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오랜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이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흥미를 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젊었을 때 겪어서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도전해 볼 용기를 내었던 것은 남아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근래에 한평생 순탄하게 잘 살아온 이들이 은퇴한 뒤에 다시 높은 공직에 도전하다가 청문회 등으로 인해 치부를 드러내거나 곤욕을 치르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그들의 인생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이었느냐는 차치하고, 더는 아쉬울 것이 없는 처지에서 굳이 그런 판단을 해서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는 것을 보면 의아하다 못해 안타깝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나름대로 뜻한 바가 있어 심사숙고 해서 내린 결정이겠지만 그 배경에는 결국 욕심이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명예욕이든 물욕이든, 성취욕이든 지금보다 더 가지고자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그런 욕심의 끝이 좋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고령이라는 것이 출처를 결정짓는 기준은 아니지만 원로로서의 경륜이나 전문성이 사장되지 않고 활용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공통적으로 마지막 봉사를 명분으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다른 식으로도 국가와 사회, 이웃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더위를 식히고 지난 날 아름답던 시절을 회상하는데 도움이 되는 음악 한 곡 보내 드립니다.

오늘 소개하는 곡은 ‘Hamabe No Uta(해변의 노래)’로 이 곡은 일본인 작곡가 Tamezo Narita (1893~1945)가 1918년 어느 날,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지나 온 과거 일들과 친구들을 회상하다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서정성이 강한 특징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변의 노래’ 역시 그 깊은 감각 미와 서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입니다. 젊은 날 이뤘던 성과를 돌아보며 은퇴의 삶을 아름답게 이어가는 듯한 아련하고 애수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며 첼로의 개성이 아주 잘 어울리는 곡입니다.

이 곡은 시적인 감성과 폭풍 같은 격정, 그리고 눈부신 기교의 소유자로 잘 알려진 첼로의 거장 Mischa Maisky가 연주한 곡입니다. Mischa Maisky는 1948년 발트 3국의 하나인 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 리가에서 태어나 리가의 한 음악원에서 처음 첼로를 배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부속 음악학교와 모스크바 음악원을 거치면서 20세기 가장 뛰어난 첼로 연주가로 알려진 러시아의 로스트로포비치와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에게 사사하며 가르침을 받은 첼리스트입니다.

1965년 러시아 전국 음악 콩쿨, 1966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쿨, 1973년 가스파르 카사도 국제 첼로 콩쿨에서 차례로 수상하며 말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그러나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체제운동에 연루되어 2년간 옥중생활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 사이 연주의 공백기와 함께 자유마저 빼앗겼던 Mischa Maisky는 1972년, 24살 되던 해 구 소련으로부터 출국허가가 내려져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 자유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의 충격으로 잠깐 동안 정신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던 그는, 이후 그토록 연주하고 싶었던 첼로를 마음껏 연주하는 동시에, 나치에 쫓겨 미국에서 활동했던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Rudolf Serkin(1903~1991)으로부터 제안 받은 말보로 음악제 초청 연주를 시작으로, 피츠버그 교향악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이스라엘 필하모닉 등에 객연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Mischa Maisky의 강점은 지나치게 감성과 기교에 치우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윤기 있는 음색을 지닌 훌륭한 성악가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매력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인데, Mischa Maisky는 아주 아름답고 서정적인 바흐를 표현하여 바흐 작품의 원류에 취해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앨범은'바흐의 서정성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한 연주,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 음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연주 라는 평을 받으며 불후의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고 합니다.
흔히 Mischa Maisky 특유의 화려한 무대 의상을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연주회 중간에 서슴없이 옷을 갈아입고 나설 정도로 청중 친화적인 엔터테이너 기질로도 종종 객석의 열광을 이끌어 내기도 하는 그가 한국과 일본에서 유독 인기가 높은 것도 이 같은 기질과 무관치 않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장한나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첼리스트이며 음악에 모든 것을 헌신한 사람, 음악은 종교다 라는 신념으로 음악을 대하는 그는 분명 우리시대 최고의 첼리스트입니다.

Hamabe No Uta(해변의 노래) / 연주 Mischa Mai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