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쪽이 난 운중자
고명원은 처음으로 혈강을 연마한 상태이고 아직 완전히 연마하지
못했기 때문에 운중자가 펼치는 도가의 어마신도(禦魔神道)인 태청강
기와 비교할 때 자연히 한 수 뒤졌다. 그러나 그가 일단 천마해체대법
을 펼치면 그 자신의 공력이 갑가지 두배나 증가되고 만약에 극한으
로 발휘하면 열 배까지도 증강시킬 수 있었다.
운중자는 기껏해야 두 명의 혈수천마와 백초를 겨룰 수 있을 뿐인데,
이렇게 되자 세 명의 고명원을 상대하고 있는 격이니 그가 어찌 감당
해낼 수 있겠는가? 그의 비쩍 마르고 왜소한 몸은 상대방의 내공이
가해 오는 압박에 한치 한치 아래로 꺼져들었고 두 발은 한 푼, 두
푼, 땅바닥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러나 천마해체대법은 흉독(凶毒)
하여 극한으로 펼치면 물론 열 배의 내공을 증강시키지만 펼치는 본
인은 정력이 고갈되어 죽는 법이었다. 그래서 고명원은 감히 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지 못하고 겨우 네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어 운중자
를 땅속에 꺼져들도록 핍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운중자의 두 다리가
완전히 땅속으로 박히고 흙이 그의 단전에 이르게 되면 단전이 폐색
되어 죽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내공을 더욱 급속하게
뻗쳐 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손에 한 자루의 쇠망치를 들고 운중자
를 한 치 한 치 땅속에 박아 넣는 형국이었다.
현청은 이와 같은 상황을 보고 크게 잘못된 것을 느꼈다. 그는 이것
저것 따지지 못하고 달려가 운중자를 도우려 했다. 운중자가 땅바닥에
묻혀 죽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때에 운중자는 호통을 내질렀다.
[비키시오!]
그는 현청이 달려오는 뜻을 알아차리고 소리쳐 저지한 것이었다. 쌍방
이 혼신의 내공을 깡그리 돋구어 생사를 건 싸움을 하느라고 사방은
강기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금성철벽을 세워 놓은 것 같았다. 결코 현
청 따위가 함부로 끼여들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쌍방이 끌어 모은
내공의 반격이 세차기 때문에 현청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따라서 운중자는 재빨리 소리쳐 저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소리치
자 즉시 상대방의 거센 파도처럼 밀려드는 내공에 밀려 몸이 흔들거
리고 두 다리가 땅속으로 다섯 치 정도 꺼지게 되었다. 흙은 이미 그
의 무릎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잠시 후면 운중자는 기력이 다하고 단
전이 막혀서 죽게 되는 것이었다.
운중자는 속으로 크게 경악햇고 오늘 자기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마음을 모질게 가다듬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최후의 일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다음 순간, 그는
잇달아 세 번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단전의 공력을 움직여 칠십여 년
동안 고되게 수련해 쌓은 순양진기(純陽眞氣)를 끌어올렸다. 삽시간에
그의 얼굴은 푸른 색으로 뒤덮였다. 운중자는 갑자기 입을 쩍 벌리더
니 한 모금의 선천진기를 고명원에게 뿜어냈다. 이와 같은 선천진기를
연마하는 방법은 전진파(全眞派)의 비적(秘籍)에 실려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전진파의 개파조사(開派祖師) 왕중양(王重陽)의 제자 장춘진인
(長春眞人) 구처기(邱處機)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도가의 최고
심법이였지만 강기처럼 패도적이지 않고 불문의 반야신공과 비슷했다.
만약 한 모금의 진기를 무척 순수하게 연마하면 금강불괴신법(金剛不
壞身法)도 깨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전진파에서는 칠대째까지 전해진
후 몰락했으며 이와 같은 도가의 무상신공도 전설로만 내려올 뿐 직
접 본 사람은 없었다.
