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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월 2일 주일
[(녹) 연중 제8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8주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울려 퍼지는 말씀은 지혜의 샘이며 삶의 규범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알아들을 귀를 열어 주시어, 교만으로 형제들을 그릇되게 판단하지 않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평화의 일꾼이 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사람은 말로 평가된다며,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말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나무는 열매를 보면 안다고 하시며,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27,4-7
4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5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
6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7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54-58
형제 여러분,
54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9-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야,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제대로 빼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형제의 눈에 있는 티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데도 자신은 뚜렷이 보고 있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빼내 주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뚜렷이 보지 못하고 있음을 먼저 살펴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를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상황에 적용해 봅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감정에 영향을 받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한 것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면서 그것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단죄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상처를 받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눈에 들보가 박히게 됩니다. 상처로 내 눈에 박힌 들보를 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고와 판단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감정을 돌보고 용서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용서에는 의지적 용서와 영적 용서 사이에 감정적 용서의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과정이기에 인내와 용기 그리고 지혜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의 말씀이 이 긴 여정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나의 말들로 나의 마음속 생각들이 드러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입으로 드러난 말들로 마음속 생각들을 살펴볼 때, 우리는 내 눈에 박힌 들보를 빼내고 용서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한창현 모세 신부)
사실 내 흠결이 가장 큰 것이 분명한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젊은 수도자들의 수련장 역할을 할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수련장은 수도회의 미래를 책임질 후배 수도자들의 전반적인 양성을 책임져야 하니 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수련장은 이태리어로 Maestro, 영어로는 Master, 그러니 말마디 그대로 스승이요, 바꿔 말하면 수도자들을 만드는 장인(匠人)입니다.
주로 주어지는 일은 미우나 고우나 늘 수련자들 곁에 붙어있으면서 제발 인간 되라고 잔소리하는 일입니다. 목표치를 설정해주고 밀어붙이면서 자극도 줘야 합니다. 그러나 마냥 그래서는 어린 수사님들이 견뎌낼 재간이 없습니다. 때로 상담가가 되어 위로도 해줘야 하고, 격려도 해줘야 하고 박수도 쳐 줘야 합니다. 당근과 채찍을 바꿔가며 사용하면서 수도자로서의 틀을 만들어주는 3D 업종 종사자가 수련장입니다.
정기적으로 수련자들을 집합시켜놓고 불러 모아놓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도 많이 했습니다. “수도자 될 사람이 이래도 되냐? 저래도 되냐? 기도시간 적어도 10분 전에는 딱 나타나 있어야 된다. 묵상 시간에 졸면 어떡하냐? 나중에 사목자요 공인이 될 사람이 밥 먹을 때 그렇게 소리를 내냐?”
그래놓고 나중에는 제가 자충수에 빠지곤 했습니다. 어떤 때 수련자들은 다들 기도시간에 일찌감치 나와 있는데 제가 제일 늦기도 했습니다. 다들 진지하게 묵상에 전념하고 있는데, 저만 묵상 시간에 쿨쿨 잘 때도 많았습니다.
예리한 수련자들은 그런 순간을 또 놓치지 않습니다. 딱 기억해놓았다가 자기들끼리 두고두고 수군거립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기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돌아보니 제일 미안했던 부분입니다. 내가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을 형제들에게 강하게 요구한 것입니다. 사실 내 흠결이 가장 큰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형제들의 작은 흠결에 연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름 스승이라고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던 사람들의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가 봅니다. 특별히 속에 든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잔뜩 폼만 있는 대로 잡고 다니던 스승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스승들을 향해 날리는 예수님의 직격탄은 속이 다 시원할 정도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4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들보라는 표현을 통해 꽤 센 과장법을 사용하십니다. 들보란 건물의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건너지른 나무(crossbeam)를 의미합니다. 꽤 무겁고 큰 나무토막이겠지요. 아무리 우리 눈이 왕방울만큼 크다 하여도 길이가 몇 미터나 되는 들보가 우리 눈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바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들보입니다. 몇 미터뿐만 아니라 수십 미터나 되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허물들, 결점들, 잘못들, 죄악들, 오류들, 언행의 불일치, 그릇된 지향, 하늘을 찌르는 위선, 극도의 이기심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이웃을 현미경으로 바라보기에 앞서 내 발밑을 먼저 자세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나란 모순덩어리의 존재를 알아가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상대방 입장에 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늘 겸손한 태도로 이웃들의 의견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참 인간이요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반성하고 진단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과오와 부족함에 대해 스스로 질책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도 권리도 없습니다.
