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들(040508)
시골동네로 들어오는 쪽다리 삼갈래길에서 나는 핸들을 두손으로 잡고 왼쪽으로 힘차게 꺾었다. 그 핸들사이로 모내기를 하려는 듯 걸머진 삼태기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비료를 뿌리는 논에 서있는 농부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영출아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어릴쩍부터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짚으로 새끼를 꽈 만든 공으로 어둑해질 때 까지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 중벌벌떤에서 축구놀이하던 죽마지우다. 또 이웃집 점순이,정옥이와 더불어 소꼽놀이하던 초등학교 친구이며 쉰이 넘은 지금에도 동창모임에서 만나면 즐겁고 기분좋은 사람중의 한사람이다. 차를 시골집 앞마당에 세우고 논뜰로 걸어 내려갔다. 집 앞들녁은 모내기준비로 한창이다. 이미 모내기를 끝낸 들녁은 모포기가 이미 땅냄새를 맡은 듯 짙푸른 머리를 곧게 세우고 논흙속에 젊잖게 묻혀있다. 영출아재는 다가오는 나를 알아보고 먼 발치에서 손으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걸머진 삼태기를 논뚝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오는 영출아재의 울퉁불퉁한 종아리에는 멍게흙이 듬성 듬성 묻어있다. 풀섶에 흙묻은 손을 썩썩문지르더니 내가 서 있는 길가로 와 나를 논뚝옆 비닐하우스로 안내한다. 오늘은 봄철인가 의아할 정도로 매우 덥다. 안으로 들어서니 밖과는 달리 시원함이 느껴지고 그런대로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록 임시거처할 만한 살림살이가 여기저기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삽,낫,호미,갈퀴에서부터 답싸리 마당비 그리고 구석 서늘한 곳에 맥주박스와 휴대용가스곤로까지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흐트러진 신문지 두서너장을 주어다가 손님자리를 만들고 앉기를 권한다. 맥주병 하나를 뽑아 통채로 넘겨준다. 종이컵이 있을리없고 뚜껑따게 또한 없다. 맥주병 두 개를 적당히 뚜껑끼리 슬며시 걸어놓고 한손으론 맥주병을 잡고,다른 한손으로는 다른 맥주병뚜껑을 태권도 벽돌깨는 동작으로 내리친다. 뻥하는 소리와 동시에 맥주뚜껑 하나가 멀찌감치 날아가고 맥주가스가 힘차게 흘러나온다. 홀짝홀짝 입안에 흘려넣으니 여간 시원한게 아니다. 빈속에 흘려넣어선지 친구와의 얘기에 흠벅젖어선지 금방 취기가 몰려온다. 조달청화물보급소에 근무하는 영출아재는 부인과 사별한지 이십여년이 지났지만 여기에서 십여리떨어진 초지리에서 사남매 자녀들을 건사하며 홀로 지내고 있다. 한때는 재혼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찌어찌하여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이젠 경제적 여유도 있는 중년 홀아비다. 조달청에 취직하면서 논농사를 그만두고 어머니 모시는 동생인 영일아재에게 맡겼다한다. 쌀가마라도 가져오려니 했는데 여러해동안 그냥지어먹기만 한단다. 해서 작년부터는 반공일이나 일요일을 이용해 논농사에 전념하고 오늘처럼 절기를 필요로 하는 놓쳐서는 안되는 날은 임시휴가를 낸단다. 그야말로 멋쟁이 농부다. 내가 서울로 고등학교 유학하러 올라갈 때 고향을 떠나면서 꿈꾸었던 마음의 꿈을 영출아재가 보여주고 있는거다.
