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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 우보만리 한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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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이야기 스크랩 선조의 지혜가 숨 쉬는 남도문화의 상징, 담양
우보만리 추천 0 조회 35 15.01.06 22: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선조의 지혜가 숨 쉬는 남도문화의 상징 담양 - 담양은 다양한 생태자원과 유교와 불교가 조화롭게 녹아든 역사성, 고유한 민속문화를 오랫동안 간직해왔다. 차츰 사라져 원형을 찾기 힘들었던 우리의 풍습, 옛 자취가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빛나는 남도문화를 오롯이 지키고 있는 담양, 더 없이 소중한 우리의 보물이다.

01. 담양의 자랑거리인 정자문화와 가사문학권은 지역의 생태문화를 모태로 한 것이다. 사진은 담양군 남면에 있는 소쇄원 (명승 제40호)이다. ⓒ문화재청

맑은 숲, 수려한 생태환경


담양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로 조성된 가로수길을 비롯해서, 죽녹원과 관방제림 등 수목으로 대표되는 생태자원의 보고로 각광받고 있다. 생태란 자연에 대한 생명체의 적응 방식과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 생명체 속에는 당연히 인간도 포함된다.

인간은 산이 많으면 산에 적응하고, 바다에 접해 있으면 바다에 적응해 삶을 도모한다. 내륙지역인 담양은 북서부 지역에 비교적 높은 산들이 자리한다. 용추산(523m), 추월산(729m), 금성산(603m), 병풍산(822m), 불태산(720m) 등이 그것이다. 또 동남쪽으로는 호남의 명산인 무등산(1178m)이 자리한다. 산지가 발달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산록과 산록 사이에 넓은 분지형의 평야지대를 남겼다. 무진주에서 기병했던 견훤(867~936)도 담양의 너른 들판을 물적 토대로 해 백제 부흥의 꿈을 키웠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담양 일대에 수많은 지류와 강을 이루어 농경지의 젖줄이 된다. 담양군 용면 용추산의 용소는 나주평야의 젖줄인 영산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수려한 산들에서 물이 철철 흐르니, 물 흔한 양지바른 땅이라는 담양(潭陽)의 지명이 자연과 부합한다.

종이는 인류문명을 획기적으로 수직 발전시킨 발명품의 하나다. 한국의 전통 한지가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종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담양은 양질의 닥나무가 나는 한지 생산의 적지였다.

전국적으로 담양의 자랑거리인 정자문화와 가사문학권도 분명 한지와 관계된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종이가 없다면 불가능할 일이다. 우리나라의 문학과 학문의 산실로서 유명한 담양의 가사문학권도 한지로 명성이 높았던 지역의 생태문화를 모태로 한 것이었다.

담양에서 가장 대표적인 생태문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죽공예일 것이다. 오늘날은 사양산업이 되고 말았지만, 과거 담양에서 생산되는 죽공예품은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담양의 경제를 이끄는 중추 산업이었다. 현재 담양읍 천변에 조성된 국수거리는 담양 죽제품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천변에 자리했던 죽물시장은 그 화려했던 과거의 성시 장면을 다시 보기 어렵게 됐지만, 죽물시장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의 흔적으로 오늘날 천변에 국수거리를 남기고 있다.

02. 봄철 새로운 잎을 틔운 메타세콰이어길 ⓒ담양군청 03. 생태자원의 보고 관방제림 ⓒDalgial

유교ㆍ불교가 조화된 역사·문화적 환경


현재의 담양군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탄생했다. 담양도호부와 창평현을 일제강점기인 1914년 오늘날과 같이 1읍 11개면으로 합군했다.

창평현은 담양 관내에서도 넓은 농경지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 농업사회에서 농산물은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물이었다. 넓은 농토는 그만큼 풍부한 농산물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담양이 자랑하는 역사적 인물로 꼽고 있는 류옥(1487~1519)·양산보(1503~1557)·유희춘(1513~1577)·김성원(1525~1597)·오희도(1581~1623)·고광순(1848~1907) 등이 모두 창평현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또한 송순·정철을 비롯해서 박순·김인후·임억령·고경명·기대승·양팽손·최경회 등 호남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모두 창평의 인맥들과 친인척 또는 학연적 교유관계를 맺고 있었다.

창평현의 문화적 특성을 살피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세 가지는 첫째로 넓은 농경지로 대표되는 든든한 물적 토대, 둘째로 수남학구당으로 대표되는 학문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사학시설, 셋째로 부를 토대로 특권적 지위 독점을 과시할 수 있었던 정자 경영이다. 이 세 가지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상관성을 가지면서 창평문화를 형성·발전시켜온 기반으로 꼽을 수 있다.


04. 금성산성(사적 제353호)의 외남문 위에서 바라본 전경 ⓒ문화재청 05. 1398년(태조 7) 세워진 담양향교 대성전.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지낸다. ⓒ문화재청

이러한 창평권에 반해서 옛 담양권은 다른 면모를 보인다. 비록 옛 담양권의 수북학구당이 창평의 수남학구당에 비해 일찍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세력에 있어서 따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유학보다는 불교문화적인 성향이 보다 강한 곳이 옛 담양권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담양 북서부에 발달하고 있는 500~700m에 이르는 여러 산에는 유명 사찰들이 많았다. 과거 40여 요사채가 있었다는 용흥사는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해주었다는 마라난타가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으며, 전우치(田禹治) 전설과도 관련이 있는 금성산의 연등사, 이성계의 전설이 있는 삼인산, 그리고 역사가 깊은 추월산의 용추사와 보리암 등이 유명하다.

