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푸른사상 시선 180).
시인은 가난을 외면하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진다. 물질과 욕망이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시인은 인간 가치를 지향하는 의지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다. 2023년 8월 21일 간행.
■ 시인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2015년 『시인수첩』으로 등단한 뒤 시집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를 출간했다. 2019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다. 두번째 시집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를 간행한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사라져가는 마음과
사라져가는 사람들과 사라져가는 풍경들을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밥도 되지 않는 시를 쓴다.
■ 작품 세계
조미희 시인의 시가 “가난한 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선량”을 찾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선량”은 선하고 어진 성품뿐만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옳음을 실천하는 능력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가난을 존재의 실체값으로 만들어 삶을 고단하게 하여도 강제된 욕망에 복무하는 ‘우리’가 아닌 다양한, 지금 이곳의 현존을 포용하는 ‘우리’를 실천코자 하는 시인의 시는 결코 가난할 수가 없다. 마빈 하이퍼만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두고 “모순을 포용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는 동시에 가까워지고,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했던 것처럼 조미희 시인의 시 역시 세계가 강제하는 모순 속에서 다양한 ‘우리’의 양태를 포용하고 그 거리를 조절하는 한편,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 지금 이곳의 ‘우리’를 모색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그 길이 비록 달이 파먹다 남긴 밤처럼 캄캄할지라도 조미희 시인을 따라 여기까지 온 우리는 “가장 보편적인 사회” 너머 “선량”한 개인의 평범한 일상이 구축할 ‘우리’의 희미한 빛을 어루만질 수 있을 것이다.
―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조미희 시인은 달이 파먹다 남긴 캄캄한 밤에 자신은 물론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발견한다. 풍요로운 고층 빌딩의 그림자 속에 숨겨진 그들은 한여름이라도 추울 수밖에 없고 아픈 곳도 보여주기 싫어한다. 어둠의 옷을 더 편하게 여기고, 부러지지 않은 희망을 지니고 있지만 뿌리를 키우지 못한다. 시인은 그들의 가난을 외면하거나 자신의 가난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키워온 것이 가난이라고 당당하게 노래한다. 가난한 꽃과 가난한 낙엽과 가난한 근로계약서와 가난한 밥을 움켜쥐고 기적 같은 시를 쓰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 시집 속으로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
조미희
배부른 달이 쉬는 밤
야반(夜半)
온갖 도주의 역사가 거기에 있다
가난도 무거워지면
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지명을 피해 다닌다
불룩한 달의 배 밑을 은둔지로
조용조용 신발의 밑바닥을 끌고
담벼락으로 스며들거나
서둘러 계단 아래로 떨어지기도 한다
모세도 어느 으슥한 야밤,
신의 음성이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을 것,
광야의 새까맣게 탄 누룽지 같은 밤은
그를 지도자로 단련시켰을 것이다
반군의 녹두장군 전봉준도
다 파먹혀 희미해진 달 아래서
민중의 분노를 논했겠지
기어코 어둠의 칼을 빼 쓱쓱 달에 갈았겠지
빛을 따르라고 하지만
가난은 어둠의 옷이 더 친근하다
가난은 집 없는 길고양이의 옷과
빈자들의 손톱 밑 때처럼
무척이나 깜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