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요한3서1:1-8
제목: 함께 수고하는 자
일시: 2013. 6. 30
장소: 라이프찌히교회
I. 요한 3서는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교우에게 쓴 서선서이다. 수신자 가이오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김집사님 이집사님 박집사님처럼 일반적인 흔한 이름이었고 요한은 그를 몹시 사랑했던 것이 분명하다. “...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라고 지칭하고 있다. 짧은 서신에서 5번이나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축복을 아끼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절).
요한이 가이오를 그토록 사랑했고 축복을 아끼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그가 진리 안에 거하고 진리 안에서 행하였기 때문이다. 진리 안에서 거하는 것은 요한이 가장 기뻐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그러면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 대표적인 일이 무엇인가? 오늘 말씀에서는 나그네를 영접하고 그를 잘 환대해 보낸 일이다.
II. 나그네란 어떠한 사람들인가?
나그네는 머물 곳이 정해져 있지 않는 사람들이다. 잠자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시험이든 우워라우프이든 어떠한 여행을 하든지 간에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이 숙소이다. 숙소가 정해지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만일 숙소를 가서 정한다고 하면 불안하기 그지 없다.
입시철이 되어 시험을 치르기 위해 다른 도시를 여행하게 된다. 권목사는 우리의 지체들이 어디 가서들 잠을 잘까 신경이 몹시 쓰인다. “다음 주는 어디로 시험보러 가?”라고 묻지만 답은 “그래 잘 치고와” 일 뿐이다. 맘 같아서는 어디로 가는데? 숙소는 어디야? 아는 사람은 있어? 내가 그곳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소개시켜줄까? 등 오가니지어렌을 해 주고 싶지만, 그 도시에 아는 목사님의 사택 방이 차고 넘칠까봐 말도 못한다. 어떻게든지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또한 나그네는 늘 배고픈 사람들이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음식이 안 맞아서 고생를 하기도 하고 먹는 시기를 놓쳐 식사를 거르기도 한다. 여행을 할 때 어디서 <뭘 먹을 건데>가 중요한 결정사항이다.
그래도 오늘날에는 숙박시설이 잘 되어 있고 레스토랑이 어디가나 있으며 치안도 잘 되어 있어 형편이 낫지만 요한이 이 편지를 쓰던 당시는 1세기 말로써, 숙박시설이 제대로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있는 곳도 값은 비싸고 더럽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했다. 간혹 주막의 주인이 도둑이기도 했고 손님을 공갈하며 바가지를 씌우기 일쑤였다. 그래서 손님은 잠 잘 곳을 발견했다하더라도 안전까지 신경을 써야했다. 주막, 숙박업소 주인은 사실은 천민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헬라사회에서는 손님을 대접하고 돈을 받는 행위는 인정받지 못했고 천민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나그네의 어려운 상황과 사회 분위기에서 가이오는 나그네들을 영접하고 대접을 잘 해 주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 가이오가 캐어해준 나그네는 어떠한 사람들인가? 그들은 “형제”였다. 그 형제들은 “나그네 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순례하는 이름 없는 복음 전도자들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생업과 가정을 위해서라면 그냥 정착해서 살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위해서 나그네 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다. 당시에는 지역은 넓고 사역자는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복음전도자는 나그네로서 주의 일을 해야만 했다.
가이오가 나그네들에게 그렇게 한 것은 시간이 있고 돈이 많고 집에 빈방이 많아 여유가 있어서 그랬을까? 분명 그는 그 차원을 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신실한 믿음으로 행했다. 그는 숙박업을 한 것도 아니고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계산하면서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Open House를 넘어서 Open home을 한 것이다. 그는 Open door를 넘어서 Open mind를 한 것이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 신실한 마음으로 하는 사람, 은혜와 믿음으로 하는 나그네를 영접한 사람이었다. 그때 나그네들은 그 사랑과 환대로 평안함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III. 요한은 가이오에게 나그네를 잘 영접하고 전송하라고 격려하고 있다.
가이오에게 환대를 받은 나그네들은 각기 자신들의 교회로 돌아가서 가이오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소개했다.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6절). 아마 그 입소문으로 이후에 사람들은 가이오에게 연락을 많이 했을 것이다. 사람이 좋다보면 그 사람 주변에 사람이 좀 많이 들끓는다. 그래서 좀 피곤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요한은 이러한 가이오의 신실하고 진리 가운데 행하는 그 소문을 듣고 기뻐하면서 더욱 그를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합당한 일이니 계속하라는 것이다. 마땅한 일이니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 나그네들을 영접하고 전송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그 나그네들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그네된 형제들은 복음을 전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복음을 듣는 자들이 그들을 대접할 정도로 성숙되어 있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순전히 자신들이 자비량해서 선교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나그네들을 영접하고 그들을 떠나보낼 때 전송하라고 한다. 여기서 전송은 무엇인가? 돈과 먹을 것과 옷을 주라는 의미였다.
