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7.日. 구름과 달, 앙꼬와 찐빵, 그런데다 이수일과 심순애, 혹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05월20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밤비로 바뀐 봄비를 초파일 야삼경夜三更의 우중풍경雨中風景으로 삼아 개똥벌레 난장치는 공연으로 밤 풍취風趣를 돋우다가 귀에 절절한 빗소리를 이끌고 차실로 들어가 깔아놓았던 이부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때가 새벽2시가 다 되어가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뒤 새벽3시에 한 번, 새벽4시 반경에 또 한 번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6시가 조금 못되어 다시 한 번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오늘은 잠을 자다 왜 이렇게 자주 눈이 뜨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화장실에는 다녀와야겠다면서 벌써 환하게 밝아진 미닫이문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엉금엉금 일어나 방문을 열려는데 바지 속 허리와 엉덩이가 닿는 부분에서 무언가 이물감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손이 바지춤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그 부분에서 철사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살을 후비는 듯한 짧은 통증이 일어나 깜짝 놀라 손바닥으로 쳐냈더니 윤이 자르르 풀린 팔찌처럼 보이는 갈색의 기다란 물건이 방바닥에 투욱.. 떨어져 내렸습니다. ‘엉, 저게 뭐지’ 하고 당황 중에 쳐다보는데 글쎄, 그 윤기 돌게 길고 아름다운 갈색 팔찌가 두어 번 긴 몸을 뒤채더니만 스르르 기어서 방바닥 가장자리로 날쌔게 움직여갔습니다. ‘우잉, 저거 지네 아냐.’ 하고 기다란 갈색 팔찌의 이름이 번개처럼 떠오르면서 ‘아이쿠 지네에게 물렸구나.’ 하는 생각이 꼴깍~ 머릿속에서 울려왔습니다. 사정이야 어쨌든 내가 지네에게 더 물리기 싫다면 우선 방안의 지네를 잡아 처리해야 했습니다. 얼른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마루에 놓여있는 신문이 눈에 띄어 재빨리 신문을 말아 쥐고 방안의 지네를 노려보았습니다. ‘이노옴, 내 바지 속을 훔친 못된 노옴.’ 하고 펄쩍 뛰며 때려잡을까하다가 마음을 바꾸어 신문을 펼쳐서 지네를 올려놓은 뒤 토방으로 던져주자 갈색 지네가 재빠르게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허리와 엉덩이가 닿는 그 부분이 톡톡 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손으로 만져보았더니 그 자리가 금세 부어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네와 밤새워 한 이불을 덥고 잠시 한 옷을 사용했다고 해서, 이 시간에 스님을 깨워 약을 달랠 수도 없고 더 더욱이 서울보살님에게 전화를 해서 이 상황을 콩이야 팥이야 이야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전설傳說의 고향에서 왕지네에게 물린 나그네 이야기를 재미나게는 보았으나 내가 그 나그네가 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일단 세면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샤워장 온수를 뜨겁게 해놓고는 화끈하게 쏟아져 내리는 물을 지네에게 물린 자리에 마구 뿌려주었습니다. 지네 독 덕분에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발도 닦았습니다. 뜨거워진 몸을 잘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고 차실로 돌아왔더니 몸이 한결 가뿐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미 잠은 구만리나 삼천포로 달아나버린 데다 이불 속으로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아서 벽에 등을 기대고 <사신死神 치바>를 계속 읽었습니다. 조금 읽다보니 이런 도시 배경 활극류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야쿠자 이야기가 나오자 그 장까지만 읽고 책장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등을 기댄 채 잠시 눈을 감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는 듯 가는 듯 검고 하얀 시간의 바람 속을 헤엄치면서 머니~ 머니~ 슬그머니~ 졸았나봅니다.
뒤편 쪽마루 쪽 미닫이문에서 퉁!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미닫이문 창호지 너머로 사람의 그림자가 흐리게 비쳐졌습니다. 큰 머그잔에 가득한 커피 한 잔을 쪽마루에 놓고 홀짝거려가면서 스님께서 독서하는 시간인데 같이 동참하겠느냐는 신호였습니다. 내가 예! 하고 대답을 하면 스님은 공양간으로 가서 내 몫의 커피를 한 잔 더 타 오실 것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을 산비탈이 마주보이는 뒷켠 쪽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셔가며 책을 읽고 그와 관련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평소에는 대화상대가 없는 스님이시라 이 시간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그래서 나도 커피가 함께 하는 아침 독서시간을 목탁암에서 지내는 동안의 손꼽히는 시간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세수라도 하고 오려고 앞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젖혔더니 계곡너머 산마루에서 와르르~ 굴러내려와 법당 마당과 마루에 켜켜이 쌓여있던 떡시루 햇살이 빛의 파도를 이루며 차실 안으로 뭉텅이 뭉텅이 밀려들어왔습니다. 