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터} 동인 제8집 출간
명당明堂, 좋은 자리. ‘터’라는 말은 참 좋다. 정겹다. ‘터’라 하면 사전적으로는 궁궐터, 절터, 우물터 등 건물이나 구조물이 들어서야 하는 맞춤한 자리(땅) 또는 어떤 일을 이루는 밑바탕이나 그 근간을 일컫는 말인데 써놓고 봐도 소리를 내어 읽어봐도 참 정감이 가는 마음 든든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시터’ - 시의 밑바탕, 시의 고향, 시의 근간, 시가 편안히 머무는 곳, 시가 있을, 있어야 할 맞춤하고 좋은 자리(땅)!
정영숙, 최금녀, 최도선, 한이나, 황상순, 노혜봉, 신명옥, 신원철, 윤경재, 이명, 이미산 등, 열한 명의 긴 숨비소리를 세상 밖으로 내놓는다. 12년 째 시의 터를 야무지게 다지고 있는 시터 동인들.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의 나선 같은, 시작도 끝도 없는 시의 길 위에 매년 열정으로 빚은 붉은 벽돌 한 장씩 얹고 있다. 책을 펼치면 붉게 빛나는 창문마다 초록빛 나무들이 고개를 내밀고 색색의 빛깔로 춤추고 있으리라.
시터 회원: 정영숙, 최금녀, 최도선, 한이나, 황상순, 노혜봉, 신명옥, 신원철, 윤경재, 이명, 이미산
언제나 녹슬지 않는 철로, 언제나 멈추지 않는 피리소리였다 너는 “언제나 사랑한다”는 말의 주어였으나 ‘언제나’ 부사가 사라지자 너는 없는 사람이 되었다 너라는 주어가 사라져도 ‘언제나’ 부사는 혼자서 꽃을 피우고, 언제나 새를 날리고 금붕어를 기르고, 언제나 애드벌룬을 날리며 하늘에 구름을 띄운다
----정영숙, [언제나] 부분
우리는 동쪽에 있다// 남편은 늘 동쪽 벽에 기대어 앉아/ 서쪽 벽을 보고 있다// 액자 속 인물들은 표정을 바꿀 생각이 없다/ 40년 된 소철은/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반가운 적이 없는 기억들이/ 꽃 진 화분에서 기어 나와/ 틈새를 찾아다니며 핀다// 르누아르의 여자는 그림 속에서도 르누아르를 사랑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은 냉동실에 넣어두고/ 죽음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정장 차림으로 날씨를 읽는다// 서쪽 벽은 늘 춥고 어둡다/ 바라보는 중이다.
----최금녀, [서쪽을 보다] 전문
조석 간 드러내는 저것 봐,// 저것 좀 봐!// 훌러덩 벗어 던지고 속살 보란 듯이 퍼지른//함부로 말하지 마라// 삶의 터다. 바닥이
----최도선, [뻘] 전문
바다는 한 잔의 커피/ 부딪쳐서 하얗게 꽃이 되는 해변의 3월은/ 남색이 어울리겠죠/ 물결이 반짝이는 것은/ 새로운 별이 태어난다는 것/ 당신의 테이블 위 오늘은 아콰마린,/ 한 잔의 바다와 수선화가 어울리겠죠
----이명, [카페 노바] 전문
---- {시터} 동인 제8집 ,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
시터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