지난 주에 한규현 박은미 선교사님부부가 교회를 방문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연구소에서 물리학자로서 있으면서 교회에서 집사로서 4년간을 함께 동역했던 이들이다. 이곳에서 정말 열심히 사역하다가 스웨덴에서 선교사로 변신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곳 아이젠반으로 옮긴 후에 이번에 연락이 와서 무조건 오라고 했다. 교제하자고 했다. 그리고 선교리포트를 해 달라고 했다. 일차 그곳에서 무슨 사역을 하는지 함께 공유하기를 원했고 둘째, 원색적인 표현이지만 교통비라도 드리려면 몇 마디라도 해야 했기에 말이다. 무엇이든지 드리기를 원해서 이것 저것 싸드렸다. 무엇보다 잘 드린 것은 깻잎 모종과 부추 모종을 드린 것이다. 그리고 대화하면서 뭐가 가장 힘드느냐고 했더니 사람이 그립고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월이든 안식년이든 라이프찌히를 베이스로 할 수 있으니 오라고 했다. 몇 번 이야기 한 줄 아는가? 3번 이상이었다. 3번의 반복은 각인시키는데 참 좋다. 음식을 권해도 3번 권하라. 먹고 맛 있있다고 말할 때도 3번! 진정한 마음을 표할 때도 3번이다. 다음 주에는 조규석, 클라우디아 선교사 부부가 온다. 잘 대접하려고 작정한다. 교우들도 잘 대접하기를 바란다. 짜내어 선교비도 드리고 식사에도 초대하고 많이 들었다고 이야기 하고 얼마나 사역현장에서 힘들었느냐고 위로도 하고 식당에도 같이 가고...
가이오가 영접하고 전송했던 형제된 나그네들처럼 오늘날 복음을 위해서 애쓰는 우리의 지체들을 캐어해야 한다. 그것은 마땅한 일이고 합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의 생산자이기 때문이다.
IV. 왜 형제된 나그네들을 영접하고 전송해야 하는가?
나그네들이 복음을 위하여 수고 하는 것처럼 그 나그네들을 영접하고 전송할 때 가이오도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8절). 선교에서 보면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낸 자가 있다. 나그네들은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현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한편 가이오는 그 나그네들을 보낸 자가 된다. 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각자의 역할과 mission 이 있는 것이다. 나그네들은 복음을 현장에서 전하는 자로서의 역할이 있었고 가이오는 후방에서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팀웍을 이루어 했을 뿐이다.
가이오가 한 일은 인간적으로 칭찬받을 일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마땅한 일이었다. 즉 가이오가 한 일은 큰 선심을 써서 해준 일이 아니라,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돕는다는 말이 여기서 어울리지 않는다. 돕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돕는다는 말은 옵션의 의미가 있다. 그 말 속에는 내가 최종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 돕다가 어려우면 그만 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 일로 생각하는 사람은 돕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냥 한다.
전통적으로 집안 일이 여자 일이고 밖에서 돈버는 일은 남자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났고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많아졌다. 아내가 힘들게 일하고 저녁때 퇴근하고 왔는데, 신문이나 펴 들고 밥상 차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풍경은 요즘 어떻게 비춰지겠는가? 아내가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아침상 차려달라고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다!!! 함께 해야 한다. 조금 도왔다는 생각조차도 버려야 한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돕지 말라! 그 일을 내 일로 알아서 하라. 집안 청소를 하는가? 아내를 돕는다고 생각지 말라! 그냥 하라! 아기를 보는가? 아내를 돕는다고 생각지 말고 그냥 하라! 그 애기가 남집애기냐? 아내를 도와 요리를 한다고? 내일 저녁도 내가 요리를 할 것이다. 그냥 하라! 집 안에서 무언가 했다고 대견해 하지 말라. 그것이 남의 집이냐 자기의 집임을 깨달으라.
교회와 선교의 현장이 바로 그러한 곳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지체로서 누구하나 돕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며 지체들과 더불어 팀웍을 이루며 일을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자로서 보낸 자나 보내는 자가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권목사는 리더들, 여러 지체들의 사역들을 감사하다고는 하지만, 엄격히 내가 감사할 일은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만일 권목사를 도우면 권목사 교회가 된다. 교회 일을 하는데 목사를 돕지 말라! 그냥 하나님 앞에서 하라. 가이오가 행한 일이 진리에서 행하고 마땅한 일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행하라. 그것은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기 위함이다. 목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해서 주를 위해서 하라!
V. 이제 휴가철과 방학이 되어간다. 많은 이들이 나그네가 되어 떠나가고 많은 나그네들이 교회를 방문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접하라. 그들을 환대하라. 거기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하라. 신실하게 최선을 다해 영접하라. 특별히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을 정성껏 영접하고 전송하라. 이것은 우리에게 마땅한 일이다. 다음 주에 조규석선교사 가정이 오고 종교개혁탐방팀으로서 영남대 신학생들이 40명이 방문하고 10여명의 침례신학대학생들이 온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수학캠프를 위해서 김철중목사님 팀이 6명 오신다. 그 가운데 두 분은 수학을, 세 분은 음식을, 한 분은 교회건물공사를 위해 오신다. 많은 나그네들이 오고 가고 한다. 우리 역시 나그네가 되기도 한다. 진리 안에서 행하기를 바란다. 마땅한 일로 알아서 잘들 영접하라. 극진하게 대접하라. 풍성하게 환송하고 전송하라. 우리에게 칭찬하는 사도요한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지기를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