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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周 書 ❊ |
[11] 梓材
이 글은 섭정(攝政)하는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의 이름으로 강숙(疆叔)에게 나라 다스리는 이치에 대해 깨우친 것이다. (이기동『서경강설』)
이 또한 무왕(武王)이 강숙康叔을 가르친 글이니, 治國의 도리를 말하여 上下의 情을 통하고 刑罰의 씀을 너그럽게 하고자 할 것이다. 篇 가운데 ‘梓材’라고 쓴 두 글자가 있으니 계전稽田·작실作室에 비하여 고상함이 된다. 그러므로 간편簡編의 구별을 삼은 것이요,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금문과 고문에 모두 있다.(亦武王誥康叔之書니 諭以治國之理하여 欲其通上下之情하고 寬刑辟之用이라 而篇中에 有梓材二字하니 比稽田作室에 爲雅라 故로 以爲簡編之別이요 非有他義也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채침『서경집전』)
○ 按此篇은 文多不類하니 自今王惟曰以下는 若人臣進戒之辭라 以書例推之컨대 曰今王惟曰者는 猶洛誥之今王卽命曰也요 肆王惟德用者는 猶召誥之肆惟王其疾敬德王其德之用也요 已若玆監者는 猶無逸嗣王其監于玆也요 惟王子子孫孫永保民者는 猶召誥惟王受命無疆惟休也라 反覆參考컨대 與周公召公進戒之言으로 若出一口라 意者컨대 此篇은 得於簡編斷爛之中하여 文旣不全이요 而進戒爛簡에 有用明德之語하니 編書者 以與罔厲殺人等意合이라하고 又武王之誥에 有曰王曰監云者어늘 而進戒之書에 亦有曰王曰監云者하니 遂以爲文意相屬이라하여 編次其後하니 而不知前之所謂王者는 指先王而言이니 非若今王之爲自稱也요 後之所謂監者는 乃監視之監而非啓監之監也니 其非命康叔之書 亦明矣라 讀書者 優游涵泳하고 沈潛反覆하여 繹其文義하고 審其語脈하면 一篇之中에 前則尊諭卑之辭요 後則臣告君之語니 蓋有不可得而强合者矣니라.
1. 王曰 封아 以厥庶民 曁厥臣으로 達大家하며 以厥臣 達王은 惟邦君이니라.
2. 汝若恒越하여 曰 我有師師는 司徒 司馬 司空 尹旅니
曰予罔厲殺人이라하라 亦厥君 先敬勞니 肆徂厥敬勞하라
肆往姦宄殺人歷人을 宥하면 肆亦見厥君事하여 戕敗人을 宥하리라.
· ‘汝若恒越’에서 ‘越’은 ‘조음소’ / ‘尹旅’(윤려)는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
· ‘肆徂厥敬勞’에서 ‘徂’(조)는 ‘따르다’
· ‘肆往姦宄殺人歷人’에서 ‘姦宄’는 ‘간악한 도둑’. ‘歷人’은 ‘전과자’ / ‘宥’(유) 용서하다
· ‘戕敗人’(장패인)은 ‘남을 해치거나 무너지는 자’
왕이 말했다. “봉(封)아. 서민들과 관리들을 대가(大家)에 통하게 하고, 관리들을 왕(王)에게 통하게 하는 것은 오직 제후나라의 임금이다 그대는 항상 ‘나에게는 스승으로 섬기는 사도(司徒)·사마(司馬)·사공(司空)·윤려(尹旅)가 있다’고 말하라. ‘나는 사납게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말하라. 또한 임금이 먼저 공경하고 위로해야 (관리들이) 비로소 그 공경하고 위로하는 마음을 따라할 것이며, 그대가 왕년의 간악한 도둑이나 살인자 및 전과자를 용서해야 비로소 (관리들이) 또한 그 임금의 일을 보고, 해치거나 무너지는 자들을 용서할 것이다.”