특히 옛 담양권의 가장 규모가 있는 문화유적은 금성산성이라 할 것이다. 지역수호는 물론 호국적 기능을 했던 금성산성은 문무(文武)의 비중으로 볼 때, 문보다는 무에 속하는 성격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이영간이나 전우치의 비술 역시 괴력난신을 피하는 합리적 유학에서는 비하하지만, 종교적 신이성을 중시하는 불교와는 상통할 수 있다.

담양에는 현재 국가지정문화재는 15종, 도지정문화재는 52종이 있다. 이들 지정문화재 중에 불교문화재의 경우는 담양권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유교문화에 속하는 누정문화재 등은 창평권에 집중해 있다. 뿐만 아니라 기와집 저택 중심의 민속자료 고택 역시 창평현에 집중되어 있다. 저택이 창평현에 밀집되어 있다는 것은 창평현에 그만큼 부자가 많았다는 뜻이며, 이런 배경은 결국 정자를 짓고 유학에 정진하는 일련의 창평문화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06. 금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불려졌던 황금리들노래(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6호) ⓒ문화재청 07. 마을공동체가 하나가 되도록 보살펴준 당산신을 모시는 당산제 ⓒ문화재청

특유의 생활양식 갖춘 민속문화 환경


곡성군과의 접경에 위치한 담양군 무정면 동강마을은 특이한 민속현상을 보이는 곳으로 주목된다. 대보름 세시풍속으로 볼 때, 호남지역은 줄다리기권과 달집태우기권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줄다리기는 주로 평야지대인 서부지역에 분포하고, 달집태우기는 산간지역인 동부지역에서 흔하다. 둘이 함께 마을민속으로 노는 예는 극히 찾기 어렵다. 달집태우기와 줄다리기가 한 마을에 전승되고 있는 것은 두 개 문화권의 접경지대에서 볼 수 있는 혼재 양상이다. 다른 사례로써 담양지역은 우도굿과 좌도굿이라는 농악 전통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경엽 교수(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가 밝힌 바에 따르면, 농지가 발달한 대전면·수북면·봉산면·고서면 등지의 풍물굿은 우도굿이며, 산지가 많은 용면·무정면·금성면·대덕면 등지는 좌도굿의 전통이 강하다고 한다.

담양 출신 판소리 거장 이날치(1820~1892)의 활약상도 그렇지만, 수많은 담양의 명인명창들이 열거될 수 있는 것도 바로 담양의 민속예술이 크게 꽃을 피웠던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더구나 판소리의 역사를 장식하는 박동실(1897~1968)로 대표되는 창작 판소리가 담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고답적이며 교조적인 전승을 고집하는 일반적인 판소리의 전승풍토와는 달리, 서편제의 전통 위에 동편제까지를 숙달했던 박동실은 이들 두 유파의 결합에 그치지 않고, 전승판소리를 창작 판소리로 재탄생시키는 중흥조의 역할을 자임했던 것이다.

담양의 민속예능 중에서 농악과 들노래도 빠뜨릴 수 없다. 담양에는 지금도 이름난 풍물꾼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우도농악 김동언을 비롯해서 영천리 죽산의 상쇠 정사동 등은 이미 농악에 있어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또 논일을 하면서 불렀던 들노래 역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불리어졌던 것이 들노래이다. 노래는 일의 날개라는 속담이 있다. 노래를 하면서 일을 하게 되면 그만큼 능률이 높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북면의 황금리들노래가 2009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뿐만 아니라 평야가 넓어 논농사가 발달했던 담양 지역에서는 마을마다 들노래가 불리어지고 또 놀아졌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어려운 모뜨는 소리가 곳곳에 전해오고 있으며, 또한 논매기소리는 지화자소리, 떨어지소리, 나헤소리, 사뒤여소리 등으로 다양한 노래들이 분화 발전을 이루면서 불리고 있다는 것도 특색이라 하겠다.

담양의 민속으로 현재 당산제 역시 강한 전승력을 가졌다. 당산제는 마을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마을을 보살펴주는 당산신(堂山神)에게 제사를 모시는 민간신앙의 하나다. 민속 중에서도 특히 민간신앙은 급속히 사라졌지만, 담양에서 당산제는 다른 지역보다 전승력이 강해 현재 38개 마을에서 지속해오고 있다. 당산제는 민간신앙에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한 세속적 사회강화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마을민의 협동심을 강화하고, 마을 자치의 규범을 준수하며, 또한 예능적·위생적 기능은 물론 노거수를 보호하는 생태문화적 기능까지를 겸유한 선조들의 지혜로서 현대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담양의 민속으로 현재 당산제 역시 강한 전승력을 가졌다. 당산제는 마을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마을을 보살펴주는 당산신(堂山神)에게 제사를 모시는 민간신앙의 하나다. 민속 중에서도 특히 민간신앙은 급속히 사라졌지만, 담양에서 당산제는 다른 지역보다 전승력이 강해 현재 38개 마을에서 지속해오고 있다.

 

글 나경수(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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