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소설 “이순신” 공임순 감수, 태학사간, “춘원전집” 제10권, 2020.
이 소설을 감수한 공임순씨의 해설에 의해 중요한 점을 간략히 소개하고 뒷 부분에 이 소설의 독후감을 적고자 한다.
이광수는 1892년에 태어나 한국의 근대문학 발전에 중심인물이고 1950년에 납북되었다.
그가 쓴 소설, “이순신”은 1931년 6월 26일부터 1932년 4월 3일까지 동아일보에 178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이 소설 연재 직전에 그는 ‘충무공 유적지 순례기’를 이 신문에 14회에 걸쳐 연재했다. 그리고 그는 현충사의 유지에 큰 공헌을 했고, 역사상 인물로는 이순신을 가장 존경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1932년 대성서림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고, 1948년 영창서관에서 재출판되었고, 이 영창서관 본은 1953년에 신구문화사에서 재출간되었다. 1954년에는 조선일보에 박종화의 “임진왜란”과 함께 상벽을 이룬 소설이 되었다.
그는 1950년 납북되어 그 후 존재감을 잃었으나 그가 이룩한 문학적 업적은 그가 친일성향의 작가라는 명분으로 많은 지탄을 받아 왔다.
감수자 공임순 씨는 “이순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분이고, 이 책에서는 종래 내려쓰기의 형식에서 가로 쓰기의 형태로 바꾸어 편집을 하였고, 일제 시대의 언어를 현대적 언어로 바꾸었다고 하고, 소설에서 원전으로 인용된 한문 사료를 인용한 다음 한글 번역문을 감수자의 이름으로 덧 붙였다.
(독후감)
나는 임진왜란의 연구자로서 이광수의 소설 “이순신”을 처음으로 읽었다. 지금까지 임진왜란 연구자들이 소설을 사료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최초의 역사가의 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제목은 ‘이순신’이지만 실은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이순신의 활동을 중심으로 써졌다는 점에서 다른 소설, 예컨대 박종화의 “임진왜란”과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순신”이란 소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박종화의 "임진왜란"은 1954년에 써졌고, 을유문화사에서 6권으로 간행되었다.)
1) 이순신 전은 주로 이순신의 전투를 중심으로 서술한 것이지만 육전과 해전을 비교해 서술했다. 조선 왕조 당국자들의 육전 중심의 성향을 비판했으나 유성룡에 의해 천거된 이순신만이 전쟁 준비를 했음을 강조했다.
2) 이순신이 거북선을 처음으로 만들었음을 소설화했고, 수전에서의 승리는 난중일기의 자료를 중심으로 옥포해전, 한산도 해전, 부산진 전투,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을 다루었다. 육지의 지상전에서 완전패배에 비하여 해전의 승리는 이순신의 뛰어난 전략, 적의 동태에 대한 정보확보, 지세와 조류의 이용, 투철한 사생관 등에 의한 것임이 강조되었다.
3) 해전에서는 원균과의 대조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해전에서의 설명에서 당시 실록자료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고 전쟁사에서도 연려실기술자료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4) 육지 전쟁과 이순신 관계에서 당시 당쟁을 상당히 강조했다. 오늘날 역사연구자는 당쟁을 강조하면 일제의 식민사관이라고 오해를 받을가봐 당쟁의 영향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이에 반해 그는 당파간의 다툼을 크게 강조하였다. 이는 일부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5) 그는 이 소설에서 현재의 한자식 지명에서 이를 당시 지방민이 불렀던 한글식 지명 표기를 많이 하고 있는 점은 임진왜란 연구자들이 참고해야할 내용이다.에컨대 견내량을 ‘겨냇도’로 표기한 점(211 쪽) 등 수많이 있다. 이런 지명을 살리는 것은 꺼져 가는 고유지명의 읽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6) 명군의 수군장 진린과의 알륵과 타협을 서술한 점 점, 순천 왜교성에 있던 소서행장이 탈출하기 위해 순천에 주둔하고 있던 명나라 육군 사령관 유정에게 준 뇌물공세, 진린에게 준 뇌물 공여 등은 역사가의 연구와 일치한다. 비록 소설이기 때문에 전장에 등장하는 인물에 가공 인물이 추가될 수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서술은 역사적 상황과 일치하는 점이 대단히 많다고 할 수 있다.
5) 당시 실록 자료 특히 선조실록 자료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선조에 대한 서술이 상당히 우호적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6) 이순신이라는 주제의 소설이기 때문에 임진왜란에 대한 서술을 많이 하면서도 이 전쟁을 전반적으로 다루지 못 했지만 민족의 영웅을 발견하여 이를 강조한 점은 그의 역사의식의 일단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 그는 마지막에 충무공이란 시호가 “왕과 그 밑에 썩은 무리들이 준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자신은 싫어 한다고 한 것은 그의 역사의식의 한 자락을 표현해준다고 할 수 있다.
8)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은 문학가의 저술을 등한시하거나 아예 도외시했다. 그러나 이는 역사가가의 잘못으로 생각되고 문학가의 역사소설도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가는 역사자료만을 넘어서 문학과 철학의 연구성과를 항상 관심깊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에서 역사소설을 비평하는 틀과 방법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이 소설을 읽고 피상적인 느낌을 썼다. 그후 공임순씨의 '박종화와 이광수의 시계열화적 연구'라는 논문을 한편 읽었다. 박종화는 이광수을 친일문학갈로 배척되고 납북된 것을 복권하는운동에 주역이 되었음을 위 논문에서 확인하였다. 박종화의 임진왜란이란 장편소설을 다 읽어보고 이 두 책의 장단점을 논해보려 한다.. 박종화는 민족론, 민족문학론, 민족주의문학론을 제창한 분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한국사학자들이 원용한 사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낙암선생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사학에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나로서는 사학자들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분석하는 사례를 일찍이 본 바 없었는데
낙암선생의 글을 보고 새로운 인식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문학이고 문학은 실증자료를 그대로 분석하고 해석하기 보다는 허구를 중심으로 한다는 상식 때문에
언제나 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였으나 낙암선생의 글을 보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모든 소설은 역사가의 비평을 받아 마땅하며 그리하여 독자들의 인식을 가다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의 비평이 결코 문학작품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순신이 세계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독으로 추앙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숭배의 대상이기도 합니다만
소설과 역사적 기록을 아울러 인식하지 못하였음을 스스로 깨닫고 낙암선생의 노고에 대하여 경의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
한산도의 제승당을 찾아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림(청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