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분들이 그동안 뭘 먹었고 어떻게 관리했나?
궁금해하시는데 뭐 특별한거 없습니다.
몸에 좋다는거 찾아서 먹은거 하나도 없고요.
집사람이 차려주는 밥 잘먹고 병원에서 알려준대로 감염병 예방에 신경쓰고
운동삼아 매일 자전거 2시간 정도 탄게 전부입니다.
영양제 비타민제 먹은적도 없는데 나이는 어쩔수없으니
이제와서 비타민D하고 종합비타민제 먹고요.
요양병원이나 공기 좋은 산속에서 생활한적도 없습니다.
발병전이나 지금이나 공기 나쁜 서울 한동네에서 계속 살고있습니다.
투병하면서 바뀐거는 딱 두가지뿐입니다.
일단 담배는 병원 다니기 시작하면서 바로 끊었고요.
그리고 화내지 말고 웃자! 입니다.
모든일에 그러려니~~ 하고 웃고 넘기려 노력합니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실천하시면 치료에 여러모로 좋습니다.
치료과정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2001년 2월말에 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에서 악성림프종 진단받고
3월초에 표준요법인 CHOP으로 외래주사실에서 시작하였습니다.
1차부터 불응이고 2차, 3차도 마찬가지여서 동종이식이 필요한데
관해는 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이라 바로 이식을 할수가 없었죠.
5월에 여의도성모병원(서울성모는 2009년 개원)으로 전원후 입원하여
4차에 새로운 약으로 바꿔도 계속 퍼져나가는 공격성이 아주 강한 진행형이라
교수님도 어떤치료법을 써야할지 고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당시에는 림프종 세부아형분류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림프종은 호지킨, 비호지킨이 전부였고 B셀 표적항암제인 맙테라도 없었습니다.
성모병원이 혈액암 전문이라 입원해서 말초T셀이라는걸 알았죠.
졸업즈음에 세부아형이 Subcutaneous Panniculitis Like T-cell Lymphoma 이라는걸 알았고요.
피하지방층염증과 유사한 T셀 림프종.. 이라는 뜻이죠.
지금은 같은 타입 환우분들이 몇분 계시지만 20년전에는 보기드문 병이라
이증상이 림프종인지 모르는 의사들도 많았습니다.
처음 진료를 본 의사도 루프스로 의심해서 루프스 검사도 받았고요.
중앙병원 피부과에서는 의사들이 모여 제 병변을 촬영해가면서 임상사례연구도 했어요.
다행히 형님과 적합성이 일치하여 공여자는 준비되어 있는데
관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이식을 할수가 없었죠.
성모병원 교수님도 국내사례는 없으니 난감해하시다
미국 MD앤더슨에 연구원으로 계신적이 있어 MD에 유사사례가 있는지 알아보시고
비슷한 환자 치료한 케이스를 참조해서 저에게 응용하신 방법이
우선 자가이식을 통한 고용량항암으로 관해 먼저 시키고 항암 2번 더하고
이어서 동종이식하고 회복된후에 숙주반응을 유발하고자
공여자림프구주입술(DLI, Donor Lymphocyte Infusion)을 3회 하고
이후부터는 숙주반응 조절, 감염병 예방과 추적관찰만 하였죠.
추적관찰중에 비맞고 감기 걸려서 폐렴으로 입원도 하고요.
대상포진으로 고생도 하고 숙주반응이 입으로 와서 먹는게 괴로웠고요.
다 한번씩 거쳐가는 과정을 격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년을 채운것이죠.
우리에게는 시간이 약! 입니다~
치료중 소소한 에피소드..
교수님께서 처음 생각하신 치료과정은 동종이식 직전에
자가이식 한번 더 하는것으로 계획을 잡으셨음.
하지만 1차 자가이식후 2번의 추가 항암후에 조혈기능이 회복이 안되어
조혈모세포 부족으로 2차 자가이식은 포기하고 바로 동종이식으로 진행함.
2001년 5월 국내 최초로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만성골수성백혈병
먹는 치료제인 글리벡 임상을 시작했음. 같은 병실에 입원중이던 양**씨가
국내 1호 글리벡 임상환자로 그날 방송3사 9시 메인뉴스에 소개됨.