이웃을 저울질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현실과 상황을 세밀히 살펴보아야 마땅합니다. 특히 날카로운 비판 전문가들은 이웃을 비판하기에 앞서 비판의 잣대를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눈먼 인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운명.
전삼용 요셉 신부님
어느 나라건, 어느 회사건 눈먼 인도자를 가진 시민이나 직원들의 운명은 그 인도자의 운명과 같게 됩니다.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잘못된 인도자를 뽑아 망하고 마는 나라의 예는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라고 하십니다. 부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눈먼 인도자를 알아보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우리가 인도자를 정할 때 그러면 말에서 어떤 내용이 나오는 것에 유념하면 될까요?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타인에게 돌리며 타인의 눈의 티에만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잘한 것은 자기 덕, 못 한 건 다른 사람 탓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분명 좋은 인도자일 수 없습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이런 인물이 많지만, 오늘은 미국에서 아직도 잘못된 인도자였다고 비판받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소개합니다. 리처드 닉슨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정치적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하버드에 합격하였지만, 집이 가난한 이유로 지방대를 나온 열등감의 소유자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맞붙은 사람은 존 F. 케네디입니다. 케네디가는 미국에서도 재력과 정치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가문입니다. 1960년 미국 역사상 첫 TV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잘 준비된 케네디에 비해 닉슨은 마치 병 걸린 사람처럼 비쳤습니다.
이 TV 토론에서 케네디는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비방하기보다는, 닉슨의 정책을 비판하며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닉슨은 경험 부족을 비판하면서 케네디를 공격했지만, 그의 공격은 관객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습니다.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는 열등감 때문입니다. 케네디는 오히려 자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며,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비방하는 대신 정책의 차이를 부각시킨 점이 중요한 사항입니다.
몇 년 뒤 1968년 인기가 없는 민주당 허버트 험프리와 붙었음에도 간신히 극미한 차이로 승리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처음부터 재선을 준비하였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많은 로비자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재선을 위해 민주당 선거캠프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큰 위기에 몰립니다. 이때 그는 자신을 도왔던 법률 고문 존 딘(John Dean)에게 이런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존 딘이 법정에서 닉슨의 모든 악한 면을 폭로함으로써 닉슨은 재선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닉슨은 끝까지 대통령이 하는 모든 행위는 위법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며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함은 말을 들어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반대의 경우입니다. 무일푼에서 자수성가한 3조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 글렌 스턴스가 90일 동안 100불로 100만 달러를 버는 도전이 TV에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차를 사고팔고 집을 수리해서 팔며 1억이라는 종잣돈을 모아 그것으로 바비큐 대회에 나가 1위를 함으로써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90일 만에 75만 달러의 가치를 받았습니다. 도전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도전에 너무 감사하며 특히 자신과 함께 이 도전을 한 이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했습니다. 실패한 것은 자기 탓이고 이만큼 한 것은 핑계 대지 않고 일해준 직원들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눈의 들보를 먼저 보며 상대의 눈의 티를 보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기 자신의 죄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제가 될 자격도 없다고 여겨 부제품까지만 받았습니다. 자기가 수도회의 장상이 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얼마나 많은 프란치스코의 제자들이 있습니까? 그저 자기 들보만 보려고 해도 이렇게 훌륭한 리더가 됩니다. 하물며 우리가 장차 우리나라를 맡길 인도자를 뽑는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고도 그들이 어떤 종류의 인도자가 될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면 우리 자신들이 눈먼 이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77년이면 48년 전입니다. 당시 저는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난 사람은 성공할 수 있고, 난 사람은 권력을 얻을 수 있고, 난 사람은 재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든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든 사람은 학문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식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지식은 문화와 문명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까? 맞습니다. 난 여러분이 공부를 통해서 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된 사람은 나는 누구인지를 성찰하는 사람입니다. 된 사람은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성찰하는 사람입니다. 된 사람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람입니다.” 48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선생님의 말씀은 제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고 합니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는 말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마음을 닫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옳고 합당한 말 같지만, 듣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는 말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판단입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네가 하는 일이 제대로 되는 일이 있겠니’라고 판단하면 자녀는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는 피부색, 외모, 직업 등 외적인 모습으로 쉽게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비난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주셨을 때입니다. 바리사이파는 예수님께서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냈다고 비난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한 죄인은 예수님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당신도 내려오고, 나도 내려오게 해 주시오”라고 비난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너는 왜 늘 그 모양이냐!’라고 말하면 자녀는 상처를 받습니다.
