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생 답사 보고서.hwp
금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틸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가져라
- 최씨 고택을 다녀와서
역사학과 20152604 김장미
역사문화의 도시 ‘경주’로 떠나는 버스 안은 두근거림과 설렘, 한편으로는 걱정이 함께했다. 역사학과의 3박 4일의 답사는 실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하며 교수님과 학부생간의 뜻 깊은 유대를 맺게 된다. 긴 여정이기 때문에 불안함이 앞서기도 하지만 보고 느끼는 공부는 그 어떤 것에도 견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번 답사는 필자의 동기들이 주체적으로 코스를 짜고 미리 답사도 다녀오며 밤을 새서 만들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기대가 매우 컸는데 이번 답사는 나의 기대 이상의 즐거운 답사가 되었다.
경주는 천년왕국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작년 2015년 역사학과 1학년 2학기 수업으로 ‘고고미술사학개론’을 들으면서 경주의 많은 유적·유물에 대해서 배웠다. 그 모습을 이미지가 아닌 피부로 경험하게 되어 너무나도 기뻤다. 그러나 역사 기행을 하면서 수박겉핥기식으로 속전속결로 보고 넘어가야하는 안타까움은 숨길 수가 없었다.
경주교촌한옥마을은 월서와 첨성대 주변 사적지에 접해있다. 이번 답사에서 월서와 첨성대는 가보지 못했지만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다녀와 본 경험이 있기에 위안을 삼았다. 신라시대 왕실이었던 월성과 바로 연접해 요석공주와 원효대사가 설총을 낳았던 요석궁이 위치해 있기도 한 유서 깊은 땅인 최씨 고택의 땅은 오늘날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신라 국학이 있던 곳으로 더욱 이름이 높다. 지금은 경주 향교가 자리 잡아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모시면서 오랜 전통과 예절을 공부하는 터전으로 학문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답사를 떠나기 바로 전 주에 역사학과 필수 전공인 한국사 사료강독 수업을 들으면서 삼국유사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면서 신라의 문화에 대해서 살펴보고 신라의 화랑도에 대해서 관심 있게 살펴본 바가 있었다. 신라의 청소년의 교육제도가 화랑으로 꽃을 폈다는 점에 신라에는 국학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필자의 얕은 지식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해주는 경험이었다.
오늘날 최씨 고택은 조선시대 전설적인 만석꾼 ‘최부자’ 가문의 훈육을 알리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재단법인 ‘경주최부자아카데미’를 설립해 교육체험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최부자아카데미는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경주 최부자의 훈육정신을 재해석해 현대인들의 기업이념과 접목 보급하고 있다. 곳곳에 최부자의 노블리스오블리제에 대한 팻말이 세워져있어 과거 최부자댁의 덕목을 후손에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보였다.
경주 최부자는 12대 400년 동안 부를 지켜오다가 최준에 이르러 마감했다. 그는 부산에서 안희제와 함께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운영하면서 많은 돈을 상해 임시정부로 보냈으며 그 결과 회사는 어려워지고 부채를 사장인 자신이 몽땅 떠안았다. 일제는 여러 벼슬을 제시하며 갖은 방법으로 유혹했지만 끝내 응하지 않았다. 해방을 맞이하고 그는 나라가 망한 것이 부족한 교육 때문임을 깨닫고 400년 묵은 그의 재산을 던져 영남대학을 설립했다.
경주 최부자의 훌륭한 선행들은 물질문명이 우선시되고 황금만능주의로 이기적인 현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정신이 아닐까 싶다. 흉년구제는 나라에서도 어쩔 수 없었던 때 최부자는 곳간을 열고 굶주린 이웃을 구했던 것이다. 경주 최부자아카데미 설립은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적 사례로 경주시가 이를 널리 보급하려는 착한 노력이라 하겠다. 아무리 부자여도 주변 사람들에게 눈 돌리기가 힘든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분제 사회로 양반은 양반의 세계가 있고 상민은 상민의 세계가 있었을 텐데 양반이 상민의 세계에 까지 눈을 돌렸다는 점에서 매우 감동을 받았다. 오늘날의 계급사회에서는 기업가들이나 상위계층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3월 말 서울의 사람들보다 조금 일찍 봄을 맞이한 경주에는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햇살이 따뜻했으며 사람들의 웃음에는 생기가 띄었다. 그런 아름다운 날에 경주로 답사를 가게 된 것에 감사했다. 최씨고택을 관리하시는 분께서 경주의 신라역사는 천년이지만 경주의 역사는 이후 고려·조선, 현재까지 이천년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더 맞는 말이었다. 2천년동안 우리의 삶에서 역사를 보여주며 살아 호흡하는 경주를 다음 답사에서는 더 세세하고 가깝게 맞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