(이날 3사 뉴스에 제 얼굴도 잠깐 나왔네요~)
뉴스에서 소개한 약먹는 장면에서는 비타민영양제 먹었음.
글리벡은 식사중간에 먹는약으로 밥 반공기 먹은후에 글리벡 먹고
나머지 반공기 먹어야하는데 방송3사 촬영은 오후에 했기에
펠로우가 약들고 와서 환자에게 건네준 약은 비타민제였음.
4차 항암부터는 입원하여 새로운 약으로 진행하였는데 들어가는 약물이 너무 많아서 고생이었음.
폴대에다 동시에 병6개까지 달아서 맞은적도 있고 지금은 약물이 비닐팩이라 가볍고 안전하지만
20년전에는 전부 유리병이고 거기다 펌프 2대를 같이 붙여놔서 무거워 이동하기 엄청 불편하였음.
진짜 곤욕은 병6개 달면 1시간마다 화장실 가야함. 밤에 잠도 못자고 다른환자와 보호자에게 민폐였음.
중간중간 피검사후 적혈구 부족하다고 수혈도 추가로 받아야해서 꼼짝 할수가없어 누워만 있었음.
각종 검사를 너무 많이해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몸 여기저기에 흔적이 남아있음.
채혈하느라 항상 같은곳을 수백번 찔러대니 오른팔에 면봉 크기 만한 주사바늘 흉터가 있음.
골수검사도 10번 이상하여(11번으로 기억) 골반뼈 양쪽에 젖가락 굵기 만한 흉터가 있음.
찌르기 좋은 위치에 표시가 나있으니 간호사나 의사나 항상 같은 자리만 찌르더라는~~
CT촬영도 많이했더니 필름도 엄청 많아서 외래갈때마다 담당간호사 그거 찾아오느라 고생함.
다른환자 필름은 들고오면 그만인데 내 필름은 들고올수가 없어 항상 카트를 이용했음.
지금이야 교수님 모니터에 CT결과가 바로 나오지만 20년전에는 촬영필름을 형광등 위에 올려서 봤고
병실 복도마다 필름 보는 조명장치가 있었음. 지금은 이런거 있는 병원이 시골에도 없죠~
자가이식은 급하게 하느라 이식병실 자리가 없어 일반병실에서 시작하고
나중에 무균실에 한자리가 비어 무균실로 이동하여 마저 진행함.
8인 무균실에는 급성백혈병환우만 들어와서 그런지 텃새가 있었음.
동종이식은 이식병동 1인실에서 진행했는데 보호자 없는 병실이라 혼자서 4주간 있었음.
고용량항암제 들어가면서 오는 무기력함과 고통은 참고 견딜수있지만 밥시간이 가장 우울했음.
식사중 구토가 나오면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먹던 국그릇에 토하고 그것을 보면서도
여기서 빨리 나가려면 나머지 밥을 마저 억지로 먹어야만 한다는 현실이 너무 서글펐음.
몸이 회복되어 8인 무균실로 이동하였는데 역시나 7명 전부 급성백혈병환우뿐이었지만
1인 이식실에서 동조이식 마치고 나온거라 하니.. 텃새가 쏙~ 들어감.
몇달후에는 본인들도 지금 치료가 잘되야 나처럼 될터이니 잘 보고 배워야겠죠.
7주만에 드디어 퇴원하는날 히크만관 제거시 레지던트가 히크만관을 끊어먹어
일부만 나오고 나머지는 가슴근육속에 붙어있어 마저 빼내는데 개고생함.
혼자서하는거를 내과 레지던트 콜해서 4명이 붙어 겨우 수습함.
수술실 내려가서 아래로 추가 절개후 빼내고 봉합해야하는데 교수님이 아시면 깨질거 같으니
자기들끼리 붙어서 병실에서 절개후 겨우 해결했는데 내과 레지던트라 바느질을 엄청 못함.
덕분에 가슴에 흉터만 큼지막하게 남겨주어 지금도 수영장은 안가요.
여름에 바닷가 가더라도 꼭 T셔츠 입고 다녀요.
퇴원하는날 일어난 일은 이거 말고도 더 있는데..
동종이식하고 퇴원하는 환자중에는 아무도 없을 일이라
교수님이 아셨다면 엄청 깨졌을 일이지만 담당레지던트가 같은 성씨여서
교수님은 은퇴하시는 날까지 그런일이 있었는지 모르시고 퇴직하셨음.
