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鮮明先生말씀選集 1권
17) 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 1956년 12월 2일(日), 전 본부교회.
7. 탄생부터 초현실적인 모험의 길을 걸으신 예수
4천년 역사의 서러움을 안고, 죽든지 살든지 뜻 하나를 위하여 제물로 바쳐질 것을 각오하고 나선 예수님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만민의 구세주 메시아인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은 탄생부터가 초현실적이었고, 새로운 이상적인 모험의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미완성된 채 재림시에 요구되는 뜻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생활하고 자라게 될 때부터 뜻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있었습니다. 동생들의 비난도 받고 참소도 받았습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활은 요셉이 예수님에 대해 처음 가진 마음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예수님보다 자기의 친아들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역시 당시 사회 형태에 맞는 가정 환경을 갖지 못하였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의붓자식처럼 사시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던 예수님의 모든 생활은 초현실적인 생활이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모든 가정적인 불화에 부딪치면서도 예수님은 묵묵한 가운데 그것을 다 넘어갔습니다. 마침내 뜻을 갖고 나타나 만민의 메시아인 것을 증거하고 나서는 일 역시 현실적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유대교의 신조로 세워 놓은 율법의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하늘의 복음을 들고 나섰던 예수님이었기에 가는 곳곳마다, 머무르는 곳곳마다 현실적으로 환영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가정으로부터 세례 요한으로부터 유대교로부터 몰림받아 의지할 곳 없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의지할 곳 없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위안해 줄 곳을 찾은 예수님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예수님은 새로운 신약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처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였을 때는 유대교의 모든 제사장들 혹은 서기관들이 알아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었습니다. 그런데 3년 공생애노정을 거치면서부터 예수님의 위치는 점점 떨어져 나중에는 어부들과 보잘것없는 부녀자들만이 따르는 입장에 처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념을 세워야 할 예수님 앞에 약속으로는 영원한 약속이 있어야 했고 뜻으로서는 영원한 뜻이 있어야 했었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것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빈들에서 5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 놓고 그들을 위하여 하늘을 향해 축사하시던 예수님의 심정,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간곡히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은 땅 위의 어느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서러움에 사무친 심정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4천년 역사상에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모험적인 생활을 하고 비장한 각오와 내적인 서러움을 품고 싸웠으나, 예수님의 내적 서러움에 비길 바가 못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4천년 역사의 모든 원한의 심정을 뚫고 올라가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의 심정을 충족시켜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유대 백성들이 환영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성도들이 인정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길을 가야 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자유로운 환경에 머무를 수도 없는 입장에 처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