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은퇴한다는 생각에서 은퇴할 수 있는가
사람은 할 일이 없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아 늙는다.
시야를 넓히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어느 은행 지점장이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에 빠졌다.
지점장으로 있을 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잘난 줄 알았는데, 막상 은행 일을 그만두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고민 끝에 발견한 일은 운전이었다.
그렇게 해서 회사 택시를 거쳐 개인 택시로 운전을 시작한 지 10년이 흘렸다.
운전하면서 비로소 은행 안에서만 보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점장으로 있을 때보다 운전사로 일할 때 휠씬 즐겁고 재미있었다.
연금이 있어 노후 자금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아내와 개인택시로 여행도 다녔다.
최고의 손님은 아내였다.
아내와 금슬도 좋아지고 여기저기 아프던 몸도 더 건강해졌다.
퇴직 후 우울하던 마음도 씻은 듯이 나았다.
퇴직한 친구들과 가끔 술자리를 가지면, 은행장이나 하던 사람이 운전이 뭐냐며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일에 귀하고 천한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대개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퇴직이 곧 은퇴이며 그들은 자기 분야를 벗어 나면 무료함과 권태, 우울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생각하자 친구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는 중학교 교장을 정년 퇴임하고 색소폰 연주자가 된 친구였다.
그 친구는 교사 시절에 꼭 한번 배워보고 싶었던 색소폰을 퇴직 후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하루 네 시간씩 5년 동안 연습을 지속했더니,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색소폰 동호회를 찾아갔다.
그곳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길거리 버스킹과 구청에서 하는 크고 작은 행사에 무료로 재능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박수와 '앵콜' 하는 소리에 어깨춤이 절로 났다.
교장으로 근무할 때 느끼지 못한 자유로움과 흥겨움 그리고 보람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색소폰을 연주할 때는 여기가 어딘지 지금이 어느 때인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내가 색소폰이고, 색소폰이 나인 생각이 들었다.
SNS로 소식을 알리며 고정 팬들도 적잖이 생겼다.
최근에는 트럼펫도 배우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악기를 하나 더 연주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내와 클래식 연주회도 다니기 시작했다.
더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 연주자의 음악을 듣는 것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택시 운전을 시작한 동창과 부부 동반으로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 가 색소폰을 연주하고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때 이게 사는 맛이구나 기쁨을 만끽했다.
이후 두 부부는 가끔 연주 여행을 떠났다.
택시에 딱 맞는 네 명이라 어딜 가도 쾌적했다.
맛있는 회도 먹고, 술도 한 잔 기울이고, 석양이 지는 노을에서 멋지게 색소폰도 연주하고, '살면서 이런 날도 오는구나!' 하며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두 부부에게 퇴직은 있어도 은퇴는 없었다.
은퇴한다는 생각에서 은퇴하였기에 이전의 삶과 또 다른 멋진 삶을 살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두 사람 같은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퇴직을 은퇴라 생각하고 그만 스스로 의욕과 마음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돈이 되지 않는 일도 엄연히 일이며 내가 잘하지 못 하는 일도 일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는 해야만 하는 일에서 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때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을 하지 않고, 남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황금기에 당도한 것이다.
그것을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는 얼마나 일에 대해 열린 시선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로 정해진다.
일에 대해 닫힌 시선은 자신이 해온 일만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못하는 것은 시작할 엄두도 내지 않는 것, 일에는 귀천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해보지 않은 일, 하고 싶은 일, 서툰 일에 흥미를 가지고 도전하는 것은 일에 대해 열린 시선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스스로 할 일이 없다고 여길 뿐이다.
나 또한 한 번도 은퇴를 생각한 적이 없다.
일의 종류만 바뀔 뿐이라고 생각한다.
교수에서 시간강사로, 작가로, 방송인으로, 프로그램 기획자로 바뀌었다.
그 가운데 돈이 되어 수입이 들어오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부담이 없이 일을 시작하고 언제든 접을 수 있다.
이런저런 일들에서 소소하게 들어오는 돈을 합하면 먹고살 만한 돈이 되니 신기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없는 일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폄하하는 사회에서 자랐다.
그러다 보니 자꾸 그런 자리가 없나 기웃거리게 된다.
그런 자리는 잘 없을 뿐만 아니라 있다 해도 경쟁자가 무척 많아서 선택받기도 어렵다.
하지만 세상이 가치를 부여하는 쓸데있는 일만 일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우박 쏟아지듯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하나 잘 쓰면 평생 청년으로 가슴 설레며 살 수 있지만 마음 한번 닫으면 외롭고 서러운 일상이 반복된다.
퇴직은 있지만 은퇴란 없다.
은퇴라는 생각에서 은퇴하는 순간, 제2의 삶이 환하게 시작된다.
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중에서
이서원 옮김
첫댓글 끝에 다다른 인생이라 생각되었던 내가 자유와 보람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려주셔서 감사감사^^
카페문을 여시면 마법이 시작됩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늙는다.성장한다는건 공부하는것이다' 104세 철학자 김형석교수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늙지 않는 비법
공부를 계속하고, 일하라는 것과 감정을 젊게 가지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