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아침 편지-2412
범망계본178
동봉
마흔여덟 가지 경구계
16. 꼼수로 잘못 설하지 말라1
포살하는 보살들은 귀기울여 들을지라
출가재가 불자들은 응당좋은 마음으로
대승범절 경과율을 모름지기 먼저익혀
담긴뜻을 분명하게 이해시킬 것이니라
새내기의 보살들이 백리천리 달려와서
대승범절 경과율을 배우고자 마음내면
몸과팔을 불태우고 손가락을 태우는등
고행법의 법다움을 일러줘야 하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내기의 보살에게
몸과팔을 불태우고 손가락을 불에태워
부처님께 굳은신심 드러내게 아니하면
출가자요 보살이라 이름할수 없느니라
굶주린범 이리사자 아귀세계 이르도록
몸을던져 구하려는 자비심을 낼것이니
그와같이 차례차례 바른법을 설해주어
그마음을 활짝열어 통하게끔 할지니라
그렇거늘 보살로서 꼼수에만 마음두어
모름지기 답할것에 바른답을 하지않고
경과율과 문자들을 엉터리로 전하거나
앞뒤없이 아무렇게 설법하지 말지니라
이와같이 대승범절 경과율을 잘못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방하게 만든이는
보살계를 받았으나 보살계를 어김이라
열여섯째 경구죄를 범하는게 되느니라
16)
惜法規利戒
若佛子 應好心先學大乘威儀經律 廣開解義味 見後新學菩薩 有從百里千里來求大乘經律 應如法爲說一切苦行若燒身燒臂燒指 若不燒身臂指供養諸佛 非出家菩薩 乃至餓虎狼獅子 一切餓鬼 悉應捨身肉手足 而供養之 然後一一次第爲說正法 使心開意解 而菩薩爲利養故 應答不答 倒說經律文字 無前無後 謗三寶說者 犯輕垢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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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망경 보살계본>을 생각하면
일타(1929~1999) 스님이 떠오릅니다
앞서 도견(1925~2013) 스님에게서
출가를 인정받는 사미계를 받았고
이듬해 속리산 법주사 계단에서
석암(1911~1987) 스님으로부터
구족계, 일명 비구계를 받았으나
해인사에 몸담고 있을 무렵인
그러니까 1976년 하안거 결제 때
일타 스님에게서 보살계를 받았습니다
사미계든 보살계든 또는 구족계든
계를 받아지님은 한 번이지만
포살布薩은 자주 있습니다
포살이란 보살계를 읽는 법회입니다
나는 포살법회가 가장 좋았지요
까닭은 달리 좋은 것이 아니라
일타 스님의 음성 때문이었습니다
큰스님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무량겁에 걸쳐 쌓인 업장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전계대화상 일타 큰스님 상좌로서
원력보살 혜인 스님이 있었는데
서귀포 약천사 창건주지요
스승이신 일타 큰스님과 더불어
제자 혜인 스님의 범음성梵音聲이
너무 닮아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는데
두 분의 범음성을 다 좋아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이태 선배인
혜인 스님과 더 가까이 지냈지만
소중한 인연은 곧 일타 큰스님입니다
은법사 고암(1899~1988) 대종사는
일타 스님보다 30세가 위셨지만
'포살'하면 일타 스님의 포살을
가장 뛰어나다 하셨습니다
매년 여름과 겨울 두 번에 걸쳐
안거 때마다 매달 포살이 있었는데
일타 스님의 포살 범음성이 좋아
어떤 경우도 빠지지 않았지요
알고 보면 구족계를 받았다 해도
학승이 포살에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사미계라든가 구족계에 관해서는
계문을 읽는 의식이 없는데
유달리 보살계만큼은
보름날마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포살 의식이 절에서는 있어 왔습니다
이게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만에 하나 내 생각을 읽었다면
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살계는 곧 형식을 뛰어넘어
그냥 하나의 경전 그 자체입니다
이를테면 금강경,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법화경, 화엄경처럼
가까이 독송하는 경전입니다
그러므로 범망경 하권 보살계본은
으레 독립된 경전이 맞긴 맞지만
이는 곧 '경율經律'입니다
경經이며 동시同時에 율律이고
율이며 동시에 경이 보살계입니다
한반도가 낳은 위대한 선각자
원효보살도 범망경을 중시했습니다
범망계본에서는 말씀하십니다
'대승위의경율大乘威儀經律'이라고
대승의 위의가 대승의 범절입니다
그러면 학인들은 또 묻습니다
위의에 대승이 있느냐고요
그렇다면 소승 위의도 있느냐고
사람은 개별적이기도 하나
사회적으로 발달된 존재입니다
서로 지켜야 할 예절이 있듯
예의범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앞서 들어온 선배 보살은
새로 마음을 내어 공부하려는
소위 신학보살新學菩薩을
앞에서 잘 이끌어 주고
뒤에서 잘 밀어주어야 합니다
보살菩薩의 뜻은 알고 있으시지요?
한마디로 옮겨 '각유정覺有情'입니다
깨달음覺을 지향하는 유정有情
정情이 있는有 중생입니다
부처가 되기 전은 각유정입니다
물을 끓일 때 100°C 이전은
액체가 기체로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99°C는 끓음이 아니지요
단지 끓음을 향한 과정입니다
미세 번뇌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직 부처의 경지까지는 아닙니다
물잔 밑에 가라앉은 앙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잔이 흔들릴 때 다시 흐려지나
앙금마저 말끔히 사라지고 나면
흔들어도 다시는 오염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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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승복 오라기 일부/사진 꾸밈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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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4/2021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