세 번째는 강요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부모가 자녀에게 재능과 능력을 보지 않고 의대나 법대를 강요하면 자녀는 상처를 받습니다. 네 번째는 당연시입니다. 한 신자가 교회에서 오랜 기간 봉사를 해왔지만, 몸이 힘들어 잠시 쉬고 싶다고 말했을 때, 신부님이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면 교우는 상처받습니다. 친구가 힘든 일을 겪고 속상해서 이야기하는데 때, 이렇게 말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정도로 왜 그래? 다들 그렇게 살아." 이렇게 말하면 친구는 상처받습니다.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에게 힘든 일이 있어서 위로받고 싶다고 했을 때, 남자 친구가 이렇게 말하면 곧 헤어질 수 있습니다. "네가 나 좋아하면 그 정도는 이해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의 제2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형제 여러분,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의 독침은 죄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말입니다.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선포하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다 알고 계시니 걱정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2000년이 넘은 지금에도 전해지고 있으며, 장례미사의 독서에도 봉독 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이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이 진실과 정의를 선포하는 말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 별처럼 빛나도록 여러분은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야 합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안젤라(십자가의)(Angela of the Cross)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연도 : 1846-1932년
같은이름 : 곤잘레스, 마리아 데 로스 안젤레스 게레로 곤살레스, 안젤리따, 안젤리타, 앙헬라, 앤젤라, 엔젤라
십자가의 성녀 안젤라는 1846년 1월 30일 에스퍄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의 중심지인 세비야(Sevilla)에서 가난하지만 신심 깊은 가정의 딸로 태어나 천사들의 마리아 게레로 곤살레스(Maria of the Angels Guerrero Gonzalez)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미래의 성녀인 그녀는 집안에서 안젤리타(Angelita)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삼위일체 수도회에서 요리사로서 일했고, 어머니 역시 세탁실에서 일했다. 그들은 1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자녀는 6명뿐이었다.
안젤리타는 신심 깊은 부모의 가르침과 모범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고 어린 나이부터 묵주기도 바치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종종 어머니가 본당에서 제대를 정리하는 동안 동정 성모의 성화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견되곤 했다.
5월 성모 성월이 되면 그녀의 집에는 동정 성모께 바쳐진 간단한 제대가 차려졌고, 그녀의 가족들은 묵주기도를 암송하며 성모님께 특별한 시간을 봉헌했다. 안젤리타는 8살 때 첫 영성체를 하고 이듬해에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녀는 정규 교육을 조금밖에 받지 못하고 어린 소녀 때부터 신발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인이자 신발 수선의 스승인 안토니아 말도나도(Antonia Maldonado)는 신심이 깊은 여성이었다.
