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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추석명절주간 주일설교. 복 있는 사람은 모든 일이 다 형통 하리로다 (시편 1편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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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추석 명절 연휴가 있는 주간입니다. 그 동안 직장에서 일하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정에서 육아와 가사일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 자리마다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이제 가족이 함께 명절로 모일 때 그 동안 쌓였던 피로가 풀어지고 화목하고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명절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맛잇는 음식 많이 드시고, 음식 때문에 탈나지 않기를 바라고, 가족 친지 이웃 간에 서로 주고 받는 말들이 위로가 되고 칭찬이 되시기를 바라고, 특별히 오고 가시는 운행길 안전 운전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사히 건강하게 명절 연휴를 보내시기고 평안과 형통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편 150편 중에서 어느 시편이든지 단 1편만 암송하고 기억 하셔도 신앙 생활 하는데 큰 도움과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시편 중에 꼭 암송하라고 권유해 드린 세 편을 기억 하시나요? 시편 1편, 23편, 그리고 100편입니다. 이 정도는 기본으로 암송하시기를 다시 한 번 권유해 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많이 느끼고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그 찬양이 바로 시편에 다 녹아 있습니다. 시편 자주 읽으시고 묵상하시고 암송하셔서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복된 삶,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를 축복합니다.
오늘 함께 보시는 시편 1편이 추석 명절에 큰복을 받는 능력의 말씀으로 역사할 줄로 믿습니다. 이미 많이 들으시고 외워 보신적이 있으실 것이니, 오늘 말씀 들으시면서 그냥 암송 하십시오.
그리고 이번 주에 하루 시작하는 아침에 눈 뜨고 한 번, 그리고 저녁에 잠자기 전 눈 감고 한번씩 암송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평안과 회복의 은혜가 충만하게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해 보시면 행복해 지실 겁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의인)과 악인들을 비교해 놓았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은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이며, 반대로 악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은 또한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인지 선명하게 대조하여 보여 줍니다.
이 시는 두 절씩 보아야 합니다. 1~2절은 의인과 악인의 특징을, 3~4절은 의인과 악인이 겪는 삶의 실상을, 5~6절은 의인과 악인이 맞이하는 인생의 결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2절씩 살펴 보겠습니다. 1~2절을 읽어 드립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아멘.
1, 2절은 의인을 “복있는 사람”으로 규정을 했습니다. 복이 있다는 것과 의인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것을 여러 각도에서 해석해 볼 수 있지만, 저는 복있는 사람은 구약에서 말하는 복을 받은 사람이고, 의인은 신약에서 말하는 복을 받은 사람을 뜻한다고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구약에서 복(히, 베레카)는 하나님의 은혜가 물질적인 혜택(material good)으로 주어지는 것을 의미 합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라고 말씀해 주신 아브라함에게 가축과 재물의 소유가 많게 해 주셨고, 이삭에게는 100배나 소출이 나게 해 주셨고, 야곱에게도 역시 많은 재물과 자녀들을 가지도록 복에 복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복은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인해 발생된 것입니다.
신약에서의 복은(헬, 율로기아) 복음(예수 그리스도)이 가져다 주는 영적인 유익, 즉 구원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의인으로 불리우며, 의인은 영생으로 인도함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예비 된 천국 백성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찬양과 기도와 감사와 선행의 삶을 살아가기를 사모하고 추구합니다. 이 모든 구원의 감격과 평안의 복을 누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동행하는 삶 속에서 일어납니다.
시편 1편이 말하는 복있는 사람은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의인으로서의 삶을 가장 좋게 누리는 사람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육체가 건강하고, 정신이 맑고, 마음에 염려가 없고, 물질적인 여유가 넘치고, 가정이 화목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인 사람입니다. 나이들어 갈수록 천국 소망이 넘치고 근심 걱정 없는 심령 천국의 나날을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 이라면 누구라도 이렇게만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원하실 겁니다.
성경은 이러한 삶은 당연히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시편 1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이렇게 복 받는 삶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시려고 하는 최상의 선물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을 기점으로 시편 150편 전체를 읽고 찬양 할 때에, 복 있는 사람과 의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채우고, 동행할 수 있기를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왜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 의인의 삶을 배치했는지 잘 아셨을 겁니다. 시편 1편은 우리 삶의 원론적인 지침을 제공해 줍니다. 바른자세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거울과 나침판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꼭 암송하시고, 수시로 찬송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복 받는 비결 중의 비결입니다.
1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의인)과 대조 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악인들, 죄인들, 그리고 오만한 자들입니다. 먼저, 의인이라면 악인들의 꾀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악인인지, 어떤 내용이 악인들이 던지는 꾀인지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십니다.
