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에 대해서 외 1편
송기원
누님. 저는 다시 저의 말을 떠나보냅니다. 더 이상 소생의 믿음도 없이 단 한 번 화려한 말발굽 소리도 없이 저 어두운 벌판으로 저의 말을 떠나보냅니다. 이제 막 눈뜨는 솔숲의 어린 가지들마저도 어떤 예감으로 소스라쳐 우는 밤입니다. 먼 곳의 사람들은 불을 끄고 잠이 들었습니다.
누님. 서른 언저리의 나이에는 그림자만이 아름답습니다. 몇 개의 야산을 남겨두고 더 이상 바다에는 다가가지 않아요. 바다의 그림자만으로 바다를 봅니다. 구름, 비, 해, 눈, 달……모든 사물들이 그림자만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 그림자를 떨구며 숲에서는 새가 죽습니다. 누님. 만일 저의 말이 단 한 번 화려하게 울음을 운다면 그것은 그림자 때문입니다.
시
별빛 하나에도 우리를 빛낼 수는 있다.
한 방울 눈물에도 우리를 씻을 수는 있다.
버려진 정신들을 이끌고, 바람이 되어
한반도에 스민 잠을 흔들 수는 있다 .
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는 자여.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더 이상 시를 써서 시를 죽이지 말라.
누군가 엿보며 웃고 있도다, 웃고 있도다.
-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실천문학사, 1983.
▩ 송기원
- 1947년 전남 보성 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현 중앙대 예대) 문예창작과(68학번)를 졸업했다.
- 2004년 7월 31일 향년 77세로 별세했다.
-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 회복기의 노래 」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경외성서」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 시집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마음속 붉은 꽃잎』,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저녁』 등이 있다.
- 소설집 『열아홉 살의 시』, 『월행』,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 『안으로의 여행』, 『또 하나의 나』,
장편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여자에 관한 명상』, 『청산』,
명상소설 『숨』, 첫 청소년소설 『누나』 등이 있다.
-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 동인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대산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