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 디자인에 관심 있는 16명의 고등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주변에 흔히 있지만 결코 눈 여겨 보지 않았던 ‘버스정류장’을 일상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직접 디자인 해봄으로써 디자인의 의미를 짚어보는 시간, ‘오아시스 같은 버스 정류장’ 프로그램(2015.1.27~2.3, 총 4회 진행)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 프로그램은 ‘2014 학교 문화예술교육 교수-학습지도안 개발 연구-디자인’에서 확장 개발된 하나의 모듈로서, 진행 과정이 영상이 포함된 툴킷(toolkit)으로 제작된다(2015.4 배포예정). 이번 툴킷은 학습지도안 개발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시행한 시범 수업을 영상으로 제작한 첫 번째 사례로서 그 의미가 깊다. 결과물 공개에 앞서 학습지도안 개발 연구와 툴킷 제작을 위한 시범 수업 기획∙진행을 함께한 김선아 교수(한양대학교 응용미술과)와, 손현준(디자인), 이효광(디자인) 예술강사를 만났다.
디자이너가 가르치는 디자인 교육
Q. 디자인 학습지도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김선아 교수(이하 ‘김선아’)_ 예술강사를 위한 학습지도안 연구는 분야별로 계속 이어져 왔다. 디자인 분야에의 연구 제안 요청을 보고 한 번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교과로서 미술을 가르치는 것과 예술강사의 미술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습지도안의 전제적인 틀과 진행은 내가 맡았고, 실질적인 개발은 교사와 예술강사들이 서로 교차적으로 검토해가며 진행했다.
이효광 예술강사(이하 ‘이효광’)_ 평소 학습지도안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김선아 교수님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예술강사로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5, 6학년 학습지도안을 맡아 진행했다.
손현준 예술강사(이하 ‘손현준’)_ 예술강사로 6년간 활동하면서 개인적인 학습지도안은 갖고 있었다. 한편으로 통합적인 학습지도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오던 차에 연구진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Q. 학교 미술 교과 내 디자인 단원과 문화예술교육으로서 디자인 교육은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는가. 미술 교사와의 협업과정에서 이 부분들이 어떻게 논의되었는지 궁금하다.
이효광_ 예술강사 연수과정에 미술교과분석 수업이 있다. 교과서 별로 분석한 뒤 실질적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숙지하는 것이다. 이 과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차별성’을 두는 것인데 실제 수업을 하다 보면 내용이 겹칠 때가 많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미술교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학습지도안은 교과서 밖의 디자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현준_ 이효광 강사 말대로 겹치는 게 많다. 예를 들어, CI, 캘리그라피, 문자디자인은 미술 시간에도 배운다. 만약 같은 소재로 수업을 한다면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방식의 차이는 교사와 현직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CI를 가르칠 때, 실제로 진행한 디자인 작업을 보여주면서 기획의도와 콘셉트, 클라이언트와 어떻게 회의를 하는지 등 실무적인 부분까지 자세히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학생들의 집중도가 달라진다.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며 생활 속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는 디자인 요소들을 발견해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김선아_ 예술강사의 디자인 교육과 학교 미술 교육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예술강사의 디자인 수업은 소재를 중심으로 다루기보다는 실제 경험에서 나오는 디자인적인 사고와 이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실 디자인 예술강사들은 본인에게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수업 중에 무의식적으로 말로 표현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다. 예술강사 본인에게는 몸에 배인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학습요소로 잘 전달하고, 짚어주며 아이들과 원활히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학습지도안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손현준_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학습지도안에는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었다. 사실 학교에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재료에는 한계가 있다. 학생들이 모두 준비물을 여유 있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저렴하거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도록 만들었다. 다양한 재료를 구비했다가도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로 단순화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통해 누구나 이 수업을 손쉽게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재료에 대한 부담 없이 폭 넓게 사용할 수 있는 학습지도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2014 학교 문화예술교육 교수-학습지도안 개발 연구-디자인』은 실제적인 경험에 기초한 디자인 교육의 지도 방안을 마련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미술과 내용 중 디자인 수업의 내용 및 시수를 고려하여 단계별(Level1~5: 초등 1-2학년, 초등 3-4학년, 초등 5-6학년, 중등, 고등)ㆍ수준별 협력수업 유형별로 개발되었다.
‘오아시스 같은 버스 정류장’ (2014 학교 문화예술교육 교수-학습지도안 개발 연구-디자인, 301-306p) 은 Level5(고등학교) 수업으로 아이들이 주변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살펴보고 그 특징을 살려 우리만의 버스 정류장을 디자인해 보는 수업이다. 실제로 버스정류장을 사용하는 시민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타인의 불편함을 상상해보며 우리 모두를 위한 공공디자인의 과정을 학습하게 된다. 본래 4차시로 개발된 모듈이지만, 교육과정의 가치를 잘 드러내기 위해 툴킷 제작을 위한 시범수업에서는 8차시(2차시씩 총 4일 진행)로 확장하여 설계, 진행되었다.