오토바이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는데 영일아재가 들어오고 얼굴에 논개흙이 뒤범벅으로 묻어있다. 모내기 준비를 하다가 우리집 앞을 보니 차는 서있고 내가 보이지 않으니 여기있으려니 하고 뭔가 함께 하자고 온게 분명하다. 봄가믐이 심하다보니 냇가 바닥이 들어나고 보니 고기들이 낮은 지역 웅덩이 서너개에 몰려있단다. 영출아재와 나보고 고기잡으러 가자고 성화가 대단하다. 영일아재가 앞서고 난 영출아재 오토바이 뒤에 달려오란다. 내가 양동이를 들고 영출아재 오토바이에 달려가다보니 영일아재는 벌써 그물을 들고 앞에 달리고 있는게 저멀리에 보였다. 영출아재가 속력을 올렸는지 굉음이 일어나며 오토바이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양 손아귀에 힘이 모아지고 양쪽다리에 힘이들어가 오토바이 몸체를 조인다. 중벌냇가로 다달으자 영출아재는 냇가옆 목장에 잠간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우사에서 투망을 찾아 들고 나온다. 물고기를 싹쓰리하려는 듯 싶다. 봄가믐으로 냇가 다리밑엔 흐르는 물이 말라버려 웅덩이 몇 개로 이루어져 있고, 다리 위에서 보아도 말라버리기 시작한 얼마안남은 시냇물을 의지한 고기들이 떼를지어 왔다갔다 하는게 보인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 봄가믐이 계속되면 다리정갱이에 닿는 이 물도 다 말라버릴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저 고기들도 죽고 말겠구나 싶다. 이 시기에는 농부들이 신경이 날카로와져 외부인이 고기잡으러 왔다가는 심한 비난을 면치못한다. 그것도 그물이 모자라 법으로 금지된 투망까지 동원해 씨를 말리려하니 말이다. 이런 나의 얼굴표정을 읽었는지 같은 동네사람들끼리는 괜찮다며 고기잡이를 재촉한다. 영일아재와 나는 그물을 양쪽에서 들고 들어가 바닥에 그물을 밀착시키고 풀섶까지 그물을 끌고 간다. 고기는 더 이상 갈곳이 없게 되고, 우리들은 과거 어린시절하던 그대로 발로 흙탕물이 일 정도로 마구 휘져버리면서 그물안쪽으로 발을 세차게 움직여 고기들을 몰아들인다. 물속에 잠긴 내다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감각으로 볼 때 제법 고기들이 상당히 많다. 영일아재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씽긋 웃으며 그물을 들어올린다. 한번에 삼사십마리가 햇빛에 놀래 퍼덕거리고 그물안이 흔들린다. 송사리,불거지,뚜구리,모래모지,쏘가리,치리 등이 즐비하다. 먹기에 좋은 약지손가락 길이의 고기들인데 미꾸라지가 안보인다. 그 순간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 어디 있을까하는 행복함에 잠긴다. 어린이와 다름없는 이 표정이며 즐거움에 양복바지가랑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고기잡이에 혼이 팔려있다. 뒤에는 영출아재가 언제 가져왔는지 투망을 펴놓고 싹슬이를 하려는 듯 나보고 도와달란다. 그가 하라는 대로 투망 한켠을 들고 보조를 맞춰 고기를 튀겨가며 가급적 낮게 끌어보니 묵직하다. 이런 투망질은 처음이다. 이렇게 하기를 이십여분이 지나니 양동이가 묵직할 정도로 가득찬다. 처음에는 작은 고기까지도 손으로 움켜 하나 하나 집어넣었는데 고기가 많이 잡히다보니 아예 중간치 고기는 살려주는 너그러움까지 베푼다. 양복바지는 흙구구리로 도배를 했지만 기분만은 대단히 좋다. 살결에 닿는 바지를 통한 흙탕물의 촉감도 왠지모를 동심으로 가득차 즐겁기만 하다. 냇가에서 올라오다보니 찢어진 그물 한귀퉁이가 보이고 그 안에 고기서너마리가 갇혀있다. 영일아재는 살려주는 너그러움까지 보인다. 풍요로운 고기잡이와 어린시절의 그리움이 함께 어루러진 합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동네 어귀로 돌아오니 이논 저논에서 모내기 준비하는 사람들이 서너명 모여들었고 모두들 부러워하는 표정이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손맛을 즐긴다면 시골에서의 고기잡이는 어릴쩍 친구들과 동심을 즐긴다고 함이 어울릴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쉰이 훌쩍넘은 어른들이 체면이고 뭐고 다 잊어버린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양복은 다 젖고,얼굴엔 고기비늘과 티끌들이 말라버려 그들의 색깔을 그려내고 있어도 행복하다.
영일아재는 논뚝 한곳에 큰 프라스틱함지를 놓고 그 안에 고기를 쏟아넣었다. 논에 물대려고 퍼올리는 지하수는 양동이 안에서 산소부족으로 껌벅껌벅하던 고기들에게 활기를 찾아준다. 이리저리 푸다닥거리고, 이미 성질이 급해 죽어버린 불거지는 허연 배를 옆으로 누이고 물위로 떠오른다. 물을 계속 갈아넣으면서 죽어버린 불거지 배를 먼져딴다. 내장이 땅바닥에 패대기쳐지기 무섭게 비린내를 맡고 인근에서 서성이던 황새 한 마리가 겁없이 접근해 게눈감추듯 먹어치운다. 영일아재는 개평을 얻으러 온 이웃에 한사발씩 배딴 물고기를 나눠주고 내게도 서울가서 가족과 오손도손 매운탕 끓여먹으라고 두사발이나 비닐에 듬북 말아 준다. 흠벅 젖는 인정이 서린 고향의 넉넉함이다.