매일 종업원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인들의 삶을 읽었다. 성당 참사회 회원인 세비야의 호세 토레스 파딜랴(Hose Torres Padilla) 신부는 안토니아의 영적 지도자로서 ‘성인을 만드는 분’이란 명성을 얻고 있었다. 안젤리타는 16살 때 토레스 신부를 만나 그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수도회에 들어가고 싶은 안젤리타의 소망은 커져갔고, 19살 때 산타크루스(Santa Cruz)에 있는 맨발의 카르멜 수녀회에 입회하고자 했지만 병약한 몸 때문에 거절을 당했다. 대신 그녀는 토레스 신부의 권고를 따라 콜레라에 걸린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콜레라 전염병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번졌기 때문이다.
1868년 안젤리타는 세비야에 있는 애덕의 수녀회에 다시 한 번 입회를 신청했고, 여전히 건강이 좋지는 않았지만 허락을 받았다. 애덕의 수녀회 수녀들은 그녀의 건강을 위해 그녀를 쿠엥카(Cuenca)와 발렌시아(Valencia)로 보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수련기간 중에 다시 애덕의 수녀회를 나와야 했고, 집으로 돌아가 신발가게에서 계속 일을 했다.
토레스 신부는 안젤리타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따로 있음을 믿고 있었지만 그 계획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었다. 안젤리타는 1871년 11월 1일 십자가 아래서 복음 전도자로서 일생을 살겠다는 개인적인 허원을 발했다. 그리고 1873년 환시를 통해 새로운 사명을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는 기도 중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는 십자가가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즉시 하느님께서 그 빈 십자가에 자신이 매달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 또한 그들과 함께 가난하게 되기를 요구하고 계심을 이해하게 되었다.
안젤리타는 토레스 신부의 뜻에 순명하며 신발가게에서 계속 일하면서 자유 시간에는 상세한 영적 일기를 쓰는데 시간을 쏟아 부었다. 이는 하느님의 부르심대로 장차 그녀가 살아야 할 삶의 방법과 이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875년 8월 2일 세 명의 다른 여성들이 안젤리타와 합류했다.
그들은 세비야에 집을 하나 빌려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날부터 그들은 밤낮으로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돕기 시작했다. 십자가의 안젤라라는 수도명을 얻은 안젤리타 원장수녀의 지도하에 십자가의 수녀회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있지 않을 때는 확실히 세상을 떠나 관상 생활에 전념했다.
그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기도와 침묵을 엄격히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밖으로 나갈 필요성이 있거나 가난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봐야 할 때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는 다른 수녀들을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돕고 사랑하기 위해 온 천사처럼 보았다.
1877년 두 번째 십자가의 수녀회 공동체가 세비야 주(洲)의 우트레라(Utrera)에 설립되었고, 다음해에 야야몬테(Ayamonte)에도 하나 더 설립되었다. 하지만 그 해에 토레스 신부가 선종하면서 호세 마리아 알바레스 신부가 수녀회의 두 번째 영적 지도신부로 임명되었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가 살아있는 동안 다른 23개의 수녀회 공동체가 설립되었고, 수녀들은 애덕과 가난과 겸손의 모범으로 모든 사람들 돌보고 감화시켜 나갔다. 사실 십자가의 안젤라 수녀는 모든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알려졌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는 1932년 3월 2일 세비야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982년 11월 5일 세비야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3년 5월 4일 마드리드의 콜론(Colon) 광장에서 100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른 네 명의 복자들과 함께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녀는 안젤라(앙헬라) 데 라 크루스(Angela de la Cruz) 또는 마리아 데 로스 안젤레스 게레로 곤살레스로도 불린다.
성 가롤로 (Charle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127년
같은이름 : 가롤루스, 까롤로, 까롤루스, 카롤로, 카롤루스, 샤를, 찰스
플랑드르(Flandre)와 아미앵(Amiens)의 백작인 카롤루스(Carolus, 또는 가롤로)는 매우 현명하고 자비롭게 백성을 다스렸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란 칭호를 얻었다.
그의 부친은 덴마크의 왕 성 카누투스 4세(Canutus IV, 1월 19일)이다.