* [강 설(講說)] ————————
여기서 주공(周公)이 강숙[封]에게 당부하는 정치 원리는 두 가지이다. 첫째 경건(敬虔)한 마음을 가지는 것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백성들에게 대하는 것이다. 경건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이고, 백성을 용서하는 것은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천자의 정치방법은 백성들에게 정치이념을 제시하고 도덕과 가치관을 확립시켜야 하는 것이지만, 제후의 정치방법은 그렇지 않다. 순수한 마음으로, 천자가 정한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도덕과 가치관을 따르면서 백성들을 직접 사랑하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되, 일을 경건(敬虔)하게 하고 미덥게 하며, 쓰는 것을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 여기에서 ‘王曰’로 시작되는 말은 역시 주공의 말이다. 어린 성왕을 대신해서 말한 것이다.
3. 王啓監하심은 厥亂 爲民이니 曰 無胥戕하며
無胥虐하여 至于敬寡하며 至于屬婦하여 合由以容하라.
· ‘王啓監’에서 ‘啓’(계)는 ‘열다, 시작하다’ 즉 여기서는 ‘세우다’. ‘監’은 ‘감독, 총독’
· ‘厥亂 爲民’에서 ‘亂’은 ‘다스리다’ / ‘至于敬寡’에서 ‘寡’는 ‘나약한 사람’
· ‘至于屬婦’애서 ‘屬’은 ‘이어주다’. 여기서는 ‘부인을 이어주다’ 즉 ‘부인을 돌보다’
· ‘合由以容’에서 ‘由’는 ‘그로 말미암아’란 뜻인데, 문맥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번역을 생략.
“왕이 감(監)을 세워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서로 해치지 말며 서로 학대하지 말고 나약(懦弱)한 자를 공경함에 이르고 부인(婦人)들을 돌보는 데 이르러, 모두를 하나로 합하여 포용(包容)하라’고 하셨다.”
* [강 설(講說)] ————————
주공이 강숙에게 당부의 말을 하면서, 성왕이 결정하고 성왕이 말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말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왕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라는 말이 성립한다. 만약 전체의 말이 주공의 말이 아니고, 왕이 직접 한 말이라면 ‘왕이 여차여차하게 말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王이 其效邦君 越御事인댄 厥命은 曷以引養引恬이리오
自古로 王若玆하니 監 罔攸辟이니라.
· ‘引養引恬’에서 ‘恬’(념)은 ‘편안하다, 조용하다’ / ‘監 罔攸辟’에서 ‘辟’은 ‘벽(僻)’ 치우치다.
“왕(王)이 나라의 제후(諸侯)들과 어사들에게 모범(模範)을 보이신 것이니, 명령(命令)하시는 것만으로 어찌 이끌어 기르고 이끌어 편안하게 하셨겠는가! 자고로 왕께서 이와 같으셨으니, 감(監)은 치우치는 바가 없어야 할 것이다.”
* [강 설(講說)] ————————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의 정치 성향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다. 성왕(成王)의 훌륭한 정치를 설명함으로써 성왕(成王)을 중심으로 정치 체제를 확고하게 하려는 것이다. 전체의 말이 주공(周公)의 말이 아니고 성왕(成王)의 말이라면, ‘왕은 이와 같았다’는 말처럼 왕의 일을 객관화시켜서 하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4. 惟曰 若稽田에 旣勤敷菑인댄 惟其陳修 爲厥疆畎하며
若作室家에 旣勤垣墉인댄 惟其塗墍茨하며
若作梓材에 旣勤樸斲인댄 惟其塗丹雘이니라.