운중자는 십 년 전 청성산(靑城山)을 유람하다가 오래 된 동굴 안에
서 몇 조각의 비적을 발견했다. 비적에 이와 같은 선천진기의 심법이
적혀 있었다. 비적이 일부가 떨어져 나가 완전하지 못했지만 그는 미
칠 듯이 기뻐했다. 재빨리 무당으로 돌아온 그는 폐관하고 고된 수련
을 쌓았다. 비적에 기록된 심법이 완전하지 못해 그는 십 년 동안 연
구한 결과 초보적인 공부(功夫)를 연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 혈
수천마 고명원이 무당산으로 뛰어들어 현청이 종을 울려 운중자를 빨
리 폐관에서 끌어내 마두를 물리치도록 재촉하지 않았다면 그는 폐관
하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생사의 고비에 몰려 상대방이 이상
야릇한 내공을 써서 자기를 흙속에 묻으려 하자 폐관하며 고된 수련
을 쌓아 축적한 선천진기를 내뿜어 목숨을 걸고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었다.
그의 입이 벌어지자 한 줄기의 핏빛 기체가 쏘아져 나갔다. 마치 한
대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강철 송곳처럼 고명원의 몸앞에 펼쳐져 있는
혈강(血强)을 뚫고 그의 몸으로 쏘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
의 간격은 겨우 일곱자밖에 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기주(氣柱)가 쏜살
같이 쏘아지자 고명원은 즉시 선천진기 아래 죽고 말 위기에 처했다.
별안간 고명원은 두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 두 눈에서 사람을 핍박
하는 광채를 쏘아내며 왼손을 빙글 돌리더니 엄지손가락을 한번 구부
렸다가 탁 퉁겼다. 그러자 마치 칼로 뚝 자른 것처럼 엄지손가락이 잘
려져 날아갔다. 허공에서 웅!하니 세찬 휘파람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는 처절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 엄지손가락은 이미 운중자가 품
어 낸 선천진기 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시뻘겋게 달군 쇠방망이를
물속에 집어넣은 것처럼 찍! 찍!하는 소리가 났고 그토록 무서운 선천
진기가 그 잘려진 은빛 손가락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한번
흠칫하더니 잘려진 엄지손가락은 한 무더기의 핏줄기를 대동하고 그
담담하게 흩어져 가는 하얀 기체를 뚫고 운중자를 향해 날아갔다.
운중자는 한 가닥 진기를 뿜어냈기 때문에 내력이 크게 소모되어 있
었다. 이제는 그 잘려진 엄지손가락이 쏘아져 오는 것을 보면서도 피
할 수가 없었다.
팍!
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 잘려진 엄지손가락이 그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그 바람에 그의 청색 도포에는 한 점의 핏자국이 나게 되었고 그는
전신을 흠칫했다. 마치 커다란 망치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
[끄악!]
그는 입으로 짧고 촉박하면서 처절한 울부짖음을 토해내며 두 발이
흙속에서 뽑히며 뒤로 휙, 하니 날아갔다.
현청도인은 아연실색했다.
[사숙...]
그는 서둘러 앞으로 달려나와 운중자를 부축하려고 했다. 그런데 손
가락이 막 운중자의 몸에 닿자 마치 벼락맞은 것처럼 일장 밖으로 퉁
겨 나가고 말았다.
운중자는 상대방이 쏟아낸 마교 신공에 적중되었으나 다행히 현청도
인이 조금이라도 막아 주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세찬 기운을 어느 정
도 줄일 수 있었고 겨우 뒤로 벌렁 쓰러져 네 다리를 활짝 펴는 추태
를 보였을 뿐 곧 바둥거리며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연신 몇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더니 창백한 안색으로 묵묵히 서
있었고 오른손으로 부러진 갈비뼈 세 대를 어루만지며 입술을 달싹이
더니 한 마디를 뱉어냈다.
[이건... 이건 무슨 재간이오?]
고명원은 일장 남짓한 곳에 창백한 안색으로 서 있었다. 입가에는 여
전히 핏자국이 나 있었는데 그 묻는 소리에 씁쓸한 웃음을 띄우고 대
답했다.
