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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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주님,
오늘 하루, 저의 모든 기대와 노동의 땀과
제가 만나는 많은 이들을 당신께 맡깁니다.
저의 친구이신 주님,
오늘 하루를 당신 축복의 손으로
열어주십시오.
[성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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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지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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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통일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왕이신 주님.
같은 형제 자매이면서도 자유 안에서 함께 사랑을 나누며 살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주님께 맡깁니다.
하루빨리 평화로이 교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저희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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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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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마태 4,18-2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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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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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만드시는 장면이다. 성경 안에서 예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부요 세리요 죄인들이라고 복음사가는 기록한다. 오늘날 다양한 문화 안에서 예수님은 어디서 당신 제자들을 부르시는가? 각 수도회마다 성소자 감소라는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어떤 사람이 사막의 교부를 찾아가 말씀했다. “사부님, 사부님은 경험이 출중하시니 설명을 해주십시오. 어째서 숱한 젊은 수도자들이 광야를 찾아왔다가는 그 많은 수가 되돌아가는 것입니까? 끝까지 남는 사람이 왜 이다지도 적습니까?”
그러자 늙은 은수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토끼를 뒤쫓아 가며 짖어댔다. 그러자 수많은 개들이 그 개가 짖으며 뛰어가는 것을 보고 일제히 뒤따라가며 짖어댔다. 허나 정작 토끼를 본 것은 한 마리뿐이었다. 그 개가 뛰니까 무작정 내딛던 개들은 머지않아 뒤로 처지고 결국은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 토끼를 둔 개만 먹이를 붙잡을 때까지 계속 달려갔다.”
이 우화가 말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오늘날 사람들의 눈앞에는 무엇이 첫 자리를 차지하는가? 우리가 날마다 바라보는 세상은 진실보다 소유를 선호한다. 진실한 사람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더 따른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헤아리시지만 우리는 물질을 가늠하는 데 익숙해 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삶 전체를 바꾸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뜻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의 뜻을 따르기로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평범한 삶이었는데 이제는 ‘고생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예수님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 그분께서 부르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선택할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길을 잃게 되고 따라오는 사람도 없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 우리 숨결이시며 맥박이신 주님,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
김순중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정애경 수녀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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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독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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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이다
존경하올 어머니, 성령의 은총과 그 끊임없는 위로를 누리시길 빕니다. 어머니의 편지가 제 손에 닿았을 때 저는 아직도 죽은 이들의 땅인 이 세상에 있었습니다. 어머니, 이제 심혈을 기울여 산 이들의 나라에서 영원하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천국을 갈망해야 합니다. 저로서는 벌서 그 곳에 가 있고 싶었고 이미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 줄로 진정코 생각했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사랑이란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도 저와 함께 무한한 기쁨을 가지셔야 합니다. 어머니의 은덕으로 하느님께서 저에게 참된 행복을 보여 주셨고 또 그것을 잃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시어 온갖 두려움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어머니, 바다만큼 깊고 또 끝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해 볼 때 제 정신은 그 광대함에 압도되고 맙니다. 주님께서 이렇게도 짧고 보잘것없는 저의 수고를 보시고 어떻게 저에게 영원한 안식이라는 보상을 주실 수 있는지, 또 이제까지 게을리 찾던 나를 천국의 무한한 행복으로 초대하실는지, 또 그것을 얻으려고 그다지도 적은 눈물을 흘린 저에게 많은 고생과 눈물의 보상인 그 보화를 주시려 하실는지요! 존경하올 어머니, 이것을 거듭거듭 생각하시고, 주님 면전에서 살아 있고 이 세상에 있을 때보다 제 자신의 간구로써 어머니를 더 염려해 드리는 저를 어머니께서 죽은 사람인 듯 슬퍼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무한한 이 자비를 거스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이별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 우리 구원이신 주님과 결합하여 불사 불멸의 끝없는 기쁨을 누리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생명을 잠시 동안 거두시는 것은 우리를 더 안전한 자리에 두시고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은총의 선물로 꾸며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존경하올 어머니, 어머니와 우리 온 가족이 제 죽음을 하느님의 기쁜 선물로 생각해 주십사고 간절히 희망하면서 이 모든 말씀을 드립니다. 제 희망의 성취인 그 항구를 향해 바다를 건너가는 동안 어머니께서 저를 친히 축복하시어 보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들로서 어머니께 바쳐야 하는 존경과 사랑을 더 확실히 보여 드릴 다른 방도가 없기에, 어머니께 기꺼이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가 자기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
[오요한 신부님의 '가톨릭 영성' 사이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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