· ‘若稽田’에서 ‘稽’(계)는 ‘살피다, 다스리다’
· ‘旣勤敷菑’에서 '敷菑'(부치)는 ‘밭을 개간하다’ / ‘爲厥疆畎’에서 ‘畎’(견)은 ‘밭도랑’
· ‘旣勤垣墉’(기근원용)에서 ‘垣’(원)은 ‘담을 만들다’, ‘墉’(용)은 ‘담’
· ‘惟其塗墍茨’에서 ‘塗’(도)는 ‘칠을 하다’. ‘茨’(자)는 ‘지붕을 이다’
· ‘若作梓材’에서 ‘梓’(재)는 ‘가래나무’. ‘梓材’(재재)는 ‘가래나무 목재’
· ‘旣勤樸斲’(기근박착)에서 ‘樸斲’(박착)은 ‘통나무를 깎는 것’
· ‘惟其塗丹雘’(유기도단확)에서 ‘丹雘’(단확)은 ‘단청을 칠하다’
(왕이) 오직 말했다. “만약 밭을 다스림에 이미 부지런히 일구었으면 오직 펼쳐 닦아서 밭두둑을 만들고 이랑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만약 집을 지음에 이미 부지런히 담을 만들었으면 오직 칠을 하고 지붕을 이어야 할 것이며, 만약 가래나무 목재를 만듦에 이미 부지런히 통나무를 깎아 놓았으면 오직 단청을 칠해야 할 것이다.”
* [강 설(講說)] ————————
이 또한 주공(周公)의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릇 모든 일에 있어 시작이 중요한 만큼 마무리도 중요하다. 왕(王)이 시작을 한 것이라면 제후(諸侯)는 마무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주공은 강숙 봉(封)에게 마무리를 잘하라고 비유(比喩)를 들어 설명하였다.
5. 今王 惟曰 先王이 旣勤用明德하사 懷爲夾하신대
庶邦享作 兄弟方來하여 亦旣用明德하니
后式典集하시면 庶邦 丕享하리이다.
· ‘旣勤用明德’에서 ‘用’은 ‘이(以)’와 같은 뜻.
· ‘懷爲夾’(회위협) ; 마음에 품고 부축하다
· ‘后式典集’에서 ‘式’은 ‘본받다’. ‘典’은 ‘전아(典雅)하다, 품위가 있다.
’
“지금 왕(王)께서 오직 말씀하시기를, ‘선왕(先王)이 이미 부지런히 덕(德)을 밝히시어 (백성들을) 품고 부축하셨으니, 여러 나라들이 누리고 진작되었으며, 형제 나라들이 사방에서 와서 또한 이미 덕을 밝혔다. 제후들이 이를 본받아 품위 있게 모여준다면 여러 나라들이 크게 누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강 설(講說)] ————————
이 또한 주공(周公)의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今王’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특히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주공의 말 자체가 ‘王曰’로 시작 되는데다가, 주공(周公)의 말 가운데 ‘왕에 대한 호칭과 왕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혼동하기 쉽다.
아마도 강숙(康叔)을 봉하는 자리에, 적어도 성왕과 주공, 강숙 그리고 사관이 배석했을 것이다.
6. 皇天이 旣付中國民과 越厥疆土于先王하시니
7. 肆王은 惟德을 用和懌 先後迷民 用懌하시니 先王受命하소서.
“하늘이 이미 중앙의 백성들과 그 영토를 선왕에게 맡겨주시고, 이어서 왕께서 오직 덕을 가지고 조화시키고 기쁘게 만드시니, 선후의 미혹된 백성들이 기뻐하였으므로 선왕이 받은 천명이 이미 이와 같다.” * '懌'(역) ; 기뻐하다
8. 已若玆監하소서 惟曰 欲至于萬年惟王하사 子子孫孫 永保民하노이다.
감(監, 강숙)이 오직 말했다. “만년에 이르도록 오직 왕 노릇을 계속하시어 자자손손이 영원히 백성들을 보호하시기를 바랍니다.”
