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없는 박물관'(강화도)에서 하루 종일 역사공부
경향사우회 11차 문화탐방 겸 경향OB산악회 창립 26주년 산행
- 눈, 귀, 입이 마냥즐거웠던 대화합의 한마당 잔치-
경향사우회(회장 최노석) 11차 문화탐방을 겸해 추진된 산악회(회장 강남기) 창립 26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회원 19명이 쾌청한 날씨 속에 단골인 BS 투어버스에 몸을 맡긴 채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도 용흥궁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11월 10일 오전 10시. 문화해설로 오랜 관록이 있어 보이는 한화춘 해설사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 한다.
용흥궁~ 대한성공회강화성당~ 강화 3.1독립만세기념비~ 고려궁지~ 이화겸직 담장길` 김상용 순절비 줄잡아 3km 탐방코스를 돌며 보고 들은 강화도 역사의 현장, 고려 때 팔만대장경이 이곳에서 조판됐고 몽골 침략 때는 수도를 강화로 옮기고 삼별초의 항쟁에다 조선조 병자호란 때는 봉림대군(뒤에 효종이 됨)이 이곳 강화에서 난을 피했는가하면 고려 21대 왕 희종(熙宗)부터 조선시대 연산군 영창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 11명의 왕족이 유배생활을 한 가운데 연산군은 유배 온 지 두 달 만에 이곳에서 유명을 달리 했다는 사실들이 머리를 무겁게 한다. 용흥궁은 강화도령이라 불리던 조선의 25대왕 철종(哲宗, 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쳐하였던 잠저(暫邸)다.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초가였으나 철종이 왕위에 오른 이후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4년(1853)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지었는데 현존하는 건물은 내전 1동, 외전 1동, 별전 1동 등이며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이어서 찾은 곳은 성공회 강화성당, 눈에 익은 절집이나 향교 건물, 반가의 고택과 다름이 없다. 공간 구성과 건축양식이 동서 문화의 축소판 같다."고요한 초대 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배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 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고 성당 건물을 정방형 (넓이 4칸 길이 10칸)층층구조로 전체적인 건물 양식은 한국정통양식그대로다.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 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 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빗바랜 표지판을 뒤로하고 고려궁지로 향했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사용하던 궁궐터다. 1232년(고종 19) 6월 강화에 궁궐을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현재 강화 고려궁지라고 부르는 곳이 정궁(正宮)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고려궁터에 이르니 궁은 간데없고 초서현판 명위헌(明威軒)이 선명한 유수부 동헌,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수령 400년 느티나무가(1631년 조선 인조 9년에 여러 전각과 행궁을 세울 때 심었던 나무) 반갑다는 듯 어서오라 손짓한다.
1270년(고려 원종 11) 고려가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 강화 고려궁은 정궁의 지위를 잃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궁터엔 외규장각(外奎章閣) 등이 건립되었다니 한나라의 부침과 함께 살아져간 건물이 어찌 이곳 뿐이랴.
문득 개성에서 읊었다는 야은 길재의 시한수 가 가슴에 와 닿는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그때나 지금이나 세월의 무상함은 변함이 없고 우리네 인생도 그와 같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잠시나마 시공을 초월한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본다.