저멀리 비닐하우스에서 영출아재가 빨리오라고 불러댄다. 배딴 물고기를 가져오라는 말과 함께... 햇볕이 차단된 서늘한 그 안에 들어서니 이미 휴대용 부탄가스곤로가 이미 파란 파르스름한 고열을 내뿜고, 그 위에는 식용유가 소용돌이를 일구며 팔팔끓는다. 맨흙위에 다 헤어져버린 신문을 주섬주섬 깔고 궁둥이를 그 위에 털썩 맡기니 이보다 편안함이 있을까싶다.
물고기를 기름속에 넣으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름속으로 일단 가라앉는다. 공기를 뽀르륵 뽀르륵 위로 내 뿜는가 싶더니,잠시 후 위로 떠오른다. 물고기의 겉면이 노릿노릿한 색깔로 변한다. 일단 건져내어 신문지위에 놓아 기름을 흡수케 한 다음, 다시 기름속에 집어넣으면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면서 샛노릿한 색깔로 변해 버린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간다. 누군가에 들킨 것 같은 심정에서 영출아재와 눈이 마주치고 이심전심으로 씩 웃고 만다. 생선은 아무리 부드러운 물체에 닿아도 기름에 바짝 졸여진 상태여서 부서질 수 밖에 없다. 입에 들어갈 때까지 잘 운반하지 않으면 낭패다. 고추장을 젖가락으로 떠내어 그걸 고기에 덩어리로 조심스럽게 얹혀 먹을 수 밖에 없다. 일단 입에 들어가면 그렇게 많은 붕어가시도 침이 닿기 무섭게 녹아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먹는 색다른 음식이다. 이렇게 물고기를 튀겨 맛있게 먹기는 처음이다. 영출아재가 홀아비로 사는 동안 개발해낸 요리법이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배가 부를 정도로 먹었는데도 자꾸 안에서 거부함이 없다. 비린내는 간데온데 없고 담백하면서도 뭔가 씹히는게 있어 좋다.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와 안사람이 생각난다. 골다공증이 있으셨던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
내 어릴쩍부터 물고기생선국에 관한 한 어머니는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셨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잡아 온 물고기 몇 마리를 겨울내내 양지바른 사랑방 복궁둥이에서 말린 무잎씨레기를 넣고,고추장 풀어 맛있는 생선국을 만들어 주시곤 했는데, 비린내가 은은하게 나면서도 후각을 거슬르지 않는 담백한 그런 무잎씨레기생선 조림이었다. 온 식구들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는데 할아버지 밥상에서는 식사 후 물고기생선뼈 한조각도 상위에 남아 나옴이 없었던걸로 기억된다. 어찌나 맛있게 보였던지 할아버지가 잡수시길래 엉덜결에 한번 씹어먹으려고 했는데 그만 나도모르게 그만 뱉어버리고 말았다. 붕어머리뼈가 그렇게 거센지 몰랐었다.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손자가 뱉어놓은 걸 더러운줄 모르시고 잡수셨다. 그 때는 손자에 대한 따스한 사랑을 모르고 그냥 신기한 듯 바라보던 기억으로 새롭다.
이젠 어머니가 주시는 그런 생선국과 무잎씨레기 조림을 맛볼 수 없어 안타갑다. 어머니께서 안사람에게 전수해주셨지만, 결코 그 손맛은 아니다. 그냥 비슷할 따름이다. 그나마도 왠만해서는 그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영출아재가 맥주한병 함께 더 하자고 하면서 내일 서울가라고 조른다. 오늘저녁은 금요일이어서 구역예배와 철야예배가 약속되어 있다. 영출아재가 몇번을 조르니 선약이 있다는 말을 아니할 수 없다. 내내 서운한지 자꾸 모처럼 만난건데 하며 마음돌리기를 은근히 강조한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도 내내 횅한 마음을 금할길 없다. 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하지만 마음은 평안하다.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리라. 행복한 마음을 가득실은 차는 중부고속도로를 나와 올림픽도로를 진입하고 있었다. 또 다른 서울의 즐거움과 만남이 있는 성도순복음교회의 성가대연습실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