* [강 설(講說)] ————————
감(監)이 된 강숙(康叔) 봉(封)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 [무왕(武王)과 주공(周公)] — 주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기틀을 다진 문왕의 아들들
주나라 문왕(文王) 창(昌)은 성이 희(姬), 그 아들은 모두 9명으로 알려져 있다. 맏아들은 주왕에게 잡혀 가마솥에 넣고 끓여 죽이는 팽형(烹刑)을 당했고, 둘째가 주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이며 셋째가 관숙(管叔) 선(鮮)이고, 넷째가 주공(周公) 단(旦)이요, 다섯째가 채숙(蔡叔) 도(度)이며 여섯째가 곽숙(霍叔) 처(處)이고 … 마지막 아홉째가 강숙(康叔) 봉(封)이다. 서부족인 주나라는 문왕(文王)이 기틀을 닦고 아들 무왕(武王)이 은을 정벌하여 나라를 세우고 무왕의 성왕(成王)이 그 뒤를 이었다.
주나라 주공(周公)은 공자(孔子)가 평생 흠모한 인물이다. 유가들이 고대 중국의 최고 성인으로 추앙하는 주공은 문왕의 넷째 아들이며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동생이다. 문왕은 강태공이라는 책사를 얻어 망조가 짙어가는 은나라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 세력을 키웠고, 그의 아들 무왕은 동생 주공을 책사로 중용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다. 진시황의 생부로 알려져 있는 여불위가 편찬한『여씨춘추(呂氏春秋)』는 “주공(周公)은 형이자 천자인 무왕(武王)의 스승 노릇을 했다”고 적고 있다.무왕은 주나라를 세운 뒤 6년 만에 어린 아들 희송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난다. 주나라 2대 왕 성왕이 바로 희송이다. 주공은 모든 권력을 쥐었지만 어린 조카의 왕위를 넘보지 않고 ‘조카’를 충(忠)으로 보필했다. 주공은 7년 섭정을 마친 뒤 성왕에게 온전히 권력을 넘겨줬다. 피비린내 풍기는 권력 찬탈의 시대를 산 공자는 이런 주공을 평생 흠모했다.
무왕(武王)은 상(商)을 멸망시킨 뒤에 공을 세운 공신(功臣)이나 부족 그리고 왕실(王室)의 일족들을 대상으로 대규모로 분봉(分封)을 하였다. 특히 상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 녹보(禄父)라고도 한다]을 상(商)의 도읍인 은(殷, 지금의 河南 安陽)에 봉하여 상의 유민(遺民)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 했다. 그리고 그가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그 주위에 자신의 세 동생들을 분봉(分封)하였는데, 관숙(管叔) 희선(姬鲜)을 관(管)의 제후로 봉했으며, 채숙(蔡叔) 희도(姬度)를 채(蔡, 지금의 河南 上蔡)의 제후로, 곽숙(霍叔) 희처(姬處)는 곽(霍, 山西 霍州)의 제후로 봉(封)하였다.
이들은 무경(武庚)과 상의 유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맡았기에 ‘삼감(三監)‘이라고 불렸다. 기원전 1043년 무렵, 무왕(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즉위하였으나, 성왕(成王)은 아직 나이가 어려 관숙(管叔)의 바로 아래 동생인 주공(周公) 희단(姫旦)이 섭정(攝政)이 되었다. 관숙(管叔)과 채숙(蔡叔), 곽숙(霍叔)은 이에 불만을 품고 주공(周公)이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는 말[流言]을 사방이 퍼뜨렸다. 그리고 무경(武庚)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를 ‘삼감(三監)의 난(亂)’이라고 한다. 주공(周公)은 소공(召公) 희석(姫奭) 등의 도움을 받아 3년 만에 반란을 진압하였고, 관숙(管叔)과 무경(武庚)은 처형되었다.
소공(召公)은 문왕(文王)의서자(庶子)로 이름은 석(奭). 시호는 강(康)이다.성왕(成王) 때 주공(周公)과 함께 삼공(三公)이 되어 섬서성(陝西省) 서쪽 지방의 땅을 다스렸는데,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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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經』「周書」(書經集傳 卷七) [1]泰誓~[11]梓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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