‘꾀’는 모략, 계략, 충고라는 뜻입니다. 악인들은 자꾸 나를 충동질해서 빠른 길, 쉬운 길, 편안한 길, 안전한 길이 있다고 모략을 던집니다. 딱 물기 좋은 먹잇감을 내밀면서 나를 따라 오라고 유혹합니다. 거절하기 힘든 좋은 것을 내밀며 같이 가자고, 같이 먹자고 유혹합니다.
이것이 악인들이 던지는 미끼 임을 분별하고 끊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성령이 우리를 지켜 주시고 계십니다. 악인들이 수시로 던지는 꾀에 넘어가지 않고 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 만을 따라가는 선택을 하는 강한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복있는(복받은) 사람입니다.
그 다음으로 의인이라면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 사함의 용서를 받았지만 여전히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다만, 구원 받은 의인이라면, 그 죄가 죄 됨을 깨닫고, 수시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죄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악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말라는 말씀은 죄를 짓겠지만 곧 깨닫고, 회개하고, 다시는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다는 것은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앞에 항상 엎드리기를 빨리 하는 사람이 진짜 복있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의사 결정과 선택권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대단한 자리와 권세를 가진 사람이 오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일 지라도 하하나님의 의견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이 오만한 사람입니다. 매사에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오만함을 물리치고 겸손한 의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 가지를 한 번에 정리해 봅니다.
의인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의인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회개하고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의인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묻고, 듣고,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이 세가지를 다 잘하는 사람이 바로 2절과 같은 사람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아멘.
2절은, 여호와의 율법, 즉 말씀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명령, 규례, 법도, 계명, 권면, 부탁, 지시 등 그 떤 것이라도 다 듣고, 그대로 순종하려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에 항상 머물러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들려 주시는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가까이에서 말씀을 붙잡는 것, 이 것이 복 받는 비결 중의 비결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시 73:27,28)라는 시편 73편의 말씀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자는 복이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떠나는 자는 다 망한다는 말씀이 시편 전체 내용 중에 무수히 반복해서 나옵니다. 시편 1편의 의인과 악인의 행위와 결말이 시편 전체에 계속 반복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인의 자리,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자리로 나아 올 수 있는 통로를 개방해 놓으셨습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이름을 부르며 언제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품으로 달려가 안길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내셨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의인이 되었는데, 다시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서 서성 거리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을 무시하며 대적하며 멸망의 길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은 시편 1편이 말하는 복있는 자들 이십니까? 나는 복있는 자요 의인 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여러분은 복있는 사람들, 의인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맞습니다. 다만 세상은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이 득시글 거리며 우리를 자꾸 옛 사람의 모습에서 붙잡아 놓으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자꾸 의인이 아닌 것처럼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믿음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오직 말씀의 능력으로 이겨내고, 물리치고, 하나님께로 직진하라는 안내판이 시편 1절입니다. 나는 복있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의인의 길로 나아가자고 결단하고 행동하기를 응원하는 응원가가 시편 1절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추석 명절 내내 복 있는 사람으로서의 고귀함과 존귀함을 드러 내시고, 의인의 모습은 이러하다는 것을 가족 모두가 느낄 수 있도록 언행을 조심하고, 기쁘고 행복한 표정으로 모두를 편안하게 대해주는 향기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칭찬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3절은 의인과 악인이 겪게되는 실상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2, 3절을 읽어 드립니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아멘.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나무처럼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되는 것이 의인이 겪는 실상이고, 바람에 날리는 쭉정이 같이 인생의 비참함을 겪는 것이 악인이 실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실상이 이렇다고 하는데도 우리가 보는 실제 상황은 어째서 거꾸로 가는 것 갖지 않습니까?
믿음 생활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은 가난과 궁핌에 쪼들리며 사는 것 같고, 거짓말 하고 불법을 저지르며 사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떵떵 거리며 사는 것이 너무나 많은 실제 상황으로 일어납니다.
왜 하나님은 시편 2,3절에서 철썩 같이 약속해 놓으시고도 실제로는 의인의 삶과 악인의 삶의 실상을 정 반대로 이루어가는 것일까요? 실상이 이런데 의인으로 사는 것이 과연 내게 무슨 경제적, 사회적, 가정적 이득이 있는 것일까요? 의문과 불신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잠언에는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잠언 24:1)는 말씀이 있습니다. 악인도 분명이 형통한 듯이 잘 살 수 있습니다. 실제는 오히려 의인보다 더 형통해 보일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형통해 보이는 악인들에 대해서 잠언에서 말씀 하기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그 둘의 멸망을 누가 알랴”(잠언 24:20,22)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악인들이 형통하게 되는 것을 보고도 전혀 부러워 하거나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악인들이 겉으로 형통해 보이는 것은 실상이 아닌 허상입니다. 의인 만이 진짜 형통한 삶을 사는 것이며, 의인 만이 영생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을 걷는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의인들입니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보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무엇이라고 나를 평가해도, 누가 보기에 우리 행색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의인인 우리에게는(나에게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것이 우리가 누리는 가장 소중한 형통의 복임을 믿으십시오.
