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트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으리라 하시니라(막 2:2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눅 5:38~39).” 오역이다.
묵은 포도주는 바리새인들이 마시는 율법으로 거기에 취해 있어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법(새 포도주)을 거부한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대상으로서의 근본 하나님을 만나려 하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께서 주시는 새 포도주를 거부한다.
새 포도주는 속사람의 마음 너머에서만 마실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는 내 안의 마음 너머에만 임재(臨齋)하여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 행위를 통해서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근본 하나님은 우리 마음(카르디아) 너머에 계신다. 새 포도주를 마시려면 반드시 과정을 통한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 먼저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봐야 하는데 이 훈련도 만만치 않다. 이 훈련을 마쳐야 비로소 새 포도주를 마실 기회가 주어진다. 묵은 포도주를 생략하고 새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를 음부(간음한 자)라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간음한 자)라(롬 7:3)” 하였다. 반드시 묵은 술에 취해봐야 율법 남편의 그 속성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형식에 불과한 예배나 예수를 믿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종교인들의 말에 속으면 큰일 난다. 길고도 험난한 이 훈련을 통해서만 그 생명의 그 빛(근본)으로 하나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려가게 되는 것이 사망의 길이다. 올바른 길은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마음 밭을 갈아엎다)’와 ‘메타노에노(바꾸다)’의 일이 내면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래야 그 과정을 거치면서 가라지의 속성들을 하나하나 제거할 수 있다. 그런 후에야 근본 하나님이 계신 몸 된 성전이 내면에서 드러나게 된다.
첫댓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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