[그것은 우리 마교의 혈지도(血指刀)라는 무상대법이오. 운중자, 졌음
을 시인하겠소?]
운중자는 풀 죽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고시주의 신공은 절세적이고 내공은 현묘하구려. 빈도는 승복했소!]
고명원은 처참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불초는 이제 산을 내려갈 수 있겠소?]
운중자는 나직히 말했다.
[무당산에서는 당신을 막을 사람이 없으니 시주는 떠나도록 하시오.]
고명원은 껄껄 웃으며 두 손을 마주 잡고 말했다.
[훗날 인연이 있으면 불초는 다시 무당산으로 올라와 도장을 뵙도록
하겠소!]
말이 끝나자 그는 몸을 돌려 휘청거리며 대광주리를 받쳐 들고 솔밭
쪽으로 걸어갔다.
운중자는 자기가 무당파에 한 명밖에 남지 않은 장로이면서도 뚜벅
뚜벅 산을 내려가는 혈수천마를 저지할 수 없자 속으로는 여간 괴롭
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왁!하니 잇달아 두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었
고 황망히 품속에서 약병을 꺼내 두 알의 알약을 삼켰다.
현청은 땅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는 놀란 시선으로 고명원이 휘청거리
면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제야 자기가 조금 전에 사숙을 도
우려고 했다면 목숨만 잃게 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얼떨떨해져서 고명원이 어느덧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이 숲속으로 사라지고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옆
을 돌아보니 무당파 제자들은 닭 쫓던 개처럼 검을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무섭게 호통을 내질렀다.
[왜 넋을 잃고 있느냐? 빨리 쫓아가지 못해!]
제자들은 일제히 놀라 정신을 차리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
더니 검을 들고 고명원의 뒤를 쫓아갔다.
[거기 서라!]
운중자는 호통을 내질렀다.
[모두 게 서라!]
현청도인은 어리둥절해졌다.
[사숙...]
운중자는 입을 열었다.
[장문인, 빈도는 패배해서 혈수천마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소...]
현청도인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그러나 혈수천마는 작고하신 장문인의 유체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강기를 써서 다섯 분의 호법까지 죽였으니...]
운중자는 그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알고 있소. 그러나 조금 전 혈수천마의 행위를 보고 나는 그가 광명
정대한 호걸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소.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중상을 입은 나를 쳐 죽였을 것이오!]
현청도인은 말했다.
[사숙의 뜻은...]
운중자는 말했다.
[나는 혈수천마가 남몰래 독수를 쓸 소인이 아니라고 보오. 그는 작고
한 장문인의 법체를 훼손할 리가 없소. 이 일은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있으니 장문인이 잘 알아서...]
현청도인은 안색이 변했다.
[사숙, 혈수천마가 현법 사제를 죽이고 다섯 분의 호법들을 살해한 것
이 모두 거짓이란 말인가요?]
운중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빈도는 결코 거짓이라 하지 않았소. 다만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
는것이오. 정말 혈수천마의 소행이라면 장문인이 구대문파에게 통보
해서 함께 혈수천마를 제거해야 할 것이오.]
현청도인은 잠시 생각해 보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사숙은 본문에 반역도가 있다고 의심을...]
운중자는 현청도인의 얼굴을 응시하며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장문인이 똑똑히 조사해야 할 것이오...]
[그러나 지금 혈수천마는 몸에 중상을 입고 있소. 그를 사로잡아 진상
을 조사해 본다면 더욱 좋지 않겠소?]
운중자는 안색이 변했다.
[장문인, 그가 한 모금의 피를 토할 때마다 내공이 증가하는 이상야릇
한 수법을 보지 못했소? 본문의 제자 가운데 그 누가 그를 당해낼 수
있겠소?]
현청도인은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구궁연환검진을 펼치기만 하면 아마 그는 도망칠 수...]
