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제6회 중앙학생시조암송경연대회]"시조의 매력은 절제"…중앙학생시조백일장 대상 수상자 인터뷰
코로나19로 인해 4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제9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과 제6회 중앙학생시조암송대회.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 끝에 교육부장관상인 대상을 받아든 초·중·고 학생들의 수상 소감과 포부는 알찬 수상작 작품만큼이나 의젓했다.
15일 서울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제9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본심에서 학생들이 시조 작성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초등부 대상
서정윤(여수 여도초3)
약속
엄마의 마음속을 아프게 안하겠다
엄마와 약속했다 머릿속 약속했다
점점점 사라져간다 사라지는 약속들
엄마의 또 잔소리 엄마가 말씀한다
어젯밤 엄마와 너 약속을 했었잖아
내 입은 오리입되곤 방을 향해 걸어가네
엄마도 자기 아들 우는거 보고서는
속상해 눈물뚝뚝 약속은 사라지네
나는야 엄마께 가서 미안해요 어머님
잠시후 어머님도 나보곤 미안하다
약속도 다시 짓고 어기지 말자한다
그리고 캥거루처럼 엄마 품에 안기네
제9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초등부 대상 서정윤 학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폭우를 뚫고 먼 남도, 전남 여수에서 올라온 여도초등학교 3학년 서정윤(9) 군은 "시조의 형식을 지키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였다"고 했다. “시조의 형식과 글자 수를 익히는 것부터 쉽지 않았던 데다, 마음대로 못 쓰고 글자 수에 맞춰 써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런 고민의 흔적은 서 군이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작품 구절마다 서 군이 계산한 초·중·종장 글자 수가 작은 글씨로 야무지게 적혀 있었다. 서 군의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흔치 않은 네 수 연시조인데도, 서로 연속성을 갖고 있으면서 시조 형식에 잘 맞아떨어졌다”고 평했다.
서 군은 시조보다 시를 먼저 접했다고 한다. “처음 시집을 읽었을 때, 시가 너무 재미있어서 직접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글이 짧은데도 이해가 잘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고 떠올렸다. 그의 장래희망 리스트에 축구 선수, 과학자에 이어 시인도 포함돼 있다.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조 백일장 준비를 하게 됐다는 서 군은 “지난달에만 시조를 일곱 편을 쓰며 실력을 가다듬었다”고 말했다. “시조는 시보다 어렵지만, 이런 큰 상을 받아 너무 뿌듯하다.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다”고 했다. 서 군은 시조 창작의 세계를 접하게 해 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중등부 대상
김예지(채러티크리스천중3)
지구
구름으로 가득찬 하이얀 캉캉치마
몸통을 살짝 기운 아름다운 포즈들
지구는 매일매일을 한바퀴씩 연습한다.
반바퀴 휙 돌리면, 아침을 선물하고
반바퀴 돌아서면, 달빛이 반짝인다.
지구는 가장 느리지만 최고의 발레리나
제9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중등부 대상 김예지 학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조는 절제가 매력 같아요.” 백일장 준비를 하며 시조의 세계를 처음 접한 채러티크리스천중학교 3학년 김예지(15) 양은 시조의 매력에 대해 시조 형식처럼 간명한 답을 했다.
대회 일주일 전 시조를 처음 써봤다는 김 양은 대상이라는 큰 결과를 받아들곤 “전혀 예상하지 못해 얼떨떨하다”고 했다. “일반 시는 제가 원하는 표현을 마음껏 쓸 수 있는데 시조는 격식에 맞춰야 한다”며 “그런데도 절제미를 느낄 수 있어 읽고 쓰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김 양은 "백일장 시제(試題)로 ‘지구’가 제시되는 순간 좀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곧 일단 지구의 겉모습과 안쪽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서 생각해봤고, 지구가 365일을 매일 돌고 있다는 특성을 떠올렸다”면서 “그 모습이 마치 발레리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등부 심사를 한 정용국·이송희 시조시인은 “지구를 발레리나로 의인화해 은유한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장래 희망을 묻자 김 양은 “솔직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며 즉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내 “은퇴 후엔 시인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시조도 계속해서 써나가고 싶다고 했다.