그는 불과 5세 때에 플랑드르의 백작 작위를 받았고, 그 후 장성하여서는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십자군에도 참가하여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는 항상 하느님께 대한 신심을 가장 중하게 여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성당으로 맨발로 미사에 참례하러 가던 중에 그에 대한 불길한 음모가 싹트고 있었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항상 위험 중에 있지만,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다. 만일 우리가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참으로 의롭게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시편 150을 외웠다.
그는 성당의 제대 앞에서 인간들의 추악한 악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통회하던 중 자객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 자객은 그의 조카가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는 높은 직책을 수행하였으나 항상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였으므로 이를 시기한 사람들에 의해 살해된 것이었다.
그의 유해는 벨기에의 브뤼헤(Bruges) 주교좌 성당에 안장되었고,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83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복자 하인리히 소이에(수소)
Blessed Henry Suso
Beato Enrico Suso (Susone) Domenicano
(Uberlingen, Germania, 21 marzo 1295 - Ulm, 25 gennaio 1366)
Born:21 March 1295 at Uberlingen, Germany as Heinrich von Berg
Died:25 January 1366 at Ulm, Germany
Beatified:1831 by Pope Gregory XVI
Enrico = possente in patria, dal tedesco
Order of Friars Preachers; Dominicans; Order of Preachers
헨리쿠스 수소(Henricus Suso, 또는 헨리코 수소)는 유명한 도미니코 회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뛰어난 제자로, 독일 남서부 슈바벤(Schwaben)의 콘스탄츠(Konstanz)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베르크(Berg)의 헨리쿠스 백작이고, 그의 어머니는 수소 가문의 성녀 같은 분이었다. 그래서 그의 실제 이름은 하인리히 폰 베르크(Heinrich von Berg)였으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수소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3세 때에 콘스탄츠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신비 생활과 신적 사랑을 통해 강한 영적 변화를 체험하고는, 18세에 '영원한 지혜와 영적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콘스탄츠에서 공부를 마친 후 쾰른의 에크하르트의 학교에서 대학 공부를 하였다. 공부를 마치고 콘스탄츠로 돌아온 그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놀라운 현시를 보았으며, 예수 성명을 특히 공경하고, 천주의 모친께 남다른 신심을 지녔기 때문에 가끔 ‘신비가’란 소리를 들으며 생활하였다.
그는 매우 아름다운 신심서적을 저술하였는데, “영원한 지혜에 관한 소책자”(Das Buchlein der ewigen Weisheit)가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작품으로 알려진 "준주성범"(Imitatio Christi)과 함께 여러 세기에 걸쳐서 인기를 누린 수소의 문학적, 신비학적 걸작이다. 그는 1348년 울름(Ulm)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가서 생활하다가 1366년 1월 25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831년 4월 16일 그의 '문화의 길'(viam cultus)을 높이 평가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학자들은 그를 "독일 신비가들 가운데, 아니 어쩌면 모든 신비 저술가들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주조, 하인리히',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869-7872쪽.
(가톨릭홈에서)
하인리히 소이에(수소)의 놓아두고 있기- 정달용신부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그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해보면, ‘버리고 떠나 있기Abgeschiedenheit’이다. 또는 ‘두루 놓아두고 있기Gelassenheit’이다. 이것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1260~1328)가 평생을 두고 생각하고 가르친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한때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알지 않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첫째,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원한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둘째, ‘아무것도 알지 않는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안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지 않았다.
셋째,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가진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것이 사물이든 자기 자신이든 ‘가진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가난한 사람’은 ‘버리고 떠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이다.
