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비애/ 이철수
어느 날 작업복 차림에 아저씨가 주민자치센터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잠시 머뭇거리다 검은 봉지를 내려놓고 총총히 사라진다. 그는 가난한 보일러 수리공이다. 수년 전 홀어머니를 여읜 뒤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의 고독을 알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틈틈이 모은 돈을 기부한 것이다. 또 얼마 전 가엾은 어린이들을 돕다 세상을 떠난 짜장면 배달부 아저씨도 있다. 이들이야 말로 정말 감동적인 문학작품이 아닌가. 어느새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난다. 사나이는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면서, 누군가에겐 주책이라고 타박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고 만다. 눈물은 사랑을 잉태하는 청량제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어느 시인을 생각하면 눈물보다 안타까움에 화가 난다. 시인의 낯빛이 어둡다. 그의 아내가 이혼을 원하고 있다. 이별은 슬픈 일인데 기어이 헤어지려 한다. 숙려기간 동안 심사숙고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지긋지긋한 고통이라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오십을 눈앞에 바라보는 나이에 이별을 통보받다니 허허벌판에 허수아비처럼 버려진 기분일 것이다. 억울하고 말문이 막힐지도 모른다. 처갓집에 아들 노릇은 물론 처남을 위해 형 노릇도 성심을 다한 적이 있는데 또한 아내와 자식을 위해 나름 피곤한 몸을 곧추세우며 부양하여 왔는데......, 하지만 지금의 처지로 보아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어둠 컴컴한 지하 단칸방에 파산 직전에 놓여있는 경제상황,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 무엇보다 가족에게 신뢰와 희망을 잃어버린 그의 정신상태다. 자신이 당면한 현실을 직시하고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서려 하지 않고 쓸데없는 자만과 허영심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연세 들고 병으로 신음하는 부모에게 효도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원망하고 의존하려는 철없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안았다. 꿈 많고 열정 가득한 청년이었다. 가난한 시골 집안을 일으켜 줄 책임감 있는 장남이었다. 옳은 것을 소중히 할 줄 알고 그른 것을 배척하는 뚝심과 어려운 이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외투를 양보할 줄 아는 따뜻함이 있었다. 더러는 대학등록금을 경마장에 날려 버리고 군대에 가야하는 철없는 객기도 있었다. 지기 싫어하는 무모한 고집도 있었다. 그 시절에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청춘의 흔적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육지에서 갓 스무 살 넘은 아내를 이곳 섬으로 데리고 오면서 그의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녀에게 이곳은 문화도 생활환경도 낯설었다. 사실 그를 만난 서울에서 단둘이 생활하고 싶었지만 임신 상태에서 그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그녀의 살림살이는 편안하고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직업상 매일 늦게 퇴근하는 남편과 농사짓는 시부모를 도와 거들어야 하는 농사일이 오죽 힘들었을까. 게다가 챙겨야하는 시집에 제사와 경조사도 그녀에겐 짐이었다. 무엇보다 만사가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눈으로 보는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무엇이든지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이 쌓이다 보니 스스로 우울증을 불러오고, 사는 게 짜증이다. 그래도 하소연 할 데는 남편이다 보니 불평과 잔소리를 해대지만 그로서도 딱히 해결할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부모님 면전에서 다투고 목청 높이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부모님은 그들 부부를 분가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업을 택했다. 여행업은 직장 생활보다 훨씬 자유롭고 아내와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많았다. 하지만 돈벌이가 쉬운 반면 고정적인 수입이 되지 못하고 또한 쉽게 벌다보니 씀씀이가 커졌다. 무엇보다 계획성 있는 가계를 꾸리지 못했다. 아내 또한 가계를 통제하고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아내에게 사무직 일자리를 구해주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매번 그만 두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고 사람과 부대끼고 소통하는 것을 귀찮아했다. 그저 남편만 믿고 생각 없이 그냥저냥 살아온 것이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고 자식은 커가고 들어갈 돈은 많은데 수입은 별반 없으니 쪼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빚은 늘어나고 써야할 생활비도 늘어나고 부부싸움도 늘어나고 결국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가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다단계판매라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일은 그를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몰아갔다.
이 섬에서 최고의 부자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세뇌시켰다. 주위에서 걱정하고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듣지를 않았다. 설명회에 억지로 부모님을 불러들이고 싫다고 하는 아내를 윽박지르고, 형제들에게 마지못해 투자하도록 강권을 했다. 미친 듯이 열정을 쏟았지만 그건 옳은 방향이 아니었다. 혹여 자신의 말에 호응을 안 해주면 논리적으로 설명해 보라며 억지를 부리거나 심지어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양심을 파는 행위였다. 그가 흥분하면 할수록 주위 사람을 괴롭히는 일임을 깨닫지 못하였다. 일확천금을 바라는 그의 빗나간 행위는 오히려 빚의 수렁에 빠지게 했고 가난의 굴레를 덧씌우고 있었다. 무디어진 양심을 추스르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너무 멀리 와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그물망 같이 촘촘히 양심을 가두어 버리는 그 곳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고 나올 때 거리는 검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회한의 비를 맞으며 거리를 헤매다 허름한 선술집에 앉았다. 한잔 술에 눈물이 왈칵 복받쳤다. 누구를 원망하랴. 자신이 선택한 길인걸. 그는 쓰라린 경험을 말하고 싶었다. 그 아픔이 절절하게 언어가 되어 시로 태어났다. 그는 그렇게 시인이 되었다. 하지만 시인이 되기 위해 그는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다. 부모님과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실망을 안겨 주었다. 부모님이 마련해준 주택도 넘어갔고 심지어 부모님이 소유한 땅도 처분해야 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다.
그래......! 인생에 정해진 정답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그 말을 믿고 싶다. 시인은 이제 아내를 놓아주려 한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생활 전선에 나서면서 남편 없이도 살아갈 자신을 얻었나 보다. 그를 쳐다보는 일이 괴로움이고 고통이라는데 아내가 마음 고쳐먹기를 바라는 것은 염치가 없어 보인다. 이유야 어쨌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시인의 잘못이 크다. 더 이상 미련도 집착도 버리고 이제 아내의 처분에 따르기로 했다.
어느 집이든 가만히 들여다보면 힘든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여도 그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픔이 있고 한숨이 있다. 그래도 생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견디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있어 세상은 감동이 있고 아름다운 것이리라. 내 어려움을 알기에 내 보다 더욱 힘들고 괴로운 이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보일러 수리공이 있고 짜장면 배달부가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있기에 희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사랑의 씨앗이 세상 구석구석 피어나려 기지개를 펴는 것이다.
시인이여! 비애를 노래하는 그대 시인이여!
최고의 갑부가 되겠다는 물욕과 허영에 빠져 여러 사람을 현혹하거나 괴롭히지 말고 가난하지만 사람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착한 영혼을 위해 노래하라. 이제는 제발 늙어가는 부모님에게 어린애처럼 투덜대지 말고 당당히 일어서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대 시인이여!
자존심도 상처를 입고 명예도 상처를 입어보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제 고통의 주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무엇이 두려운가. 눈물의 불꽃으로 타올라라. 감동의 눈물을 그대의 몸으로 보여 주고 아름다운 눈물을 그대의 언어로 노래하라. 그것이 그대 시인의 의무이고 살아가야 할 이유다. 내 사랑하는 형제여 제발!
첫댓글 저 생각에는 본인 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비애를 저 시인은 혼자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도 어쩐지 좀 더 그에게 다가가야한다는 느낌이... 잘 읽었습니다. 수필에 門外漢이지만 외람되이 저의 느낌을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