◇고등부 대상
김하은(춘천여고3)
오늘
청년의 눈동자에 스며드는 여름밤
가판대 사이사이 진열된 졸음들이
오늘도 재고로 남아 쌓여가는 중이다
손님이 없을 때면 문제집 펼쳐 놓고
창가에 번져오는 달빛을 말벗 삼아
내일을 외우곤 했다 흔들리는 여름밤
상품을 집어 들어 바코드 찍을 때면
청년의 이마에는 오늘이 새겨졌다
청춘의 최저시급은 얼마부터 시작일까
발걸음 끊어지고 골목도 잠드는 밤
졸린 눈 비비면서 끄적이는 오늘의 꿈
오늘도 편의점 속 청년은 새벽별로 빛난다
제9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고등부 대상 김하은 학생. 본인제공
춘천여고 3학년 김하은(18) 양은 대상 수상작이 세 살 위 친언니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했다고 소개했다.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언니가 손님이 없고 시간이 빌 때마다 학교 공부를 틈틈이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제시어 '오늘'을 보고, 인상 깊었던 언니의 이야기가 떠올라 소재로 삼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청춘이 오늘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과 함께, 오늘뿐 아니라 내일도 청춘의 꿈을 키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시조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라도 손색이 없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떨어졌다고 생각했던 터라 얼떨떨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힌 김 양은 “지금까지 기울였던 노력이 결과를 내는 것 같아 뿌듯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김 양은 8살 때 처음 시쓰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동안 꾸준히 공모전에 지원해 크고 작은 성과들을 냈다. 시조백일장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김 양은 올해 대학 입시에서 문예창작과에 지원할 계획이다. “큰 대회에서 좋은 상을 받아서 앞으로 문학 활동에 자신감을 얻게 됐다”면서 나중에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했다. 시조의 묘미에 대해 “글자 수를 맞추는 과정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좋은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 짜릿함을 느낀다”며 “시뿐 아니라 시조도 계속해서 써가면서 다른 공모전들에 도전해볼 생각 것”이라고 했다.
[수상자 전체 명단]
◇초등부
▶대상
서정윤(여수 여도초)
▶최우수
김수정(서울 장월초)
▶우수
김려원(양주 채러티크리스천) 정소원(여수 송현초)
▶장려
김건우(부산 선암초) 조환(양주 채러티크리스천초) 김루아(양주 채러티크리스천초)
정혜민(인천 송일초) 심은지(양주 채러티크리스천초) 박예나(고양 주엽초)
박장호(대구 왕선초) 김라엘(양주 채러티크리스천초) 김온유(여수 웅천초)
이진표(수원 영덕초) 박시은(여수 웅천초) 박서현(양평 동초)
조아인(양평 동초) 김하나(서울 염리초) 이성표(수원 영덕초)
김민우(오산 운천초) 양혜성(여수 여도초) 이조은(대구 대청초)
최준협(부산 선암초) 류아연(대구 영신초)
◇중등부
▶대상
김예지(양주 채러티크리스천중)
▶최우수
조승현(김포 하늘빛중)
▶우수
정소연(서울 염광중) 김지오(서울 예일여중)
▶장려
유은서(서울 봉영여중) 고유(서울 진관중) 유진(서울 드와이트외국인학교)
김시후(서울 번동중) 구승연(서울 봉영여중) 김나윤(양주 채러티크리스천중)
진수호(서울 남대문중) 고건호(김포 하늘빛중) 구윤서(서울 봉영여중)
이시현(서울 봉영여중)
◇고등부 수상자
▶대상
김하은(춘천여고)
▶최우수
양예나(경기 우성고)
▶우수
이하늘(화성 나루고) 김나경(학교밖청소년학교)
▶장려
최나연(양평 양일고) 이채현(서울 상암고) 엄주혁(수원 농생명과학고)
김해을(군포 중앙고) 최제헌(평택 한광고) 김민수(용인 서천고)
최수아(충주여고) 신지우(수원 농생명과학고) 이소민(수원 청명고)
홍성준(수원 화홍고)
◇암송경연대회 수상자
▶대상
진주 주약초 서가현
▶최우수
대구 북동중 권민기
▶우수
진주 주약초 서유현
▶장려
진주 주약초 김지명
출처: 중앙일보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