투명한 공기와 새파란 하늘이 뒤따라 몰려들면서 떡시루 햇살의 눈부신 배경이 되어주었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줄기차게 밤새 내린 비로인해 하늘과 대기와 햇살이 본색本色으로 본때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마당 가장자리에 줄지어선 나무의 잎사귀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공기 중에서 마치 봄날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몸통을 부옇게 뒤틀어대며 청룡靑龍·황룡黃龍의 흉내를 내고 있는 햇살의 찬란한 유희遊戲를 언제 또 다시 보게 될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만큼 놀랍도록 청명하고 눈부시게 화사한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뒤켠 쪽마루로 다가가 털썩 주저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런데 커피 맛이 평소 아침과 조금 달랐습니다. 아침 독서시간의 커피는 스님만의 제조법으로 만들어낸, 가루 커피에 믹스 커피를 섞고 다시 분유와 설탕을 넣어 만든 완전 ‘메이드 인 목탁암’ 잡탕식인데, 오늘 아침에는 그 맛이 온전하게 나지 않고 왠지 텁텁한 맛이 혀끝을 강타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스님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하자 스님께서 맛보듯 커피를 한 모금 홀짝 하시더니 말했습니다. “비가 오면 빗물이 넘쳐나 계곡수가 센물로 바뀌어 버리거든. 그래서 옛날에는 비가 올듯하면 찻물을 항아리에 받아두었는데 요즘은 그것도 귀찮아져서 그냥 참고 마셔버린단 말이오. 그래서 그려~” 앞 툇마루는 햇살이 넘실거려도 뒷 쪽마루는 바람이 산들산들해서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기는 그만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스님이 창고 쪽을 다녀오시더니 손바닥에 빨간 색칠이 되어있는 목장갑을 탁탁 털면서 읽고 있던 책을 책갈피를 끼우고 덮어놓았습니다. 나도 책장을 덮어놓고 스님을 따라 법당마당으로 나갔더니 스님이 걸려있는 등 몇 개를 풀어 마당에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스님 연등을 다 정리하시게요?”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개 말했습니다. “집이 말이요. 나랑 같이 몰려다니면서 함께 할까요, 아니면 각자 한 가지씩 맡아서 우께도리로 할까요?” “우께도리가 책임감도 생기고 화끈한 방법이지요.” 했더니 “그럼, 나는 고추 지주대를 한 백여 개 만들어야 해서 대나무밭으로 갈 테니까 거사양반은 도량안팎의 장대 지주와 연등을 모두 철수하시구랴, 연등을 마대자루에 담아 갈무리까지 포함해서 집이 의견대로 우께도리로 합시다.” 말을 마치자 스님은 낫과 섬유밧줄을 한 다발 들고 대나무밭을 향했습니다. 나도 법당마당과 도량입구에 서있는 장대 지주와 지주 사이를 이어서 팽팽하게 쳐놓은 섬유 밧줄에 줄줄이 걸려있는 연등을 쳐다보았습니다. 어젯밤에 빗속에서 차를 타고 느지막하게 귀가하던 한 보살님이 나를 쳐다보면서 ‘이제 진짜 일이 남아 있는디’ 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아하, 전투 중에서 가장 힘든 작전이 후퇴작전인 것처럼 성대한 초파일의 뒷정리가 남아있었다는 말이었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얼추 보아도 서른 개가 훨씬 넘어 보이는 장대 지주에 걸려있는 수백 개 연등을 모조리 수거해서 초를 빼내고 종류별로 나누어 마대 자루에 담은 뒤 장대 지주를 이어놓은 섬유 밧줄을 풀어낸 다음 섬유 밧줄은 길이대로 정리해서 박스에 담아놓고 나서 세 개씩 고무밴드로 묶여있는 장대 밑 부분을 고정시켜 놓은 말뚝을 뽑아낸 뒤에 세 개 한 묶음의 장대를 창고 선반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나면 내가 우께도리로 맡은 일이 끝나기는 끝나겠지만 그 끝나는 시간이 도대체 몇 시나 될는지는 예상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본래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해서 이럴 때일수록 믿는 것은 두 손뿐이라고 옛날 어른들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 당해서 어떤 분들은 안고수비眼高手卑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폼 나게 사용하지만 실은 안고수비眼高手卑에는 다른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고도의 기술이나 엄청 힘이 드는 일은 아니었으나 똑같이 반복되는 동작에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는 지루하고도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법당 마당과 도량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청소까지를 모두 마쳐놓고 세면장에서 한바탕 씻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침대바위에 앉아 서서히 붉어져오는 서쪽하늘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밤새 비가 줄기차게 쏟아지는 초파일 밤도 개똥벌레의 비행과 더불어 처음으로 구경을 해보았고, 초파일 연등 정리를 혼자서 끝까지 다해본 것도 처음으로 겪어본 일이라 그랬던지 진득한 피곤함을 밀어내는 뿌듯하고 충만한 만족감이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찬란한 햇살이나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어디론가 사리지고 시원하고 서늘한 바람이 계곡을 따라 불고 있었습니다. 하루 내내 햇살을 받았던 침대바위는 엉덩이가 따뜻할 만큼 잘 데워져있었습니다. 저 먼 하늘의 붉은 기운이 점차 짙어지고 연한 진청색 잉크 빛이 공중에서 연기처럼 하늘거린다고 느낄 무렵 스님이 양 어깨에 붉은 노을을 잔뜩 짊어진 채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도량 입구 경사 길에 나타났습니다. 가까이 다가오자 무척이나 지친 얼굴이었는데도 나를 보고는 미소를 짓더니 “허어, 도량이 시원하게 넓어져버렸네요.” 하시면서 세면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럴 때면 목탁스님이 대세지보살님이나 아라한까지는 못 되더라도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묘미妙味를 맛본 농부이자 수행자修行者라는 생각에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하고 싶었습니다. 등불 밝힌 공양간으로 들어가 함께 저녁공양을 하고, 함께 차를 마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사월초아흐레 밤이 서서히, 신중하게, 낮은 곳을 향하여, 차향茶香과 훈향薰香 속으로 점점 깊어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