇴출 대상 노동자들의 사원번호, 직무, 명퇴 요건 대상 여부는 물론 '농성 적극 가담', '단순 추종자' 등 노조와 관련한 활동이 특이사항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 자료를 제공한 내부 고발자는 "KT는 해마다 이 명단을 업데이트해 지금도 담당자를 배정해서 특별 관리하고 있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KT에서는 민영화된 다음해인 2003년까지 국내 단일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인 5505명이 퇴출됐다. 2009년 12월에는 5992명을 퇴출해 단일 기업 최대 퇴출 기록이 경신됐다. 퇴출자들은 "형식은 명예퇴직이나 징계해고이지만 사실상 정리해고"라고 입을 모았다.
공대위는 "KT는 근무연수가 많거나 나이든 노동자, 노조 활동을 했던 노동자를 퇴출 대상자로 찍어 명예퇴직 또는 징계 해고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며 "대상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업무를 부여해 실적을 내도록 강요하고, 이를 빌미로 징계하고 인격적인 모독을 반복해 주는 등 인간이 할 수 없는 짓을 적용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콜센터 여직원에게 울릉도에서 전신주 오르게 하고 풀매기 강요"
조태욱 KT 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KT는 특히 2005년 114 교환원을 아웃소싱해서 자회사로 퇴출시켰다"며 "여성 노동자 1000여 명은 이미 퇴출됐으나 끝까지 남은 400~500명은 전환 배치되거나 퇴출압박을 받았고, 급기야는 여성 교환원이 전신주에 오르는 반인권적인 행태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일례로 "퇴출자 명단에 있는 강모 씨는 서울에서 충북으로 발령받아서 전신주를 오르다 추락해 반신불수가 됐다"며 "또한 콜센터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 김모 씨는 대구에서 쫓겨나 경북 각지와 울릉도까지 전전하면서 전신주 오르기, 풀매기를 강요받다가 중병이 도진 상태에서 추운 겨울 난방도 없는 창고로 쫓겨나 사경을 헤매기까지 했다"고 고발했다.
조 집행위원장은 "울릉도로 발령돼 전봇대를 탔던 김 씨는 법원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고, 올해 해고된 또 다른 노동자 원모 씨는 노동위에서 부당해고라고 판명 났다"며 "그런데도 CP 퇴출 프로그램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아울러 그는 "민영화 이후 KT는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의 50%를 주주에게 배당했고 그 중 2/3는 해외 투기자본에게 들어갔다"면서 "단기순이익이 1조 원이 넘는 기업이 왜 노동자를 퇴출시켜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공대위는 "CP 명단은 퇴출 대상 노동자를 어떻게 하면 최대치로 학대할까를 고안한 '조직적인 인간 학대 프로그램"이라며 △KT가 피해 노동자에게 사과할 것 △CP 비밀 퇴출프로그램을 폐지할 것 △이석채 KT 회장은 연임시도를 중단하고 KT를 떠날 것 등을 촉구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KT 홍보실 관계자는 "(문서에) KT 본사 이름이 찍혔다고 해서 본사가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퇴출 프로그램은 일부 지사에서 만들었을 뿐 본사 차원에서 퇴출을 시도한 적은 없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김윤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