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터에서 부르는 노래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몽고메리 장군은
기자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장군님, 전투에서 어느 편이
이길 것 같으십니까?"
그러자 몽고메리 장군에게서
예상치 못한 엉뚱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쪽이
이길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전승의
비결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는 건
분명 낙관적인 인생관을 지녔을 것이고
위험한 순간에도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할 테지만
반대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은
노래를 부를 만큼 여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정신력도 나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몸이 지치는 것보다 정신적인 침체는
결국 인생을 무가치하고, 허무하게 만들며
남아있는 힘마저 앗아갑니다.
'낙천적'은 현재의 모습이 밝다는 의미입니다.
비슷하지만 '낙관적'이라는 것은
미래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희망적으로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이유 없는 안일함이 아니라
이유 있는 긍정의 힘으로
우리의 내면은 더욱 강인해집니다.
# 오늘의 명언
낙관적인 사람은 고난에서 기회를 보고
비관적인 사람은 기회에서 고난을 본다.
- 윈스턴 처칠 -
* 희망과 기쁨으로 일일신 우일신
@ 사람이 살아나는 희망도 죽음에 절망치 않음이니, 이제 너희들이 가는 곳에는 아무런 미로(迷路)가 없느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330)
@ 박공우가 대흥리에서 증산상제님을 모시고 구릿골로 올 때, 과교리를 지나다가 문득 울음이 나오며 동학으로 다년간 고생하던 일이 생각키워 더욱 서럽게 울어지는지라. 상제님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무슨 일로 그다지 우느냐." 공우 목메인 소리로 대하여 가로대 "어쩐 일인지 부지중에 울게 되고, 전날 고생하던 일이 낱낱이 생각키워 능히 그치지 못하나이다." 가라사대 "잘되게 하여 주리니, 그만 그치라." 하시니 울음이 곧 그쳐지더라. (대순전경 p66)
===
일이 없어 한가하더라도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은 무기력한 때도 있지만, 온종일 분주한 일들이 이어져도 기운차서 거뜬한 때도 있습니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도 눈길 한 번 주기 싫을 때도 있지만, 처음 얼굴을 마주한 사람에게도 웃음을 짓는 때도 있습니다. 손발을 가볍게도 무겁게도 움직이는 것도 내 마음에서 나오고, 웃음을 짓고 거둬들이는 것도 내 마음에서 나옵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사는 마음의 자취입니다. 내 마음에 희망과 기쁨이 가득 차면, 온 세상이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차 보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대합니다. 내 마음이 체념과 철망에 젖어 있으면, 나에게 인연되는 사람과 일들을 짜증과 불만으로 대합니다. 내 마음의 노래가 인생의 노래입니다. 내 마음을 밝게 열어 희망의 기쁨의 사람으로 일일신 우일신해야 합니다.
첫댓글 근심과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요즘의 세태에서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천지부모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질서와 혼란 뒤에 찾아올 태평천하를 기대하며 오늘도 희망의 노래를 부릅니다.
사람이 살아나는 희망도 죽음에 절망치 않음이라 하였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불안해도 천지부모님이 내신 태을도 길은 성공하는 길이요,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기에,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희망과 빛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이끌어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