운중자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빈도는 우리 무당 제자들이 무더기로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 바이
오...]
말을 하는 운중자는 갑자기 가슴속이 매우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즉시 운기행공해서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
었다. 그는 물끄러미 현청도인을 바라보며 나직히 말했다.
[장문인, 아뢸 말이 있소.]
현청도인은 두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사숙, 하실 말씀이 있더라도 나중에 하시지요. 지금은 좀 쉬어야겠
소.]
운중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와 같은 말은 마치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같아서 말을 하지 않
으면 괴로워서 조용히 앉아 있을 수도 없소.]
현청도인은 은연중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아! 사숙, 무슨 말씀이 그렇게 중요한지 말씀을 해보십시오.]
운중자는 천천히 말했다.
[그것은 조금 전 혈수천마가 나에게 말한 것인데, 이 일은 본문의 흥
망성쇠는 물론이고 무림의 성망(聲望)에도 관계가 있소.]
현청도인은 안색이 변해서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먼저 돌아가 경계를 서도록 해라!]
그 도사들은 명을 받들어 물러갔다.
현청은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
[사숙, 혈수천마가 도대체 어떤 중요한 말을 했는데 본문의 흥망성쇠
와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요?]
운중자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장문인은 나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현청도인은 생각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사숙, 맞습니다. 방으로들어가 조용히 앉아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좋겠소. 나는 검령(劍令)을 내려 구대문파에서 혈수천마를 추적하도록
분부하겠소. 그 밖에도...]
운중자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검령을 내려 천하의 무림에서 혈수천마를 쫓는 일은 경솔하게 처리
해서는 안될 것이고, 먼저 본문의 반역도를 찾아내어야 할 것이오.]
현청도인은 안색이 굳어졌다.
[사숙은 정말 본문에 반도가 있다고 믿소?]
운중자는 엄숙히 말했다.
[이 가운데는 확실히 많은 의문점이 있어 사람의 의심을 불러 일으키
게 하오.]
현청도인은 탄성을 발했다.
[아! 사숙, 그렇다면 혈수천마가 도대체 사숙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운중자는 현청을 바라보며 느긋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장문인은 알고 있을 것이오.]
현청도인은 전신을 흠칫했다.
[제가 어떻게 안다는 말씀입니까? 그는 도대체 무슨 터무니없는 말을
했지요?]
운중자는 말했다.
[빈도는 폐관한지 이미 십 년이 되어 본문의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오. 그러나 나는 현천 사질이 대장문인에게 어떤 원한이 있기에
그를 그렇게 했는지 알 수가 없네.]
현청은 놀라 말을 더듬거렸다.
[사숙... 사...]
그는 억지로 자기의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사숙, 실례지만 혈수천마가 그런 말을 했소?]
운중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모든 상황을 나에게 말해 주었네.]
현청도인은 온몸을 흠칫했다.
[사숙, 나는 현천 사형과 우애가 돈독했습니다. 삼십 년 전에 사문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나는 줄곧 그를 존경했습니다. 사숙, 생각해 보십
시오. 제가 어찌 그를 해칠 수 있겠소?]
그는 급히 숨을 몰아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더군다나 현천 사형이 돌아가시기전에 다섯 명의 호법들이 그곳에
있었소... 그들이...]
운중자는 천천히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모조리 죽고 말았네.]
현청 도인은 어리둥절해졌다.
[사숙, 내가 현천 사형을 해쳤다는 것인가요?]
운중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네. 따라서 빈도로서는 아직도 조사
를 해봐야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겠네.]
현청 도인은 허리를 구부렸다.
[저는 양심에 가책받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숙의 뜻을 받들어,
진상이 모두 밝혀지기 전에는 결코 장문인 직에 임하지 않기로 결심
했소.]
그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만약 사숙께서 조사해 본 후, 사질의 소행이라고 확인하신다면 사질
은 자살하여 역대 장문인들께 사죄할 것입니다.]
운중자는 현청을 부축해 일으켰다.