가슴절개를 크게해서 지혈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렸고 퇴원도 늦어져
오후 늦게 퇴원하여 집사람과 둘이서 택시타고 집으로 갔음.
집에 돌아와서 일찍 누웠는데 바느질 못하는 레지던트가 전화를 하더니..
왜 그냥 갔냐고 지금 빨리 병원으로 돌아오라고함.
출혈부위가 커서 지혈후에 30분짜리 꼬마병 항생제를 정맥주사로 맞아야 하는데
레지던트가 병실간호사에게 알려주질 않아 간호사는 모르고 지혈되었으니
퇴원하시라 안내해줘 집으로 온것인데 병원으로 다시 가야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음.
면역력 낮은 상태이니 퇴원에 맞춰 4세 큰아들은 누나가 데려갔고 11개월된 작은아들은
장모님이 데려가셨는데 급하게 가시느라 기저귀 가방을 두고 가셔서 집사람이 그거 들고
친정집으로 갔기에 혼자 자고 있었음.
11월말 쌀쌀한 늦저녁 감기 안걸리게 차려 입고 나섰지만 금요일 퇴근시간에 택시가 있을리가요~
혼자 15분 걸어 지하철역으로 가서 지하철 타고 여의나루역 내려서 시내버스타고
병원 응급실 들어가서 30분짜리 항생제 맞고 택시타고 집으로 돌아옴.
지하철 계단이 어찌나 힘들던지~~ 그때는 왜? 119에 전화할 생각을 못했을까요?
히크만관 뽑은 후에도 신생아처럼 각종 예방주사 다시 맞았고
DLI하느라, 검사하느라, 폐렴걸려서.. 등등 입퇴원을 수시로 반복하였지만..
이식할때에 비하면 뭐 껌 수준도 아니죠.
<부록>
슬기로운 입원생활!!
간호사에게 잘대해주자.
침대시트, 환자복 하나라도 더 챙겨준다.
의사에게서는 이런거 한개도 안나온다.
몸이 편할때 소화시킬겸 병원 구석구석 다녀보자.
잘 찾아보면 비상용엘리베이터도 있고 여러시설 위치 알아두면 편리함.
교수 회진시 몸 움직일만하면 앉아서 맞이하자.
누워 있으면 별말 안하고 빨리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
앉아있어야 몇마디라도 더 하고 들을수있다.
입원시 필요한 물건들은 따로 챙겨서 배낭이나 큰가방에 넣어두자.
병원에서 연락오면 바로 들고 나갈수있게 준비해둔다.
보험이 있으면 보험사에 문의하여 필요서류 알아보고
퇴원전날 간호사에게 서류 준비해달라고하면 퇴원시 받을수있다.
이식이 예정되어 있으면 20~30대 남성으로 10명정도 추려서 지정헌혈을 미리 부탁해두자.
병원에서 혈소판 수급이 어려울 경우 바로 연락하여 지정헌혈을 부탁한다.
개인사정상 어려운 경우를 대비하여 10명 정도 후보를 만들어둔다.
- 모든 환우분들 치료 잘받으시고 완치되시리라 기원합니다. -
첫댓글 글 너무 재밌게 읽었네요~힘든 투병과정 완전 상세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저는 한달전에 맞았던 약 이름들도 가물가물 ;;; 소중한 경험 공유해주시고 팁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어려운 케이스인데 이렇게 잘이겨내셧네요! 같은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우보호자로서 더더 힘이되는글입니다 아 그리고 찬물끼얹는글이지만 코로나라 구석구석 다니는거 불가요ㅠ다른층도못가게하셔요! 앞으로도 쭉 건강하시길바랍니다^^
대단을 넘어 존경스럽습니다^^
치료과정이 결코 쉽지 않으셨는데 잘 이겨내셨네요.
투병생활중 실천한 두가지중 담배는 태어나서 한번도 안피웠고 나머지 한가지 화내지 말고 웃자~ 이것만 잘 지키면 저도 이런 후일담을 남길수 있겠죠 ㅎㅎ
벌써 3편이 기다려 지는데 어떡하죠~
올려주신글 잘읽고 힘 받아갑니다.