매일 이용하는 버스정류장,
나만의 디자인을 더하다
Q. 툴킷 제작을 위한 시범수업 개발 과정에서 특별히 ‘오아시스 같은 버스 정류장’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김선아_ 이번 연구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기본적으로 ‘삶과 연관된 디자인 교육’이다. 디자인은 문화예술교육의 그 어떤 영역보다 일상 생활과 밀접하다. 특히 ‘버스 정류장’이라는 요소는 학생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다. 또, 과정과 결과를 균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있다. 디자인은 과정이 잘못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 굉장히 분석적이면서 창의적인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순수예술과 달리 디자인은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생활 영역이라는 이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사항들을 종합한 결과 ‘오아시스 같은 버스 정류장’ 수업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조사와 모둠 협업, 의견 조율을 마치면 정류장이라는 결과물을 가시화해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정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었던 측면에서 균형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이효광_ 김선아 교수님이 총 세 가지의 시범 사업을 정했고, 논의 결과 디자인 사고적이면서 결과물 중심으로 갈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버스 정류장’ 콘텐츠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적절한 시범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손현준_ 아이들이 직접 발로 뛰고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업을 찾았다. ‘버스 정류장’은 다같이 사용하는 공공장소인데다 학생이라면 하루에 두 번 정도는 찾아가는 곳이다 보니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거기에 필요한 게 뭔지, 갖춰야 할게 뭔지에 대해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아시스 같은 버스 정류장’을 고르게 되었다.
Q. 그렇게 선택하여 진행한 ‘오아시스 같은 버스 정류장’ 수업에 대한 학생의 반응은 어땠나?
손현준_ 일단 기존 수업 방식과 달라서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자리에 앉아서 예시를 통해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발로 뛰고, 스스로 방법을 찾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시민들과 인터뷰를 통해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도 재미있어 했다. 무엇보다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장소여서 그런지, 버스 정류장에 바라는 점이 많더라.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임에도 아날로그적 감상을 디자인에 반영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색다른 수업에 대한 갈망을 해소해 준 것 같다.
이효광_ 수업을 준비할 때는 클레이, 종이, 찰흙 등 다양한 만들기 재료를 쌓아놓고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는 학생들에게 오로지 골판지와 종이만 주었다. 결과물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재료가 많을 때 보다 더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 주어진 골판지를 어떻게 활용할 지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디자인적 사고를 배우는 모습을 보았다.
김선아_ 시범 수업 현장에 가서 보니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이더라. 정말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실제 작품 제작 과정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같이 구상하고, 외관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아날로그적 감수성도 넣어가며 재미있게 만들더라. 또 다시 참여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예술강사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학습지도안이 되길
Q. 문화예술교육은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르기 보다 예술강사의 전문성과 창의성, 참여자의 반응과 상호 소통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진행된다. 이런 환경에서 학습지도안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접근이 필요한가?
김선아_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이건 말 그대로 참고용이지 교과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연구는 궁극적으로 예술강사들의 수업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습지도안을 그대로 수업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문화예술교육은 기계적인 일이 아니다. 학교마다, 아이들마다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수업을 하기도 어렵다. 학습지도안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해서 자신의 수업을 발전시킨다면 가장 좋은 적용사례가 될 것이다.
이효광_ 학습지도안은 수업의 3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70%는 예술강사가 채울 수 있다. 학습지도안만 있으면 누구나 수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해석하지 않으면 실제 수업에서 있는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강사를 5년 정도 하다 보면 대부분 노하우가 생겨서 이미 자신만의 수업 매뉴얼을 갖고 있다. 1년에서 3년 차 되는 신규 예술강사들에게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손현준_ 학습지도안을 ‘뷔페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했으면 한다. 처음 예술강사를 시작한 경우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만 지도안에서 골라 먹되 자기 나름의 표준 음식을 만들면 더 좋을 것 같다.
Q.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누어 달라.
김선아_ 교육에 대한 연구가 점점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으로 바뀌고 있다. 예술강사 스스로 수업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학습지도안을 보편적인 틀로 보고 발전 가능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기를 기대한다. 학습지도안 개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학생에게 질 좋은 수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손현준_ 무엇보다도 학습지도안이라는 기록물을 토대로 내 수업을 검토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인 자료들이 컴퓨터에 둥둥 떠다녔는데 집대성된 덕분에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공유의 장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효광_ 교육의 질적인 차원에서 학습지도안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선행연구 차원에서 다른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시일이 지나 새로 개발이 필요한 학습지도안이 많았다. 연구개발은 3년, 4년 주기로 리뉴얼 되었으면 한다. 특히 디자인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시대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두 번째 연구가 언제 시작될지 모르지만, 그때는 다른 예술강사들도 관심을 갖고 참여했으면 좋겠다. 예술강사로서 매우 귀중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글·사진_ 김지혜
김선아 교수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응용미술교육과 부교수. 응용미술교육과 학과장,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예술치료교육 전공주임을 역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 SUNY at Buffalo에서 M.F.A.를, Syracuse University에서 미술교육전공으로 Ph.D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조형교육학회 편집위원장, 한국미술교육학회 법인이사와 국제교류위원장, 한국다문화교육학회 국제교류위원장, KoSEA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손현준 예술강사
디자인 분야 예술강사. 경성대학원 석사, 경성교육대학원 미술교육석사, 부경대학교 박사. (주)자연디자인의 이사를 맡고 있다. 부경대학교, 경성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및 디자인학과 등 다수의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아르떼 아카데미에서 ‘문화예술교육으로서의 디자인교육 목표’, ‘학교교육 현장 사례공유 세미나’ 등을 강의했다.
이효광 예술강사
디자인 분야 예술강사.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시각디자인전공 석사.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인봄’ 대표이자 호서전문대 경영정보학부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현재 중앙대, 동서울대, 서울정보학교에서 디자인/멀티미디어 강의를, 중앙대 문화예술교육원에서 문화예술교육사 2급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