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긴 티스푼을 젓는다 / 권다원 (2024. 8.)
집 앞에 커피숍이 생겼다. 들어서자 드문드문 짝지어 앉은 손님들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약속 없이 들른 길인데 만개한 꽃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비어 얼른 앉았다. 이른 더위 탓인지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한 사내가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하며 들어 온다. 그는 계산대 앞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친다. 그러고도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통화 중이다. 바리스타의 손놀림도 분주하다. 모서리가 무뎌진 얼음 조각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속에서 연한 커피와 어울려 회오리친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화가 난 듯한 그가 주문한 음료와 함께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눈빛이다. 잠시 후 완성된 음료를 손에 쥐고 사내가 나서자 각자 시선을 옮긴다.
나도 오랫동안 저 바리스타처럼 한곳에서 긴 티스푼을 저었다. 그곳은 노를 저어 가며 탈 수 있는 작은 배들을 바다에 띄워 오가는 손님에게 배를 대여 해주는 갯마을이었다. 예전의 해수욕장 명성답게 사람들로 항상 붐볐고 횟집과 레스토랑은 그 손님들을 호객했다. 책가방을 메고 여동생과 학교를 덜렁거리며 다녀오는 길, 여행객들에게 말을 걸어가며 그들을 가게로 이끌고 오기도 했다. 잘하는 일에 인정받고 싶었을까. 작은 손이 투박해지는 줄도 모르고 플라스틱 맥주 상자를 엎고 위에 올라가 뒷설거지했던 기억이 사진처럼 남아있다. 방학 때가 되면 으레 부모님을 도왔고 공휴일에도 서빙을 하거나 음료를 만들었다. 명절이나 연말이나 삼삼오오 무리를 만들었던 사춘기 시절에도 변두리 바닷가에서 나는 긴 티스푼을 젓고 있었다.
허리가 잘록한 유리잔 속에 각진 얼음을 넣고 음료를 만들면 안팎의 기온 차로 미끈한 유리잔 겉면에는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음료가 얼음과 섞이고 얼음이 녹으면 묽어지고 그러고 나면 완성이 되는데, 어린 시절은 어딘가에 섞일 줄 몰라 항상 미완성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야 했던 초등학교는 학년별로 반이 하나뿐이었고 세월을 견딘 흔적이 얼룩덜룩 무늬로 남아 있는 단층짜리 분교였다. 제법 어울렸던 여자 친구들 서너 명 중에 이사한다는 슬기는 나와 다르게 하얀 얼굴에 매끈하게 묶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그 아이가 가고 나면 누가 대장을 맡을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고 슬기는 마지막 날 내가 아닌 다른 친구에게 대장 자리를 넘겼다. 그 이후, 그 무리의 친구들이 하는 대장 놀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더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성숙하지 못한 행동은 대학 시절까지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모든 친구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가르침을 학교나 집에서 받고 자랐다. 그러지 못하면 착한 어린이가 되지 못했다. 마음대로 하려는 강한 성격 탓에 주변에는 내가 선택한 친구들만 남아있었다. 꾸짖는 눈초리가 싫으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에게는 못되게 굴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되짚어 보면 태어나자마자 바쁘게 장사하는 엄마 대신 외할머니를 따르며 유치원까지 다녔던 시절, 공허한 결핍감이 가시처럼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외할머니댁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이면 엄마를 보러 왔다. 바쁜 엄마와 잠시 눈을 맞추고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과 바닷가로 칠게를 잡으러 갔다. 그리고 외할머니께서 가자고 하면 엄마와 꼬옥 한번 안고 더는 돌아보지 않고 쌩하니 가버렸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어릴 때부터 그리도 정이 없더라면서 말이다. 어린 마음에 빨리 돌아섰던 이유는 겨를이 없는 엄마를 배려한 것일까. 여전히 나는 엄마의 손을 잡거나 포옹하기가 어렵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에게 의지하지만, 너무 혼자 해버릇하는 내가 불편하다 하신다. 지난 이야기를 하다가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너도 자식 키워보라는 어머니의 푸념을 들으면 작은 손을 가진 내 아이의 마음이 들여다보여 가슴이 뜨끔거린다.
딸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 색깔에 관한 동화책을 썼다며 놀라게 했다. 처음엔 정말 혼자 다 한 것이라고 굳건히 믿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치원에서 읽었던 동화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개작한 것이 아닌가. 주변에 천재라며 자랑을 해놨던 터라 당황스러워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아이가 만든 동화는 색깔을 주제로 엮은 ‘섞어라’(원작은 ‘섞어봐’)이다. 세상에 먼저 태어난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이 각자의 개성대로 살아가다가 빨간색이 소란을 피우면서 벽을 쌓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노란색과 파란색이 서로 사랑하면서 초록이 태어나고 우여곡절 끝에 갈등이 해결되고 결국은 화합한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만 옳은 것이 아니고 섞여도 다를 뿐인데…. 아이로 인해 배움이 는다.
슬기가 없는 대장 놀이가 끝나고 시내로 전학 간 나는 악대부의 악장을 맡았다. 예순여 명의 대열을 지휘봉 하나로 이끌 때 어쩌면 처음으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나를 따라 움직이는 행렬이 나로 인해 엉망이 될 수도 있고 반면에 음악과 정확하게 끝맺을 수 있음을 말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잊히는 기억을 나이테처럼 새기며 산다. 또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애쓰면서 주위를 살핀다.
기꺼운 분위기가 좋아 지인들과 모임을 즐긴다. 장사를 오래한 탓에 나와 잘 맞는 사람을 가려내는 일은 오만할 정도로 틀림없다. 성인이 되어 우연한 기회에 독서 모임을 시작하고 책을 가까이 두면서 거만함이 조금 겸손해졌을까. 누군가의 선택을 받으면 행복하고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마음에 든 얼음을 녹여 묽게 만든다. 녹지 않고 날카로웠던 지난날들이 제법 뭉툭해져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때도 있다. 인생의 집을 지을 때, 단단한 벽돌로 벽을 세우고 밖이 보이는 창을 여러 개 내고 정원에는 하얀색 꽃이 피는 배롱나무를 심고 낮은 울타리도 둘러보리라. 그리고 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나중의 바람이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주위를 맴돌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처음의 낯선 상황이라면 쉽게 비집고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상대가 편안하게 느끼도록 스스로 낮추어보기도 한다. 만약 무리에 속하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을 함께 섞어주고 싶다. 나의 시간을 반가이 비우고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안아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긴 티스푼을 저으며 삶을 되질한다.
첫댓글 권다원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글밭에 들어서니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 합니다^^
권다원 작가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곧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제주꾼 권다원 선생님,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