[장문인, 어서 일어나게...]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흠칫했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은 날아가 다섯 자 밖에 나뒹굴었다.
현청은 온 얼굴에 살기를 띠고 입가에 흉측한 미소를 띄웠다.
[늙어 죽지 않는 것아, 누가 쓸데없는 일에 상관하라더냐? 스스로 죽
음을 불러들이니 고소하게 되었다.]
그는 조금 전 상대방이 전혀 방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손을 벼락같
이 뻗쳐 전신의 공력을 끌어올려 운중자의 가슴팍을 두 대나 후려쳤
던 것이었다.
운중자는 조금 전에 혈수천마 고명원과 내공으로 겨루게 되었을 때
이미 상대방이 펼쳐낸 마교 무상의 절예 혈지도에 앞가슴을 얻어맞아
몇 대의 늑골이 부러진 상태였다. 이제 다시 경계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천도인의 양손에 가슴팍을 강타당하자 또 다시 세대의 늑골이 부러
지고 말았다. 부러진 늑골들은 폐부에 박혀 다량의 내출혈(內出血)을
빚어내고 말았다.
그는 땅바닥에 나가 떨어져 잇달아 몇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었다. 안
색은 대뜸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고 말았다.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더
니 그는 휘청거리며 땅바닥에서 간신히 기어 일어났다.
[너... 너 이 발칙한 놈!]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짓을 하고서도 어떻게 무당의 역대 조사를 대할 수 있겠느냐?
너의 돌아가신 사부를 대할 수 있겠느냐? 너는... 너는 무엇 때문에 이
러는 것이냐?]
현청은 냉랭히 웃었다.
[사부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원래 내가 장문직을 계승하기를 원하셨
소. 현천과 당신이 결탁하여 나를 소림사로 보내지 않았다면 내 어찌
현천의 온갖 능멸을 당해 왔겠소? 십오 년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고
통을 당했는지 당신은 아시오? 이제 나는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
소. 당신이 곧 죽을 몸이니 솔직히 당신에게 말해주는 것이오...]
운중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현청의 앞으로 비틀비틀
다가서며 목 쉰 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이와 같이 악독하다니, 천하의 사람들이 너의 고기를 뜯고 너의
가죽을 벗길 것이 두렵지 않느냐? 무당의 후예들이 모두 너 한 사람
때문에 치욕을 당하게 되었으니...]
현청은 냉소하며 그 말을 받았다.
[나는 얼마 후 천영상인(天靈上人)이 남긴 비겁과 보물을 얻게 되오.
그 때 천하에 그 누가 나의 적수가 되겠소? 내가 천하 제일인이 되면
무당파 역시 천하제일의 방파가 될 터이니, 후세의 제자들 가운데 그
어느 누가 나를 고맙게 여기지 않겠으며, 그 누가 오늘의 일을 알 수
있겠소?]
운중자는 두 눈에 악독한 광채를 빛내며 매서운 어조로 외쳤다.
[나... 나는 너와 사생결단을 내겠다!]
그는 남아 있는 정력을 다 끌어올려 현청에게 달려들었다. 이것은 목
숨을 건 일격이었다. 손에서 뻗쳐난 기경은 마치 산이라도 무너뜨리고
바다라도 뒤엎어 놓을 듯했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도 한 가닥 붉은 기
운이 나타나는 것 같았고 달려드는 기세는 더욱 흉악하고 맹렬했다.
현청은 운중자가 거듭 엄중한 상처를 입은 후에도 그토록 위맹한 장
력을 쏟아낼 줄은 예상 못하고 있었다.
펑! 펑!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기경이 사납게 소용돌이쳤다. 현청은 발걸음을
휘청하며 그 무겁고 사나운 장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서
서야 가까스로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가 막 가슴팍에 끓어오르는 기혈을 쓸어내리려고 했을 때 운중자
의 그 앙상한 몸이 어느 덧 덮쳐들었다. 운중자가 억세게 치받는 힘에
그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 즉시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목줄
기는 어느덧 운중자의 두 손에 움켜잡혔다. 한 쌍의 까마귀 발톱과 같
은 두 손이 그의 목을 움켜잡고 한 쌍의 강철 고리처럼 조여들고 있
었다.
