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 15,10.16-21; 마태 13,44-46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로욜라의 이냐시오 사제 기념일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예수회를 창설하셨는데요,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이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큰 공헌을 하신 칼 라너 신부님을 비롯하여, 버나드 로너간,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 등 많은 학자들이 예수회 소속이셨고, 또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예수회 출신이십니다. 많은 훌륭한 예수회원들을 통해 이냐시오 성인이 오늘날 교회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공부와 사도적 열성을 강조하셨는데, 제가 캐나다에서 공부한 학교와 로마에서 공부한 학교 모두 예수회에서 설립한 대학이기 때문에, 제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신 분이십니다.
이냐시오라는 이름은 ‘불’을 뜻하는 라틴어 ‘이니스’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름 자체가 성인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드러내 줍니다.
1491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성인은 군인으로 명성을 누리며 출세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서른 살에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요양하다가 완전히 다른 삶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즐겨 읽던 낭만적 기사 소설을 구할 수 없자, 이냐시오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는데, 세속적 성공을 원하던 꿈이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는 삶에서 진정한 기쁨과 평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성지순례와 기도, 그리고 11년간의 공부를 통해 수련을 해 나갔고, 두 차례 감옥 살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뜻을 함께 한 동료들과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을 모토로 하여 예수회를 창설하였습니다. 이후 전 세계 예수회원을 돌보는 총장으로 봉사하시던 성인은 1556년 여름, 로마에서 열병에 걸려 7월 31일,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성인께서 쓰신 책 ‘영신 수련’은 지금도 영신 수련의 교과서처럼 사용되고, 또 성인께서 제시하신 식별의 원칙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보물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자신의 고통을 낱낱이 고합니다. 예레미야서에는 이런 형식의 글이 다섯 번 나와서 ‘예레미야의 고백록’이라 일컫는데, 오늘은 그 중 두 번째 고백록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모두가 자신을 저주하고 있는데, 이렇게 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 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야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고통 중에도 기쁨을 노래하는데, 그 기쁨은 두 가지로서 하느님 말씀을 받아 먹은 것, 그리하여 자신이 하느님의 것이라 불린 것입니다.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이는 예레미야가 예언자 직분을 실천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그 직분 안에 숨겨진 보물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보물과 진주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현세의 어떠한 것도 다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고 이해해야 할까요?
성당에 나와서 복음 말씀을 들으면, ‘하느님께 아낌없이 봉헌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친구나 친척들을 만나면 ‘종교에 너무 빠지지 마라. 적당히 해야 한다.’ 이런 말을 듣기도 합니다. 과연 어떤 말이 맞을까요?
저 역시 신학교 간다고 했을 때 저를 걱정해주시던 분이 “종교를 취미로만 생각해야지, 그렇게 종교에 빠지면 어떡하느냐”고 저를 나무라기도 하셨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이나 좋은 진주는, 우리가 죽어서 가게 될 하늘 나라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현세의 모든 것을 다 부정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물과 진주는, 우리의 깊은 주의와 관심을 요구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현세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간 내가 귀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여전히 귀한지, 내가 하찮게 여겨왔던 것이 여전히 하찮은지 스스로 다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보물과 진주를 얻는데 도움이 되는 일인지, 방해가 되는 일인지 냉철히 따져 보아야 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쩌면 보물은 하늘 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 내가 무심히 지나쳐왔던 것에,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족과 나의 이웃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내 주위 사람들을, 나의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아야 보물과 진주는 자신의 빛을 드러냅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나의 보물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하느님의 딸이라는 사실이 나의 보물입니다.
댁에 가셔서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가족이 나의 보물이고 진주입니다. 진주는 조개가 자신의 몸에 생긴 상처에서 자신을 보호하느라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그를 진주로 대할 때 그는 진주이고, 상처로 대할 때 상처입니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성 이냐시오
출처: Jesuits Ire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