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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믿음
천영대
성경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8~19)」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감
타락한 인간은 무슨 일을 하든지 손익을 계산한다. 그리하여 그 일을 하면 어떤 이익이 있을 것인지, 그렇지 아니하면 어떤 손해가 있을 것인지를 따진다. 물질적인 면, 명예적인 면, 자녀 교육적인 면 등의 여러 가지 면에서 최상의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을 택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이 어떠한 곳인지도 모르는 가운데서 그대로 순종하여 그곳으로 갔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했다. 창세기 12장 1∼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에 ‘그곳이 어떠한 땅입니까?’, ‘제가 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입니까?’, ‘어찌 저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까?’하고 따질 수도 있는 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특별히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서 어떠한 삶이 믿음의 삶인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많은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들에게까지 많은 복을 약속하셨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주님께 순종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7장 2∼5절에서는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으로 그에게 나타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땅으로 옮길 때에 아브라함이 독자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그가 약속하신 땅으로 옮기셨다. 물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가 지시하는 땅에 갔지만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이 함께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그가 일종의 명령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함께하여 그가 말씀하신 바를 이루시게 하신다. 여기에는 말씀하시는 주님의 역사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그대로 행하는 자가 함께한다. 고린도후서 6장 1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한 것처럼, 주님의 일에는 주님과 그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가 함께한다. 그리하여 함께 일하고 함께 영광을 얻는다.
외국인의 삶을 삶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가 지시하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생활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정주하는 사람의 삶을 살지 아니하고 외국인과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히브리서 11장 9절에서는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정착된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는 정착민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고 외국에서 외국인이나, 나그네로 사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10)”고 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았지만 정착민으로서 정착된 집에서 살지 않고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서 생활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지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에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서는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은 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했지만, 그것은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땅에 지은 성을 바라보고 즐거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하늘에 있는 한 성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 이것은 그들이 떠나온 본향보다 더 나은 본향이며,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성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이러한 성을 관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하늘에 있는 한 성을 바람으로 땅에 정착하는 것에 관심하지 않고, 외국에 있는 외국인이나, 나그네처럼 생활했다. 이들은 땅에 있는 것들을 관심하거나, 중히 여기지 않고 하늘에 있는 것, 하나님께서 건축하신 한 성을 관심하고 바라면서 땅에 속한 것들에 매이지 아니하는 삶을 살았다. 이 내용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한 한 성은 다름 아닌,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가 사랑하고 위하여 죽은 사람들에게 썩어지고, 쇠패하고, 퇴락할, 땅에 있는 것을 주지 않고 그가 계획하고 건축하신, 영원한 한 성, 참으로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을 주시기 원하신다. 요한계시록 21장 1∼2절에서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했다. 신부의 최고의 단장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하는 것이다. 신부에게 그 이상의 단장은 없다. 새 예루살렘 성은 하늘에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최고로 아름다운 것이다. 히브리서 13장 12∼17절에서는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다. 이 땅에는 영구한 한 도성, 하나님이 하늘에 건축하신 새 예루살렘 성이 없으므로 우리 또한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을 찾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장차 올 새 예루살렘 성을 얻으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기는 자들이 상급으로 얻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일반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삶, 곧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리고,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고,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베드로전서 2장 11, 12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우리의 바라는 것, 중히 여기는 것은 이 땅이나, 이 땅에 속한 것, 사람들이 만든 것, 쇠패하고 변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것, 하나님이 계획하고 이루신 것, 영원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중히 여기고 사모하는 가운데서 이를 얻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상급이신 새 예루살렘 성을 유업으로 얻기 위해 이 땅에서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나그네와 행인으로서 우리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이방인 중에서도 행실을 선하게 가져 우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우리의 선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태어남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자신의 번성을 약속하셨다. 창세기 22장 16∼18절에서는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을 때에 그것을 제지시키고 대신에 숫양 한 마리를 준비하여 이삭 대신에 번제로 드리게 했다. 주님께서는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고 기꺼이 드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웠고 그 자손을 심히 많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주님을 믿는 자들로 그를 본받게 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다. 누구든지 주를 믿고 거듭나 그리스도께 속했다면 그들은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다. 주님은 그가 창조한 만물이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원하신다.
창세기 1장 26∼28절에서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다른 생물들뿐만 아니라 사람들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원하사, 그렇게 되도록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렇게 되게 하셨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요한복음 12장 23, 24절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그 자신이 죽고 부활하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해 그가 영광을 얻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사 생명주는 영이 되어(고전 15:45) 많은 믿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롬 8:29), 그의 형제들을(히 2:11, 12) 얻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셨던 말씀대로 그 말씀하신 바를 이루신다. 요한계시록 7장 9, 10절에서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고 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라고 했는데, 이것은 각 세대에 걸쳐 각 민족에서 구속 받은 자들을 말한다. 이들의 숫자는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주님께서는 그가 말씀하신 바를 분명히 이루시는 분이시다. 주님께서는 그가 처음,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에 말씀하신 것을 주님 안에서 구속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분명히 이루시고 영광을 얻으신다. 히브리서 11장 11, 12절에서는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고 했다. 이 내용은 사라가 아브라함에게서 많은 자손들을 얻게 될 것을 말한다. 창세기 17장 15, 16절에서는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복을 주어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그의 아내 사라에게도 열국의 아비와 어미가 되어 번성케 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이러한 놀라운 은총을 얻은 것은 그들이 믿음으로 주님께 순종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했다’고 했는데, 이 내용의 ‘하늘의 허다한 별과 같이 많이 생육했다’는 것은 하늘에 속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말한다. 창세기 21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했다. 이삭에게서 난 자, 약속의 자녀는 하늘에 속한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서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많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17장 19절에서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했다. 이 내용 또한 하늘에 속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창세기 21장 13절에서는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고 했다. 이 내용은 약속을 따라 나지 않고 육신을 따라 난 자, 사라의 몸종을 통해 난 이스마엘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창세기 17장 20절에서는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찌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고 했다. 육신을 따라 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도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크게 번성케 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손이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이 번성하게 될 것을 말한다. 주님은 그가 창조하신 생명이 소멸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고, 계속해서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원하신다.
죽은 자를 살리실 것으로 생각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믿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고, 믿음으로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있는 것에 소망을 두었고, 믿음으로 열국의 아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주님께 순종하여 독자 이삭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드릴 수 있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에서는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도 원했 던 아들 이삭을 얻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제물로 드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네 씨는 이삭으로 말미암을 것이라’고 약속까지 하셨는데, 그 아들이 결혼하여 아들을 낳기도 전에 그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는 원망하고, 불평하고 따지면서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순종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실 것으로 알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비록 이삭이 죽을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을 가지고 그를 다시 살리실 것으로 믿으므로 주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고! 물론, 이 믿음은 아브라함 자신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고 주님 안에 있는 믿음,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다. 디모데후서 1장 13절에서는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믿음은 주님 안에 있는 주님의 믿음으로서 은혜로 받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비록 그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릴지라도 다시 살리실 것과, 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기꺼이 순종할 수 있었다. 로마서 1장 5절에서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라고 했다. 믿음으로 순종한다고 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는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예표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했고, 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할렐루야! 이렇게도 믿음은 순종을 낳고, 또 순종으로 인해 놀라운 일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