놓아두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제자였던 하인리히 소이세는 1295년경 3월 21일 스위스의 콘스탄츠에서 출생했다. 콘스탄츠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간 소이세는 수도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1313년부터 1318년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물리학, 형이상학 등을 중심으로 철학을 전공한다. 이어 1319년부터 23년에는 슈트라스부르그 수도회 대학에서, 1323년부터 1327년까지는 쾰른의 수도회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다. 이때 스승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만난다. 콘스탄츠 수도원으로 돌아온 소이세는 선생Lector으로 후배를 가르치고 이후 20년간 그 곳에서 산다. 1330년경 그의 가르침은 이단異端의 의심을 받아 선생으로서의 직책을 정지당한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 시기에 ‘두루 놓아두고 있기Gelassenheit’라는 신비사상을 터득하게 된다. 1347년경 소이세는 독일 울름의 수도원으로 옮긴다. 그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는 ‘두루 버리고 떠나 있기’라고 하는 자신의 신비사상을 익히며 살았으리라 추측된다. 136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울름 수도원에 머물렀다. 소이세는 《진리의 서書》 《지혜의 서》 《생애》 등 중세 독일어 저서를 남겼으며 1831년 복자福者 위에 올랐다.
소이세는 스승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스승의 이러한 가르침을 잘못된 오해로부터 건져낸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소이세에 의하면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있는 것이 아니다.’ ‘무無’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모든 것의 그리고 일체의 것의 ‘근원根源’이며 동시에 ‘목표目標’이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리고 ‘저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그리고 일체의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그리고 심지어 자기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그리하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와 ‘하나가 된다’. ‘이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니-있는 것’ 즉 ‘무無’로 드러나는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와 ‘하나가 된다’. 이것이 하인리히 소이세의 ‘신비사상神秘思想’이다.
‘그르게’ 놓아두기
‘버리고 떠나 있다는 것’ 그리고 ‘두루 놓아둔다는 것’은 잘못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잘못된 놓아두기’가 될 수 있다. 즉 ‘그르게 놓아두기’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 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의 ‘과업課業’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결코 하나의 되어버린 ‘상태狀態, Zustand’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과정으로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하나의 완성된 그리하여 고정된 상태로 오해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마르게리테 폰 포레테Marguerite von Porete, 1310년 사망)은 ‘무無가 되어버린’ 영혼에 대해서 그리고 ‘자유로워진’ 영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한 영혼(사람)은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무無’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에서 벗어나 ‘전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제 이렇게 ‘자유로워진’ 영혼(사람)은 ‘단식’ ‘고행’ 그리고 ‘기도’ 등을 따로 힘쓰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상관없는 일’이다. ‘관심 밖의 일’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람(소이세의 작품에 나오는 ‘이름 없는 무법자無法者’)도 있다. 어느날 소이세에게 사람의 모습을 가진 하나의 형상이 다가 왔다. 소이세가 물었다. 그리고 그가 대답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어느 곳도 아니다.”
“너는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을 원하는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네 이름은?” “이름없는 무법자다.”
“네 이성理性이 목표로 하는 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다.”
“무슨 말이냐?”
“사람이 전적으로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도 세계도 상관하지 않고, 앞도 뒤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구애받지 않는 자유는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올바로 놓아두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내가 설교할 때, 나는 언제나 첫 번째로 ‘버리고 떠나 있기’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즉 사람은 ‘자기 자신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람은 단순한 선성善性 즉 ‘신神 속에’ 들어가서, 그와 ‘하나의 모습eingebildet werden’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 말하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어떤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선한 일werke로부터 벗어나’, ‘전적으로 자유로워지려 한다’하여 그들을 나무라고 있다.
에크하르트는 루가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10,38-40)를 가지고 그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 마르타와는 달리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는, 단순히 ‘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앞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잠잠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마리아는 그 후 사도들을 따라 다니면서, 부지런히 빨래하고 밥하는 일을 했다.
하인리히 소이세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면서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서술해 내고 있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der gelassene Mensch’은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놓아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한다. 다만 그는 이 모든 일을 그에 마지막까지 ‘집착하지 않고’ 그 일들을 ‘놓아두는’ 그러한 마음으로 한다.
‘참으로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일 속에서’ ‘쉬고 있다’. 그리고 ‘일 속에서’ ‘한가롭다’.
그리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그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는 일이나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고요하다.
- 정달용 / 신부.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 저서로 《그리스도교 철학》, 다수의 철학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