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이틀 앞둔 11월 11일이 굉장히 중요한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우리나라의 수능 하루 전날? 상술 논란이 있는 빼빼로 데이? 그도 아니면 중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로 알려진 '광군제(독신자의 날)'?
바로 97년 전, 1918년 11월 11일. 장장 4년 4개월간의 1차 세계대전이 영(英) 연방 국가들의 승리로 끝났어요. 서양에서는 이날이 우리의 현충일과 비슷한 중요한 날이에요. 매년 영국에서는 전쟁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큰 행사를 열지요. 영국은 600만 명의 국민이 참전해 236만 명의 사상자(死傷者·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를 낸 나라거든요.
▲ 영국에서는 매년 1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양귀비로 만든 기념물이 세워져요. 작년에는 런던탑 주변에 사망한 군인들을 상징하는‘땅을 휩쓴 피와 붉은 바다’작품이 설치되었어요
이 행사에 빠지지 않는 꽃이 있어요. 바로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추모화, 빨간 양귀비꽃이에요. 그래서 이날을 '양귀비꽃의 날'이라는 뜻의 '포피 데이(poppy day)'라고도 한답니다. 11월 한 달간 영국 국민은 가슴에 양귀비꽃을 달고, 운동선수들은 양귀비꽃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가요. 정치인·유명 인사들도 행사에 참석할 때 가슴에 양귀비꽃을 달고, 거리 곳곳엔 양귀비꽃이 심어지며 양귀비꽃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된답니다. 왜 하필 양귀비 꽃일까요?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3년 전, 영국의 군의관 존 매크레이 중령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플랑드르 들판에서 전사한 친구인 알렉시스 헬머 중위를 생각하며 시를 썼던 것에서 비롯되었지요.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피었네/줄줄이 선 십자가들 사이에/그것은 우리가 누운 곳을 알려주기 위한 것…
▲ 마약 성분이 없는 정원용 양귀비.
알렉시스 헬머 중위는 붉은 양귀비꽃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가 독일군의 총에 맞아 전사했다고 해요. 이 시는 1차 세계대전에서 친구와 가족을 잃은 영국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지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퇴역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을 돕기 위해 모금 방법을 찾던 사람들은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양귀비를 참전 용사들의 상징으로 삼았어요. 우리가 기부하고 사랑의 열매 배지를 달듯이, 영국 국민은 자신이 기부하고 싶은 만큼 기부한 후 빨간 포피 배지를 가슴에 달아요. 포피 배지로 얻은 수익금은 전액 참전 용사·미망인·고아들을 돕는 데 쓰이고 있어요.
여러분은 양귀비꽃 하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아시아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중국 당나라의 전설적인 미녀였다는 양귀비나, 아편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마약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꽃이 생각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양귀비꽃이라고 해서 다 마약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양귀비꽃으로 분류되는 70여 종이 있는데, 이 중 두 종류에만 마약 성분이 있어요. 영국에서 추모화로 쓰는 양귀비꽃은 마약 성분이 없는 개양귀비랍니다. 이 붉고 아름다운 꽃은 우리나라에서도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고 있어요.
마약 성분이 있는 양귀비는 아편꽃이라고 불러요. 우리나라에서는 마약법에 의해 이 꽃의 재배를 금지하고 있어요. 마약이라는 것을 몰랐던 옛날 사람들은 양귀비 열매의 진액을 먹으면 아픈 것이 가라앉는 것을 보고 가정에서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기도 했어요.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할 때, 이것을 먹으면 진정되었기 때문에 의원을 찾기 힘든 시골 사람들의 필수품이었죠. 지금은 마약 성분이 있어 사용할 수 없는 약초예요. 하지만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들에게는 양귀비의 마약 성분을 정제한 모르핀이 들어간 약을 처방하기도 해요. 병마와 싸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경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