와... 순식간에 다 읽었습니다. 힘이 나는 글입니다. 많은 환우분들이 이 글 읽고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알타리님께서도 엄청 고생하셨네요. 우리 도원이는 엄청 토해서 힘들었었는데. 페혈증도 오구요. 남기신 글들마다 환우분들께는 큰힘이 될겁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글 잘읽었습니다.
그당시엔 지금 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텐데 고생하셨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쭉~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어려운 치료 마치시고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 올려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글솜씨가 너무 좋으셔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안녕하세요 알타리님~ 같은 아형인 sptcl 투병중인 환우 입니다.
2016년 11월에 확진을 받고 EPOCH 6주기 불응/ GDP 2주기 불응 / ICE 4주기 불응으로 1년간의 항암치료가 아무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조혈모 이식은 항암치료 효과가 더 좋아지면 하자고 시도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2017년 12월에 고열로 인한 입원당시 면역 억제제 (사이클로 소포린) 복용후 귀신같이 증상이 가라 앉아서 1년간 약 복용후 병변이 안정화 되면서 단약하고 여태 유지중이 었습니다.
얼마전 옆구리에 멍울이 생기더니 거북한 감이 느낄정도로 커지고 통증도 불규칙하게 찾아와서 내년 3월에 있는 외래를 다음주 화요일로 급히 당겨 놓은 상태입니다. 아직 열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외래전에 고열이 동반될까걱정이네요...ㅠㅠ
저도 확진까지 류마티스 내과를 6개월간 다니면서도 림프절이 시꺼멓게 되었는데도 스테로이드제만 처방하더니 피부과 협진해서도 피부과 교수님이 저를 붙잡고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이 뭐라 말해줘야 하는데 모르겠다면서....2016년에도 현실이 이렇더라고요.
같은 아형에 멍울이 생긴터라 글을 읽고 이렇게라도 몇글자 적어보네요....항상 건강 하세요^^
저도 중앙병원에서 항암에 실패하여 백혈병처럼 동종이식으로 가려고 했는데..
백혈병교수님이 보시더니 지금은 계속 진행중이라 이식을 할수없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전원하여 자가이식으로 관해시키고 다지기 항암 두번 더하고
동종이식으로 마무리지었죠. 성모병원 교수님도 이게 성공할지는 장담은 못하셨지만..
집사람과 같이 교수님 면담시 화이트보드에 교수님이 생각중이신 방법을 써가며 설명해주셨는데..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이라는 설명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교수님 치료방식에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비급여 항목이 많아서 병원비는 정말 많이 나왔지만 완치에 성공했으니 교수님과 병원직원들에게 감사할따름이죠.
ICHI님도 치료가 잘되시길 바랄께요.
고통스런 치료과정을 글솜씨가 좋으셔서 일사천리로 읽게되네요
지금도 힘든치료를 데이타도 없던 20년전에는 얼마나 더 힘드셨을지요
환우와 가족들에게 20년이라는 희망적인 삶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쭈욱~~~~건강하고 행복하셔요
또 후속글이 마구마구 기다려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산 역사네요. 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년 전 투병일지 생생하게 상세히 올려주신 알타리님 정성 부럽고 감동입니다.
조마조마 하다가 웃다가 읽었습니다. 금연하시고 화내지 말고 웃자.! 환우님들께 큰 도움되며 힘이 되는 글 감사합니다. 도영할비도 뒤따라 가야 되는데...
저희도 내년초 자가이식을 위해 채집준비주인데, 정말 도움많이 되었습니다~!
저희도 20년 후에 알타리님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네요!!!
림프종인 아빠위해 가입해서 이런저런 글 읽다보면 정말 감동이고 대단하고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합니다.
1차 함암 후 열땜에 항생제 5일 약이 들지 않아서 다른 항생제를 맞고 효과가 있어서 염증수치가 떨어지고 열도 떨어지지만 컨디션 좋은 상태에서 2차 항암하셔야 한다며 아직 퇴원 못 하시고 계신 아빠 걱정에 항생제로 검색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20년의 시간이 감동적으로 자나가네요
고생많으셨습니다.
멋있으세요~^^
정말 희망적인 글 감사합니다
나도 할수있다
나는 살수있다
다짐해봅니다
건강관리 쭉 잘 하시어 가끔 글 남겨주세요
행복하시구요
응원합니다