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왕상 3장 4-15절
설교제목 : 꿈에서 길을 찾다
꿈의 중요성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새로운 희망찬 계절, 5월이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이 땅의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 안에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모셔들이길 소망하며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어린이는 유치하고 순진한 태도를 지닌 교육되고 발전해야할 그림자의 측면도 있지만, 개방적이고 순수한 마음으로 미래의 잠재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개성화의 초기에 이런 전체성의 상징인 대극의 연합으로서 어린이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미래가 아름답게 펼쳐지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과 순수한 태도로 오늘 여기에서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예수님도 결단코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와 하나님의 이미지는 동일한 상징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미래의 삶을 열기 위해 어린이와 같은 개방성과 순수성, 현재성도 필요하지만, 미래의 문을 여는 결정적인 힌트는 꿈에 있습니다. 스위스 융심리학 재단 이사장인 한수엘리 에터 박사는 《꿈의 지혜》라는 책에서 현생 인류의 효시인 ‘호모 하빌리스’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질문합니다. “과연 꿈의 어떤 생물학적 기능이 조류와 포유류,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속인 ‘호모’가 더 성공적으로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그는 “밤의 꿈과 더 일반적으로 내적 이미지에 대한 집중은 생물학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과 환경 적응과 궁극적으로 성공적 생존에 유익했을지 모른다. 만약 이것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꿈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수백만 년에 걸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의미 있고 적절하게 여겨져 온 원형적인 인간 행동임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를 찾아야 한다”[꿈의 지혜, 5장 참고(근간)]고 말하면서 과학적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수많은 실험을 통해 꿈은 사실 모든 포유류와 조류에게서 나타나는 정상적인 생물학적 현상임이 밝혀졌으며, 인간과 포유류의 특정 뇌파에 대한 조나단 윈슨(Jonathan Winson, 1923–2008)의 연구를 통해 낮 동안 축적된 중요한 경험들이 꿈속에서 반복된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입증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경험들은 처리되고, 더 잘 저장되며, 행동 목록(repertoire)에 통합되어 지능적인 행동을 초래하였다고 말합니다. 조나단 윈슨은 “꿈에서 가리키는 모든 것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깨어 있는 토끼의 경우, 동물들이 특히 경계 상태에 있을 때, 기억에 핵심적인 변연계의 한 영역인 해마(hippocampus)에서 초당 6회 주기의 규칙적인 사인파 신호가 감지되었는데, 이 신호들을 ‘세타 리듬(theta rhythms)’이라 명명했고, 이러한 신호는 다른 많은 포유류에서도 감지되었습니다. 세타 리듬은 동물이 생존에 특히 중요한 행동을 보일 때 항상 나타나는데, 쥐가 잠재적인 먹이를 찾을 때, 고양이가 사냥할 때, 토끼가 주변을 살필 때입니다. 조나단 윈슨은 세타 리듬이 생존에 필수적인 낮 동안에 축적된 새로운 경험들이 REM 수면 중에 반복되어 더 잘 저장되는 뇌의 과정을 반영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쥐에게 미로를 통과하는 법을 가르치는 실험에서, 이후 수면 중에 세타 리듬이 억제되었을 때 통상적인 학습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다음 날 아침 반복 학습 전에 REM 수면을 취했을 때 REM 수면이 박탈된 경우보다 기억 수행 능력이 현저히 더 우수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신경생물학자 조나단 윈슨은 동물 실험을 바탕으로, 동물의 무의식이 일관성 있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정신적 구조이며, 이곳에서 삶의 경험들이 수집되어 무의식 자체의 원리에 따라 재해석된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에터 박사는 꿈은 성공적인 생존에 필요한 조건을 최적화했고, 따라서 꿈을 고려하는 것은 원형적인 인간적 특성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꿈을 기억하고 꿈을 이해하는 것은 성공적인 생존과 미래의 새로운 문을 여는 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마음
다윗의 시대가 저물었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솔로몬이 등극한 후, 정치적 안정을 꾀하면서 늘 기브온 산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읽은 새번역 성서는 왕은 늘 그곳에 가서 제사를 드렸고, 그때까지 바친 제물이 천 마리가 넘을 것이라고 번역합니다. 어찌되었든, 일천 마리가 넘는 소를 번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던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런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의식이 무의식에 관심을 표명하고, 종교적인 태도로 접촉을 시도하면 무의식이 활성화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기도가 때때로 기적적인 치유와 신비를 불러오는 이유는 자아의식의 리비도를 내향화시킴으로써 무의식의 활성화를 초래하여 의식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정적자들을 처결하고 나라의 안녕을 꾀해야만 하는 왕으로서 일을 감당하면서도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천 마리가 넘는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종교적인 태도로 인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이다는 말처럼 정성을 지극히 다하면 하늘이 감동하는 것입니다. 세네카의 말처럼, “운명은 의지가 있는 자를 안내하고, 의지가 없는 자를 질질 끌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향적이고 종교적인 태도는 하나님의 힘을 불러일으키는 것임을 마음에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속에서 길을 찾다
하나님은 꿈에서 솔로몬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우리가 이 질문 앞에서 실제적으로 선다면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요리하겠다고 요리사의 큰 칼을 달라고 하면 어찌될까요?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나의 수준과 정체성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구함은 잘못된 욕망으로 오염되고 쉽고, 팽창과 열등을 오가며 무분별하게 됩니다.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면, 나의 소원은 늘 남의 것을 차용하여 자신의 본성과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 왕에게만 나타나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질문하지 않으십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고, 꿈은 솔로몬했던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솔로몬을 향한 시험적인 질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꿈은 우리를 시험합니다. 꿈의 심상은 나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나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요청하고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라고 말을 건네오고 결정적으로 꿈의 자아를 실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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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무시무시한 꿈을 꿀까요? 꿈은 자아의식의 잘못된 정체감을 교정하여 너는 외국인이 아니고, 긴장 속에서 첩보원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그 머리를 가격하여 죽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 못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꿈은 대단히 극약처방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꿈은 우리에게 계속 말을 겁니다. “너는 누구로 살고 있는지, 너는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융은 죽기 1년 전쯤에 허버트 리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위대한 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많은 사소한 꿈들과 그것들의 힌트에 겸손과 복종으로 따르는 많은 행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미래이자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림입니다.” 수많은 사소한 꿈들 속에 미래의 지도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꿈 속에서 길을 묻고 길을 찾았듯 저와 여러분의 매일 꿈 속에서 저와 여러분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듣는 마음
솔로몬은 주님 앞에 구합니다. “저는 아직 어린 아이입니다. 아직 어떻게 왕으로서 처신할 줄 모릅니다. 저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왕상 3:7-9) 지혜로운 마음을 구하였습니다. 개역개정판에는 ‘듣는 마음’이라고 번역합니다. “discerning Heart(NIV, KJV: understanding heart)” 식별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한 솔로몬에게서 지혜의 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판단하려면 듣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자기애성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살아가고, 인정의 욕구에 목마른 오늘 우리 세계에서 듣는 마음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AI가 정보를 처리하는데는 탁월하지만, 인간적인 공감능력까지 발휘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은 마치 인공지능처럼 정보를 처리하고 지적으로 살아가는데는 아주 익숙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하며 공감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것이 부실한 우리교육의 현주소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학교는 지성적이고 입시 위주 교육을 탈피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다루고, 사유하는 법에 대하여 일러주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가중되면, 근본적으로 자신으로부터 소외될 수 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듣는 마음, 지혜는 너무나 우리 시대에 필요로 하는 덕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듣는 마음이 있어서 외부와 내부의 현상을 식별하게 함으로써 삶을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