작아 보이고, 없어 보이고, 바보같아 보일 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의인의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16)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영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형통한 자임을 굳게 믿으시고, 하루를 감사하며, 일용할 양식 주심에 감사하며, 날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형통한 자의 지위를 지키며 고귀하고 품위있는 의인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 5, 6절은 의인과 악인이 맞이하게 될 마지막 결말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읽어 드립니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들은 마지막 때에 한 자리에 부름을 받고 모임에 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 모임의 장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모임에 들어가도록 허락 받은 사람은 영생의 면류관을 쓰고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고 이마에 인침을 받은 자들이며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 모임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행한 행위대로 심판 받을 것이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패악한 행위들로 인해 의인의 모임에 들어가기를 거부 당할 겁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부인 하실 것이며 그들이 그토록 형통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지난 날의 삶의 부요와 권세들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잠깐 있다 사라지는 안개 같이 사라질 겁니다. 악인들이 맞이하게 될 결말은 영벌에 처해져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말을 이미 성경의 증언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실상적으로 형통해 보이는 악인의 삶을 부러워 하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부러워 합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나는 너무도 불행해,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 나의 배움과 능력은 너무 모자라 라고 심하게 자책하기도 합니다.
아마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면 나보다 조금 더 여유 있는 가족 친지 이웃들을 상대하다 보면 잘살고, 돈 많고, 많이 배우고, 잘 생기고, 좋은 직장 다니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과 비교 되어서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실 겁니다.
시편 1편에 왜 의인의 형통, 악인의 멸망을 기록해 놓았을 까요?
① 맨날 지지고 볶을 정도로 속상한 일이 계속 생겨나도 나는 의인이야, 나는 형통해 라고 정신 승리를 하면서 무조건 이겨내라는 뜻일까요?
② 현실적인 재정의 극심한 어려움 때문에 의욕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은데도 나는 의인이야, 나는 형통해 라고 말하며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툭툭 털고 이겨내라는 말일까요?
③ 나보다 잘난 것이 하나도 없고, 나 보다 훨씬 나쁜짓을 대놓고 많이 하는 친구나 지인들은 넓은 집에, 고급 차에, 최고의 사교육으로 자녀 교육을 하면서 떵떵 거리고 사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의인이야 나는 형통해 라고 하면서 속상하지 않은 척, 마음에 동요가 없는 척 웃으며 살라는 말일까요?
우리는 미래에 살고 있지 않고 지금의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당장의 실상이 주는 현실적인 상황들은 우리가 의인인지, 과연 형통한지에 대한 지속적인 불안과 의문을 떨쳐 버릴 수 없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1편을 찬양하는 노래의 제일 앞에 배치해 놓은 것입니다.
왜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불만이기 때문입니다.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비교당함을 견딜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과연 의인이 맞는가? 과연 나는 형통한 자인가? 나는 정말 복있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품게 만들고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뭔가 다 되어서, 뭐가 막 잘 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안 되고 있기 때문에, 막혀 있기 때문에, 하루 하루가 답답하기만 하기 때문에 시편 1편이 필요한 겁니다. 이 시편 1편 뒤편에는 하나님이 우뚝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에 계심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내 편 되어 주심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편이신 그 하나님이 나를 진정한 의인으로 불러 주시고, 형통한 자로 복 있게 하시고, 영생의 길로 인도 함께 동행 하자고 손을 내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편에서는 복의 근원 이시며, 의인을 부르시며, 형통한 복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과 내가 일대일로 마주 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권능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 형통과 재앙, 모임에 들어가는 것과 멸망 당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그림자입니다. 이것을 실현시키시는 단 한 분, 바로 우리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가까이 하고, 동행하는 길을 찾게 만드는 것이 시편 1편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시편 1편에는 하나님이 우리를(나를) 만나 주시려는 통로를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보석처럼 간직하시고 정말 암송 하십시오. 일생 동안 눈뜨고, 잠들 때 반복 하십시오. 인생이 고단하고 눈물 나는 일이 생기면 시편 1편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찬송 하십시오.
그러면 내 편 되어 주시는 하나님, 나의 가까이에서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은혜의 열기가 내 영혼을 평안으로, 강건함으로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나를 의인이라고 불러 주시고 형통함의 위로와 소망의 충만함으로 채줘 주실 것입니다.
연휴가 길게 이어 집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추석 명절 화목하고 행복하게 보내시면서, 하나님이 내편 되어 주심을 굳게 믿으시고, 의인이며 형통함의 은혜를 받은 사람 답게, 먼저 웃고, 먼저 칭찬 하고, 먼저 섬기면서 감사하게 연휴를 마무리 하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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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복된 추석 명절을 보내는 동안 형통한 복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와 기쁨의 시간을 보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악인을 멀리하게 하시고 의인의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