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 레지오의 수호 성인들
제3항 "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교본:211- 212쪽)
레지오의 영성과 성모 신심은 프랑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가 저술한 [거룩한 동정녀
께 대한 참된 신심]이란 책에서 유래한다. 이 성인은 이 책에서 레지오 마리애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였다(114항 참조).
이 성인의 이름을 레지오의 시작 기도문에 삽입하기로 한 다음과 같은 결의문으로써
이 성인은 레지오의 특별 수호 성인이 되었다. 어떤 특정 성인이나 지역의 수호자를 레지오
의 수호 성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결정에 비추어 볼 때 몽포르의 복자 그리뇽을 포함
시키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레지오 발전에 이분만큼 큰 역할을 한 성인이 없다. 레지오 마리애 교본은 이분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고 레지오의 기도문은 바로 이분이 하신 말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분은 사실상 레지오의 스승이므로 레지오가 이 성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거의 도의적
으로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면 이 성인의 생애를 알아보자.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St. Louis Marie Grignion)
은 1673년 1월 31일 프랑스 렌느 교구의 몽포르(Montfort)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18명의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으나 첫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기 때문에
맏아들 노릇을 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모상 앞에서 자주 기도하여 성모 신심이 각별해진 것인지 견진성사 때
세례명인 루도비코에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덧붙였다.
그는 어느 날 가르멜 성당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에 사제직에 대한 소명을 깨달았다.
20세 되던 1693년에 사제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갔다. 2년 간 고생 끝에 성 슐피스 수도회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700년 6월 5일에 성품성사를 받아 수사 신부가 되었다.
당시 그는 캐나다의 원주민을 대상으로 선교하고 싶어했으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시립
병원의 원목이 되었다. 도시 빈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그 병원에서 마리 루이즈 뜨리세라는
동정녀와 함께 '지혜의 딸들' 수녀회를 창립하였다.
성모 신심을 권장하는 그의 활동이 얀세니스트(Jansenist)들의 방해를 받았다. 얀세니즘은
교회 안에서 엄격주의를 표방하고 특히 성모 신심을 거부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들의
방해를 받아 사면초가에 직면하였다.
1706년 봄에 그는 걸어서 로마까지 가서 교황 클레멘스 11세를 알현하고 도움을 청하였다.
교황의 지시에 따라 그는 프랑스 서부 지역의 선교사가 되어 하느님의 백성을 지도하고
가르쳤다.
그는 무려 2만 5천㎞를 걸어 다니면서 7개의 교구를 재복음화시켰고 100개 이상의 본당을
변화시켰다. 그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곳곳에 세우고 성모 경당을 복구하고 묵주기도를
권장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를 강조하였다. 또한 신자들로 하여금 세례 때의
서약을 갱신하고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 완전히 봉헌하는 생활을 하도록 가르쳤다.
그는 '마리아 선교 수도회'도 창설하고 훌륭한 저서들도 남겼다. 마리아를 통한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을 영위한 그는 1716년 4월 28일 생 로랑에서 선종하였고 그곳 슈르 쎄브르
성당의 성모 경당에 묻혔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 성인의 훌륭한 생애와 영성을 본받고 이 성인이 가르쳐준 참되고 완전
한 성모 신심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성인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짓도록 권장해야 할 것이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축일은 4월 28일이다.
최경용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