현청은 두 손을 잇달아 후려쳤으며 몸에 올라타고 내리 누르는 운중
자의 양쪽 옆구리를 마구 내질렀다.
퍽! 퍽! 퍽!
잇달아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릴 뿐 운중자의 손은 조금도 늦추
어지지 않았고 여전히 바짝 조여들고 있었다.
현청은 속으로 당황해서는 두 손으로 상대방의 두 팔을 잡고 바깥으
로 밀어내려고 했다.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것은 이와 같
은 육박전이었다. 현청은 일신에 무공을 지니고 있었으나 한번도 남과
드잡이질을 벌린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는 자기가 배운
무공을 전혀 펼칠 수가 없었다. 운중자는 죽기 직전에 사력을 다한 것
이고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통증을 돌보지 않았다.
현청은목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머리 속은 어지럽기만
했다. 두 손으로 마구 할퀴고 치면서 운중자의 몸을 잇달아 열 번이나
가격했다. 별안간 그의 휘둘러대던 두 손이 운중자의 벌려진 두 다리
를 움켜잡게 되었다.
그는 고려해 보지도 않고 두 팔에 힘을 주어 바깥쪽으로 찢어버렸다.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운중자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선혈이
즉시 쏟아져 내렸고 현청의 온몸은 피로 물들었다.
[도형!]
나직한 음성이 그의 곁에서 울려 퍼졌다.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굴 필요가 어디 있소. 그는 이미 죽었소!]
현청도인은 그제서야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몸
에 회색 가사를 걸치고 하얀 베신을 신은 노화상이 곁에 서 있었다.
현청은 목덜미에 나 있는 손가락 자국을 어루만지며 욕을 해댔다.
[늙은 잡도사 같으니. 나는 그가 언제 죽었는지도 몰랐소.]
말을 뱉어낸 후에야 그는 자기가 말을 잘못한 것을 알고 헛기침을 했
다.
[도형...]
노화상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도형, 이렇게 된다면 사건이 복잡하게 되지 않소? 운중자는 삼성 가
운데 한 사람인데 당신이...]
현청도인은 분연히 말했다.
[무슨 상관이 있소? 이 일까지 모조리 혈수천마에게 뒤집어 씌우면
되는 것이오. 누가 그보고 쓸데없는 일에 간섭하고 혈수천마의 말을
들으라고 했소? 그리고 내가 현천을 죽인 것을 의심한 것도 잘못이
지...]
이때 한 마디의 놀람에 찬 비명 소리가 그의 입을 막았다.
현청은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한 젊은 도사가 핏기 가신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청은 안색이 변해서 호통쳤다.
[송명, 누가 너보고 이곳에 오라고 했느냐?]
송명이란 젊은 도사는 현청의 새빨개진 도포를 바라보며 떨리는 음
성으로 말했다.
[장문인... 저는...]
노화상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도형, 그를 살려두면 안 되오!]
송명은 전신을 흠칫했다.
[나엽대사. 저는...]
현청도인은 무거운 어조로 호통쳤다.
[송명, 이리 오너라.]
송명은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현청도인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리 오라니까!]
송명은 몸을 돌려 도망쳤다. 현청은 흉칙하게 웃었다.
[너는 어디로 도망치느냐!]
그는 장검을 던졌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그 일검은앞으로 쏘아져 나
가더니 정확하게 송명의 등을 꿰뚫어버렸고 겨우 검자루만 바깥쪽에
남아 있었다. 처참한 비명 소리와 더불어 송명은 두어 걸음 비틀거리
더니 앞으로 푹 고꾸라져서 즉시 숨을 거두었다.
나엽대사는 약간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도형의 그 한수 검사두우(劍射斗牛)의 재간이 정말 훌륭하구려.]