외규장각은 일종의 도서관이다. 주로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를 비롯해 왕실 서적을 보관하였으나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게 의궤와 도서 등을 약탈당하고 당시 화재로 소실된 것을 2003년에 일부 복원하였다고 한다. 외규장각을 뒤로하고 안내 받은 곳은 김상용 충의비, 선원 김상용의 충의를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김상용은 159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판돈령부사 병조 예조 이조의 판서와 우의정 등을 역임한 선비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의 신주를 모시고 빈궁과 원손을 수행하여 이곳 강화도로 피란했으나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 있던 화약에 불을 지른 후 순절했다. 이러한 충절을 기리고자 비를 세웠으며 선원면에 있는 충렬사엔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비각 안에는 2기의 비가 나란히 서 있다. 왼쪽은 정조 때 공의 7대손인 김매순이 세운 것이고 오른쪽은 숙종 26년 공의 종증손 김창집이 건립한 것으로 1976년 지금의 자리로 비각을 옮기 던 중 땅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비각 지근거리엔 이화견직 담장길이 선명하고 1947년 김재소(7대 국회의원)가 설립해 2005년 까지 1200여 명의 근로자가 종사했던 국내 굴지의 주식회사 심도직물 터,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공장 굴뚝만 덩그러니 서있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용흥궁 공원 입구에 자리한 3.1독립만세기념비, 31독립만세운동의 그날을 되새기고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삼고자 세운 기념비다. 1919년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독립만세 소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이곳 강화군민 24,000여명도 목 놓아 독립만세를 불렀고 유봉진 선생을 비롯 25명의 애국지사들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르니 그 천지를 진동했던 만세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한 느낌이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40분 강화풍물시장 황금밴댕이가 구미를 당긴다. 시장이 반찬이라 던 가 황금밴댕이 회무 침, 맛깔스런 간장 게장으로 오랜만에 포식을 하고난 회원들을 보니 희색이 만면이다. 이래서 관광이란 언제 만나도 반가운 놈인가. 허드레지게 오찬을 들고난 일행이 이어서 도착한 곳은 강화도 통일 전망대.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니 먼저 도착한 6.25참전 유공자들이 노구를 이끌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다들 90은 넘긴 나이, 역전의 용사들도 세월 앞엔 속수무책인가.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호국의 영웅들이 존경스럽다. 바로 앞 바다 건너가 북한 땅, 지척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오버랩 돼 가슴이 무겁다. 전망대 옥상에선 김문권 회우가 기념촬영 하느라 여념이 없다. ‘사진은 역시 김문권 회우야’ 기념촬영을 끝낸 경향 사우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인돌 유적지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탁자 식 고인돌이 자리한 곳은 강화도 하점면 부근리, 돌의 무게가 무려 52톤이나 된단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연산군 유배지,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 화개산 중턱에 자리한 연산군 유배지는 화개정원 축제 준비로 꽃단장이 한창이었다. 화개정원은 북녁땅에도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하는 바람과 찾는 이들의 치유와 힐링을 위해 구성된 테마공원이다. 연산군(재위 1494~1506)은 성종의 장자이자 폐비 윤 씨의 아들로 1483년(성종14)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즉위 초엔 국방에 주력하고 빈민을 돕는 등 다수의 업적을 이루었으나 어머니 폐비 윤 씨를 왕후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림파 제거를 추진하면서 원성이 자자해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이 왕으로 즉위하고 연산군은 폐위당해 교동도로 귀양을 오게 된 것이다. 귀양 와 위리안치 된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리를 틀고 곤장을 치기위한 도구들이 신기한데 몇 몇 관광객들은 체험학습에 여념이 없다. 너무 쌔게 때렸는지 비명소리 가 요란하다. 빠듯한 일정이라 조양방직 투어는 생략한 체 교동도로 향했다. 6.25 직전 잠간 다니러 왔다가 38선이 가로막혀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애환이 뼈속 마디마디에 겹겹이 서린곳 , 황해도가 고향인 정태민 회우의 남다른 감회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이날의 교동도는 몇해전 활기찬 모습과 는 대조를 이룬다. 대룡시장 '커피콩 이발소' 카페의 커피 한잔으로 관광을 대신하고 대명 항 만찬장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창 넘어 엔 적막강산, 초저녁인데 전기불이 안 보인다. 불황 때문인가 문 닫은 가게가 즐비하다. 저녁 만찬은 푸짐한 생선회 정식, 얄팍한 산악회 주머니 사정을 알아 차렸는지 최노석 사우회장은 마음껏 드시란다. 강한필 정운종 김충한고문 최귀조 장옥 부회장의 건배사, 귀를 즐겁게 한 강남기 산악회장의 정겨운 덕담, 경향사우회, 경향OB산악회 파이팅! 파이팅! 듣던 중 반가운 건배사가 대명항 순하네 횟집을 들었다 놨다 이날의 강화도 문화탐방은 한마디로 눈과 귀와 입이 마냥 황홀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참석 회우 : 최노석(부부) 강남기 강한필 정운종 김충한 장옥 최귀조 맹태균 황우연(부부) 김홍운 김문권 전철수 김종향 정태민 임상학 신종헌 김용일 (무순) <글 정운종, 사진 김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