현청은 얼굴을 약간 붉혔다.
[도형, 비웃지 마시오. 이것은 부득이한 조치요.]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더욱 야단났소. 내가 보기에 도형은 어서 옷을
바꾸어 입어야 되겠소.]
현청은 송명에게 다가가더니 송명의 등뒤에 꼽힌 장검을 뽑아 들었
다.
[그런데 도형은 어째서 묘실(墓室)에서 나왔소? 설마하니 현천이 이미
실토했다는 것이오?]
나엽대사는 말했다.
[당신의 그 사형은 확실히 끈질기기 이를데 없습디다. 당채 형이 독침
수혈지법(毒針搜穴之法)을 쓰는데도 보도(寶圖)가 어디 있는지 실토하
지 않았소. 나는 혈수천마가 혹시...]
현청은 말했다.
[혈수천마는 이미 몸에 중상을 입고 멀리 도망가지 못할 것이니 걱정
없소. 우선 먼저 당형과 오(烏) 도형을 불러서 함께 뒤쫓아 갑시다. 만
약에 뒤쫓지 못한다면 다시 검령을 돌리도록...]
나엽대사는 말했다.
[이번에는 천라지망을 펼치게 되었으니 혈수천마도 좀처럼 도망칠 수
없을 것이오.]
그들은 그와 같은 말을 하면서 소나무숲 쪽으로 달려갔다. 소나무숲
속에는 소로가 있었다. 그들은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약 삼십 장 쯤
달려가자 어느덧 소나무숲에서 나서게 되었고 그들의 귀에는 조잘거
리는 개울물 소리가 들려 왔다.
숲속을 벗어나자 바로 구름을 뚫을 것같고 검을 세워 놓은 것같은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가 서 있었고 십여 장 넓이의 개울이 산자락을
도와 흘러가고 있었는데 개울물 위쪽에는 쇠사슬을 얽어서 만든 다리
가 곧장 맞은편의 산허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은 바로 무당산 윗산에 있는 성지(聖地)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
다. 그 산 뒤의 협곡에는 한 조그마한 석실(石室)이 있고, 그 안에는
역대 장문 조사들의 뼈들이 모아져 있었다.
칠대 때부터 이 뒷산의 성지는 금지구역으로 정해졌고 일반 무당제
자들은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장문인만이 석실을 열 수 있었다. 그렇
게 때문에 그 누구도 이곳에 함부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현청도인과 나엽대사가 소나무 밭에서 걸어나와 산길을 따라 철삭교
(鐵索橋)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걸음을 옮겨 막 다리의 가장자리에
올라서게 되었을 적에 커다랗게 부르는 소리가 맞은편 쪽에서 들려왔
다. 그는 깜짝 놀라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니 세 사람의 그림자가 협곡
안에서 이쪽으로 쫓고 쫓기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나엽대사는 탄성을 발했다.
[아! 저것은 오 도형과 당 형이 아니오? 그들은...]
현청도인은 깜짝 놀랐다.
[저 자는 혈수천마요!]
나엽대사는 놀라 입을 열었다.
[도형, 혈수천마가 이미 중상을 입었다고 하지 않았소? 오 도형이 어
째서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오?]
현청도인은 혈수천마 고명원의 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기이한
재간을 떠올리고 가슴속이 서늘해졌다.
[저 마두는 정말 우내이마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부끄럽지 않았소. 조금
전 나는 그가 우리 사숙의 태청강기에 상처를 입는 것을 보았소. 그는
나중에 잇달아 세 모금의 선혈을 토했는데 공력은 갈수록 강해지더구
려...]
나엽대사는 서둘렀다.
[갑시다. 우리가 빨리 가야겠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견뎌내지 못하
겠소.]
그와 같이 말하는 순간에 고명원은 이미 세 가지의 재간을 펼쳐내어
공동장문 오진인과 사천당문의 당채를 공격해 잇달아 여덟 걸음을 물
러서도록 만들었고 전혀 반격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